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프란치스코 교황 저서 렛 어스 드림: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11 ㅣ No.1807

[특별기고] 프란치스코 교황 저서 「렛 어스 드림」-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다시 함께 꿈꾸자, 같이 잘 사는 세상을”

 

 

지난해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시 함께 꿈을 꾸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새 책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을 펴냈다.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사람이든 지구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이제는 좀, 같이 잘 살아 보자”는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홍 신부가 해설하는 교황의 날카로우면서도 뜨거운 열정이 담긴 메시지를 소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렛 어스 드림」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고 격리중인 상황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교황님은 루카복음 22장 31절을 인용합니다.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지금이 위기의 시간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위기는 일부 종교인들의 말처럼 종말을 의미하거나 하느님이 대노하셔서 내리시는 처벌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진 기회의 시간임을 강조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위기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기의 전후가 같을 수는 없다.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진다.” 즉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우선 격리로 모든 것이 멈춘 이 시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하십니다. 교황님은 당신이 겪은 세 번의 격리가 당신에게 큰 의미를 줬다고 합니다. 지금의 격리상태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란 것입니다.

 

자가격리 형태는 우리 교회에서 기도방법 중 하나로 간주합니다. 사제들은 연중 의무적으로 피정을 해야 하는데 이는 자가격리 형태와 같습니다. 이 시간 동안 사제들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합니다. 멈춤의 시간이 인류가 퇴보하는 시간이나 처벌 받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이란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의 사순시기와도 비슷합니다. 긴 고뇌의 끝은 부활입니다. 교황님은 지금 멈춰 있는 시간이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므로 가치를 회복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본래 의미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상황이 열악해지면 사회일각에서는 독버섯처럼 비관주의적 종말론을 예언하는 자들이 기세를 떨치기 시작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범람하는 이런 병적인 비관주의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할 것을 독려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유일한 소설 ‘히페리온’의 “위험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해결책도 있는 법”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위험이 있을 때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통이 범람할 때 창의력도 범람한다는 것이지요.

 

또 교황님은 인간을 잉여로 보는 위험한 관점을 지적합니다. 노동력이 떨어지는 노인과 환자, 태아를 잉여로 보고 존중하지 않는 몰상식한 태도가 인류를 서서히 멸망하게 하는 원인이라고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을 무렵 유럽 일부국가에서 집단감염론이 나온 것은 병에 걸려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정리하자는 개념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경제학자들 중 인구감소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을 근거로 한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임을 비판합니다.

 

더불어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본인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오로지 본인만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도 나무라십니다. 이들의 낙심과 비탄, 불평은 오로지 자기가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는 데서 나온 병적인 것이며, 나르시시즘이 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도 보지도 않아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개인의 권리 중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만 민감한 이들은 협량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주변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교황님은 무관심을 위험시하십니다. 무관심은 근시안적인 사고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라고~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태도는 마음의 눈이 닫히게 합니다.

 

지난해 3월 27일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와 축복식. CNS 자료사진.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가면을 벗습니다. 그리고 숨겨진 성격이 드러나죠. 교황님은 위기 시에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능적 회피를 해서는 안 된다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경우를 예로 꼽습니다. 다쳐서 아픈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을 돌보는 것은 내 일이 아니야’라며 외면하고 회피할 일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나서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진정한 의인들은 섬기는 소명을 거역하며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는 자가 아니라 소명을 다하며 짧게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의 순교자는 무관심이란 바이러스를 이겨 내는 항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 한 명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라고 하신 주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순교자의 영성은 형제애라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세계에 대해 함께 책임감을 갖는 것이 형제애라고 하십니다.

 

아울러 교황님은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고 싶다면 주변부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하느님께서도 피조물을 재건하려 하실 때 주변부로 가셨기에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곳은 죄와 고난, 배척과 고통, 질병과 외로움의 공간이었지만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는 말처럼, 주변부는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한 곳이며 그곳에 있어야 세상이 명확히 보인다고 하십니다.

 

가진 자들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개발을 하고 돈의 흐름과 시장의 흐름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작 불도저식 개발은 자연을 훼손하기만 했고 그로 인해 지구를 오염시켰으며, 돈의 흐름과 시장의 흐름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됐습니다. 개발을 할수록 불평등은 심화되고 없는 사람들은 더 고달픈 삶을 살게 됐는데,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보려면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진 자들은 더 벌기 위해 무차별적 개발에 혈안이 됐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터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교황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며, 이 땅의 주인공이자 공동의 창조자가 돼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이 땅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LET US DREAM!”을 외치십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라는데 그것이 맞는 말인가? 인간은 지구에 빌붙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럼 지구 입장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지구에 유익한 존재인가 아니면 해로운 존재인가?

 

지구가 볼 때 지구의 이마에서 핵실험을 하고 지구의 심장인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고 지구 위에서 자기들끼리 살육전을 펼치는 인간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긴 코로나19 사태는 지구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에 대한 답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우리 몸에 달라붙으려는 해충을 없애려고 하듯 지구도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을 교황님의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월 10일, 홍성남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1,49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