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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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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0-26 ㅣ No.464

그리스도의 나그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아름다운 선교 기행

일제 6·25 민주항쟁 거치며 격동의 역사 속 한국교회 벗으로 80년



1933년 10월 29일 한국에 처음 도착한 골롬반 회원 10명이 당시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와 함께 했다. 이들은 대구 유스티노신학교에서 한국말 공부를 마치고 전라남도로 파견됐다.

 

 

골롬반 성인은 성경말씀을 따라 부모와 고향을 떠나 12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목적지도 없이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떠났다.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되기로 결심한 성인은 유럽 전 지역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 안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골롬반 성인이 시작한 그리스도의 나그네 여정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의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진출 80주년을 맞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한국에서 걸어간 여정을 따라가 본다.


■ 그리스도의 나그네

1933년 10월 29일, 파란 눈의 선교사 10명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일제 식민지하에 있던 한국은 그들에게 낯설고도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나그네’로 살았던 성 골롬반의 정신을 따르는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를 인정하고 신자들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전라남도 감목 대리구 초대 감목대리 맥폴린 신부가 동료 선교사제들에게 “한국 신부들과 함께 지내며 한국어를 배우고 선교활동을 하라”며 당부한 편지에서도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선교정신이 그대로 들어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지역에서도 사목을 할 필요성을 느낀 선교회는 서울을 비롯 춘천, 원주, 인천, 수원, 안동, 부산교구 등에서 활동했으며, 전국에서 신설한 본당만 127개다. 현재 선교회가 관할하고 있는 제주교구 금악본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구에 기증했지만, 선교회가 한국교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까지 대만에서 선교사목을 펼친 권태문 신부가 현지 아이들과 함께한 모습.

 

 

선교회의 나그네 여정은 본당에만 머물지 않았다. 농촌개발사목과 교리교육, 매스컴사목, 병원사목, 도시빈민사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골롬반 성인의 정신은 실현됐다. 원요한 신부가 1953년 도입한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교회의 중요한 신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는 한국인 회원을 양성했고, 평신도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견하며 언제나 새로운 선교영역에 도전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의 80년 동안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선교회 신부들은 총 266명. 그중 100여 명이 선종했고, 23명의 골롬반 사제들이 한국에 묻혔다. 뼈 속까지 선교사의 삶아간 이들이었다.

 

 

■ 또한 가난한 이와 함께

맥폴린 신부는 동료 사제들에게 “정치인들과 협상하지 마라. 묻지도 말고 법을 따르라”고 조언했다. 불의에 협력하지 말고 법을 따르며 정의를 구현하라는 의미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들은 맥폴린 신부의 말처럼 정의를 위해 노력해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손 바드리시오, 서 아우스티노, 나 토마스 신부가 제주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됐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7명의 순교자가 선교회에서 나왔다. 현재 광주대교구와 춘천교구에서 이들 순교자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 직후에는 제주도에서 빈곤퇴치를 위한 4H 운동을 시작으로 목축 사업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서울에서는 가톨릭 야학과 노동자들을 위한 센터, 행복한 가정운동 등을 진행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의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광주에서 사목하던 골롬반 사제들은 정부 측의 철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지역민들과 함께 했다. 이들의 선택은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곁에서 정의를 지켜나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기준이 됐다.

1976년은 전체 골롬반외방선교회에 큰 영향을 준 시기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골롬반 사제들은 총회에서 ‘정의평화위원회’ 설립을 제안했고, 총회 문헌에 ‘정의를 위한 투신’ 부분이 수록됐다. 선교회 정의평화위원회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위원회를 담당하는 함편익 신부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동시에 국제적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 새로운 여정의 시작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2000년 전후 선교에 대한 새로운 안목으로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평신도 선교사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교구 사제들이 해외선교를 체험할 수 있는 지원사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98년에는 한국가톨릭 해외선교사 교육협의회(KCFMEA)를 발족, 매년 1회 4주간 해외선교사 전문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11명의 평신도와 8개 교구 소속의 사제 11명이 필리핀, 칠레, 페루, 미국, 홍콩, 대만, 일본 등에서 선교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르트루바이’를 진행하고 있다. 전요한 신부가 담당하는 르트루바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에게 호응을 얻어, 전국 교구에서 문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평탄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나그네’ 여정을 기쁜 마음으로 걸어온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오는 2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주례로 ‘80주년 기념 개회미사’를 봉헌한다. 이후 2014년 4월 27일까지 6개월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미사와 음악회, 사진·물품전시회 등을 열 계획이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중국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1916년 에드워드 갈빈 주교와 존 블러윅 신부에 의해 아일랜드에서 시작됐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가톨릭 선교 사제, 평신도 단체인 선교회는 현재 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유럽,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다양한 문화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정의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에는 파리외방전교회와 메리놀외방전교회 이후 세 번째로 진출한 선교회다. [가톨릭신문, 2013년 10월 27일, 이지연 기자]

