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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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아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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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88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61) 아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

 

 

Q. 제 아들은 수도자가 되려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엄격한 봉쇄 관상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성인전을 비롯한 수도생활에 대한 책을 보면서 제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엄격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날이 갈수록 자기 몸을 거의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칠 정도가 돼 가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이 돼 이제 몸을 좀 돌보라고 하면 아들은 복음을 인용하면서 저를 나무랍니다. 아들이 잘 인용하는 대목은 마태오복음 6장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저는 아들이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데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어미 된 사람으로서 아들의 지나친 금욕주의적 삶을 말리고 싶습니다. 아들이 엄격한 삶을 살수록 가족들과의 대화도 세속적이라고 기피하고, 작은 일에 짜증도 잘 냅니다. 왠지 아들의 이런 삶이 뭔가 아니란 생각은 드는데 제가 학문이 깊지 않아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A.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얼핏 들어보면 몸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교회 수도원에서는 성경의 이 말씀에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스토아학파 생각마저 얹어 아주 혹독한 수도생활을 하는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것은 수치스런 짓이라 여겨서 옷은 넝마같은 것으로 일 년 열두 달 입고 잠자리는 마구간 같은 곳에서 자는 아주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자다 깨서 기도하는 시과경까지 바치고 심지어 어떤 수도자는 음식을 탐하지 않으려고 자기 밥에다 재를 뿌린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런 성향은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됐는데, 그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것이 본당신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본당신부가 몸집이 좋고 혈색이 좋으면 ‘기도생활 안 하는 신부’라고 비아냥거리고, 새 옷을 입기만 하면 ‘무슨 신부가 그리 부자들 흉내를 내느냐’고 핀잔을 줘서 당혹케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몸의 병은 떠나질 않아서 많은 열심인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주위 사람들을 더 당혹하게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몸에 대해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몸을 대화적 대상이 아닌 물적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질병을 불러온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건강관리에 지나친 관심을 보입니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광고들을 보면 상당수가 건강식품과 건강의약품 등에 대한 것들입니다. 또 건강관리를 위해 걷고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질병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교회가 몸을 혹독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과 현대 사회가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몸을 물적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처럼 대화 대상이 아니라 무슨 기계나 혹은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래서 질병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몸은 학대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며, 단순히 먹이고 입히기만 하면 되는 대상도 아닙니다. 몸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영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몸을 물적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몸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건전한 신체는 건전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역으로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신체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몸과 마음이 이원적 관계가 아니라 일원적 관계 즉, 몸과 마음이 연계성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을 잘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 ‘화가 나면 머리가 아프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등등 몸은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환고리를 갖습니다. 주님은 몸의 이런 중요성을 잘 아셨기에 늘 병자들 몸을 고쳐주셨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영성가들이 영혼은 하느님이 머무시는 성전이고 몸은 그런 영혼이 머무는 성전이라고 하면서 몸의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몸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하는 조강지처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평생 동반자인 몸을 단순한 물적 대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혐오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복음적 정신에 어긋납니다. 자매님은 아드님에게 이런 취지를 말씀해주시고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2년 7월 22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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