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성무일도ㅣ독서기도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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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0 ㅣ No.471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Caillau-Saint-Yves 2,92: PLS 2,441-442)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할 때마다 그것은 책벌도 되고 우리 잘못을 고쳐 주는 권고도 됩니다. 성서마저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약속하지 않고 복음서도 우리에게 다가올 환난과 압박과 유혹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역시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해 줍니다. 첫 사람이 죽음의 선고를 받고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신 그 저주를 받은 후부터 이 세상에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었습니까?

 

형제 여러분, 불평하지 맙시다.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하다가 살육의 천사의 손에 멸망을 당했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지금 우리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 중에 우리를 앞서간 선조들이 당하지 않은 무슨 특별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뿐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통 가운데서 선조들이 당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고통들과 비교되는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옛날이 훨씬 더 좋았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이 시대를 불평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조상들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때에도 똑같은 불평이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과거 시대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게 되었으며 성서의 말씀으로 교훈 받아 온 사람들이 아담의 시대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에겐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담이 받은 저주를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다음의 성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저주입니다.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이것이 바로 아담이 받은 몫이고 당한 고통이며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이 그에게 내린 책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가 우리 시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첫 사람 아담 때부터 그의 후손들인 현재 우리 시대까지 사람들이 받은 몫이란 수고와 땀, 가시덤불과 엉겅퀴였습니다. 노아 때의 홍수가 우리에게 언제 있었습니까? 하느님을 거슬러 불평할 근거가 되는 역사책에 기록된 옛 시대의 기근과 무서운 전쟁이 우리 시대에 있었단 말입니까?

 

역사 책에 기록되어 있는 옛 시대의 형편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옛 시대의 그런 이야기들을 듣거나 읽을 때 치를 떨지 않을 사람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우리 시대를 볼 때 우리에겐 불평할 것보다 감사 드릴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응송  시편 76(77),6-7a. 3a; 50(51),3

 

◎ 옛날을 회상하고, 지난 세월 되새기며, 밤이면 마음속 깊이 생각에 잠기면서, 내 영혼은 스스로 헤아리나이다. * 나는 말하나이다.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고뇌의 날, 주님을 내 찾사오니, 밤새도록 쳐들린 손 지칠 줄 모르나이다.

◎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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