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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한문 저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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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10 ㅣ No.1467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한문 저본 연구*

 

 

국문초록

 

19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연구하려면 신자들이 읽고 암송했던 한글 천주교 문헌들을 분석해야 한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성교요리문답』, 『천주성교공과』, 『주년첨례광익』, 『성경광익』, 『신명초행』 등의 한글 천주교 문헌을 간행하였다. 라틴어나 프랑스어 등으로 된 유럽 문헌을 참고하면서 중국 천주교에서 번역 내지 편역한 한문본을 대본으로 하여 한글본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글 천주교 문헌을 연구하면 19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천주교의 전파와 수용 과정이 지니고 있었던 종교적 관념의 다층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 천주교 문헌 『성교요리문답』은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다. 1860년대 초에 초판이 나온 이래 목판 또는 활판으로, 순 한글 또는 국한문 혼용으로 수없이 판을 거듭하면서, 1934년에 새로운 교리서 『천주교요리문답』이 나올 때까지 70여 년 동안 조선 천주교회의 유일무이한 공식 교리서라는 평가대로 신자들의 교리 지식이나 영세, 고해, 성체, 견진 등 각종 성사 생활의 실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성교요리문답』 역시 다른 한글 천주교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한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한글본에는 한문본을 번역한 문장과 이에 대해서 번역자가 다시 뜻을 풀이한 역주 문장이 섞여 있다. 그리고 한문본의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부분도 있고, 조선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다듬어 바꾼 부분도 들어 있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한문 저본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 요청된다. 그래서 1860년대에 나온 한글 천주교 문헌 『성교요리문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하여 그 한문저본을 탐색하는 기초 작업을 실행하였다. 그 결과 1788년의 『聖事問答』, 연도 미상의 삼본문답 『領洗問答』,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의 『聖敎要理問答』, 그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의 『聖敎要理問答』이 한글본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보았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한문본 『聖敎要理問答』 사이의 긴밀한 연관 관계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해당 문답의 문장도 대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한글본과 한문본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문헌상으로는 연관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판본인 사본문답 『영세문답』과 일치하였다. 따라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번역 저술하는 과정에서 한문본 『聖敎要理問答』을 중심적인 저본으로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교리문답 문헌들이 조선 천주교 내에 들어와 있었고, 그 일부를 실제로 참고하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Ⅰ. 서론

 

19세기에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교리 지식이 어느 정도였으며, 또 기도와 성사, 묵상 등 각종 신앙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였을까? 조정과 지방 사회의 혹독한 탄압을 견뎌내면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의 실체를 밝히려면 아무래도 그들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터전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신자들이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읽고 암송했던 한글 천주교 문헌들이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한글 문헌들로는 『주교요지』, 『성교요리문답』, 『천주성교공과』, 『주년첨례광익』, 『성경직해광익』, 『신명초행』 등이 있다. 정약종이 한글로 지은 『주교요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천주교 문헌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 신자들을 위하여 간행한 것이지만 처음부터 한글로 지은 것은 아니었다. 라틴어나 프랑스어 등으로 된 유럽 문헌에서 출발하여 중국 천주교에서 이를 번역 내지 편역한 한문본을 거쳐서 한글본으로 정착하였다. 그러므로 한글 천주교 문헌을 연구하면 19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천주교의 전파와 수용 과정이 지니고 있었던 종교적 관념의 다층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한글 천주교 문헌 『성교요리문답』은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다. 1860년대 초에 초판이 나온 이래 목판 또는 활판으로, 순 한글 또는 국한문 혼용으로 수없이 판을 거듭하면서, 1934년에 새로운 교리서 『천주교요리문답』이 나올 때까지 70여 년 동안 조선 천주교회의 유일무이한 공식 교리서라는 평가대로 신자들의 교리 지식이나 영세, 고해, 성체, 견진 등 각종 성사 생활의 실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한글본 『성교요리문답』 역시 다른 한글 천주교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한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한글본에는 한문본을 번역한 문장과 이에 대해서 번역자가 다시 뜻을 풀이한 역주 문장이 섞여 있다. 그리고 한문본의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부분도 있고, 조선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다듬어 바꾼 부분도 들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한문 저본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 요청된다.

 

한글 천주교 문헌 연구의 전제 가운데 하나는 문헌의 원천 혹은 출처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즉 한문 혹은 유럽어로 되어 있었던 원래 문헌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또 그 문헌을 저술한 주체가 누구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문헌이 조선 천주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은 1860년대에 나온 한글 천주교 문헌 『성교요리문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하여 그 한문 저본을 탐색하는 기초 작업을 실행하고자 한다. 그래서 먼저 한문 저본에 관한 기존 연구와 통설들을 검토한 다음에, 이를 토대로 하여 한글본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 한문본 교리서가 무엇이었는지를 문헌 대조를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기존 통설 검토

 

먼저 자료집의 해제 및 사전류 저작에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한문 저본을 어떻게 추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1985년에 한글본 교리문답 문헌 4종(성교요리문답, 진교절요, 성교요리, 성교백문답)을 영인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자료 제15집으로 간행하였다. 이 자료집에 들어 있는 「해제」에는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이 “중국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던 『聖敎要理問答』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고만 하였다. 그리고 “한문본에서 「요경육단(要經六端)」과 「성교요경(聖敎要經)」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으며. 「사본요리(四本要理)」라는 별명처럼 성세, 고해, 성체, 견진의 네 가지 근본 교리를 총 154조목으로 나누어 문답식으로 풀이”한 것으로 설명하였다.1)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한문본을 사용하여 한글본이 만들어졌는지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원천이 되는 한문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2) 이에 따르면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은 한문본을 대본으로 한 것이고, 이 한문본의 이름은 본래 『성사요리(聖事要理)』 또는 『성사요리문답(聖事要理問答)』이었다. 훗날 중간되면서 『성교요리문답』 또는 『진교요리문답(進敎要理問答)』 등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성교요리문답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문답의 원천 자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영세문답」은 포르투갈어 영세문답을 번역한 것이고, 「고해문답」과 「성체문답」 그리고 「견진문답」은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회원으로 1759년 이래 중국에서 활동하던 돌리에르(J.F. Marie-Dieudonn d'Ollières, 方守義, 1722-1780)가 1774년 무렵에 저술한 것이라고 한다. 돌리에르의 『성사요리』는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면서 오랫동안 중국 천주교회의 주요 교리서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성교요리문답」 항목의 저자는 한글 목판본 『성교요리문답』이 아마 돌리에르 교리문답의 중간본(重刊本)을 대본으로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므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은 18세기 중국 북경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돌리에르 신부의 저술 『聖事要理』 혹은 그 중간본으로 간행된 『聖敎要理問答』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라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다. 이러한 통설에 근거를 제공한 것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프랑스 성모 성심회(聖母聖心會, C.I.C.M.)의 회원 조제프 제네스(Joseph Jennes, 燕 鼐思) 신부의 연구서이다.3) 제네스 신부는 중국 천주교회에서 신자 교육용으로 제작하여 배포한 교리문답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트렌토 공의회 이후 공의회 교부들의 결정에 따라서 1566년 『로마 교리문답』이 간행되었다. 그 밖에도 카놋사와 볼료냐의 『교리문답』이 있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천주교 선교사들의 교리 저작들은 그 절대 다수가 이러한 유럽 교리문답의 영향을 받았다. 모두 그 교리문답을 가지고 감본(監本)으로 삼았다.4) 이어서 제네스 신부는 영세, 고해, 성체, 견진의 네 가지 성사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교리문답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그 시작점을 포르투갈 선교사 주앙 소에이루(João Soeiro, 蘇如望, 1566-1607) 신부에게서 찾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소속의 포르투갈 선교사 주앙 소에이루 신부는 예수회 수사 마르코 조르제(Marcos Jorge)가 편찬한 포르투갈 『요리문답(要理問答)』을 번역하였다. 이것은 사부요리문답(四部要理問答)의 성사요리 가운데 제1부 성세문답(聖洗問答)이다. 사부요리문답은 후대에 가서 중국 북방에서 통용하는 요리문답이 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세례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사도신경」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다.”5)

 

여기서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수사 마르코 조르제(1525-1571)가 포르투갈어로 편찬했다는 교리문답은 『도트리나 크리스탕(Doutrina Christã)』이며, 그 초판본은 1566년 리스본에서 간행되었다. 또 제네스 신부는 자신의 저서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성사요리문답(聖事要理問答)』은 한 권의 매우 통용되던 서적이었다. 첫 부분(성세를 논함)은 앞서 이미 존재하던 것인데, 대개 그레고리오(瑪尒谷岳格) 주교6)의 포르투갈어 『요리문답』을 번역해냈던 것이며, 후에는 또 17세기 초엽에 주앙 다 로샤(João da Rocha, 羅儒望, 1565-1623) 신부를 거쳐 개편되었다. 기타 세 부분(고해, 성체와 견진 각 성사를 논함)은 예수회 돌리에르(J. F. Marie Dieudonne D'ollières, 方守義, 1722-1780) 신부에 의해 1774년에 발간된 것이다. 후에 북경에서 이 『요리문답』을 채택하였으며, 아울러 북경 교구에서 분리된 몇몇 대목구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요리문답』은 마침내 화북과 몽골 대목구의 전용 『요리문답』이 되었다. 1934년에 이르러 통일된 『요리문답』이 출판된 이후에야 그 사용이 정지되었다.”7)

 

제네스 신부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먼저 마르코 조르제의 포르투갈어 영세문답이 주앙 소에이루 신부에 의해서 한문으로 번역되었고, 이를 주앙 다 로샤 신부가 개편하였다. 그 뒤에 돌리에르 신부가 나머지 세 부분, 즉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의 한문본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성사문답이 북경 교구, 이어서 북경 교구에서 분리된 몇몇 대목구, 나아가서 화북과 몽골까지 전파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제네스 신부의 주장이 담고 있는 문제점은 주앙 소에이루 신부의 첫 한문본 그리고 주앙 다 로샤 신부의 개편 한문본을 직접 대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돌리에르 신부가 1774년에 발간하였다는 완성된 교리문답 역시 아직 학계에서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철저한 문헌 고증을 통하여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의 역사를 밝히는 것이 과제라 하겠다.

 

그런데 최근에 동아시아 교리문답 문헌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가 제출되었다. 그것은 2020년 일본 나가사키 순심대학에서 나온 박사 논문이다.8) 이 연구는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을 예수회 계열과 파리외방전교회 계열로 나누어 고찰했다. 그래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은 한문본 『聖敎要理問答』, 그리고 『聖事問答』, 『聖事要理問答』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마르코 조르제의 포르투갈어 교리문답, 주앙 다 로샤의 『天主聖敎啟蒙』 번역, 그리고 돌리에르의 보완 등을 거쳐서 사본문답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조선에 전래되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1788년에 나온 『聖事問答』이 1844년의 『聖敎要理問答』으로 이어져서 조선으로 전래된 이후에 이를 번역함으로써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은 중국과 조선, 일본에서 사용된 교리문답 문헌들을 대조하여 그 연관성을 규명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과 1844년에 나온 한문본 『聖敎要理問答』의 「領洗問答」을 원문 대조를 통하여 비교하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세문답」만 비교하였을 뿐이며, 전체적으로 원문을 완전히 대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통설과 연구를 토대로 하여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문헌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을 조사할 것이다. 관련 문헌들을 조사한 다음에 한글본의 한문 저본으로 추정되는 문헌들을 선정하여 그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검토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한글본과 대조함으로써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번역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한문 문헌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Ⅲ.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은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의 네 가지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각 문답에 들어 있는 문항과 답항의 수효를 계산하면, 「영세문답」은 140문답, 「고해문답」은 74문답, 「성체문답」은 48문답, 「견진문답」은 46문답이다.9) 셋째, 본문은 문항과 답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문항이나 답항이 끝난 뒤에 행을 바꾸고 한 칸을 내려서 문항이나 답항의 내용을 풀어서 상세하게 해설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주로 답항에 대한 해설이 많다. 넷째, 상세한 해설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용어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쌍행으로 된 협주가 추가되어 있다. 이것은 한글본에만 들어있는 내용이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구성이나 내용과 유사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을 조사하여 한글본의 한문 저본을 찾기 위하여 국내외 도서관과 연구기관의 관련 문헌 소장 상황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영인본 자료집으로 간행된 천주교 문헌 자료집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중국 천주교 문헌 이외에도 중국의 지방에서 간행되어 중국인 신자들 사이에 유통되었던 것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것은 중국 현지의 고서 판매 사이트에서 종종 발견된다.10)

