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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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절 특강3: 예수님을 따르는 나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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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30 ㅣ No.120

[명동주교좌본당 사순특강] (3) 예수님을 따르는 나눔의 삶

 

 

지난해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은 온 국민의 마음에 오랫동안 길이 남을 두 가지 선물을 남겨두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한 가지 선물은 '장기기증'이요, 다른 한 가지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이다. 전자는 생명 나눔이요, 후자는 사랑 말씀 나눔이다. 전자는 성찬 전례요, 후자는 말씀 전례다.

 

김 추기경님은 자신의 특별한 선물을 남겨주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평소에 살아오셨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셨다. 그것은 바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나눔의 삶'이셨다. 추기경님의 이 두 가지 나눔의 삶은 '예수님 사랑'이었다.

 

'장기기증'과 '사랑합니다'로 요약할 수 있는 추기경님의 두 가지 선물은 사실 예수님 삶의 본질로서 '나눔의 사랑인 성체성사'이며 '사랑의 말씀인 복음'이었다. 추기경님은 마지막 말씀과 마지막 행위를 예수님과 똑같이 따라하며 온 국민에게 나누셨다. 그것이 바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이고 '각막적출 장기기증'이다.

 

 

1. 장기기증은 나눔의 삶, 성체성사

 

추기경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장기기증을 약속하신 대로 병원에서 각막을 적출해 못 보는 사람에게 세상의 빛을 선물하셨다. 각막을 적출하기 전에 그것은 추기경님의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 각막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이식되면 그것은 추기경님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다. 하느님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이 되는 강생, 예수님의 몸과 피가 나의 몸과 피가 되는 성체성사, 이 모든 것이 나눔의 삶의 근본정신이다.

 

하느님 나라는 이웃과 함께 사랑과 나눔의 접촉으로 열리는 문이다. 인격적 완덕은 카리타스(나눔) 없이 불가능하며, 자기희생을 동반하는 길이다. 곧 십자가 없는 교회와 나눔 없는 그리스도 사랑은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늘나라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루카 6,19-20)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인간은 자신의 재산을 선물하고 나누는 것만이 오직 하늘나라에서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늘나라 보물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선한 일이며 그것이 저축된 것이다. 어려운 자와 나누는 생명과 재물들은 이 세상 은행에서 영원한 세상 은행으로 자동이체 된다.

 

주님께 인정받았던 자캐오를 보자. 그는 용서받고 인정받자 즉시 변화된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루카 19,8).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첫 사회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발표하셨다. 이것은 바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과 사랑의 성체 성사를 통해 지금 이 지구를 살리자는 사회적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다.

 

 

2.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유언

 

추기경님은 주님 곁으로 가시기 직전 마지막 말씀 곧 유언을 남기셨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셨던 유언과 동일하다. 추기경님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사랑의 새 계명 말씀을 남기셨다. 성체성사와 사랑의 새 계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나눔의 삶의 핵심이며 동전의 양면이다. 성체성사는 생명을 나누는 사랑이고 사랑의 새 계명은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면 우리도 하느님처럼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데는 예수님의 목적이 있다. 주님이 기도하신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가 서로 사랑하는 목적이다. 서로 사랑하는 이유는 모두가 하나 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사랑의 새 계명, 발씻김 예식의 목적이다. 이렇게 하나가 되는 일치를 위한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또 하나의 나눔의 삶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구별 없이 사랑을 살아가는 모습, 가장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며,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보기에 참 좋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좋은 모습이 바로 남자와 여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일치에 있으며, 이러한 일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과도 하나가 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21일,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대학원장 겸 교학처장), 정리=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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