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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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님도 화를 내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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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609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87) 님도 화를 내시는데…

 

 

Q. 성당을 다니면서 늘 듣게 되는 말이 화내지 말라, 참으라, 신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주님 가르침이라면서요.

 

그래서 시비가 붙는 자리는 가능하면 피하고, 화가 나도 참으면서 살았는데 복음 묵상을 하다 보니 주님께서 화를 내시는 대목을 보고 혼란이 생깁니다. 성전 환전상들에게 화를 내시는 내용인데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분이 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셨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A. 형제님이 언급하신 성경 대목은 루카복음 19장 45-48절이지요. 주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시어 그들을 쫓아내시는 내용입니다. 간혹 교우 중에 형제님처럼 혼란을 느낀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화를 내지 말라고 하시곤 왜 당신은 화를 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신자 중에도 이 장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가질만한 의문입니다. 주님께서 분노하신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는 분노가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교우 중에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났는데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면서 화를 꾹꾹 눌러 참는 분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신자로서 화를 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인데, 문제는 외부자극으로 발생한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면 그 분노가 자신에게로 향해 신경증적 증상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갈등과 혼란을 겪어야 하고 마음이 얼어붙어 버리기조차 합니다.

 

심한 경우 신체적으로 경직되는 일도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 마음의 병을 치유하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사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성전에서 분노하신 것 역시 자기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몸으로 보여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불의한 일들은 거의 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야기됩니다. 특히 폭력적 지배성향이 강한 사람은 너무나 자명한 악을 선이라고 우기기까지 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진실을 호도합니다. 이는 명백히 사악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힘이 없는 사람은 이런 사람의 선동에 휘둘리면서 인간성을 잃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명령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살상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불의하고 사악한 권력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이때의 분노를 ‘정의로운 분노’ 또는 ‘거룩한 분노’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장사꾼들에 대해 분노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시키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배층에 대해 분노하신 것입니다. 즉 일반적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분노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을 해도 화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고 막아버리는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 것입니다. 상처를 들여다봐야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는데, 상처가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기 싫을 때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게 되고 본성적 감정을 억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습관 탓에 분노를 꾹꾹 눌러 참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 통찰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적 통찰’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기 이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의미 있는 순간(Meaningful Moment)을 갖게 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당사자는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자기 인생을 이해하게 되는 희열감을 느낍니다. 이것을 일컬어 정서적 통찰이라고 합니다. 이런 통찰의 기회를 잡은 사람은 그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거나 혹은 통곡을 하거나 하는 등의 격렬한 감정체험과 더불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후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분들은 이런 훈련 자체가 고역일 뿐 아니라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시간이 배로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인생의 맛을 즐기면서 사는 데 도움이 되니 마음 안의 저항을 물리치시고 자기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3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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