 

1. 문헌 조사

 

먼저 국내에 소장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을 조사한 결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도광(道光) 24년(1844) 중각본(重刻本) 『聖敎要理問答』 1종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주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Australia)도 같은 제목과 간행 연도를 기록한 『聖敎要理問答』 1종을 소장하고 있었다.11) 그리고 해당 판본은 미국 뉴욕 공립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에도 1종이 소장되어 있다.12) 국내의 연세대학교 도서관에도 『聖敎要理問答』 1종이 있지만, 이것은 1865년 일본에서 나온 판본이다. 이 판본을 소장하고 있던 일본 상지대학(上智大學)에서 2011년 영인본 자료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 간행된 천주교 문헌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유럽 도서관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éque National de France)이다. 이곳에 있는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으로는 20여 종이 확인된다.13) 『天神會課』(Chinois 6958), 『天主聖敎百問答』(Chinois 7002),14) 『聖敎問答指掌』(Chinois 7007), 『聖敎問答』(Chinois 7008), 『天主敎要問答』(Chinois 7064), 『聖敎要理』(Chinois 7246Ⅱ), 『領洗問答』(Chinois 7254), 『領洗問答』(Chinois 7255), 『將領聖水問答』(Chinois 7256), 『堅振問答』(Chinois 7257), 『天主聖敎告解道理』(Chinois 7276Ⅰ), 『聖體問答』(Chinois 7297), 『天主聖敎要理』(Chinois 7304), 『要經畧解』(Chinois 7327),15) 『天主聖敎總牘內經』,16) 『袖珍日課』(Chinois 7372),17) 『要理六端』(Chinois 7409),18) 『聖敎啟蒙指要』(Chinois 7420),19) 『聖事問答』(Chinois 7447), 『要理六端』(Chinois 7450),20) 『天主敎要問答』(Chinois 7451) 등이 그것이다.21)

 

로마에 있는 예수회 문서고와 교황청 바티칸 도서관도 중국에서 간행된 천주교 서적들을 상당량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부가 영인본 자료집으로 간행되어 있다. 이 자료집들을 조사한 결과 다음의 문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예수회 로마 문서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은 『天主聖敎啟蒙』,22) 『天主聖敎入門問答』23)이다. 그리고 교황청 바티칸 도서관에 있는 문헌으로는 『領洗要理』,24) 『天主聖敎經文 附 聖敎小問答』와 『天主聖敎經文 附 天主敎要問答』25) 등이 있다.

 

이상에서 조사한 중국 간행 한문본 천주교 교리문답 문헌들의 원문을 확인한 결과,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유사한 체재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헌 사이의 비교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다섯 종으로 추릴 수 있다.26) ①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聖敎要理問答』, ②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聖敎要理問答』, ③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본 『領洗問答』(Chinois 7254), ④ 같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앞의 문헌과는 형태와 내용 구성이 다른 『領洗問答』(Chinois 7255), 그리고 ⑤ 같은 도서관 소장본 『聖事問答』(Chinois 7447) 등이다. 이하에서는 다섯 문헌의 형태 사항과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그런 뒤에 19세기 이전 중국 천주교에서 유사한 제목을 달고 있으나 내용은 판이한 문헌들이 여러 선교회에서 간행되었음을 보이기 위하여 한글본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 몇 종을 소개하겠다. 이를 통하여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 자체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1)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소장처에서 책을 보존하기 위하여 겉표지를 붙이고, 수기로 제목을 적었다. 속표지에는 ‘道光卝四年 重刻 聖敎要理問答’으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간행 연도가 도광24년(1844)이고, 처음 판각한 것이 아니라 중각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지었으며 이 천주교 서적의 간행을 허락한 인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간행했는지 등에 관한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

 

문헌의 형태를 보면 손바닥보다 작은 수진본(袖珍本)으로 크기는 가로 9.1㎝, 세로 13.6㎝이다.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검은 선이 완전히 이어져 있다. 광곽에 틈이 없고, 또 판심(版心)의 어미(魚尾)와 본문의 각 행을 구분하는 계선(界線)이 서로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목판으로 인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미는 꼬리가 아래로 향하며, 판심의 상단에 하나만 있다. 그리고 어미 위에 영세문답, 고해문답 등 각 문답을 구분하는 판심제(版心題)가 새겨져 있다. 본문은 판심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각 여섯 줄로 되어 있으며, 한 줄의 글자 수는 16자이다. 즉 반엽(半葉) 6행(行) 16자(字)이다. 전체 분량은 본문 앞에 붙은 서두 격의 목(目) 2장(張)과 본문(本文) 44장을 합쳐서 46장 9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먼저 목(目) 1장 a면부터 목 2장 b면까지 4쪽에 걸쳐 ‘요리육단(要理六端)’과 ‘상등회경(上等悔經)’이 실려 있다. 그런 다음에 제1장 a면부터 제9장 b면까지 18쪽에 걸쳐 「영세문답」의 140개 문답이 나온다. 「영세문답」 끝에는 ① 성호경, ② 천주경, ③ 성모경, ④ 신경, ⑤ 천주십계, ⑥ 성교회사규, ⑦ 해죄경, ⑧ 회죄경, ⑨ 신덕송, ⑩ 망덕송, ⑪ 애덕송의 11개 경문이 실려 있고, 이어서 부세규구(付洗規矩, 세례 주는 규칙)과 세례 경문이 실려 있다. 제9장 b면 마지막 행부터 제16장 b면까지의 판심에는 「성교요경(聖敎要經)」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어서 「영세문답」과 구별하고 있다. 제17장 a면부터 제29장 b면까지 26쪽에 걸쳐서 「고해문답」이 실려 있다. 문답 수는 총 74개이다. 제30장 a면부터 제36장 b면까지 14쪽에 걸쳐서 「성체문답」이 실려 있다. 문답 수는 총 48개이다. 제37장 a면부터 제44장 a면까지 15쪽에 걸쳐서 「견진문답」이 실려 있다. 문답 수는 총 44개이다.

 

「견진문답」의 문답 표기는 앞의 세 문답(영세, 고해, 성체)에서 문(問)과 답(答)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음각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본문과 동일한 양각의 형태로 되어 있되 글자 크기만 줄여서 오른쪽에 붙여서 표기하였다. 그리고 판심에 적힌 숫자의 표기가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과 다르다. 이것을 보면 「견진문답」이 들어 있지 않았던 삼본문답이 먼저 있었고, 도광본은 삼본문답에 「견진문답」을 추가하여 사본문답으로 나중에 완성한 흔적으로 짐작된다.

 

2)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마찬가지로 표지에 ‘道光卝四年 重刻 聖敎要理問答’이라는 제목만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가 누구이며, 어디서 간행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알 수 없고, 다만 도광 24년(1844)에 목판을 다시 파서 간행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형태적인 사항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같다. 다만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은 끈으로 묶어서 책을 만들지 않고 낱장 묶음으로 보관되어 있다.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의 내용 구성은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같다. 내용 구성에서의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는 달리, 영세문답 앞에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체 분량은 본문 44장 8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형태상으로 볼 때 「견진문답」이 실린 제37장부터 제44장에서 판심의 하단에 「견진문답」만을 별도로 계산한 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점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과 한국교회사연구소 자료실 소장본은 완전히 같은 판본이라고 볼 수 없다. 별도로 존재하는 제3의 판본을 각각 모사하여 판각한 모각본(模刻本)들이거나, 아니면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가운데 어느 하나가 모본일 수 있다.

 

3. 『영세문답(領洗問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는 ‘영세문답’이라는 제목으로 된 한문 문헌이 두 종류 있다. 두 문헌 모두 본문의 서두에 영세문답이 권수제(卷首題)로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성교요리문답의 네 가지 문답(영세, 고해, 성체, 견진) 가운데 영세문답만을 수록한 책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세문답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종류의 문헌(Chinois 7254)에는 영세, 고해, 성체의 세 가지 문답이 실려 있고, 다른 문헌(Chinois 7255)에는 영세, 고해, 성체, 견진의 네 가지 문답이 다 들어 있다. 각 문헌의 형태 사항과 내용을 살펴보겠다.

 

1) 삼본문답(三本問答) 『영세문답(領洗問答)』(Chinois 7254)

 

삼본문답으로 구성된 『영세문답』에는 표제가 적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겉표지가 유실되었는지 없으며, 본문의 시작 부분에 ‘영세문답’이라고 되어 있다.27)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는 별도의 책 제목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Chinois 7254’로 검색해야 본문을 읽을 수 있다.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검은 선이 완전히 이어져 있다. 본문은 판심의 좌우로 반엽(半葉) 6행(行) 16자(字)이다. 판심의 어미(魚尾)와 본문의 각 행을 구분하는 계선(界線)이 붙어 있고, 광곽이 다 이어져 있으므로 목판본이다. 어미는 판심의 상단에 하나만 있고, 꼬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어미 위에 판심제가 들어 있다. 전체 분량은 36장 7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분량은 앞서 소개한 두 종류의 『聖敎要理問答』에서 「견진문답」을 뺀 분량과 같다. 세 문헌은 모두 목판본으로서 글자 모양도 비슷하며, 어미나 판심제, 그리고 행과 글자의 수도 같다.

 

『영세문답』의 내용을 살펴보면, 영세, 고해, 성체의 세 가지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견진문답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영세, 고해, 성체 등 세 가지 성사에 관한 문답이므로 흔히 삼본문답이라고 불린다. 제1장 a면부터 제9장 b면까지 18면에 걸쳐서 실린 「영세문답」은 140개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어서 제10장 a면에서 제16장 b면까지는 판심에 성교요경(聖敎要經)이라는 판심제가 새겨져 있다. 성교요경은 한문으로 된 11가지 주요 기도문을 말한다. ① 성호경, ② 천주경, ③ 성모경, ④ 신경, ⑤ 천주십계, ⑥ 성교회사규, ⑦ 해죄경, ⑧ 회죄경, ⑨ 신덕송, ⑩ 망덕송, ⑪ 애덕송 등이 그것이다. 성교요경의 끝에는 세례를 베푸는 규칙인 부세규구(付洗規矩)와 세례 경문이 있다. 이어서 제17장 a면부터 제29장 b면까지 「고해문답」이 들어 있는데 총 74문답이다. 제30장 a면부터 제36장 b면까지는 「성체문답」이 실려 있고, 문답의 수는 총 48문답이다.

 

2) 사본문답(四本問答) 『영세문답(領洗問答)』(Chinois 7255)

 

사본문답으로 구성된 『영세문답』 역시 표제가 들어 있는 겉표지가 없어서 전체적인 책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영세문답은 본문의 서두에 나오는 권수제이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는 별도의 책 제목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Chinois 7255’로 검색해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판심(版心)에도 별도의 판심제가 적혀 있지 않다. 다만 각 문답을 시작하는 본문의 첫머리에만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광곽은 사주쌍변이고, 본문의 행과 글자 수는 판심의 좌우로 반엽(半葉) 7행(行) 14자(字)이다. 판심의 어미는 상단에 하나만 있고, 꼬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문항과 답항은 행을 나누어 별도로 적혀 있다. 이 점은 앞의 문헌들, 『성교요리문답』 2종과 삼본문답 『영세문답』에서 문항과 답항이 행을 나누지 않고 이어져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전체 분량은 38장 76면이다.

