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3: 성인처럼 온유의 덕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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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9 ㅣ No.1839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3. 성인처럼 온유의 덕을 살려면


“온유의 덕, 온유함 실천으로 배우고 쌓기를”

 

 

신심은 사랑의 행위이며, 이 사랑은 온유함으로 드러난다. 미국의 한 수녀가 노숙인에게 다가가 온유한 눈빛과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성인의 시대와 달리, 요즘 저희 세상은 짧고 빠른 문자 메시지에 익숙해서인지 아직은 편지글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로 독자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 번째 펜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 이곳은 여름 불볕더위로 마음의 습도도 높아지고, 저의 감정도 꿉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온유와 애덕의 박사님이신 성인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마음 관리를 하셨을까요? 지난 편지에서 성인의 성격은 본래 괴팍하셨다고 하셨지요. 그런데요.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하셨기에 주변 사람들은 성인께서 화를 내시거나 불친절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할까요?

 

게다가 성인을 이르길 온유함으로 옷을 입고 사시는 분이라고 했어요.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친절하셨다고요. 크고 작은 일에서나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늘 부드럽고 온화하게 사람들을 대하셨다고 했지요.

 

성인께서는 20여 년간 노력을 해오셨다고 했는데요. 저 역시 수도 생활 30년이 넘어가도록 수없이 성찰하고 결심하면서 노력했지만, 여전히 저는 화가 나면 저의 얼굴과 말투에 다 드러나서 부끄럽고 속상할 때가 있답니다. 저와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성인처럼 온유의 덕을 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벌써 성인의 다음 편지가 기다려집니다. 오늘도 미소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성인의 온유함을 닮고 싶은  김 수녀 드림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더운 날씨에 다들 고생이 많겠군요. 덥고 습하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예민해지지요. 그렇다고 작은 짜증이라도 내면 주변까지 소란스럽게 번져가겠지요. 마치 뱀이 작은 구멍에 머리만 들이밀면 온몸이 빠져나가듯 우리의 분노도 그렇지 않나요? 분노는 몸 안에서 뱀의 독만큼 강한 독성을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이럴 때 마음속 감정을 신속하게 안정시켰으면 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구체적인 방법이요? 글쎄요. 노여움을 온화함으로 이기라는 말이 있는데요. 한마디로 온유함으로 온유함을 배울 수 있어요. 방법이 너무 간단하다고요? 설마 마법의 공식을 묻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깐 순간 기억나는 친구가 있네요. 장 피에르 카뮈(Jean-Pierre Camus 작가, 주교)가 나에게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요. 그때 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지요. 그 친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더라고요. “내가 물은 것은 완전함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닌 방법을 묻고 있어요.”

 

그때 난 또 뭐라고 했을까요? 사랑만이 완전함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지요. 그는 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나도 알고 있어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느냐고요?” 나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고요.

 

그리고 난 카뮈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당신은 말을 어떻게 배웠습니까? 말을 하면서 배우지 않았나요? 달리기는요? 달리기하면서 배웠겠지요.”

 

김 수녀에게도 물을게요. 운전을 어떻게 배웠어요? 운전하면서 배우지 않았나요? 공부는요? 공부하면서 습득했겠지요. 온유함도 온유함으로 배웁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나에게 온유라는 덕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하는 결심이 있어요. “난 어떤 사람을 만나도 결코 그들이 무시당하거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게 할 것입니다. 나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오만하든 냉정하든 사납고 교묘하든 그 누구도 절대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비웃거나 빈정대는 마음을 가지지도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을 존중하며 잘 듣고 적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심으로 매일 기도해요. 아주 간절하게요. 신심은 사랑의 행위이며, 이 사랑은 온유함으로 드러나요. 수많은 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덕행이며 사랑의 꽃은 단연코 온유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 여러분! 온유함으로 온유함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다음 편지 기다릴게요.

 

예수님으로 사시길(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17일,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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