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나는 왜 이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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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99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72) 나는 왜 이 모양인가요?

 

 

Q. 신부님, 저는 자주 우울한 생각이 들곤 해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 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리도 지지리 못났고 하는 일마다 안 되는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나의 인생에서 무슨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나의 인생에서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줄줄이 올라오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심한 심리적 갈증을 느낍니다. 주위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조언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A. 우울한 생각이 떠올라오면 참 힘들지요.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마치 다리에 붙은 질긴 거머리처럼 잘 떨어지지 않고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내 마음의 눈이 나의 좋지 않은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해 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밥을 먹다 보면 가끔 이물질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그냥 건져내고 나머지 밥을 먹는데,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면서 수저를 내려놓고 ‘왜 내 밥에만 이런 것이 들어갔을까’ 하고 우울해합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울함이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실제 상담사례를 살펴보면 우울함을 스스로 불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생각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지 않음에도 왜 그런 우울한 생각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 때문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 만물이 연결돼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즉, 만물은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흩어져 존재하는 것이라는 분열적 사고방식을 유지함으로써 자기 고립을 자처하고, 스스로 자신이 만든 마음의 감옥 안에 갇히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인지 우울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미간이 좁습니다. 눈을 들어 넓게 보지 못하고 오로지 좋지 않은 아주 작은 점 하나만 보려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심리치료사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우울한 생각이 들면 자기 미간을 손으로 문지르라고 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눈을 들어 다른 좋은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만사 중에 순도 100%인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쁜 여인도 얼굴에 잡티는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고 나면 배설의 불편함과 음식물 쓰레기라는 현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삶은 불편함이 그 본질이란 것입니다. 그런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면 살만한 것이고 작은 불편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 살 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삶에 대해 지나치게 우울한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문제가 우울함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유아적 사고방식에 있음을 인식하고, 좀 더 마음을 넓히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 불편함을 경험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위로가 아니라 반대로 쓴 약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가치감’을 갖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1장 57절을 보면 요한 세례자 탄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기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그 아기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하면서 아기에게 희망을 품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며 하느님 섭리는 요한 같은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범인들은 그냥저냥 서럽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자기 가치감이 지나치게 낮은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 생각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 중 일부이며,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 일부”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이 다른 것들과 분리돼 있고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착각이란 것입니다.

 

켄 윌버는 “우주에는 자기 진화의 힘이 있다. 사람은 우주의 자기 진화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끝없는 대우주 안에서 각자 해야 할 일, 실현해야 할 의미를 가지고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윌버의 말은 특정 인물들을 편애하는 것이 하느님 뜻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 가치감을 증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나를 초월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즉,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그림을 그리거나 사물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눈에 하찮게 보이는 것들에서도 생명력을 느끼게 되고,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인식도 깊어지게 됩니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21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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