 

「영세문답」은 제1장 a면에서 제14장 a면까지인데, 총 132문답이다. 앞의 세 문헌의 영세문답이 모두 140문답인 데 비하면 여덟 항이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측에서 문헌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한 장을 누락한 데서 오는 착오이다. 즉 제10장 b면과 제11장 a면이 빠져 있다. 이것을 내용상으로 보면 견진성사에 관한 답항, 고해성사에 관한 문항과 답항, 성체성사에 관한 문항과 답항, 종부성사에 대한 문항과 답항, 신품성사에 대한 문항, 이렇게 여덟 항이 누락된 것이다. 아마 원본 문헌에는 영세문답이 140문항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삼본문답과 달리 사본문답에서는 「영세문답」 다음에는 성교요경에 해당하는 11가지 주요 기도문이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영세문답」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세규구(付洗規矩)와 세례 경문도 없다. 제15장 a면에서 제23장 b면까지 「고해문답」이 실려 있고 문답의 수효는 74문답이다. 이어서 제24장 a면에서 제29장 b면까지는 「성체문답」으로 48문답이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제30장 a면에서 제38장 b면까지 실린 「견진문답」은 총 44문답이다. 이 문답들의 문항 수를 비교하면,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의 문답 수는 앞의 세 가지 문헌과 같다. 그리고 「견진문답」의 문답 수는 두 가지 판본의 『聖敎要理問答』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사본문답 『領洗問答』에는 앞의 세 문헌과 중요한 차이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을 바로 쌍행(雙行) 협주(夾註)의 유무이다. 즉 앞의 세 문헌에서는 문항 또는 답항 다음에 부연 설명하는 협주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의 사본문답은 본문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협주가 전혀 없다.

 

이상에서 소개한 『聖敎要理問答』 2종 및 『領洗問答』 2종과 내용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문헌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아래에 소개할 『聖事問答』이다. 이 문헌은 간행 시기가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으므로 위의 네 가지 문헌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절을 바꾸어 해당 문헌의 구체적인 모습을 소개하겠다.

 

4. 『성사문답(聖事問答)』(Chinois 7447)

 

『성사문답』(Sheng shi wen da)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문 자료이다.28) 겉표지의 왼쪽 윗부분에 ‘聖事問答’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제목 아래에 ‘領洗 告解 聖體’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그런데 겉표지의 오른쪽 윗부분에 펜글씨로 “1788년 북경에서 보내온 중국어 교리문답(Catéchisme Chinois envoyé de Peking en 1788)”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본다면 이 문헌은 1788년 중국 북경에서 선교사가 프랑스 파리로 보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형태상의 특징을 보자면, 광곽이 사주쌍변이고, 검은 선이 이어져 있으며, 어미와 계선이 완전히 붙어 있어 목판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판심의 상단에 꼬리가 오래로 향한 어미가 하나 있고, 판심에 판심제는 들어 있지 않다. 판심의 하단에 숫자가 들어 있는데, 문헌을 찍어낸 판목의 전체 수를 합산하여 차례대로 매긴 것이 아니라, 각 문답에 따라 별도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 분량을 계산하면, 영세문답 12장, 고해문답 16장, 성체문답 15장을 합쳐서 43장 86면이다.

 

본문의 시작에는 ① 성호경, ② 천주경, ③ 성모경, ④ 신경, ⑤ 천주십계, ⑥ 회죄경이 제1장 a면에서 제4장 b면에 걸쳐 나온다. 그 다음에는 영세문답이 「요리문답(要理問答)」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어서 「고해요리(告解要理)」와 「성체문답」이 실려 있다. 그리고 「견진문답」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삼본문답이라고 할 수 있다.

 

『聖事問答』에 실린 「영세문답」은 120문답이다. 그래서 『聖敎要理問答』이나 『領洗問答』의 「영세문답」이 140문답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고해요리」는 72문답인데, 숫자로만 보면 「고해요리」의 문답수는 『聖敎要理問答』 및 『領洗問答』의 「고해문답」이 74문답인 것과 다르다.29) 이어서 「성체문답」은 54문답이다. 이것은 『聖敎要理問答』과 『領洗問答』의 「성체문답」이 48문답인 것과 차이점을 보인다. 그리고 『聖敎要理問答』 및 삼본문답 『領洗問答』과 같이 『聖事問答』에도 본문의 문항이나 답항 다음에 상세한 해설이 쌍행의 협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협주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른 문헌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들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을 대조하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겠다.

 

5. 기타 교리문답 문헌

 

이상에서 소개한 다섯 종의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을 비교 검토하기에 앞서서 이 문헌들이 지니는 변별적인 특징을 지적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헌 몇 종을 추가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문헌들은 위의 문헌들과 유사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판이한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유사하다고 내용도 유사하리라는 오해를 불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어떤 문헌은 간행 시기가 비교적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그런 연유로 다음 장에서 비교 분석할 문헌들에 실린 교리문답의 일부 문항들이 어디서 연유하였는지를 추적하는 데 단서를 제공한다. 

 

1) 『천주성교계몽(天主聖敎啟蒙)』 (1619)

 

『천주성교계몽』은 1619년 무렵에 간행되었으며, 문답식으로 구성된 천주교 교리 해설서이다. 저자는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주앙 다로샤(João da Rocha, 羅如望(羅儒望), 1565-1623) 신부이다.30) 『천주성교계몽』이 문답식 교리서인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문답이 아니라 스승[師]과 제자[學]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원천은 1616년에 간행된 마르코 조르제 수사의 포르투갈어 교리서 『도트리나 크리스탕(Doutrina Christã)』이다. 조르제 수사의 교리서도 스승(Magister)과 제자(Discipulus) 사이의 대화체로 되어 있다. 두 문헌의 시작 부분을 대조하면 주앙 다 로샤 신부의 저서가 마르코 조르제 수사의 저서를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M. Minino como vos chamão?31)

師 你喚做甚麽名字32)

D. N.

學 我喚做某

M. Sois Christão?

師 你是基利斯當麽

D. Si pola graça de Deos.

學 是 天主賜我做基利斯當

M. Porque dizeis pola graça de Deos?

師 怎麽說 天主賜你做基利斯當

D. Porque nẽ por meus merecimẽtos, nem de meu pay, nem de minha mãy, nem de outra pura criatura sou Christão, se não pola bondade & misericordia de Deos, & polos merecimentos de Christo.

學 ○○○○○當. 不是父母與我○○○不是○人與我的. 這是賴 天主的慈悲. 又賴 耶穌基利斯多的功德. 所以說 天主賜與我做基利斯當.

M. Que dignidade recebe o homem quando o fazem Christão?

師 人做了基利斯當. 是到了甚麽地位. 受了甚麽品級

D. Faz se filho de bẽção, & filho adoptiuo de Deos, & erdeiro do Ceo.

學 這就是有福的兒子. 就是 天主的義子. 有承受天上國的分

M. Eo que nam he Christão?

師 若不做基利斯當. 却怎麽.

D. Fica filho de maldição, & escrauo do demonio, & deserdado do Ceo.

學 這就是受禍的兒子. 就是魔鬼的奴. 沒有天上國的分.

M. Que quer dizer Christão?

師 基利斯當是甚麽意思.

D. Homem que cree, & professa a ley de Christo.

學 是心信口認 耶穌基利斯多敎規的意思.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다 로샤 신부의 『천주성교계몽』은 마르코 조르제 예수회 수사의 포르투갈 교리서를 번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 기존 통설을 검토할 때 살펴보았던 제네스 신부의 주장처럼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이 출현할 때 포르투갈 교리서를 번역하였다는 말은 타당하다.33) 그러나 『천주성교계몽』의 전체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 그리스도[基利斯當], 제2장 성호경, 제3장 천주경[在天我等父者], 제4장 성모경[亞物瑪利亞], 제5장 살베 레지나[申爾福], 제6장 성신 십이절, 제7장 신덕 십사조, 제8장 십계, 제9장 성 에클리시아[阨格勒西亞] 정규(定規), 제10장 죄종칠단(罪宗七端), 제11장 칠성사[七撒格辣孟多], 제12장 천주삼덕 및 사추덕, 제13장 아니마[亞尼瑪]로 구성되어 있어서, 『성교요리문답』의 구성이나 내용과는 판이하다. 그러므로 『천주성교계몽』은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저술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지, 『성교요리문답』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2) 『천주성교입문문답(天主聖敎入門問答)』 (1642)

 

이 문헌은 예수회 로마 문서고에 소장된 한문본 교리문답이다.34) 표지는 없으며, 본문의 서두에 권수제로 ‘天主聖敎入門問答 卷之一’이라 적혀 있다. 이어서 “전교회사(傳敎會士) 시약한(施若翰)이 글을 모으고[集], 같은 회의 소방적(蘇芳積)이 바로 잡은 것[訂]”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전교회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중국 복건 지방에서 활동한 스페인 도미니코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시약한은 도미니코회 선교사 후안 가르시아(Juan García, c.1605-1665) 신부, 그리고 소방적은 프란치스코 디에스(Francisco Diez, 1606-1646) 신부이다.35)

 

『천주성교입문문답』 목판본의 속표지에는 간행 시기와 간행지를 숭정(崇禎) 임오(壬午) 매괴초려(玫瑰草廬)라고 되어 있다. 숭정 임오년은 1642년이다. 그리고 매괴초려는 당시 도미니코회가 복건 지방의 복안 선교지에서 세운 천주당 매괴당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도미니코회가 복건 지방에서 완성한 가장 이른 시기의 중국어 교리서라 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문답식 교리서이다. 그러나 구성 체재를 보면 천주(天主), 십계(十誡), 성호(聖號), 재천(在天, 주님의 기도), 아물(亞物, 성모송), 계리사당(契利斯當, 그리스도인), 신경(信經, 사도신경), 사크라멘타[撒格辣孟多], 사규(四規), 진복팔단(眞福八端)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세, 고해, 성체, 견진으로 구성된 『聖敎要理問答』과는 매우 다르다. 이런 점에서 『천주성교입문문답』은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지은 교리문답으로서 중국 천주교에서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교리문답 문헌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는 하지만, 한문본 『성교요리문답』과는 문헌상으로 직접적인 계보 관계에 있지 않다.

 

3) 『천주성교요리(天主聖敎要理)』 (1690)

 

이 문헌의 겉표지에는 『성교요리(聖敎要理)』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속표지에는 『천주성교요리(天主聖敎要理)』라는 제목이 적혀 있으며, 본문의 서두에는 『천주성교 절요문답(天主聖敎 切要問答)』이라는 제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속표지에 원서(遠西) 안가락(顔嘉樂) 선생 역(譯), 민 (閩) 삼산(三山) 회덕당(懷德堂) 각(刻)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36) 복건 지방의 회덕당이라는 천주당에서 안가락이라는 서양인 선교사가 간행하였다는 뜻이다. 안가락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복건 대목구장 샤를 매그로(Charles Maigrot, 1652-1730) 주교를 가리킨다. 그리고 겉표지의 하단에는 수기로 적은 “Sémre[Séminaire] des Missions Etrangères(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이를 보면 파리외방전교회 매그로 주교가 복건 대목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간행한 교리문답이고, 또 복건 대목구에서 파리외방전교회의 본부 신학교로 보낸 자료임을 알 수 있다.

 

매그로 주교는 1676년 파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2년 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68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681년 초에 중국으로 출발하였다. 1684년에 복건, 강서, 절강 지방의 총대리 신부가 되었다. 같은 해에 팔뤼 주교가 사망하자 중국 선교지들의 서리구장(administrator)이 되었다. 이어서 1687년 복건 대목구장에 임명되었고, 1700년 3월 주교로 승품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본다면 『천주성교요리』는 매그로 주교가 복건 대목구장으로 있었던 때, 좀 더 시기를 좁힌다면 169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37)

 

『천주성교요리』의 본문 서두에는 목차가 붙어 있는데, ‘超性’, ‘聖洗’, ‘堅振’, ‘告解’, ‘聖體’, ‘彌撒’, ‘終傅’로 되어 있다. ‘초성’ 편은 천주교의 초월적인 교리 가운데 세 가지 단서가 되는 요목들, 즉 ‘천주 삼위일체를 논함’, ‘천주 강생을 논함’, ‘천주께서 사람의 선함을 상주시고 사람의 악함을 벌하심을 논함’에 대하여 문답식으로 설명하였다. 이어지는 ‘성세’편은 세례성사를 받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교리 지식을 문답식으로 정리하였다. 그 첫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問 人要升天 救己靈魂 止信天主敎彀不彀 (사람이 승천하여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천주교를 믿는 데 그치면 충분한가 아닌가?)

