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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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는 작은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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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3-07 ㅣ No.174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아야 하셨던 것은

모든 인간이 다 고통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고통받는 인간이 한 사람도 없었다면

고난받는 메시아는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육화의 의미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발생하는 모두는

다 그러한 육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숱한 병자들은

아직 이 세상에 병자들이 존재하고 있어

아직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숱한 가난한 자들도

아직 이 세상에서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기에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아직도 이 세상이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계속 지금도

죄악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하나의 장애인의 구원을 위해

또 하나의 장애인이 태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논리적으론 모순이지만

현실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러다 이 세상에

모든 장애인들이 온전히 치유 받아

하나도 없게 된 날

더 이상 장애인은 태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숱하게 태어나고 있는 악인들조차도

그런 육화의 의미를 띠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보낸다는 의미와 같으니

넓은 의미로는 육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참으로 이 세상이

온전히 한치도 남김없이 구원받는 그날까지(로마 8,18 이하)

이런 육화의 몸부림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럴 때 그들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고

철없이 범죄하고

신음소리 내고

울음 울고

아우성치고 등등 하는

그들의 삶에서

고난받는 야훼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짐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참으로 거기엔 십자가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처럼

모든 아픔의 짓들이

이렇게

숱하게 드러나고 있음은

다름 아닌

아직도 이 세상이 온전치 못함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구원자 하느님은 계속

구원을 향한 육화작업을 펼치셔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온전히 구원받는 그날까지!

 

자,

여기에서 각자

자기 삶의 의미를 새겨보라.

누구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다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고유 소명을 받고 육화된

작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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