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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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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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3-07 ㅣ No.172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말엔 종말론적 열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이런 표현이 신앙적 확신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그만큼 우리의 교회가 본질로의 회귀에 성공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왜냐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바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물론 이 말은 2천년 동안 수없이 기만적으로 악용되어 왔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군 전쟁이나 식민지 개척 같은 침략행위가 그런 모토 아래 정당시 되며 이뤄졌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는 사치스런 대사원을 건축했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이 그리도 열성적으로 선교했던 이른바 이방인들이나 이교도들을 오히려 박해하였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녀사냥식 이단처단의 종교재판의 잘못을 저질렀다. 심지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들먹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 이 말이 참됨을 지닌다면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바로 거기에 있다.  왜냐면 그것은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지닌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니.

 

그럴지라도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씀의 참뜻을 만나 보았는가! 그럴 때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말씀이 아니고 눈엔 핏발이 서고 온 뼈가 떨리고 살을 에는 듯한 처절한 ’순교의 언어’이다.

 

그 모든 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의 가장 귀중한 것,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내 삶의 모든 재미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그것, 나의 앞날의 안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그것, 내 인격의 트레이드 마크, 내 삶의 양식, 내 삶의 기반, 그것이 없으면 오직 공허함만이 날 가득 채울 것만 같은 그것,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버려야 한다는, 더욱이 그런 행위가 내게 어떤 유익한 반대급부를 갖다 줄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아니 오히려 내겐 아픔과 죽음만 가져다 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그것을 흔쾌히 내던져야 한다는 사실!

 

그뿐인가! 더 나아가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나의 자기희생이 오직 하느님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자긍 속에 죽어 갈 순 있지만, 오히려 거꾸로 적들에게 절대 유익을 주는 게 확실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를 때도, 아니 나의 희생으로 그들에게 오는 유익함 그것으로만이 오직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그런 때일지라도 그분의 영광을 위한 나의 인격적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시편적인 표현이지만 원수들의 조소 어린 웃음만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흔쾌히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죽이는 것, 그것은 순교 외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으리라. 십자가상에서 시편 22편을 울부짖듯 외우셨을 때, 성부의 무심함 속에서 그분은 깊은 절망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 절망과 회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성부에 대한 사랑의 열정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끝내는 죽음을 받아들이신다. 그분 성부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결국 죽이고 마신다.

 

자신을 버리신 성부, 하나인 외아들마저 버리신 성부, 희망도 신뢰심도 모두 사라진 캄캄한 암흑의 상태에서도 성부께 대한 사랑은 그분을 십자가 꼭대기 위에서 스스로 죽음으로 훌쩍 뛰어내리도록 만들었다. 광야에서의 유혹 때엔 악마의 달콤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전혀 응하시지도 않으셨던 그분이시다!

 

사랑만이 그런 순교를 가능케 한다. 사랑만이 그분의 영광만을 오직 위하여 나를 참으로 존재케 한다. 그분을 사랑할 때 그분의 영광은 내 존재의 유일한 이유가 되기에 그 어떤 죽음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의 ’Ⅰ고린토 13장13절’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실 사랑은 믿음과 희망의 시작인 동시에 완성의 끝으로서 설사 믿음과 희망이 사라질지라도 사랑만큼은 언제까지나 남을 수 있다. 곧 사랑은 믿음과 희망을 태우고 하느님나라로 침몰을 모르고 나아가는 배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 안에서만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도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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