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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사목상담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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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70

사목 상담이란 무엇인가?

 

 

「사목」에서는 이번 호부터 사목자들이 현장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 사목자들이 성공적인 상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 편집자 주.

 

 

실제로 우리 사목자들은 자신이 원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수많은 상담 상황에 놓인다. 다양한 사목 현장에서 사목자들은 전문적인 상담 공부와 기술을 체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영적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신자들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뿐 아니라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안정이나 영적인 성숙을 위한 지도까지도 요청한다. 

 

그러나 많은 사목자들은 이렇게 고통받고 상처 입은 신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 각각의 문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기에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함을 깨닫기도 한다. 또한 무엇인가 사목적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데 특별한 방법이 없을 경우 원칙론적인 조언이나 진부한 충고 등으로 신자들을 위로하고 지도하면서 내심은 매우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을 한번쯤은 경험한다. '분명 어떤 방법이 있을 텐데.' 하고 고민하지만 뚜렷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기 어려울 때 사목자들은 '치유하는 사목자'가 아닌 헨리 나웬의 표현처럼 '상처받은 사목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난에서는 전문적인 사목 상담자를 위한 구체적인 상담 기술이나 이론 등을 다루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상담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주어진 문제들을 이끌고 나가면 좋을지를 연구해 보고, 그러한 상담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 사목 상담이란 무엇인가?

 

모든 학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사목 상담(pastoral counseling)이란 용어에 대해서도 수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하우(Reuel Howe)와 같이 사목자가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적인 과정이라고 넓게 이해하는 부류와, 오글스비(W. B. Oglesby)와 같이 당면 문제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는 사목의 일부분으로 축약해서 이해하는 견해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사목 상담이란 전체적인 사목적 배려(pastoral care: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정의) 안에서 신자(내담자)들이 개인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특별히 구조화된 관계(structured relationship:사목 상담자와 내담자로 구별되는 관계)를 원할 때 이루어지는 사목의 한 형태로 이해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심리 치료와 영적 지도 사이에서의 사목 상담

 

그렇다면 사목 상담이 일반 상담이나 세속적인 심리 치료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동시에 사목 상담이 영적 지도나 종교적 영성 상담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목 상담은 일반 상담과 심리 치료, 그리고 영적 지도와 종교적 영성 상담의 사이에서 두 분야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상담이나 심리 치료는 세속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개인적인 정신, 심리, 정서, 행동의 치료를 통해 내적으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영적 지도나 영성 상담은 세속의 문제가 아닌 신앙체험과 기도 등을 다루고 개인이 영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다른 이 두 개의 방법론은 상호 보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톤(Carolyn Gratton)은 행동과 무의식적인 역동성에 관한 여타의 심리학적 연구로부터 습득된 상담 기법들이나 심리 치료 기술들은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이러한 심리학적 방법들은 한 특정한 인간이 어떻게 더 커다란 '전체'와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에 의해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1) 

 

또한 몇몇 심리학자들과 심리 치료사들도 단순한 심리 치료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 문제가 실제로 존재함을 깨닫고, 심리 치료에서 종교적 접근 가능성을 서서히 타진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제임스(W. James)는 정신 치유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내적 평온함과 도덕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행복을 체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2) 

 

올포트(G. W. Allport)는 종교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도 훨씬 더 미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이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적대적이고 불안증상을 호소하며 심각한 편견의식 등을 가지고 있음이 심리적 측정 도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고 말한다.3) 

 

결국 이러한 여러 심리학적 발견들은 종교적 성숙이 심리적 성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심리학과 신학의 실질적 만남을 통해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연구가 모색되고 있다.4)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시도가 쉽게 이루어지기에는 그 사이에 너무도 커다란 심연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심리학자들보다 신학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러한 상호 대화의 과정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심리학이나 심리 치료의 대화 과정에서 종교의 순수성이나 절대성에 대한 권위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보수주의적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들보다 신학자들 편에서 이러한 대화가 더 용이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스틴(David Eastin)은 "심리학자들이 신학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목자들이 심리학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쉽다."5)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을 스코필드(Schofield)와 스트렁크(Strunk)는 "사목자는 학문적으로 개방적이고 폭넓은 교육을 통해 양성되지만 심리학자들은 과학적인 방법론에 정향되고 집중적인 심리학적 임상교육을 통한 다소 한정된 주제 안에서 양성되기 때문"6)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상호 보완적 대화를 사목자들에게 기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의 심리 치료와 상담은 종교적인 접근에 대하여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목 상담은 일반 상담·심리 치료와 영적 지도 사이에서 서로의 기능을 공유한다. 그리하여 심리 치료를 통해 영적인 도움을 청하는 내담자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반대로 영적인 삶에 대한 갈망이 크지만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으로 방해를 받는 내담자에게는 상담과 심리 치료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있는 심리학과 신학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목 상담은 영성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를 통합시키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러한 중간 역할은 심리학자들보다는 사목자들에게 더 요청되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에 사목자들은 사목 상담에 대한 소명을 더 없이 중요한 사목적 배려의 일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3. 성공적인 사목 상담을 위한 첫걸음

 

성공적인 사목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연륜이 높은 사목자들의 사목 체험이다. 간혹 젊은 사목자들은 이들 선배 사목자들의 조언이나 가르침이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로는 성공적인 사목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갈 수 없다. 