答 不彀 還有三件要緊 (충분하지 않다. 세 가지가 더 필요하다.)

問 第一件是甚麽 (첫째는 무엇인가?)

答 第一件 定要棄絶異端邪神虛妄等事 求領聖水 (첫째는 이단이나 요사한 귀신이나 허망한 일들을 끊어버리고 성수 받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천주성교요리』의 사례를 보면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도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의 실정에 맞게 교리문답을 만들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매그로 주교가 만든 한문본 교리문답은 한문본 『성교요리문답』의 문답 구성과 유사한 점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완전히 계통을 달리하는 별개의 교리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영세요리(領洗要理)』

 

저자는 네덜란드 남부 마스트리히트 출신의 예수회 중국 선교사 프랑수아 드 루주몽(François de Rougemont, 魯日滿, 1624-1676) 신부이다. 드 루주몽 신부가 『영세요리』를 완성한 것은 1671년 이후이며, 중국 강소성(江蘇省) 상주(常州)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과정에 틈틈이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판본으로 간행된 것은 강희제 연간으로 보인다.

 

『영세요리』는 ① 성호경, ② 천주경, ③ 성모경, ④ 신경, ⑤ 천주십계, ⑥ 요리육단, ⑦ 領洗前後之禮, ⑧ 將領聖水問答, ⑨ 領聖體問答, ⑩ 向天主行五拜禮의 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호경에서 요리육단까지의 구성은 18세기 이후에 나온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천주교 교리를 학습하기 이전에 기도문 암송을 훈련하도록 배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덟째 부분인 「장영성수문답(將領聖水問答)」이다.38) 이것은 영세문답과 유사하게 세례성사에서 세례를 베풀기 전에 예비 교우에게 묻고 답하는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38개의 문항과 답항으로 구성된 「장영성수문답」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將領聖水問答」(Jiang ling sheng shui wen da)

01 問你們信天主麽 (너는 천주를 믿는가?)

02 答 信 (믿습니다.)

03 問 進敎爲甚麽緣故 (무엇을 위하여 교에 나아오는가?)

04 答 爲奉敬天主爲救自己的靈魂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05 問 天主有幾箇 (천주는 몇 분이 계시는가?)

06 答 天主只有一箇 (다만 한 분이 계십니다.)

07 問 一箇天主有幾位 (한 분이신 천주에 몇 위가 계시는가?)

08 答 有三位 (세 위가 계십니다.)

09 問 第一位稱甚麽名 (제일위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는가?)

10 答 西音稱罷德肋 (서양 발음으로 파테르라고 부릅니다.)

11 問 第二位稱甚麽名 (제이위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는가?)

12 答 費畧 (필리오입니다.)

13 問 第三位稱甚麽名 (제삼위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는가?)

14 答 斯彼利多三多 (스피리투스 상투스입니다.)

15 問 三位中可有大小否 (세 위 중에 크고 작음이 있는가 없는가?)

16 答 無大無小無先無後三位共是一體一性一箇天主 (크고 작음도 없고 먼저 계심도 후에 계심도 없고 세 위가 모두 한 본체이며 한 본성이고 한 천주이십니다.)

17 問 天主從無而生天地萬物常常保護所生之物令各得其所而常爲之主宰 你信這箇道理否 (천주는 무에서 천지 만물을 지어내셨으며 지어내신 바를 늘 보호하시며 각각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시고 늘 주재하시니, 네가 이 도리를 믿는가?)

18 答 信 (믿습니다.)

19 問 三位中那一位降生爲人 (세 위 중 어느 위가 강생하여 사람이 되셨는가?)

20 答 第二位費畧降生爲人 (제이위 필리오께서 강생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21 問 降生爲甚麽緣故 (어떤 연고로 강생하셨는가?)

22 答 救贖我們人的罪 (우리 사람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입니다.)

23 問 怎麽樣救贖我們人的罪 (우리 사람의 죄를 어떻게 구속하시는가?)

24 答 自甘受苦受難被釘十字架死第三日復活四十日升天 (스스로 고난을 받으시어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하여 돌아가셨으며 삼 일에 부활하시고 사십일에 승천하셨습니다.)

25 問 升天之主日後必要賞善罰惡審判生死者你信這箇道理否 (승천하신 주님께서 나중에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시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 너는 이 도리를 믿는가?)

26 答 信 (믿습니다.)

27 問 我們人有靈魂沒有靈魂 (우리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28 答 有靈魂 (영혼이 있습니다.)

29 問 靈魂死不死 (영혼은 죽는가 죽지 않는가?)

30 答 不死不滅常在的 (불사불멸하며 영원히 존재합니다.)

31 問 我們人肉身死後靈魂徃那裏去 (우리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32 答 進敎者守天主十誡升天堂享永永無窮之福不進敎者或進敎而不守天主十誡者下地獄受永永無窮之苦 (교에 나아온 자가 천주십계를 지키면 천당에 올라 영원히 다하지 않는 복을 누립니다. 교에 나아오지 않았거나 나아왔더라도 천주십계를 지키지 않은 자는 지옥에 내려가 영원히 다하지 않는 괴로움을 받습니다.)

33 問 各樣異端邪敎棄絶了麽 (다양한 이단과 사교를 완전히 끊어버렸는가?)

34 答 都棄絶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35 問 那些求籤打笤起課筭命相面風水陰陽術數灼竈問鬼等邪妄之事都棄絶麽 (산가지를 구해서 점을 치거나 풍수, 음양, 술수, 귀신에게 묻는 등 사악하고 헛된 일들을 모두 끊어버리는가?)

36 答 都棄絶 (모두 끊어버립니다.)

37 問 我們人改惡遷善立功升天非人力所能自致必要仰頼天主扶持引導我靈魂便易爲力你信這箇道理否 (우리 인간이 악을 고쳐 선으로 옮아가고 공을 세워 승천하려고 해도 사람의 힘으로 스스로 지극히 하더라도 이룰 수 없으며 반드시 천주의 도우심과 우리 영혼을 인도하심에 의지해야 힘이 된다. 너는 이 도리를 믿는가?)

38 答 信 (믿습니다.)39)

 

드 루주몽 신부가 1670년대에 저술한 『영세요리』에 들어 있는 「장영성수문답」은 38문답에 불과하다.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이 140문답인 것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문답의 전반부 내용과 전체적인 구성 체계는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과 상당히 유사하다. 즉 영세하려는 이유에 대한 물음,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답변, 삼위일체에 대한 물음과 답변, 천주의 권능과 성자의 강생, 영혼의 불멸 등 핵심 교리를 묻고 답하는 것 등이 유사한 문장으로 실려 있다. 다만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이 사도신경을 풀어서 설명하면서 동정 성모의 잉태에 관한 믿음, 성교회에 대한 믿음, 부활과 심판에 대한 믿음 등을 싣고 있는 데 반해서 『영세요리』의 「장영성수문답」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세요리』에 들어 있는 「장영성수문답」은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의 형성사로 볼 때 좀 더 완전한 모습으로 「영세문답」이 구성되기 이전의 초기 형태로 간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40) 그렇지만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드 루주몽 신부의 저술 즉 『영세요리』 혹은 그 속에 포함된 「장영성수문답」을 참고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Ⅳ. 한문본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 가운데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그 구성 체재와 내용을 검토한 결과,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 한문본은 5종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호주 국립 도서관이 각각 소장하고 있는 도광24년 중각본 『聖敎要理問答』 2종,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간행 연도미상의 『領洗問答』 2종(삼본문답과 사본문답), 그리고 1788년 중국 북경에서 파리로 보냈다는 주기가 붙은 『聖事問答』 1종이 그것이다. 이렇게 다섯 종의 문헌을 비교하고자 한다. 각각의 문헌이 지닌 특징을 파악하기 위하여 문헌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중심적으로 밝힐 것이다. 이것은 다음 장에 가서 한글본과의 대조를 위한 선행 작업에 해당한다.

 

1. 『성사문답(聖事問答)』과 『영세문답(領洗問答)』

 

1788년에 중국 북경에서 프랑스 파리로 보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성사문답』은 「요리문답」,41) 「고해문답」, 「성체문답」의 세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세 문답에 관하여 『성사문답』이 1788년 이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성사문답』과 대조할 문헌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본 삼본문답 『영세문답』(Chinois 7254)이다.42)

 

1) 영세문답

 

먼저 영세문답에서 미세하게 문장 표현에서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발견된다. 즉 문장이 축약되어 있거나 되풀이되는 구절들을 삭제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성사문답』의 「요리문답」에서는 무엇이 원죄인지를 물은 다음에 이에 대한 답항에서 “원조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라고 하였다.

 

問 怎麽是原罪 (무엇이 원죄인가)

答 原祖亞當遺流下來的罪 (원조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이다.)43)

 

그런데 『영세문답』(Chinois 7254)의 「영세문답」에서는 천주의 명을 배반한 죄라는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問 什麽是原罪 (무엇이 원죄인가?)

答 原祖亞當遺下背天主命令的罪 (원조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천주의 명을 배반한 죄이다.44)

 

또 『성사문답』에는 들어 있지만, 『영세문답』에는 없는 문항이나 답항이 있다. 가령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의 해당 문장이 같아도 중간 부분의 문항이나 답항이 누락된 경우가 있음을 발견한다. 『성사문답』의 「요리문답」에서는 육신의 부활에 관한 교리가 4개의 문항과 답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서는 중간의 답항과 문항이 빠져 있다. 이것을 보면 『성사문답』보다 『영세문답』이 나중에 만들어진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즉 『성사문답』에서는 육신이 죽었다가 부활하는지를 묻고, 이에 부활한다고 답을 한 다음에, 언제 부활하는지를 다시 묻고 천지가 끝날 때 부활한다고 답을 제시한다. 그런데 『영세문답』은 중간의 답항과 문항이 없더라도 육신의 부활이라는 교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며, 기존에 있던 답항과 문항이 도리어 번잡하다고 여겨서 삭제한 것이다.

 

問 肉身死了還復活麽 (육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가)

答 還復活 (돌아와 다시 살아난다): 『영세문답』에서 삭제한 문장

問 什麽時候復活 (언제 다시 살아나는가): 『영세문답』에서 삭제한 문장 

答 天地終窮的時候死過的衆人一齊復活 (천지가 다 끝날 때 이미 죽었던 뭇사람이 다 함께 다시 살아난다)45)

 

어떤 경우에는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의 해당 부분이 완전히 다르다. 아래에서 보듯이 거룩한 교회를 설명할 때 『성사문답』은 간단하게 언급한 데 비해서 『영세문답』은 훨씬 더 자세하다. 즉 온 교회가 한 몸이라는 설명, 지상 교회의 수장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라는 설명, 나아가서 천주교회와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의 차이에 대한 설명 등이 들어 있다.

 

『성사문답』의 「영세문답」에 실린 교회론은 다음과 같다.

 

問 聖敎會是誰立的 (성교회는 누가 세운 것인가)

答 吾主耶穌親自立的 (이는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다)

問 聖敎會是至聖至公的麽 (성교회는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는가)

答 是至聖至公的 (이는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다)46)

 

이에 비해서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는 더 자세한 교회론이 나온다.

