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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II: 갈릴레오 재판 사건 (12-13) 반실재론자들에 의한 갈릴레오 사건의 새로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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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3 ㅣ No.492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Ⅱ] 갈릴레오 재판 사건 (12) 반실재론자들에 의한 갈릴레오 사건의 새로운 해석 ①


지동설을 ‘가설로’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로’ 믿을 것인가

 

 

-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8년 10월 31일 바티칸에서 열린 과학자들과의 회의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축복하고 있다. 호킹 박사는 자신의 반실재론적 견해를 여러 차례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CNS 자료사진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전통적인 역사적 해석은 “한 명의 과학자에 대한 교회의 몰이해로 인한 과도한 권력 행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고 탐구하는 새로운 철학 분과인 과학철학이 발전해 가면서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해석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은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날에 와서는 반실재론적인 성향의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관점에 따라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편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과학적 실재론은–세부적으로는 여러 버전들이 존재하지만–간단하게 말하면, “과학은 우리들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로 존재하는 사실/진리를 얻어 내는 작업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가장 단순한 실재론을 흔히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 이론은 관측된 사실을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등 경험적 유효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론이 말하는 모든 내용이 관측 불가능한 부분까지도 글자 그대로 정말로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에 대한 논증들은 특히 전자, 쿼크, 초끈과 같이 직접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실체들에 대해 과학 이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발생합니다.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은 이러한 실체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바로 이러한 (소박한) 실재론의 입장을 옹호한 대표적인 과학자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종교 재판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태양 중심적인 모델의 ‘물리적 실재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그가 결코 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과학자들은 갈릴레오가 그러했듯 과학적 실재론의 옹호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실재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반실재론자들 역시 존재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반실재론 혹은 도구주의에 따르면,–반실재론도 실재론처럼 세부적으로는 여러 버전들이 존재합니다–“과학의 목표 자체는 진리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험/관찰의 결과들을 경험적으로 적절하게 기술함으로써 현 단계에서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과학적 이론화의 진짜 목표는 진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적절성’에 있다는 것이죠. 즉, 과학 이론은 진리/진실을 의도하지 않는 허구적인 모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실재론자들은 과학적 기술들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과학을 관찰 가능한 현상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을 돕는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로서 여깁니다. 반실재론에 따르면 과학의 임무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추구하는 것으로 그 범위가 좁혀지고, 관측 불가능한 것에 관한 이론은 영원한 가설이거나 편리한 사고의 도구로 격하되고 맙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시대에 이미 이러한 반실재론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공전에 관하여」가 처음 출판될 때 그 책에 서문을 쓴 루터파 목사인 안드레아스 오지안더(Andreas Osiander)는 그 이론이 물리적 기술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계산을 위한 도구’로서 고안되었다고 밝혔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레오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이들인 벨라르미노 추기경과 우르바노 8세 교황 역시 반실재론적인 접근을 취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둘 다 별과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하느님이 하늘의 구조를 만들 때 실제로 선택한 방식이 어떤 것인지는 당시로서는 밝혀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가설로서’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지만 그 모델을 ‘사실로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차이는 실재의 관찰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반실재론자들은 우리의 관찰 능력이 과학 지식을 한정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실재론자들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대다수 실험과학자들은 실재론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중입니다. 자신들의 실험 측정을 통해 나온 모든 데이터들이 바로 독립된 실재의 반영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반면 20세기 이후, 특히 양자물리학의 출현 이후 많은 이론물리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반실재론을 주장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반실재론적 이론물리학자는 바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2018)으로, 그는 자신의 반실재론적 견해를 여러 차례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물리 이론들이 우리가 구성해 낸 수학적 모형일 뿐이며, 그것들이 실재에 대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관측을 예측하는 것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믿는 실증주의자이다.”

 

그래서 20세기 대표적 실재론자인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는 반실재론을 지지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수적 우위에 관해 한탄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 절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남겨진 이 모든 철학적인 논쟁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갈릴레오가 만든 전통에 충실하게, 갈릴레오가 과학을 진리 탐구라고 이해했던 대로 진리 탐구에 전념했다. 그들은 아주 최근까지 그렇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이제는 과거의 역사이다. 오늘날에는 … 철학적인 이슈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 없이도, 더 이상의 새로운 주장을 만들지 않고도, ‘도구주의적 관점’은 받아들여지는 교리가 되었다. 이제 (아인슈타인(Einstein)과 슈뢰딩거(Schrodinger)는 그렇지 않지만) 물리학의 지도자급 이론가들 대다수에 의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것은 물리학 이론의 ‘공식적인 관점’으로 불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현재의 물리학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서로 상반된 두 진영 간의 이러한 긴장은 여전히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들, 특히 실험과학자들과 이론과학자들이 대등하게 분포되어있는 물리학의 여러 분과들 안에서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3년 7월 2일,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Ⅱ] 갈릴레오 재판 사건 (13) 반실재론자들에 의한 갈릴레오 사건의 새로운 해석 ②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갈등 처음으로 수면 위에 드러난 사건”

 

 

