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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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현대 영성: 침잠의 영성1 - 하느님 안에 고요히 침잠하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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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25 ㅣ No.1801

[현대 영성] 침잠의 영성 (1) 하느님 안에 고요히 침잠하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개인 피정을 갔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느님께 침잠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내적 고독과는 다른 건가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지친 우리는 때때로 모든 것 다 잊고 떠나 홀로 고요히 하느님 안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개인 피정을 하기 위해 피정집에 머물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잠을 실컷 자는 이들도 있고, 성경이나 영적 서적을 읽는 이도 있다. 숲을 산책하거나 성당에 홀로 앉아 오랫동안 명상에 잠기는 이들도 있다. 같은 피정 공간을 사용하는데 어떤 이는 마지막 피정 면담 때 너무도 충만한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지루하고 힘들고 불편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기에는 공통적인 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다. 기도의 개념(기도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봉헌된 시간이다)처럼 피정의 첫 번째 목적이 ‘내’ 영혼의 쉼이나 ‘내’ 마음의 평화, 혹은 온갖 분석을 통해 ‘나의’ 내면의 어둠을 찾는 것에 있어서는 안 된다. 피정은 ‘하느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분 겉에 머물며 그분께 집중하여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가 많은 봉사와 노동, 그리고 관계들에 얽혀 잊고 지냈던 하느님 품에 안겨 그분 안에서 영적 쉼 시간이다. 피정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 성취하려는 태도는 피정을 세미나, 심리적 안정, 영적 공부나 수련 등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수녀원과 수도원에서 피정 지도를 할 때 많은 경우 한 시간 정도의 강의를 듣고 나머지는 혼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하느님과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의 경우에는 아주 구체적인 피정 시간표를 짜고 지루할까 봐 ‘찬양의 시간’이나 ‘레크리에이션’도 갖게 하고 마지막 날에는 ‘주(酒)님(?)과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도 마련해 주는 경우도 있다. 고요히 혼자 머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평신도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필자가 있는 명상의 집에도 매달 정기적으로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며칠 동안 관상기도를 하며 피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가 피정이나 일상의 삶 속에서 고요히 마음을 모으고 하느님 곁에서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적 침잠의 상태에 도달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흩어진 생각과 마음을 고요히 모으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집중하는 기도나 피정과 같은 시간은 하느님의 은총인 관상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로써 이를 영성가들은 Recollection, ‘침잠’(沈潛)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침잠’이란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침잠의 영성에 대해서 낯설게 느끼는 이가 많을 것이다. ‘Re-collection’은 ‘다시 모은다’는 뜻으로,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함’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가톨릭에서 이 용어는 “영성 생활에서 영혼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로 집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용어는 하느님께 집중하기 위하여 외적이거나 세속적인 일로부터 마음을 물러나게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영혼이 하느님과 홀로 있는 내적 고독과 같은 의미이다.

 

침잠은 활동적인 침잠(active recollection)과 수동적인 침잠(passive recollection)으로 나눠진다. 전자는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의 노력이 더해져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침잠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영혼이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이나 신적인 완전함에 집중할 수 있는 성향을 얻을 수 있다. 후자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에 의존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동적인 침잠을 많은 신비가들은 주부적 관상(注賦的 觀想)의 초기 단계로 묘사한다.

 

수동적인 침잠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활동적인 침잠이다. 육체적, 정신적 긴장을 풀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고요히 머물며 마음을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침묵과 고독으로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활동적인 삶의 다양한 의무들이 내면의 한가운데로 조용히 침잠 될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일들에 사로잡히는 것은 침잠의 장애물들이다. 자주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 속에 머묾으로써 침잠은 그 자체로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게 되고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가장 좋은 길이 된다.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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