 

 

[인터뷰]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 오기백 신부
 
‘언제나 가난한 이와 더불어 살기’ 소명 첫자리



“8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세우고자 합니다.”

올해 한국 진출 80주년을 맞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 오기백 신부<사진>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역사 안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신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선교 노하우를 지역교회와 나눌 수 있다”고 말하며,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문제에 있어서 선교회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대 중반 선교 현지 지원자들의 입회가 가능해지면서 선교회는 한국 사회와 교회보다 일찍 다문화 문제를 대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교회는 각기 다른 문화의 사제와 평신도가 선교사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의미 있고 화목하게 보낼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오 신부는 또 성장한 한국교회에서 선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가 한국에 온지 햇수로 38년입니다. 불과 30~4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한국교회는 많이 성숙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과거 선교사들이 그랬듯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 신부는 현대의 가난한 이웃은 이주노동자, 장애인을 비롯해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교회에서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들을 돌보기 위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많은 신자들이 골롬반을 잊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신차려야 합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 선배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0월 27일, 이지연 기자]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80년

새로운 선교 의지 다지며 100년 향해 새 발걸음



한국 선교 80년 발자취
 
1933년 10월 부산항을 통해 입국한 골롬반회 사제 10명이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80년. 눈물과 기도, 희생과 봉헌으로 점철한 치열한 선교 여정이었다. 그리고 순교자의 피는 선교의 씨앗이 됐다.

 

1933년 10월 29일 한국에 진출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걸어온 길은 그간 한민족이 걸어온 길 만큼이나 가시밭길이었다. 일제강점과 해방, 6ㆍ25전쟁, 개발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민족사와 함께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골롬반회가 한국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열린 한국 지역 시노드가 계기가 됐다. 이 시노드를 통해 전라도 감목대리구가 설정되고 2년 뒤 두 지역으로 나뉘면서 새 선교지를 맡을 선교단체가 절실해졌다. 이에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선 골롬반회를 지목해 전남 감목대리구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골롬반회는 중국과 필리핀에 이어 세 번째로 '전남 감목대리구'에 선교사제들을 파견한다.

 

일제강점으로 신음하던 당시 전남에 선교의 첫발을 내디딘 골롬반회는 오늘날 광주ㆍ제주 교구의 초석을 다졌고, 춘천ㆍ원주 교구 설정과 선교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어 서울대교구와 인천ㆍ수원ㆍ안동ㆍ부산 교구 등 총 9개 교구에서 활동하며 무려 134개에 이르는 본당을 신설하고 성당을 지어 교구에 돌려주고 '복음의 정신대로'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떠났다. 중국 선교지로 향하던 배를 돌려 한국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지는 오웬 맥폴린(초대 전남감목대리, 초대 춘천지목구장) 신부 등 총 10명의 사제를 비롯해 80년간 한국에서 활약한 선교사제는 266명에 이르렀다.

1956년 현 하롤드(왼쪽,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원) 대주교가 한공렬(훗날 전주대목구장 주교,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역임) 신부와 함께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번역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엔 특히 민족사의 아픔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30년대 말 제주에서 사목하던 패트릭 더슨 신부, 토마스 라이언 신부, 오스틴 스위니 신부 등이 1941년 12월 첩보활동 및 불온사상소지죄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우리 정부는 1999년 8월 이들 세 사제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4급)과 애족장(5급)을 수여한 바 있다.

