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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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1: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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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2 ㅣ No.1835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1. 연재를 시작하며


‘온유의 아이콘’ 살레시오 성인에게 삶의 길을 묻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이 세상 때문에 하늘을 잃지 마십시오.”(「신심 생활 입문」 중에서)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평신도들을 열성적으로 일깨운 목자. 온유의 성인이자, 애덕의 박사로 불린 주교. 올해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년) 성인 선종 400주년이다.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가난한 이를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는 이탈리아에서 교회법, 민법, 신학 등을 공부한 뒤 사제가 된다. 개신교 칼빈파가 융성하던 16~17세기 스위스 제네바의 주교로 임명돼 다양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교회 재건에 앞장서면서도 많은 이와 영적 친교로 주님 안에 하나가 됐던 평신도 영성 지도자였다. 평신도들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쓰며 주님 사랑을 전했던 성인을 다시 만나고자 한다.

 

살레시오 영성 안에 살며 「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어야 할까」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고, 현재 강연 활동과 함께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참 좋은 오늘, 은빛 수녀입니다’ 진행자로 영성의 가치를 전하는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수녀회) 수녀가 성인이 남긴 문헌과 기록을 토대로 가상 편지 등 여러 형식의 연재를 통해 성인과 소통을 시작한다.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흐르는 성인의 숨결과 말씀을 통해 나의 삶과 신앙을 반추해보자.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시공의 물결을 타고 400년 전 성인의 삶이 지금 여기, 함께 마주할 수 있어 설레고 떨립니다. 너무도 현실적이고 동시대인처럼 가까이 느껴졌던 성인과의 만남은 17년 전, 미국 버클리신학대학원(GTU)에 있는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영성 공부를 하면서였지요.

 

성인은 400여 년 전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학자였지만, 철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어렵게 표현하지 않으셨지요. 주변의 학자들에게 가볍고 여성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으시면서요. 예수님처럼 쉬운 언어로 비유와 이미지로 글을 쓰고 강연하면서 평신도와 수도자들 특히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셨지요. 성인께서는 세상과 가장 가까이 지낸 마음의 마술사, 온유함의 아이콘이셨습니다. 다정다감한 친구처럼 마냥 선량한 것 같지만 강인했고요. 인간의 욕망을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손을 내미는 당당함과 자신감도 느껴졌어요. 인간 본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포용력, 인간관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섬세하기까지 한 현실감각까지 지니셨음에 놀랍기만 했답니다. 게다가 디지털 세상 한가운데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성인의 메시지는 동시대인이라 착각할 만큼 혁신적이었고요.

 

성인의 삶과 영성의 길을 물으면서 우리 독자들과 함께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지상의 여정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첫 편지라 말이 많아진 거 같은데 그래도 질문은 해야겠지요? 제 가슴에 한가득 쌓인 질문이 많거든요. 주변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신심의 대가이신 성인께 이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저 사람은 신심은 깊은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을 보면 이기적이에요.”

 

“그런데 신심생활이 일상생활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나요?”

 

저 역시 성당에서 기도할 때는 순교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거룩한 열정이 불끈 찾아올 때가 있는데요. 그런데 분주한 현실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고 쉽게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곤 하거든요. 그러면 다음 편지를 기약하며 저와 우리 독자들의 일상에서 성인의 영성이 꽃처럼 피어나길 소망하며 굿바이 미소를 보냅니다.

 

온유의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많이 사랑하는 김 수녀 올림

 

 

사랑하는 김 수녀에게

 

반가워요. 편지는 나에게 고향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소통 매개이지요. 나 역시 기분 좋은 설렘과 떨림으로 펜을 들었네요. 우선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도 몇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만약 인도에 가서 순교하기를 바라면서 지금 해야 하는 일에는 소홀히 한다면 과연 신심 있는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다양한 기도문을 열심히 바쳐요. 그러고 나서는 불쾌하고 거만하게 모욕적인 말들을 내뱉기도 해요. 또 어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지갑을 열어 선뜻 가진 것을 내놓으면서도 이웃의 작은 결점을 참아내지 못하고 불친절하게 대해요. 이러한 사람들이 과연 신심을 사는 사람이라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꿀벌 이야기를 할까요? 꿀벌은 꿀을 마실 때 조금도 꽃을 상하게 하지 않아요. 참된 신심은 더욱 그러해요. 신심은 그 어떠한 자신의 직무나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손상시키지 않지요. 오히려 신심은 가정의 평화는 더욱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애정도 두터워지면서 즐거운 일상을 살게 해요. 그것이 참된 신심입니다. 분명한 것은요. 만약 신심으로 인하여 가정에 평화가 깨지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정이 식는다면 그것은 진짜 신심이 아니겠지요. 중요한 것은 사랑 자체가 신심은 아닙니다. 기도나 봉사활동도 신심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것도 자주 애덕의 행위로 드러날 때 그것을 참된 신심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렵다고요? 앞으로 이어지는 편지에서 더 재미있게 구체적으로 이야길 나누면서 함께 길을 찾아가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요. 바닷속에서 살면서 진주조개 속의 진주는 한 방울의 짠물도 삼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그리고 불 속을 날아다녀도 불나방의 날개가 타지 않고요. 그렇게 우린 지상의 온갖 욕망 속에서도 신심의 샘을 찾으면서 거룩하고 희망찬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믿고 싶네요.

 

다음 편지 기다리며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굿바이 사랑을 보냅니다.

 

예수님으로 사시길(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3일, 정리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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