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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필요했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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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14 ㅣ No.1248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필요했던 사랑

 

 

지구촌의 2020년이 코로나19 감염증의 고통 속에 저물어 갑니다. 감염증의 세계적 대유행은 인류가 당연한 듯 누리던 편리한 생활을 뒤틀고, 소수 집단의 문제인 줄 알았던 기후위기, 환경오염, 사회적 불평등, 노동의 위기를 모두가 고민하도록 다그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2020년은 1990년대에 대한 향수와 함께 밝았습니다. 그런데 ‘민주화’, ‘세계화’, ‘X세대’로 기억되는 그때가 좋은 시절이기만 했을까요? 당대의 뉴스와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 국가와 기업의 정책에서 배제되는 농촌, 권력과 결탁한 언론, 성차별 등의 주제들이 두드러지고 있었습니다. 2020년의 위기는 누군가는 겪고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가 덮어버린 문제들이 세월과 함께 증폭된 결과물인 셈입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는 IMF 외환위기 직전의 1990년대에 대한 낭만적 기억과 불의했던 관행에 대한 성찰이 공존합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회사에 꼭 필요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성별과 학력의 이중 차별을 당하던 고졸 여직원들이 회사의 불법행위와 다국적 기업 사냥꾼들의 비리를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여직원들의 활약은 1990년대에 싹텄고 2010년대에 돌아온 여성주의 담론에 힘입어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전자제품 공장에서 방류된 페놀에 오염된 과수원의 사과는 인과응보처럼 사장의 입에 들어가고, 부정행위에 동조하던 남직원들도 회심의 대열에 동참합니다. 친화력으로 무장한 여직원들은 2020년의 동학 개미 못지않게 많은 소액주주들을 오프라인으로 동원해 회사를 지켜냅니다.

 

회사에서 가장 약자이면서 부조리에 가장 덜 오염된 집단으로 설정된 고졸 여직원들의 서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사랑하는 주제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회사 중역들과 언론사 간부들이 애초부터 양심을 지켰다면 농민들의 질병도, 직원들의 마음의 상처도 없었겠지요. 약자들의 위험한 고군분투와 사회적 손실을 예방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의 공동선과 구성원들의 존엄을 지키려는 정치·경제 주체들의 사랑(카리타스) 실천입니다.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 일이 가치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랐던 여직원들의 사랑 실천에, 삼진그룹은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화답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관 바깥의 우리도 코로나19가 환기시킨 세상의 병폐들이 치유되기를 원한다면, 개인은 물론 공공 권력의 주체들에게도 공동선을 위한 회심과 사랑 실천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2020년 12월 13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수원주보 5면, 김은영 크리스티나(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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