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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 초기인간 생명인 인간배아의 생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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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5 ㅣ No.1197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 (2) 초기인간 생명인 인간배아의 생명권



과학이 아무리 놀라운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아주 단순한 생명체 하나도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단계의 인간 배아를 소모품처럼 실험의 대상으로 하여 사용하거나 냉동된 배아를 폐기 처분하는 일들이 합법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연구실에서 사물처럼 사용하고 버리는 인간배아는 인간존재가 아닌가?

인간배아는 어떤 존재이며, 배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많은 것을 함의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발생된 배아는 성장발달 가능성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며,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완성된다. 인간배아는 인간과 다른 존재인가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에 대한 정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징을 나열하다 보면, 한 인간의 생물학적, 영적인 성장과 발달과정에서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인간의 몸에 영혼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언제인가도 주요 논점이 되고 있는데, 이 논의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있는 실체로 되어 있다는 실체 이원론의 수용에 기초한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언제부터 인간의 육신에 ‘영혼’이 존재하게 되는지 혹은 언제 생명을 불어넣는지와 같은 이슈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태 안에서 죽는 태아에게 영혼이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해 명백히 표명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태에 뒤이어 어떤 명시되지 않은 시점부터 영혼이 존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 생명은 난자와 정자의 수정과 더불어 시작된다. 인간 생명의 출발 시점에 이미 유전적 개체성이 결정되어 있으며, 한 인간 삶의 여정은 수정 직후부터 바로 시작된다. 정자와 난자는 수정 전에는 이것들이 유래된 두 사람에게 속하지만, 임신이 되면 어느 한 부모와 동일시할 수 없는 새로운 개체로 존재한다. 새로운 개별적 존재는 임신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는, 배반포 단계의 내부세포괴는 태아로 성장하지만, 둘러싸고 있는 영양막은 태반과 부속구조물이 되기에, 배반포 단계의 배아는 장차 태아가 되지 않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반포 단계의 영양막은 한 개체를 불완전하게 만들거나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개체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며, 배반포 단계에서는 오히려 영양막이 있어야 온전한 한 개체가 되고, 다음 단계인 태아로 성장하게 된다.

수정란은 눈으로 보았을 때 매우 단순해 보이는 한 무더기의 세포이지만 그것은 한 개체의 또 다른 모습이며, 마치 나비가 발생과정에서 알-애벌레-번데기 등의 여러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태적으로는 크게 다르지만 나비의 애벌레는 나비의 또 다른 모습이지 그 자체가 나비의 날개를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나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수용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새로운 중간 단계의 종을 정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수정란은 이미 한 개체를 형성하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생명체로서 지녀야 할 기본 특성을 이미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생명 현상을 수행하는 구체적 기관의 구조와 스케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인간 발달 과정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점진적인 발생의 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생명과 인간 생명 사이에 어떤 경계를 설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단계는 다음 단계를 위한 필연적인 상황이며 또한 다른 단계보다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이고 더 근본적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란 없다.

인간의 발달과정은 결코 선명한 경계선이 없는 연속적 과정이어서 어떤 경계선을 긋는 것은 임의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생명과 존엄성의 보호는 배아 발달의 시작과 더불어 고려되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인간이 수정과 동시에 삶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생존능력에 연관시켜 배아가 모체 내에 있는 경우에만 성장 발육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모체 밖에 있는 배아는 인간생명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같은 배아임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 있는 배아는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단순한 세포덩어리이고 모체 내에 있을 경우에만 인간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정의를 위치나 환경에 따라 달리 규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실적 여건상 착상되어 성장할 수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는 배아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타인의 선택에 따라 자궁에 이식 여부가 결정되고 그 결과 배아의 생명이 보호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오히려 모체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잔여배아가 모체에 이식된 배아에 비하여 보호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배아가 자궁에 착상되기 전 단계에서는 제대로 착상에 성공하여 성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아직 인간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착상이 생명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환경과 영양 공급을 위해 꼭 필요한 발생의 한 단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생명체의 발생 과정에 있어서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질 것을 가지고,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예컨대 태아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신생아는 아직 성인과 같은 신체능력과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아직 인간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배아는 자궁에 착상되어 영양을 공급받아야 성장 가능한 의존적 존재이지만, 원래 인간은 그 누구나 영양섭취와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살 수 없는 의존적 존재이다. 만일 신생아에게 젖을 주지 않으면서 신생아는 스스로 먹이를 마련할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아직 인간이 아니라고 하거나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나 인공급식을 받는 환자도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등 열등한 능력과 조건을 가진 인간에 대하여 인간임을 부정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사는 동안 상당한 발달 과정을 밟는다.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극히 미세한 기원에서 발생하여 단절 없이 연속성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발달하고, 성체로 되어 늙어서는 다시 활동능력을 잃게 되어 결국은 죽는다. 완성된 인간에로의 발달 도상에 있는 개별 존재의 발달단계에 따라 다양한 근본지위가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만일 수정 순간부터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코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출발 시점에 이미 유전적 개체성이 결정되어 있으며, 한 인간 삶의 모험은 수정 직후부터 바로 시작 된다.

교회는 수태의 결과가 비록 하나의 인간인지 아닌지 결론지을 수 없는 그러한 경우에도 감히 살인을 감행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죄임을 천명한다. 잡목 속에 움직이는 것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사냥꾼이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만일 배아가 인격체라면 그것은 생명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갖는다. 만일 인격체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것은 인격체에 이르는 통로일 것이다. 과거에 수정란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출발 순간부터 개체로서 인격을 갖는다는 주장은 어떤 중요한 질적 변화를 인정할 만큼 중요한 초기 발생의 단계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착상, 태동, 출생 같은 조짐들도 어떤 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단계들은 아니다.

무고한 인간생명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는 배아의 생명권과 연결된다. 그러한 생명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간주되는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 생명은 최고의 가치이며, 특별히 보호되어야 하는 신성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생명을 의도적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평신도, 제44호(2014년 여름), 구인회(가톨릭대 생명윤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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