 

이 말은 사목 상담자로서의 소양이 겸손하고 어른을 잘 섬기는 성품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상담이란 그 주체와 대상이 명확하게 파악될 수 없는 '인간' 그 자신이기에 인간을 이해하고 다루려면 삶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에서이다. 사목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다양한 사목 현장에서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 실제적인 체험을 통계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실제적인 체험'과 '통계적 체계화'라는 단어는 실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적인 체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내담자들의 상담 상황이 결코 똑같을 수 없고 그 내담자들의 인격과 성격, 행동과 기질, 그리고 사고의 습관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수많은 상담 경험을 가진 사목자들이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상담을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제적인 체험은 자연스럽게 '통계적 체계화'로 연결된다. 곧 수많은 상담 상황을 경험한 사목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체험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개념화하기 마련인데,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통계적인 구조로 체계화된다. 이런 이해의 체계화는 새로운 상담에서 사목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내담자와 그의 문제를 이해하고 바라볼 것이며, 어떻게 구체적으로 상담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중요한 도움을 제시한다. 따라서 연배 높고 경험이 많은 사목자들의 조언과 가르침을 경청하는 순간은 '축적된 경험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이러한 선배 사목자들의 축적된 경험들을 통해 후배 사목자들은 실제적인 사목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적인 사실은 학문적인 심리 치료 기법들과의 연계를 통해 더욱더 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며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4. 사목 상담자란 누구인가? 

 

이렇게 인생의 경험과 연륜을 중요시하는 것은 비단 사목 상담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상담자나 심리 치료사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일반 상담자나 심리 치료사들에게 연륜이란 자신들이 선호하고 사용하고 있는 치료 기법에 대한 임상 경험들에 국한되는 반면, 사목 상담자들에게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총체적인 삶의 경험들로 확장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목 상담자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 상담자나 심리 치료사들은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치유하는 '삶의 단편적 치료자이며 협력자'이다. 반면에 사목 상담자는 그러한 개별적이며 단편적인 치유를 전체적인 삶 안에서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해 주고,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전망해 주면서,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계획하고 설계하며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종합적 근원적인 치유자이며 설계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사목자가 지향하는 참된 사목 상담자의 모델이 다른 심리 치료사들이나 심리 상담자들이 추구하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현재 미국의 상담 치료 경향은 정신분석치료(psychoanalysis)와 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마음의 심층(무의식) 안에서 진단하여 근본부터 치료하려는 기법들이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치료 기간이 짧아 비용이 적게 드는 단기 치료(brief therapy)와 당면 문제만을 임시방편으로나마 치료해 주는 문제 해결 중심(focused on problem solving) 치료가 훨씬 더 인기가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대사회의 속성인 간편함과 신속성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인들은 상담과 심리 치료를 인간의 전인적인 성숙과 근원적인 치료에 목표를 두고 생각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신속한 문제 해결과 고통 해소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상담자나 심리 치료사를 일종의 치료 기술자나 문제 해결을 위한 도우미(helper) 정도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목 상담자는 단순한 문제 해결을 위한 도우미나 심리 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자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치료적 기능을 부차적으로 희망할 수는 있지만, 사목 상담자의 본질은 내담자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 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곧 일반 상담과 심리 치료사들이 내담자의 문제 해결과 심리·정신 치료를 통해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사목 상담자들은 그러한 현실적 문제 해결과 치료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재구성하며, 상담의 궁극적 목적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통한 성숙한 인간'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하느님만이 유일한 치유자이시며, 완전한 치유는 하느님 안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전제가 숨어있다. 이것은 일반 상담자나 심리 치료사와 사목 상담자 사이에 놓인 커다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상담과 심리 치료의 목적인 '기능하는 인간'이란 관점에서는 개인적인 치유나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사목 상담이 지향하는 '성숙한 인간'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치유와 행복은 개인 안에서만 논의되지 않고 교회와 사회 공동체 안에서도 함께 고려되는 전체적인 신학적 구원관 안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이러한 본질적 차이점들을 염두에 둔다면 사목자가 지향하는 사목 상담자의 이상향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사목 상담자는 상담의 기술적 능력이나 치료적 성과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웃(사회와 공동체)-자신'이라는 관계 구도 안에서 개인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를 통해 개인의 행복과 내적 치유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행복과 치유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된 존재 의미를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5. 사목 상담이나 심리학적 접근에 대한 사목자의 편견

