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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병적 신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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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86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58) 병적 신념은?

 

 

Q. 요즘 정치권에서 너 나 없이 ‘꼴통’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좀 헷갈립니다. 한 쪽은 다른 쪽을 두고 종북 주사파 꼴통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구 꼴통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두고 꼴통이라고 하는지요? 제가 보기에는 양쪽 다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화를 버럭 내면서 제가 가진 생각이 덜떨어졌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A. 요즘 ‘꼴통’이란 말이 자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형제님 말처럼 한 쪽은 다른 쪽을 좌파 꼴통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상대 쪽을 수구 꼴통이라고 빈정거립니다.

 

그런데 꼴통이란 말은 어떤 특정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이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안 듣고 오로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 어찌 보면 성격장애적 요소를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꼴통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당 문제라기보다는 성격적 문제 혹은 성장 과정에서의 결함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개념일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정치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종교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 경우 ‘꼴통’들이 일으킨 사건들 때문에 지금까지도 비난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킨 마녀재판, 십자가 깃발을 들고 약탈을 일삼은 십자군전쟁, 무지와 무식의 극치인 갈릴레이 재판, 우리 교회의 ‘꼴통’들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교회가 다른 종교들로부터 비난을 받곤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들은 멀쩡한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회 못지않은 만만치 않은 사건들이 터지고 있음을 신문 지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러십니다. 돈에 연루돼 사고 치는 종교인이 꼴통들이 아니냐고요. 문제를 일으킨 것은 맞는데 ‘찌질이’들과 ‘꼴통’들은 다릅니다.

 

찌질이들은 단순히 돈 욕심에 사고를 치는 사람들인 반면, 꼴통들은 자기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어서 그 수준이 다릅니다. 문제는 자기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서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신념이 없으면 줏대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고, 사내답지 못하다는 등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념이 없으면 미래 비전도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소통과 대화를 통해 자기 비전을 확장해가는 건강한 신념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만 집착하는 병적 신념에 사로잡혀 외곬이니 꼴통이니 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병적 신념 즉, 꼴통들에 대해 영성심리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과거를 떠나지 못하고 복고적 삶을 살려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개의치 않고 특정한 관점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현실적 조건들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세계와 환상 속으로 빠져듭니다. 안하무인적 태도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키는데, 자신은 그런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경직된 신념체계를 갖고 사는 것이 꼴통의 특징입니다.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이나 이념은 물처럼 융통성이 있고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일반적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신앙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 속을 뒤집기 일쑤여서 결국 왕따를 자초하게 됩니다.

 

또 경직된 사람들은 인생 말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강한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천년만년 끄떡없을 것 같던 고목들이 부러져 내동댕이 쳐지는데 잡초들은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순응했기 때문입니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건강하게 살려면 건강한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한 지식 쌓기가 아니라 자기 신념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차원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마음의 스트레칭 혹은 신념의 스트레칭이라고 합니다. 마태오복음 5장 17절을 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평화신문, 2012년 7월 1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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