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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추진에 대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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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6 ㅣ No.985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추진’에 대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병원사망이 크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병원은 의학적으로 이미 사망했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적극적 치료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이런 일이 환자 자신이나 가족은 물론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가톨릭교회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런 문제해결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문제는 그 대상이 인간생명과 관련한 문제여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는 인간생명은 우리 인간 측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이미 2009년 7월에 ‘말기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골자로 하는 소위 ‘존엄사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는바, 특히 이번에는 이를 의료계의 의료수가 인상요구와 연계하여 서둘러 추진하려는 움직임마저 있어 더욱 우려가 되는 바입니다.

이에 한국가톨릭교회는 다시 한 번 정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문제를 생명윤리 차원에서 신중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문제해결에 임하기를 촉구하며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자칫 안락사를 의도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 말기환자 연명치료 중단의 ‘제도화’를 서두르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삶의 마지막 시기를 맞이한 환자가 어떠한 치료법을 동원해도 회생이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환자 자신은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 수단으로서의 기계적 처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안락사에 관한 선언」) 그러나 이러한 거부가 죽음을 의도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죽음을 의도하는 행위로서의 존엄사 시행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의 의사(意思)가 반영된 연명치료의 중단입니다. 그러나 연명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는 환자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간호는 중단되지 말아야 하며, 영양 공급이나 수분 공급 역시 당연히 베풀어져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처치행위입니다.


2.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에게 있어 참된 의미의 존엄한 죽음이란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면서 편안히 눈을 감는 것입니다.

죽음의 과정이 자연적이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죽음을 의도하는 치료의 중단은 당연히 말기 환자의 자연적 죽음을 방해하고,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므로, 이를 국가가 제도화 하거나 법제화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죽음의 문화 속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존엄하게 죽음을 마지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 완화를 위해 적절한 완화치료와 호스피스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3. 말기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제도화하기에 앞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생명교육입니다.

낙태와 자살, 그리고 각종 폭력살인 등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만연해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죽음의 문화’가 인간생명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성이 존중되는 ‘생명의 문화’로 바뀌지 않는 한 말기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생명을 경시하는 인식과 태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봅니다. 정부는 우선 제도권 교육과정을 통해 어려서부터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이를 보호하려는 심성을 키우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가 성숙하게 되면 말기환자를 정의하는 일이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일에 있어서 생명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까지는 말기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일률적으로 제도화하기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양심을 갖춘 의료인과 진정으로 환자의 선익을 도모할 수 있는 원목자, 생명윤리학자와 사회복지가 등이 중심이 되는 병원윤리위원회 등에서 개별적인 문제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2012년 11월 26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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