 

問 聖教會是什麽 (성교회는 무엇인가)

答 是吾主耶穌親自立的普天下奉教人共成一會猶如一身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니 온 천하의 교인이 한가지로 한 몸과 같이 한 會를 이룬다)

問 誰是聖教會的首 (누가 성교회의 으뜸인가)

答 現在看不見的是天主耶穌看得見的是接聖伯多祿位的教化皇 (지금 여기서 볼 수 없는 분으로는 천주 예수이시고, 보이는 분으로는 성 베드로의 위를 잇는 교황이시다)

問 聖教會與別的會有什麽分別 (성교회는 다른 교회와 무슨 분별이 있는가)

答 聖教會是至一至聖至公從宗徒傳下來的與別的會大有分別 (성교회는 지극히 하나이고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고 종도로 좇아 전하여 내려오기 때문에 다른 교회와 크게 분별이 있다)47)

 

이어서 『성사문답』의 「영세문답」에는 칠성사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지 않다. 반면에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는 105번 문항부터 122번 답항까지 칠성사 설명이 들어 있다. 즉 『성사문답』의 「영세문답」과 비교할 때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는 새로운 항목들이 추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세문답』이 『성사문답』보다 나중에 출현한 문헌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한편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에서 그 표현이 미세하게 다른 부분들도 발견된다. 거의 비슷한 문장이면서도 조금씩 문구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을 보면 두 문헌이 서로 연관된 문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적인 변화에 따라, 혹은 새로운 목판본을 준비하는 주체에 따라 문헌의 제목과 더불어 내용에서도 어느 정도 변화가 계속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의 유사 구절 대조48)

 

『성사문답』 問 爲什麽緣故全信他 (무슨 연고로 온전히 믿는가)

『영세문답』 問 爲什麽緣故全信 (무슨 연고로 온전히 믿는가)

『성사문답』 答 因爲聖敎會有天主聖神常在保護指引凡係信德的道理都是天主黙啓的聖言永不能錯的這就是我全信他的緣故 (성교회에는 천주 성신께서 늘 계시고 보호하여 이끌어주시며, 무릇 신덕의 도리는 모두 천주의 묵계하시는 거룩한 말씀이므로 영원히 그릇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온전히 믿는 연고이다.)

『영세문답』 答 因爲聖教會信徳的道理都從天主聖神保護默啟來的永不能錯故此全信無疑 (성교회의 신덕 도리는 다 천주 성신의 묵계하심으로 좇아 오며 영원히 보호하심으로 그릇되지 못하는 고로 온전히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성사문답』 問 你全信了這聖教會的道理盼望的是什麽 (너는 저 성교회의 도리를 온전히 믿으니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영세문답』 問 你全信了聖教會的道理盼望的是什麽 (너는 성교회의 도리를 온전히 믿으니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사문답』 答 我全信了聖敎會的道理遵守了天主的規誡 盼望天主的仁慈看耶穌的功勞賞我享天堂的眞福 (나는 성교회의 도리를 온전히 믿으며 천주의 계명을 준수하므로 천주의 인자하심으로 예수의 공로를 보시어 나에게 상을 주어 천당의 진복을 누리게 하시기를 바란다)

『영세문답』 答 盼望天主的仁慈看耶穌的功勞賞我享天堂的眞福 (천주의 인자하심으로 예수의 공로를 보시어 나에게 상을 주어 천당의 진복을 누리게 하시기를 바란다)

『성사문답』 問 你若不信這個道理怕的是什麽 (너는 만일 이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영세문답』 問 你若不信這個道理怕的是什麽 (너는 만일 이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성사문답』 答 我若不全信聖敎會的道理或是雖然全信了道理但不守天主的規誡我怕天主罰我受地獄的永苦 (나는 만약 성교회의 도리를 온전히 믿지 않거나 혹은 도리는 온전히 믿더라도 다만 천주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천주께서 나를 벌하시어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받게 하실까 무서워한다)

『영세문답』 答 怕辜負天主大恩罰我受地獄的永苦 (대은을 저버림으로 천주가 나를 벌하사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받게 하실까 무서워한다)

 

아래의 영세문답 마지막 문답은 『영세문답』에만 들어 있고, 『성사문답』에 들어 있지 않다.

 

問 你既盼望天堂害怕地獄願恭敬天主救己靈魂該盡什麽本分 (너는 이미 천당을 바라고 지옥을 무서워하여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를 원할진대 마땅히 무슨 본분을 다할 것인가?)

答 該棄絶各樣異端痛改各樣毛病全守聖教規誡學習教中道理并要緊經言 (마땅히 갖가지 이단을 끊어버리고 갖가지 모병을 뉘우쳐 고치고 성교 규계를 온전히 지키고 교중 도리와 긴요한 경을 배워 익힐지니라.)49)

 

끝으로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는 아래와 같이 세례를 베푸는 규칙으로 부세규구(付洗規矩)와 영세 경문이 있지만, 역시 『성사문답』에는 들어 있지 않다.

 

付洗規矩

(遇臨終危險之人 切願領洗 該講明要理看其堅信痛悔前罪纔可用水倒他頭上伹該同付洗 經文一齊起止 依聖敎會之意上云)

我洗爾因父 及子 及聖神之名者 (亞孟)

(或云) 我洗爾因罷德肋 及費畧 及斯波利多三多 名者(亞孟)

(未開明悟孩童危險時 不拘何人可念已上 經文 付洗)50)

 

요약하자면 『성사문답』의 「요리문답」과 비교하였을 때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에는 답항 내에 설명 구절의 추가, 중복된다는 느낌이 강한 문답의 삭제, 칠성사에 관한 문답의 추가, 마지막 문답의 추가, 부세규구와 영세 경문의 추가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면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의 「영세문답」은 유사한 구조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영세문답」에 한해서는 분명히 서로 연관된 문헌이다.

 

그러면 「고해문답」과 「성체문답」의 경우는 어떠한가? 두 문헌에는 「견진문답」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고해문답」과 「성체문답」만을 두고 비교할 수 있다.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의 「고해문답」과 「성체문답」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 고해문답

 

『성사문답』의 「고해문답」은 72문답이다. 반면에 『영세문답』의 「고해문답」은 74문답이다. 그 이유는 『성사문답』의 「고해문답」에서 하나의 문답으로 나온 것을 『영세문답』의 「고해문답」에서는 두 개의 문답으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답 수가 하나 증가한 것이었다.

 

『성사문답』

問 補贖是甚

麽 (보속이란 무엇인가)

答 是補我贖我 從前所犯的罪 補贖有兩樣 一樣是天主定的 一樣是神父罰的 (이는 나를 기우고 나를 되사는 것이니, 예전에 범한 죄에 따라서 보속도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는 천주께서 정하신 것이고, 하나는 신부가 벌하는 것이다)51)

 

『영세문답』

問 補贖是甚

麽 (보속이란 무엇인가)

答 是補我贖我 從前所犯的罪 (이는 예전에 범한 죄에 따라 나를 기우고 나를 되사는 것이다)

問 補贖有幾樣 (보속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答 有兩樣 一是天主定的 一是神父罰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천주께서 정하신 것이고, 하나는 신부가 벌하는 것이다)52)

 

그 외에는 사소한 표현의 변화가 몇 군데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문장이 거의 같다. 하지만 『성사문답』과 『영세문답』 사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문답의 내용을 부연하여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쌍행의 협주에 관련된 것이다. 즉 두 문헌은 본문의 문항과 답항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협주에서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동일한 문장은 거의 없으며, 아래의 사례에서 보듯이 유사한 문장이라 하더라도 해당 문헌이 저술된 시기에 널리 쓰이던 구어체 문장, 즉 백화문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사문답』 「고해요리」 2번 답항의 협주

吾主耶穌原先把赦罪之權 交給宗徒們 自宗徒以來 徃下傳敎化皇主敎主

祭各品的神父 皆有此權 所以凡時敎友每痛悔定改告罪的後頭 到了念赦

罪經的時候 正是神父代天主的權給他赦罪53)

(우리 주 예수께서 원래 죄를 사하는 권한을 먼저 가지고 계시다가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종도에서 시작하여 그 후로 교황, 주교, 미사성제를 주관하는 각품의 신부에게 전하니 모든 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교우가 매번 통회하고 정개하여 죄를 고한 후에는 죄를 사하는 경문을 염하는 때에 이르러니 바로 이는 신부가 천주의 권한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에게 죄를 사하여 준다.)

 

『영세문답』 「고해문답」 2번 답항의 협주

當初吾主耶穌把赦罪的權 交給宗徒們 宗徒們遞傳至今 凡敎化皇主敎神

父皆有此權 所以敎友眞心痛悔定改告罪後 實是代天主權赦他的罪54)

(처음에 우리 주 예수께서 죄를 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가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종도들이 서로 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무릇 교황, 주교, 신부가 모두 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우가 진심으로 통회하고 정개하여 죄를 고한 후에는 실로 천주의 권한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한다.)

 

3) 성체문답

 

『성사문답』의 「성체문답」은 54문답이다. 그런데 『영세문답』의 「성체문답」은 48문답이다. 즉 『성사문답』의 「성체문답」에는 3쌍, 6개의 문항과 답항이 더 들어 있다. 이에 비해서 『영세문답』의 「성체문답」에는 해당 문답이 아예 들어 있지 않다. 좀 더 자세하게 두 문헌의 「성체문답」에 들어 있는 문답들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래의 세 가지 문답은 『성사문답』의 「성체문답」에만 들어 있으며, 『영세문답』의 「성체문답」에는 들어 있지 않다.

 

問 甚麽是麵酒的形像 (면병과 술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答 凡五官覺得出來的 比方麵酒的輕重軟硬滋味顔色之類 都是形像 (무릇 다섯 가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비교하자면 면병과 술의 무거움과 가벼움, 부드러움과 딱딱함, 맛과 색깔 등이 모두 형상이다)

問 擧揚聖體 領聖體 我看的 嘗的 不是聖體麽 (거양성체하고 나서 성체를 영하면서 내가 그것을 보고 맛볼 수 있다면 이것은 성체가 아닌가)

答 不是 看的是麵的顔色 嘗的是麵的滋味 那麵形裡頭 眞是耶穌的聖體 (그렇지 않다. 보이는 것이 면병의 모습이고 맛볼 때 면병의 맛이 나더라도 그 면병의 형상 속 핵심은 진실로 예수의 성체이다)55)

 

問 倘領聖體 不能由我 可怎麽樣呢 (혹시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答 雖不得實領 該神領聖體 (비록 실제로 영할 수 없더라도 영적으로 영성체를 할 수 있다)56)

 

「성체문답」에는 영성체의 유익함을 설명하면서 그 이로운 점을 육신과 영혼으로 각각 나누어 논하는 문답이 있다. 전체적인 유익, 육신상의 유익, 영혼상의 유익, 이렇게 세 가지 문답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해당 문답이 『성사문답』과 『영세문답』에 따라 그 위치가 서로 다르다. 『성사문답』의 「성체문답」에서는 영성체의 유익이 「성체문답」의 제일 마지막에 붙어 있다. 그러나 『영세문답』의 「성체문답」에서는 제27번 문항부터 제32번 답항까지 여섯 문항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특정 문답의 위치가 달라진 셈이다. 그 밖에도 『성사문답』에 실려 있던 육신의 예비에 관한 문답, 영혼의 예비에 관한 문답이 『영세문답』의 「성체문답」에서는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 그밖에 뜻은 서로 통하지만 표현이 약간 다르거나 구절이 추가된 문답들도 7~8개 발견된다.

 

2. 『영세문답(領洗問答)』과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위에서 『성사문답』과 비교하면서 삼본문답 『영세문답』의 특징적인 양상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사본문답 『영세문답』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성교요리문답』 및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 『성교요리문답』과 비교하도록 하겠다. 먼저 『영세문답』의 두 판본, 즉 삼본문답과 사본문답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다룬 후에, 두 종류의 『영세문답』을 두 종류의 『성교요리문답』과 비교하여 한글본과의 대조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겠다.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사본문답 『영세문답』은 가장 큰 차이점은 「견진문답」의 유무이다. 삼본문답 『영세문답』에는 처음부터 「견진문답」이 들어 있지 않다. 문헌의 겉표지가 떨어져 나간 상태로 보관되어 있으므로 이와 마찬가지로 「견진문답」도 원래 있었는데 유실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견진문답이 없는 상태로 영세문답과 고해문답, 그리고 성체문답만으로 구성된 삼문답 또는 삼본문답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자면 삼본문답 『영세문답』도 처음부터 세 가지 문답만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성교요리문답』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 『성교요리문답』의 「견진문답」이 앞의 세 문답과 다른 양식으로 부가된 흔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본문답 『영세문답』은 애초에 영세, 고해, 성체의 세 가지 문답으로 구성된 교리문답이었으며, 두 종류의 『성교요리문답』보다 앞서는 판본이라 할 수 있다.