 

개신교에서는 이미 사목 상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상담 영역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더디게 발전하고 있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육과 상담에 대한 교구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지만, 사목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흡하고 일부의 사목자들은 심리학이란 용어 자체에 커다란 거부감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해 선입관이나 편견이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과 편견은 사목 상담에서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심리학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오해 때문에 많은 사목자들은 심리학적 접근 방법과 상담 기법 등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할 수 있다. 곧 어떻게 특정한 몇몇 심리적 검사 방법만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 기법을 사용하는 상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담이란 구체적으로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인데, 그 만남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관계 변인을 일일이 이론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역시 불완전한 인간인 상담자가 어떤 문제를 하소연하는 내담자를 만나 아무리 뛰어난 심리학적 기술과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어떨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으며 실제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상담은 없다는 것이다. 곧 인간은 기계나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인과론적으로나 결정론적으로 일정한 자극에 예외 없이 일정한 반응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상담 심리학의 현 동향을 볼 때 상당히 염려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육체, 심리, 정서, 정신의 영역까지는 고려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과학적 심리학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 심리학이 인간의 사고 구조와 행동 양상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심리구조와 정서적 이상 현상들 사이의 역학 관계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 안에서 심리학은 임상적 경험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정서적 반응에 대한 실질적인 통계 자료를 가지고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증상들을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예측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하는 것이다. 판단은 도덕적 잣대의 표현이지만 진단은 치료를 위한 과정을 말한다. 또한 심리학은 인간을 위한 치료에 도움을 주고자 인과론적 논리나 통계적 산술 근거를 바탕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인간을 기계나 동물처럼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 과정에서 학문적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의사가 치료를 위해 환자의 몸 일부를 세부적으로 검진하는 것을 추행이나 범죄로 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심리 치료사가 치유를 위해 내담자의 성격이나 기질, 행동양식이나 사고체계 등을 여러 검사 양식을 통해 진단하는 것도 인간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라거나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돕기 위한 행위이기에 사목자는 사목 환경에서 심리학적인 도움을 충분히 수용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심리 치료나 상담 기법의 태동은 1900년대 초 프로이드가 처음으로 학문의 대상을 외부가 아닌 인간의 내면으로 돌리고 난 다음부터였지만 실제로 현대의 상담과 심리 치료 기법들은 1950년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기법들에 관심을 가지고 사목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현대의 사목자들은 심리학적 도움과 상담을 통한 사목활동에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관심을 가짐으로써 외적으로만 팽창해 가는 교회를 심리적 정서적 영적으로도 충만하고 건강하게 만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사목 상담의 정의와 사목 상담자의 역할 이해, 심리 치료와 영적 지도 사이에서 사목 상담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사목 상담에 대해서 사목자들에게 요청되는 자세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호부터는 구체적인 사목 상담의 주제들을 놓고 신자(내담자)들이 어떻게 하면 행동, 정서, 심리적인 치유를 통해 영적인 구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다. 언급한 대로 사목 상담은 심리 치료와 영적 지도의 사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존재론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영성 추구는 기초가 부족하고, 영성을 도외시한 현실적 치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전제에 따라 세속적인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신자들이 어떻게 세속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요구 사이에서 구원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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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olyn Gratton, The Art of Spritual Guidance-A Contemporary Approach to Growing in The Spirit, New York:The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2년, 11면. 

 

2) W. James,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New York:The Modern Library, 1920년, 120면.

 

3) G. W. Allport, The Individual and his Religion:A Psychological Interpretation, New York:Macmillan, 1950년, 59면. 

 

4) 종교적 성숙이 심리적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에 대해서는 J. F. Burke, "Mature Religious Behavior:A Psychological Perspective and its Implications", Journal of Religion and Health 17(1978년), 177-183면; G. C. Anderson, "Muturing Religion", Pastoral Psychology(1971년), 17-20면; J. D. Carter, "Healthy Personality", Baker Encyclopedia of Psychology, D. G. Benner 편, 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85년을 참조. 

 

5) David L. Eastin, The Tretment of Adult Female Incest Survivors by Psychological Forgiveness Process (Ph. D. diss.,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1984년, 21면. 

 

6) 위와 같음. 

 

[사목, 2003년 8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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