 

해방 이후 골롬반회는 겨레의 아픔에 함께하며 선교 항해를 계속했다. 6ㆍ25전쟁 발발과 안토니 컬리어 신부 등 7명의 회원이 순교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전쟁 전후 선교지에서 지역발전사업과 함께 조선소, 전력발전소 등을 세웠으며 교육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1953년엔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숀 사뷔지 신부 주도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 신심 생활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골롬반회의 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각 나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쇄신, 적응이 시작됨에 따라 골롬반회는 회원들의 언어 연수에 주력하는 한편 학생사목과 병원사목, 행복한 가정운동, 교리교사 지도, 한국문학의 영문 번역, 대학 강의를 통한 문화 교류, 정의와 인권운동 투신 등으로 선교 영역을 넓혀나갔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엔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다양한 사도직을 시도했다. 단도박과 단주 교육, 도시빈민, 토착화 연구, 노동사목, 생활상담, 유기농법 농사,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 등이었다.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증거하는 삶과 대화를 중시하게 됐다. 1990년대에 들어 한국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전환하자 평신도 선교사 양성과 교구 지원사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선교를 시도했다.

제주에 파견된 골롬반회원 임피제 신부가 1960년대에 현지 농민들과 함께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골롬반회 성소국장 겸 선교센터장 강승원 신부는 "지난 80년간 골롬반회는 교회 영역에서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사목을 해왔다"며 "특히 민중과 함께하는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80주년 감사미사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10월 29일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로서(Peregrinatio pro Christo)' 성 골롬반의 모범을 따라 한국 선교 100주년을 향해 새로운 닻을 올렸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지부(지부장 오기백 신부)는 이날 오후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주례로 한국 진출 80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선교회는 자신들이 선교했던 광주ㆍ서울대교구와 춘천ㆍ원주ㆍ제주교구 등에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오롯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통해 하느님 선교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미사 중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회원들은 △ 「한국 진출 80주년 기념 골롬반회 통계」 △ 국내에서 순교한 골롬반 선교사와 한국에 묻힌 선교사 23위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자 △ 하느님 생명 창조를 상징하는 흙(광주대교구 구 산정동성당 부지 흙)과 물(1933년 부산항 입항을 기념해 떠온 바닷물) △ 선교지로의 떠남과 도착을 의미하는 짚신을 봉헌하고 새로운 선교의지를 다졌다. 미사에는 염 대주교를 비롯해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와 전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 등 주교단, 골롬반회 사제단과 골롬반 해외선교 지원사제 프로그램에 함께했던 사제단 70여 명, 평신도 선교사 등 1000여 명이 함께했다.

염수정 대주교가 골롬반회 한국 진출 80주년 기념 감사미사에서 평신도 선교사가 봉헌한 짚신을 들어보이고 있다.

 

 

염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어느 시대에나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며 성실히 자신을 성화하고 봉헌하는 이들이 있어 왔지만 골롬반회원들 역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셨고 그 삶을 증거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ㆍ서울대교구, 춘천ㆍ원주ㆍ제주교구 등에서 134개나 되는 성당을 설립하고 세웠지만 이를 한국교회에 온전히 반환하고 새로운 선교지로 옮아가 복음의 정신대로 선교하며 살았다"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골롬반회 한국지부장 오기백 신부는 답사에서 "한국 진출 80주년을 맞으며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단 한 가지, '감사하다'는 말씀뿐"이라며 "골롬반회에 대한 시대와 지역교회의 요구를 성실히 식별하며 한국교회의 기도와 후원에 힘입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미사 직후 골롬반회는 염 대주교 등 주교단과 사제단이 함께한 가운데 한국 골롬반회가 걸어온 80년 세월과 발자취, 회원들의 활동상을 되돌아보는 사진전을 개막했다.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10월 31일까지 열렸다. 전시에는 1916년 설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골롬반회원들의 국내 활동상을 보여주는 사진 110여 점이 선보였다.

골롬반회는 이날 감사미사에 이어 2014년 1~4월 춘천ㆍ원주ㆍ제주교구에서 8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광주대교구 진출 80주년이 되는 내년 4월 27일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80주년 기념행사를 마무리한다. 또 음악회와 선교 세미나를 열고, 평신도 선교사센터 및 신학원 축복식을 거행하는 등 다양하게 8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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