 

『영세문답』의 두 판본을 비교할 때 또 다른 차이점은 쌍행 협주의 유무이다. 삼본문답 『영세문답』의 「고해문답」과 「성체문답」에는 문답 다음에 뜻을 풀이하는 세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쌍행으로 협주를 달았다. 하지만 사본문답 『영세문답』에는 그러한 협주가 전혀 없으며, 문항과 답항을 각기 다른 행으로 구성하여 전형적인 문답식 서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차이점으로는 삼본문답의 「영세문답」 끝에는 성교요경의 11가지 기도문이 들어 있으나, 사본문답의 「영세문답」 끝에는 성교요경이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사본문답 『영세문답』은 그 판식도 완전히 다르다. 사본문답에는 판심의 어미 위에 판심제가 적혀 있지 않으며, 글자 모양도 삼본문답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어느 한쪽 판본이 다른 판본을 모사했다고 볼 수 없으며, 별개의 형성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문헌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사본문답 『영세문답』에서 「영세문답」의 140문답, 「고해문답」의 74문답, 그리고 「성체문답」의 48문답을 대조한 결과, 본문 내용에서는 거의 동일하며, 몇 가지 의문사의 차이(怎麽와 甚 麽, 什麽)와 어기조사(語氣助詞)의 차이(呢, 的, 了의 유무) 그리고 리(裏)와 리(裡)처럼 같은 글자의 표기법이 다른 정도이다. 이것을 보자면 삼본문답 『영세문답』이 유통된 뒤에 이를 다시 제작하면서 쌍행의 협주와 성교요경을 삭제하고 「견진문답」을 추가하여 사본문답 『영세문답』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삼본문답 『영세문답』과 교회사연구소 소장 『성교요리문답』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 『성교요리문답』은 대단히 유사한 판본이다. 우선 글자 모양이나 판식이 흡사하다.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만을 놓고 보았을 때 세 문헌 모두 36장 7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판심의 어미 모양이나 판심제의 모양도 동일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 면의 행수와 글자수도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세 문헌의 문답 본문과 쌍행 협주도 같다. 다만 삼본문답 『영세문답』에는 「견진문답」이 들어 있지 않다. 이 점만이 거의 유일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두 종류의 『성교요리문답』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둘 다 도광24년(1844) 중각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판목으로 찍어낸 판본은 아니다. 먼저 형태상으로 보면 글자의 서체는 유사하지만,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판심에 들어 있는 어미의 형태 역시 다르다. 꼬리가 아래로 향한 어미가 판심의 윗부분에 한 개만 있고, 어미 위에 판심제(版心題)가 새겨진 것은 두 문헌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어미의 상단과 하단에 가는 선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데, 두 문헌의 각 장을 비교한 결과 선의 유무가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교요리문답』의 제25장 a면에서 “問 怎麽是告明 (고명이란 무엇인가)”의 문항 가운데 문(問)의 글자 모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런 현상은 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종류의 『성교요리문답』은 별개의 판목에 새긴 판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은 내용상으로는 단 한 가지의 차이만 제외하면 완전히 일치한다. 즉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이 「영세문답」에 앞서서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을 싣고 있는 데 반해서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에는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들어 있지 않다. 이 한 가지 차이 외에는 두 문헌에서 「영세문답」 140문답, 「고해문답」 74문답, 「성체문답」 48문답, 「견진문답」 44문답의 내용이 모두 같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자면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한문 저본을 탐색하기 위하여 찾아낸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문헌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삼본문답 『영세문답』,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 『성교요리문답』, 그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성교요리문답』의 세 문헌이다. 이들 세 문헌은 내용과 판형 등으로 볼 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구성 요소가 부가되는 과정으로 보자면, 「견진문답」이 없는 삼본문답 『영세문답』이 가장 앞서고, 여기에 「견진문답」과 「성교요경」이 추가된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 『성교요리문답』이 그 뒤에 형성되었고, 다시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추가된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성교요리문답』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기적 편차는 크지 않으며 대체로 19세기 전반기에 나온 문헌들로 보인다.

 


Ⅴ. 한글본과의 대조

 

한글본과 한문본을 대조하기 위하여 사용할 판본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글본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간행한 영인본 자료집에 수록된 목판본과 활자본을 사용하였다. 두 판본은 편성 체재와 내용이 같기 때문에 어느 판본을 사용하더라도 무방하다. 그리고 한문본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을 사용하였다. 앞서 한문본 문헌들을 대조하면서 밝혔듯이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의 삼본문답 『영세문답』(Chinois 7254)에 비하면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교요리문답』에는 「견진문답」이 추가되었고, 또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에 비하면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는 「영세문답」 앞에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추가되었다. 그 외에 내용상으로는 세 문헌 모두 동일하다.57) 그러므로 한글본과 한문본 사이의 내용을 대조하는 작업을 할 때는 세 문헌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에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한문본을 선택하였다.58)

 

1. 편성 체재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한문본 『聖敎要理問答』의 편성 체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문본에는 「영세문답」에 들어가기 전에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들어 있다. 그리고 「영세문답」에서 문답이 끝나면 성교요경이 나온다. 그런 다음에 부세규구와 영세 기도문이 들어 있다. 이에 반해서 한글본에는 요리육단, 상등회경, 성교요경 등이 모두 빠져 있다. 그러므로 편성 체제로만 바라보면 한글본과 완전히 동일한 한문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서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을 뺀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이 존재하듯이, 성교요경도 생략한 목판본이 존재하였고 한글본은 이 생략 목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나왔거나, 아니면 한글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임의로 제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세문답」에 이어서 「고해문답」과 「성체문답」의 체재를 비교하면, 한글본은 한문본을 번역 저본으로 한 것이 확실하다. 문답의 숫자도 같으며, 문항과 답항이 이어진 뒤에 이를 해설하는 주석도 똑같이 붙어 있다. 다만 한문본에서는 주석이 쌍행의 협주라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한글본에서는 본문의 문답과 같은 크기로 주석을 달되 각 행의 첫 부분을 비우고 한 글자 내려서 씀으로써 본문의 문답이 아니라 그에 대한 주석임을 보였다.

 

그런데 「견진문답」을 비교하면 상이한 점이 한 가지 발견된다. 교회사연구소 소장본, 그리고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교요리문답』에서 「견진문답」의 문답 수는 44개인데, 한글본의 「견진문답」은 46개다. 그래서 외견상으로 보면 한글본은 한문본에 비해서 문답 하나가 더 추가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문본의 「견진문답」에서 제15번 문항에서 “견진을 행할 때 두 손을 견진 받는 사람의 머리를 덮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은 다음에, 제16번 답항에서 “성령께서 일곱 은혜로 내 마음에 강림하신다”고 답하고 나서 성령칠은(聖靈七恩)을 열거하고, 각각의 은혜에 대해서 쌍행의 협주를 붙여 그 뜻을 풀이하였다.

 

이에 비해서 한글본에서는 제16번 답항 다음에 제17번 문항을 따로 두어 “이 일곱 가지 은혜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제18번 답항에서 성령칠은을 설명하였다. 즉 한문본의 제16번 답항을 둘로 나누었고, 성령칠은을 나열하는 부분은 신설한 제17번 문항에 대한 제18번 답항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한글본의 「견진문답」에서 문답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내용에 추가된 것은 없다.

 

흥미로운 점은 한문본과 한글본에는 성령칠은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으며, 나열하는 용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한문본에서는 성령칠은이 ① 경외(敬畏), ② 효애(孝愛), ③ 총민(聰敏), ④ 강의(剛毅), ⑤ 초견(超見), ⑥ 명달(明達), ⑦ 상지(上智)로 나온다. 이에 비해서 한글본 성령칠은은 ① 슬기, ② 통달(通達), ③ 의견(意見), ④ 굳셈, ⑤ 지식(知識), ⑥ 효경(孝敬), ⑦ 두려워함으로 되어 있다.

 

한글본은 한문본의 순서를 거꾸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성령칠은의 개별 용어도 한문본과는 다르다. 특히 슬기와 굿셈, 두려워함의 경우에는 한자어(상지, 강의, 경외)를 쓰지 않고 아예 고유어로 적었다. 그리고 한자어로 적은 경우에도 한문본과는 다른 용어를 선택하였다. 효애(한문본)와 효경(한글본), 총민(한문본)과 지식(한글본), 초견(한문본)과 의견(한글본), 명달(한문본)과 통달(한글본)과 같이, 중국식 한자어와 조선식 한자어를 구별한 모습이다. 성령칠은을 설명하는 용어가 왜 다른 것일까?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성교요리문답』 이전에 들어왔던 다른 교리서를 통하여 이미 성령칠은의 개별 용어가 조선 천주교회 안에 확립되어 있었을 수 있다. 혹은 목판본 『성교요리문답』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한문본의 한글 번역을 맡았던 인물(최양업 신부 또는 다블뤼 주교)이 조선인 신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었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조선 천주교회에 유입되었던 한문본 천주교 서적들에서 성령칠은 관련 항목들을 조사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해명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2. 내용과 문장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성교요리문답』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교요리문답』은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을 다 수록한 사본문답으로서 「영세문답」과 「고해문답」 그리고 「성체문답」은 한글본과 거의 일치한다. 본문의 문답 수나 문답의 내용도 같으며, 쌍행의 협주에 담긴 내용도 같다.

 

하지만 「견진문답」에서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 발견된다. 앞서 「견진문답」 내에서 성령칠은의 배치가 다른 부분은 편성 체재의 차이라고 보고 이미 지적하였다. 이와 더불어 본문의 문장 자체가 한문본과 한글본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도 있다. 그것은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글본과 한문본에서 해당 구절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한문본 『성교요리문답』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답

問 領過堅振有甚麽本分

答 本分有三 一是發勇德 忍受奉事天主裏頭所遇的艱難 一是總也 不怕做好敎友的本分 一是避異端人並不守規矩 不受勸的敎友59)

 

한글본 『성교요리문답』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답

問 堅振을 領한 사람이 무슨 本分이 있나뇨

答 本分이 세 가지 있으니 하나는 勇德을 發하여 天主 섬기는 中에 만나는 바 苦難을 참아 받음이오, 하나는 도무지 좋은 敎友의 本分을 다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음이오, 하나는 마땅히 사람을 데려 天堂길로 닿게 하고 冷淡한 이를 改過케 하고, 外敎人으로 正道에 돌아오게 함이다.

 

위에서 보듯이 한문본의 「견진문답」에서는 “견진을 받으면 어떤 본분이 있는가”라고 물은 다음에 “본분은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용덕을 발하여 천주를 받들어 섬기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참아 받는 것이고, 하나는 좋은 교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는 이단인과 교회의 규구를 지키지 않는 사람과 교우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글본에서는 견진을 받은 교우의 세 번째 본분이 한문본과는 다르게 나온다. 즉 “마땅히 사람을 데려 천당길로 닿게 하고 냉담한 이를 개과하게 하고, 외교인으로 하여금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견진성사를 받은 이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견진문답」의 마지막 답항만은 한글본을 제작한 조선 천주교회 당국자가 임의로 지어서 넣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앞서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문본 교리문답 『영세문답』이 두 종류라고 소개하였다. 그중에서 「견진문답」도 담겨 있는 사본문답의 『영세문답』(Chinois 7255)이 있었다. 물론 쌍행의 협주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아서 한글본의 저본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판본이다. 그런데 이 판본의 「견진문답」에는 마지막 문답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사본문답 『영세문답』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답

問 領堅振後 該有什麽本分

答 本分有三 一該發勇德 戰勝三仇誘感 勉勵修德行善 謹避種種犯罪機會二該堅固信德 爲義爲道 忍受各樣艱難 寧死不肯背天主 三該引人 走天堂直路 按着自己力量 勸冷淡者回頭改過 外敎者 棄邪歸正60)

 

인용 문단에서 보듯이, “견진을 받은 후에 어떤 본분이 있는가”라는 문항에 대해서 답항의 내용은 이러하다. “본분은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용덕을 발하여 삼구의 유혹과 싸워 이기고 부지런히 덕을 닦고 선을 행하며 온갖 죄 지을 기회를 삼가하여 피하는 것이고, 둘은 신덕을 견고하게 하여 의를 행하고 도를 행하며 여러 가지 고난을 참아 받으면서도 죽을지언정 천주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고, 셋은 사람을 이끌어 천당으로 가는 곧은 길로 달려가게 하고 자신의 역량을 살펴서 냉담자가 회두하여 허물을 고치도록 하고 외교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한글본의 「견진문답」에 실린 마지막 문장은 한문본 『성교요리문답』의 해당 구절과는 다르며, 오히려 한글본의 번역 저본으로 간주할 수 없는 한문본 사본문답 『영세문답』의 「견진문답」에 실린 마지막 문장과 흡사하다.