-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 있는 갈릴레오의 무덤. 갈릴레오 사건은 교회 권력이 선량한 과학자를 박해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와 과학자 간 관점의 차이에 의해 생긴 일이라는 주장이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그렇다면 실재론자들과 반실재론자들은 갈릴레오 사건에 대해 각기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실재론자들은 전반적으로 갈릴레오가 (소박한) 실재론자였기 때문에 그를 옹호하면서 당시 교회의 과학적 무지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반실재론자들의 입장은 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단적으로,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손꼽히는 과학철학자로서 과학 연구 프로그램 이론을 제안한 반실재론자 임레 라카토슈(Imre Lakatos·1922~1974)는 갈릴레오의 지동설 지지를 “비이성적으로 조급한” 선택의 결과로 보면서 당시 교회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흔히 비이성적으로 느린 것 같다. 예를 들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단서 조항이 합리적으로 잘 제시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목성의 근일점을 변칙 사례로 받아들이는 것과 이것을 뉴턴 이론의 반증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85년이나 시간이 걸렸다. 반면, 과학자들은 흔히 비이성적으로 조급해 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와 그의 제자들은 지구의 공전에 반대되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적 천체 역학을 받아들였다.”

 

라카토슈의 동료인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1924~1994)가 갈릴레오 사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반실재론적 관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대표작인 「방법에 반대하여」(Against Method)라는 책을 1975년에 처음 출판하였는데,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바로 갈릴레오의 과학적 방법론이었습니다. 특히 이 책의 13장에서 갈릴레오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데, 파이어아벤트는 이 장에서 실재론자들, 일반적인 자연과학자들과 일반 대중들이 듣기에 깜짝 놀랄 만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오 시대에 교회는 그때에 정의된 바와 같이 이성에 더 가까이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그러하다. 또한 교회는 갈릴레오 관점의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들을 고려하였었다. 교회가 갈릴레오를 기소한 일은 합리적이었으며 오직 기회주의와 균형감의 부족만이 수정을 요할 만한 것일 뿐이다.”

 

13장의 서두에서 언급한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얼핏 보면 가톨릭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는 가톨릭과 관련 없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반실재론적 관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자신의 확고한 주장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우리가 해석한 성경에 반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과학적인 이유가 강력하더라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학적 추론으로 지지되는 진리(truth)는 배제되지 않았다. 성경 구절의 해석이 과학적 추론과 명백히 배치되는 경우 그 해석을 수정하려 했었다. 평평한 지구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교리는 마땅히 구형의 지구를 받아들였었다. 반면에 교회는 누군가가 몇몇 애매한 추측들을 내놓았었기 때문에 변화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는 증거(proof)를 원했다. 과학적인 문제에서의 과학적인 증거 말이다. (당시 교회가 원했던) 증거는 현대의 과학 기관들에서와 다르게 행동한 것이 아니다. 여러 나라들의 대학들, 학교들 및 연구 기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기 전에 보통 오랜 기간을 기다린다. …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는 갈릴레오에게 그것을 ‘가설로서’(as a hypothesis) 가르칠 것을 권고했고, ‘진리로서’(as a truth) 가르치는 것을 금했던 것이다.

 

(가설과 진리에 관한) 이 구분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하지만 교회는 몇몇 이론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심지어 충분한 증거가 주어진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도 사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현재 많은 과학자들 중에서, 특히 고에너지 물리학(=입자물리학)에서, ‘모든’ 이론들을 예측의 도구로서 바라보고 진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대화(truth-talk)를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 이 모든 일이 16~17세기의 과학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당시 천문학자들 중에서 가상원과 주전원을 하늘에 실재하는 궤도로 여긴 이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그것들을 실재에서 대응되는 것이 없는, 그저 계산을 돕기 위한 종이 위의 궤도로서 여겼었다. 코페르니쿠스의 관점도 같은 방식으로 - 흥미로우면서, 새롭고도 효율적인 모델로서 - 널리 해석되었다. 교회는 과학적인 이유와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갈릴레오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그 모델이 실재를 기술하는 것으로서 여겨질 때에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고려해 볼 때에, 우리는 과학사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피에르 뒤엥(Pierre Duhem)이 말한 대로 ‘논리는 벨라르미노의 편에 있었고 갈릴레오의 편에 있지 않았었다’는 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확고한 반실재론자인 파이어아벤트의 이러한 결론은, 갈릴레오 사건이 단순히 당시의 권력 집단인 교회가 한 명의 선량한 과학자를 부당하게 박해한 사건이 아니라, 실은 지동설을 가설로서 ‘올바르게’ 받아들인 반실재론자 집단인 교회와 그것을 진리로서 ‘고집스럽게’ 주장한 실재론자 과학자 간의 관점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 불행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도 반실재론적 성향의 과학철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 및 이론물리학자들은 “당시 교회의 관점이 갈릴레오의 관점보다 더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두 진영 간의 이러한 긴장은 여전히 자연과학, 특히 실험과학자들과 이론과학자들이 대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물리학의 여러 분과들 안에서 현재에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갈릴레오 사건은 - 적어도 일부의 과학철학자들에게는 - ‘실재론과 반실재론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최초로 수면 위로 드러난 역사적 사건’으로서 현재까지도 계속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3년 7월 16일,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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