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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 죽음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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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4 ㅣ No.1196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 (1) 죽음에 관한 小考



1. 죽음에 대한 정의


죽음은 생명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한다. 모든 것과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죽음은 개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죽음은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는 자연적 현상으로 삶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단순한 과학적 사실, 생물학적 현상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신비적 상상이나 철학적 논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라면, 죽음에 대한 소모적인 상념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감히 죽음을 백안시하고 언제 닥친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죽음의 문제에 접근하기를 기피하고, 되도록 은폐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실이다.


2. 죽음에 대한 공포

어떤 이들은 죽음을 통해 평화로운 천상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어떤 이들은 죽음이란 생명의 근원인 자연에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믿고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망하거나, 죽음이 당장 도래할 것은 아니고, 또한 달리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여 애써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고 물리치려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미치면 불안과 두려움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죽음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관찰한 죽음의 겉모습과 죽음이 남기는 상실감이라는 결과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의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혹은 어떤 이의 예견된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간접적으로 혹은 마치 나의 죽음인 것처럼 절실하게 체험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으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불확실한 우리의 삶의 전개에서 죽음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확실한 것이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죽음을 체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일 뿐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며, 아무리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죽어가는 당사자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죽음에 대한 무지와 불가피성이 우리에게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3. 죽음의 불가피성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닥칠 것이 분명하며, 언제인가 나에게도 현실화될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참으로 나의 죽음은 확실한 것인가? 내가 죽는 순간부터 더 이상 나는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의 존재형태로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이 과연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경험한 타인의 죽음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깊은 영향을 끼침에는 틀림없다. 또한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릇된 죽음관은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 얼마나 집착하는가에 따라 죽음이 가져오는 절망과 상실감, 위협의 정도도 다를 것이다.

죽음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는 개별적 인간의 고유한 사건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나의 삶을 타인이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나의 죽음 또한 나의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의 삶과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이 나의 죽음이 아닌가. 이러한 죽음의 문제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죽음이 무엇인가 묻는 이는 죽음이 발생하는 순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죽은 후 인간은 어떻게 되는지, 죽은 자는 사후에 어떤 형태로 어디에 존재하며, 또한 어디에는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은 삶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죽음이 어느 시점에는 현실화되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죽어야만 한다는 확실한 사실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죽음에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희망은 있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우리의 물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생 전체에 걸쳐 이어진다. 우리가 어떤 것은 행하고, 어떤 것은 그만두며, 어떤 목표들을 가지며, 어떤 것을 귀중하다고 여기며, 어떤 것을 하찮다고 여기는지, 어떤 열정을 가지고 집중해 살아가는지 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죽음을 보는 관점에 따라 좌우된다.

죽음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죽음을 체험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디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관해 알게 되는가? 우리가 가까운 주변에서 체험한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미루어 우리 자신의 죽음을 추론하는 것인가?

서로 다른 다양한 모든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시간적 한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인간은 눈앞의 매순간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의 성과나 실패의 짐과도 씨름하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아직도 열려있는 비결정적인 미래가 펼쳐져 있다. 미래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확실성에 의해 한정된다.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항시 자신의 시간성에 대해 앎을 의미한다. 자신의 시간성을 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앎을 의미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강박관념의 형태로든, 죽음의 절박성을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무해화하기 위한 노력의 형태로든 죽음의 문제는 인간에게 항시 현존한다. 인간 존재는 죽음에 대한 인식의 지평에 던져져 살게 된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물음이 되고, 죽음은 죽음 안에 갇혀 있는 이 삶에게 묻는다. 죽음으로부터,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우주에 대한 모든 인식이 시작된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죽음에 임해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홀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며 홀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 각자가 홀로 부름 받는, 그리하여 결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의 절대 고독 속에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나 무의미에 대해 긍정이나 부정, 모든 것을 요약하는 전체로서의 자기 삶에 대한 종언을 고하고, 마지막 태도를 취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로 회귀하여 가능한 모든 사회적 환경과 자신 사이의 불변하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죽음에 관해 알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을 정복하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알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극복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가능한 한 계획할 수 있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가능한 한 뒤로 미루어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죽음의 극복 의도를 지향하는 경우 흔히 ‘부분적 생명의 진행과정’을 의학적으로 유지시킬 뿐인 생명 연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삶에 어떤 지상 목표를 정해 놓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뜻한 바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일은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일어나기도 하며, 정작 우리가 애타게 원하고 바라는 것은 영영 우리를 비켜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생명의 종말, 다시 말해 죽음은 비록 그 형태와 시간은 다를지 몰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오고야 만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으며, 생명이 없는 물질의 세계에는 죽음도 없다. 죽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는 세계에는 생명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평신도, 제43호(2014년 봄), 구인회(가톨릭대 생명윤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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