 

나아가서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의 사본문답 『영세문답』은 1875년 상해 자모당(慈母堂)에서 간행한 『성사요리』 및 이와 동일한 내용이면서 새로 판각하고 제목을 달리하여 1880년에 간행한 『성사요리문답』에 들어 있는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답과도 일치한다.61) 상해 자모당은 1840년대에 예수회가 중국으로 다시 진출한 이후에 상해 서가회 지역에 세운 고아원 내의 경당 명칭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고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천주교 서적을 간행할 목적으로 인쇄소를 설치하였다. 여기서 간행한 서적들에는 상해 자모당이라는 간행처가 적혔으며, 나중에 그 명칭을 바꾸어 상해 토산만(土山灣) 인서관(印書館)이라고 하였다.62) 자모당에서는 주로 17세기 이후로 예수회 선교사들이 북경 등지에서 펴냈던 천주교 서적들을 다시 찍어서 간행하였다. 그러므로 사본문답 『영세문답』과 내용이 같은 『성사요리문답』 역시 18세기 초반까지 유통되던 교리문답 문헌을 대본으로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유추하자면 19세기 중국 천주교에서는 여러 종류의 교리문답 문헌들이 유통되었고, 교리문답 문헌들의 구성 체재와 내용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회에도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교리문답 문헌들이 시기별 편차를 지니면서 유입되었다. 이 때문에 판본을 달리하는 한문본 교리문답의 각기 다른 문장이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견진문답」에 섞여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한글본과 한문본을 대조하여 한글본의 한문 저본을 탐색하는 작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의 사항들이다. 먼저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의 『영세문답』(Chinois 7254)은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만 들어 있고 「견진문답」이 빠져 있는 삼본문답이다. 그래서 한글본의 번역 저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영세문답』(Chinois 7255)는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을 모두 갖춘 사본문답이어서 체재로는 한글본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문본 자체의 쌍행 협주가 아예 누락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문본의 협주도 모두 번역하여 수록한 한글본의 번역 저본으로 간주할 수 없다. 다만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장이 한글본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번역 저본은 아니지만 한글본의 번역 과정에서 참고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와 대비하여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성교요리문답』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교요리문답』은 구성 체재와 내용으로 볼 때 한글본과 가장 가까운 문헌이다.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견진문답」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문답의 숫자도 일치한다. 그리고 문장을 대조하여도 한글본이 한문본의 번역임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한문본 『성교요리문답』과 한글본 『성교요리문답』 사이에도 간과할 수 없는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견진문답」의 마지막 답항에서 문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 들어 있는 요리육단과 상등회경이 한글본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과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본 모두에 들어 있던 성교요경이 한글본에는 누락되어 있다. 요리육단과 주요 기도문 등이 한글본에는 들어 있지 않은 연유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은 『천주성교공과』와 같은 한글 기도서와 함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63) 즉 한문본 『성교요리문답』에 있던 기도문은 모두 한글본 『천주성교공과』로 옮기고, 교리문답만을 모아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에 담는 방식으로 문헌 간의 체재 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지금까지 검토한 『성사문답』, 『성교요리문답』, 『영세문답』 등의 한문 문헌들을 대조하였을 때 한글본의 직접적인 번역 저본이라고 볼 수 있는 확정적인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약간씩 다른 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글본은 『성교요리문답』, 사본 『영세문답』, 『성사문답』 등 여러 유사 문헌들을 참고하면서 취사선택을 하여 만들었거나, 아니면 한글본과 완전히 일치하는 별개의 한문 저본이 존재하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다양한 천주교 서적들을 보유하였던 것이 어느 정도 확인되므로64) 한글본과 완전히 일치하는 제3의 저본이 있었을 가능성보다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리문답 문헌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Ⅵ. 결론

 

이상에서 한글 천주교 문헌 『성교요리문답』을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그 한문 저본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였다. 국내외 도서관에 소장된 판본들과 영인본 자료집에 수록된 판본들을 중심으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 작업을 먼저 실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글본과 구성 체재가 유사하거나 수록된 문답의 문장이 서로 연관된 한문본 문헌들을 추출하였다. 그 결과 5종의 교리문답 문헌을 선택하여 그 특징을 파악하기 위하여 문헌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대체로 1788년의 『聖事問答』, 연도 미상의 삼본문답 『領洗問答』, 호주 국립 도서관 소장의 『聖敎要理問答』, 그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의 『聖敎要理問答』을 문헌 형성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지니면서 하나의 계열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최종적인 형태인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의 『聖敎要理問答』과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대조하여 한글본 번역에 쓰인 한문 저본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한글본 『성교요리문답』과 한문본 『聖敎要理問答』 사이의 긴밀한 연관 관계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해당 문답의 문장도 대부분 일치하며, 한문본에 들어 있던 쌍행의 협주가 한글본에도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한글본과 한문본이 대부분 일치하지만, 「견진문답」의 마지막 문장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문헌상으로는 연관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판본인 사본문답 『영세문답』에서 오히려 한글본의 해당 문장과 일치하는 문장을 찾아냈다. 따라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을 번역 저술하는 과정에서 한문본 『聖敎要理問答』을 중심적인 저본으로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교리문답 문헌들이 조선 천주교 내에 들어와 있었고, 그 일부를 실제로 참고하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본론에서 전개한 논의가 지닌 한계점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 종의 한문본 문헌을 검토하였지만, 실제 이 문헌들의 저술 주체와 저술 연대를 특정할 수 없었다. 즉 해당 문헌에는 저자와 간행 연도, 직권자의 인준 사항 등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중국 천주교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문제로 보인다. 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간행한 천주교 서적들의 경우를 보면 누가 지었으며, 누가 검열하였고, 누가 간행을 인준하였는지, 그리고 언제 간행되었는지, 나아가서 인출에 사용된 목판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65)

 

하지만 1742년에 소위 중국 의례와 관련하여 금지령이 내려지고 이어서 예수회가 해산당한 이후에는 중국에서 천주교 서적 간행이 대단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 때문인지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 전반에서 저술 주체와 간행 시기를 밝힌 문헌이 거의 없다. 다만 19세기 전반기 중국 천주교회의 역사, 가령 예수회의 철수와 선교수도회(Congregatio Missionis)의 진출, 북당의 폐쇄와 서만자 이전 등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하면 당시 북경과 주변 지역에서 진행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의 간행 내력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끼친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의 저술 주체와 간행 시기 및 간행지 등에 대한 연구는 차후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참고문헌


1.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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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西平, 任大援 外 主編, 『梵蒂岡圖書館藏明淸中西文化交流史文獻叢刊(第一輯)』, 鄭州: 大象出版社, 2014.

Standaert, Nicolas & Adrian Dudink,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Roman Archives of the Society of Jesus(耶穌會羅馬檔案館 明淸天主敎文獻), Taipei; Ricci Institute, 2002.

Standaert, Nicolas &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Taipei: Ricci Institute, 2009.

 

2. 논저

 

방상근, 「18세기 말 전라도 신앙공동체와 천주교 서적」, 『교회사학』 16, 수원교회사연구소, 2019.

신의식, 「서평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교회사연구』 47, 한국교회사연구소, 2015.

안홍균, 「해제」, 『한국교회사연구자료 제15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이석원, 「19세기 서울지역 천주교회 목판인쇄소 운영과 서적 유통」, 『조선 후기 서울 상업공간과 참여층』, 서울역사편찬원, 2021.

차기진, 「《성교 요리 문답》」, 『한국 가톨릭 대사전 7』,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燕鼐思(J. Jennes), 田永正 譯, 『中國敎理講授史』, 石家庄: 河北信德室, 1999(제네스, 신대원 옮김,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천주교 안동교회사연구소, 2015).

張西平, 「《天主敎要》考」, 『世界宗教研究』, 1999年 第4期.

張先淸, 「傳敎, 刻書與文化網絡 -十六至十八世紀多明我會傳敎士的中文著述」, 『澳門理工學報』 81(24-1), 2021年 第1期. 張偉, 張曉依, 『土山灣: 中國近代文明的搖籃』, 台北: 秀威資訊科技股份有限公司, 2012.

金成根, 「日, 中, 韓におけるカテキズムの受容と変遷」, 長崎純心大学大学院 博士学位論文, 2020.

Dudink, Adrian, “Tianzhu jiaoyao, The Catechism(1605) Published by Matteo Ricci,” Sino-Western Cultural Relations Journal, Vol. 24, 2002.

 

………………………………………………………………………………………………

 

1) 안홍균, 「해제」, 『한국교회사연구자료 제15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5쪽.

2) 차기진, 「《성교 요리 문답》」, 『한국 가톨릭 대사전 7』,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528쪽

 

3) 燕鼐思(J. Jennes), 田永正 譯, 『中國敎理講授史』, 石家庄: 河北信德室, 1999. 제네스 신부의 저서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제네스, 신대원 옮김,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천주교 안동교회사연구소, 2015. 이하에서 제네스 신부의 주장을 소개할 때는 신대원 신부의 한국어 번역본을 인용할 것이다. 다만 유럽인 이름의 표기는 중국어 번역본 등을 참고하여 수정할 것이다. 한편 제네스 신부의 저서가 각국어로 번역된 서지사항은 다음의 글을 참고할 것. 신의식, 「서평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교회사연구』 47, 한국교회사연구소, 2015, 205쪽.

 

4) 제네스, 앞의 책, 85쪽.

5) 위의 책, 54쪽.

6) 마르코 조르제의 오역으로 보인다.

7) 위의 책, 158쪽.

8) 金成根, 「日, 中, 韓におけるカテキズムの受容と変遷」, 長崎純心大学大学院 博士学位論文, 2020.

 

9) 교리문답 문헌에 따라서 문항과 답항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문답을 하나의 쌍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체 문답의 조목 수효를 계산할 때 문항과 답항을 분리하여 별개의 항으로 간주하였다.

 

10) 대표적인 중국의 인터넷 고서점 사이트는 공부자 구서망(孔夫子旧書网, https://www.kongfz.com)이다.

 

11) 호주 국립 도서관 검색 사이트(https://www.nla.gov.au)에서는 한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聖敎要理問答』을 검색하려면 로마자로 <Sheng jiao yao li wen da>로 검색해야 찾을 수 있다.

 

12) 뉴욕 공립 도서관에 있는 『聖敎要理問答』의 원래 소장자는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였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제임스 레게의 사후에 그의 컬렉션을 1909년 영국 런던에서 사들였다. 이 사실은 미국 UC 버클리 대학의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한국서적을 담당하고 있는 장재용 박사가 알려준 것이다.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13)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도서 검색 서비스(https://gallica.bnf.fr)를 활용하였다.

 

14) 동일한 제목으로 된 여러 종류의 문헌이 있으므로,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는 개별 문헌에 ‘Chinois0000’과 같은 번호를 붙여 놓았다. 그러므로 프랑스 국립 도서관 웹 사이트에서 특정 문헌을 찾기 위해서는 이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15) 『要經畧解』는 전체적으로 보면 천주교 기도문 해설서이다. 그러므로 문답식 교리서는 아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영세문답에 해당하는 「將領聖水問答」이 실려 있다.

 

16) 『天主聖敎總牘內經』 역시 『요경략해』와 같이 천주교 기도문 해설서이다. 그래서 문답식 교리서는 아니지만 후반부에 영세문답에 해당하는 「將領聖水問答」이 실려 있다.

 

17) 『袖珍日課』는 잘 알려진 기도서이다. 그런데 후반부에 「領聖體問答」이 들어 있어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18) 『要理六端』의 후반부에 영세문답인 「將領聖水問答」, 성체문답인 「領聖體問答」이 들어 있다.

19) 『聖敎啟蒙指要』의 전반부에 「領聖體問答」과 「將領聖水問答」이 실려 있다.

 

20) 이 문헌은 표지가 없어서 정식 제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본문 처음에 붙어 있는 제목, 즉 권수제(卷首題)를 따서 『要理六端』이라고 칭하였다. 여섯 가지 주요 교리를 설명한 다음에, 영세문답인 「將領聖水問答」, 성체문답인 「領聖體問答」을 붙였다.

 

21) 이상의 문헌 가운데 일부는 영인본 자료집으로도 나와 있다. 즉 『領洗問答』(Chinois 7254), 『將領聖水問答』(Chinois 7256), 『堅振問答』(Chinois 7257), 『聖體問答』(Chinois 7297) 등은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18, Taipei: Ricci Institute, 2009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天神會課』(Chinois 6958), 『聖事問答』(Chinois 7447) 등은 Vol. 20에 들어 있다. 『聖敎百問答』(Chinois 7002), 『聖敎要理』(Chinois 7246Ⅱ), 『天主聖敎告解道理』(Chinois 7276Ⅰ) 등은 Vol. 24에, 그리고 『天主聖敎要理』(Chinois 7304)는 Vol. 25에 들어 있다. 나머지 문헌들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 도서 검색 서비스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22) Nicolas Standaert, Adrian Dudink,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Roman Archives of the Society of Jesus(耶穌會羅馬檔案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1, Taipei; Ricci Institute, 2002, pp. 375-514.

 

23) Nicolas Standaert, Adrian Dudink,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Roman Archives of the Society of Jesus(耶穌會羅馬檔案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2, pp. 385-518.

 

24) 張西平, 任大援 外 主編, 『梵蒂岡圖書館藏明淸中西文化交流史文獻叢刊(第一輯) 17』, 鄭州: 大象出版社, 2014, pp. 241-286.

25) 張西平, 任大援 外 主編, 『梵蒂岡圖書館藏明淸中西文化交流史文獻叢刊(第一輯) 39』, pp. 241-286.

 

26) 뉴욕 공립 도서관의 제임스 레게 소장본은 서지 사항만 확인하고 그 원문을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27) 세 가지 문답을 실은 『영세문답』은 영인본 자료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18, pp. 431-504.

 

28) 『聖事問答』은 영인본 자료집에도 실려 있다.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20.

 

29) 『성사문답』의 「고해요리」 72문답과 『성교요리문답』 및 『영세문답』의 「고해문답」 74문답이 숫자로는 차이가 나지만 그 내용으로 보면 실제적인 차이가 아님을 뒤에 가서 다시 서술하겠다.

 

30) 『천주성교계몽』의 저자가 두 명이고, 상권은 주앙 다 로샤 신부의 저술이지만, 하권은 가스파르 페레이라(Gaspar Ferreira, 費奇規, 1571-1649) 신부의 저술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위의 자료집에 실린 『천주성교계몽』은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31) 이하의 문장은 Doutrina Christam de Padre Marcos Iorge da Companhia de Iesu, 1616, pp. 6-7에서 가져왔다. 이 문헌은 구글 북 검색에서 찾을 수 있다.

 

32) 『天主聖敎啟蒙』, in Nicolas Standaert, Adrian Dudink,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Roman Archives of the Society of Jesus(耶穌會羅馬檔案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1, Taipei; Ricci Institute, 2002, pp. 377-379.

 

33) 제네스, 앞의 책, 158쪽.

 

34) 『天主聖敎入門問答』 in Nicolas Standaert, Adrian Dudink,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Roman Archives of the Society of Jesus(耶穌會羅馬檔案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2, pp. 385-518.

 

35) 張先淸, 「傳敎, 刻書與文化網絡 -十六至十八世紀多明我會傳敎士的中文著述」, 『澳門理工學報』 81(24-1), 2021年 第1期, p. 74.

 

36) 『天主聖敎要理』 in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25, Taipei: Ricci Institute, 2009, p. 148.

 

37) 벨기에 뢰벤 가톨릭대학교 중국 그리스도교 문헌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저술 시기를 1690년에서 1700년 사이로 보고 있다. (http://heron-net.be/pa_cct/index.php/Detail/objects/2502)

 

38) 「장영성수문답」은 드 루주몽 신부의 『영세요리』 이외에 다른 한문본 교리문답 문헌들에서도 발견된다. 그중에는 마태오 리치 신부가 완성하였다고 알려진 『天主敎要』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장영성수문답」이 실려 있는 『천주교요』 판본은 간행 시기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본고는 「장영성수문답」의 기원과 실제 저자의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장영성수문답」이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 전반부와 유사하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천주교요』 판본에 관해서는 다음의 두 연구를 참고할 것. 張西平, 「《天主敎要》考」, 『世界宗教研究』, 1999年 第4期, pp. 90-98; Adrian Dudink, “Tianzhu jiaoyao, The Catechism(1605) Published by Matteo Ricci,” Sino-Western Cultural Relations Journal, Vol. 24, 2002, pp. 45-46.

 

39) 『領洗要理』 in 張西平, 任大援 外 主編, 『梵蒂岡圖書館藏明淸中西文化交流史文獻叢刊(第一輯) 17』, pp. 265-272.

 

40) 중국에 진출한 프란치스코회는 1701년 산동 제남(濟南)에 세운 천구당(天衢堂)에서 『聖敎總牘』이라는 교리서를 간행한 바 있다. 이 문헌의 제5권에는 『聖敎啟蒙指要』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여기에도 「장영성수문답」이 실려 있다. 이것은 드 루주몽 신부의 『영세요리』에 들어 있는 「장영성수문답」과 약간 다르다. 유사한 문장들을 담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문장들도 많이 섞여 있다. 그리고 『성교계몽지요』의 「장영성수문답」이 『성교요리문답』의 「영세문답」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천주의 존재를 묻는 문항에 대한 답항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천주께서는 하늘과 땅, 천사와 인간과 만물을 만드셨으며, 지극히 존귀하여 비할 데 없으시고, 유일한 큰 주인이시며, 그 체는 순수한 영이시고 무형 무상이시며, 전능, 전지, 전선하시다.” (天主是造成天地神人萬物 至尊無對 惟一大主 其體神純 無形無像 全能 全知 全善). 그러므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사이에 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가 중국에서 교리서를 간행할 때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이것이 이후로 어떻게 전승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프란치스코회가 간행한 『성교계몽지요』(Chinois 7420)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도서 검색 서비스를 통해서 내려 받을 수 있다.)

 

41) 실제로는 「영세문답」에 해당한다.

 

42) 『聖事問答』과 『領洗問答』은 다음의 영인본 자료집 제20권과 제18권에 수록되어 있다.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Taipei: Ricci Institute, 2009.

 

43) 『聖事問答』 「要理問答」, 八張 A面 2-3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 405).

44) 『領洗問答』 「領洗問答」, 三張 B面 5-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38).

 

45) 『聖事問答』 「要理問答」, 九張 B面 4-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 408). 한편 『領洗問答』의 「領洗問答」, 五張 B面 1-2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42)에는 중간의 답항과 문항이 없다.

 

46) 『聖事問答』 「要理問答」, 十張 A面 6行-B面 2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p. 409-410).

47) 『領洗問答』 「領洗問答」, 六張 A面 1行-B面 1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p. 443-444).

 

48) 위에서 대조한 두 문헌의 구절은 각각 『聖事問答』 「要理問答」, 十一張 A面 6行-十二張 A面 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p. 411-413)과 『領洗問答』 「領洗問答」, 八張 B面 五行-九張 A面 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p. 448-449)에서 가져왔다.

 

49) 『領洗問答』 「領洗問答」, 九張 A面 6行-B面 4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p. 449-450).

50) 『領洗問答』 「領洗問答」, 十六張 B面 2行-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64).

51) 『聖事問答』 「告解要理」, 十三張 A面 2行-4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 439).

52) 『領洗問答』 「告解問答」, 二十七張 A面 6行-B面 2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p. 485-486).

53) 『聖事問答』 「告解要理」, 一張 A面 4行-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 415).

54) 『領洗問答』 「告解問答」, 十七張 A面 4行-5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65).

 

55) 『聖事問答』 「聖體問答」, 四張 A面 2行-B面 3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p. 453-454). 위의 네 문답은 『領洗問答』 「聖體問答」 三十二張 A面 5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95)의 “問 聖體分得分不得” 앞에 나와야 하는데 누락되어 있다.

 

56) 『聖事問答』 「聖體問答」, 八張 A面 5行-6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20, p. 461). 위의 두 문답은 『領洗問答』 「聖體問答」, 三十三張 B面 2行(영인본 자료집: Ibid., Vol. 18, p. 498)의 “答 聖敎會的嚴命 凡知道好歹的 男女敎友 該至少每年在復活瞻禮前後領聖體一次” 다음에 나와야 하는데 누락되어 있다.

 

57) 물론 글자 한 자의 차이는 있다. 『영세문답』(Chinois 7254)의 「성체문답」에서 제12번 답항의 네 번째 글자가 ‘原’으로 되어 있다. (『領洗問答』 in Nicolas Standaert, Ad Dudink, Nathalie Monnet, eds., Chinese Christian Texts from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法國國家圖書館 明淸天主敎文獻) Vol. 20, Taipei: Ricci Institute, 2009, p. 495) 이에 반해서 『성교요리문답』의 「성체문답」에서 해당 글자는 ‘所’로 되어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聖敎要理問答』, 三十三張 A面.)

 

58) 앞 장에서는 한문본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본 『성사문답』도 중요한 비중을 두어 비교하였다. 왜냐하면 본문의 문답 내용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주의 내용은 매우 다르다. 그래서 한글본이 『성사문답』을 번역 저본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한글본과의 대조에서는 제외하였다.

 

59)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 『聖敎要理問答』, 四十三張 B面 5行-四十四張 A面 3行.

60)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본 『領洗問答』, 三十八張 A面 5行-B面 5行.

61) 『聖事要理問答』 in 『中國宗敎歷史文獻集成 53 東傳福音 第三冊』, 合肥: 黃山書社, 2005, p. 396.

62) 張偉, 張曉依, 『土山灣: 中國近代文明的搖籃』, 台北: 秀威資訊科技股份有限公司, 2012, pp. 40-42.

 

63) 베르뇌 주교에 의한 목판 인쇄소 설치와 목판본 서적 간행에 관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참고할 것. 이석원, 「19세기 서울지역 천주교회 목판인쇄소 운영과 서적 유통」, 『조선 후기 서울 상업공간과 참여층』, 서울역사편찬원, 2021. 이 연구에 따르면 목판본 『성교요리문답』은 1861년부터, 그리고 목판본 『천주성교공과』는 1862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위의 글, 246쪽.

 

64) 1801년 신유박해 당시 관헌들이 압수하여 불태운 천주교 서목에는 다음과 같은 교리문답 문헌들이 나온다. 『三問答附十誡』, 『要理問答』, 『요니문답』, 『요리문답』, 『셩톄문답』 등이다. 방상근, 「18세기 말 전라도 신앙공동체와 천주교 서적」, 『교회사학』 16, 수원교회사연구소, 2019, 277쪽.

 

65) 마누엘 디아스 신부의 『聖經直解』가 좋은 사례이다. 『聖經直解』 in 張西平, 任大援 外 主編, 『梵蒂岡圖書館藏明淸中西文化交流史文獻叢刊(第一輯) 17』, pp. 293-294. 이 판본에는 저자(陽瑪諾), 간행지(武林天主堂梓行), 검열자(羅雅谷, 艾儒畧, 湯若望), 인준자(傳汎際)가 모두 나와 있다.

 

*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5A2A01041640)

 

[학술지 교회사학 제19호, 2021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조현범(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

 

원본 : http://www.casky.or.kr/html/sub3_01.html?pageNm=article&code=400940&Page=1&year=&issue=&searchType=&searchValu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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