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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45: 인간의 본성과 커피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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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9 ㅣ No.650

[사유하는 커피] (45) 인간의 본성과 커피의 본성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모두 신에게서 왔다

 

 

부활한 예수님께서 본성(nature)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1000년이 지나도록 인간의 정신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본성과 관련이 있다. 본성은 사물이 처음부터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에게 본성은 그것을 빼면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무엇’이다.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곧 천성(天性)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영혼(soul)에 반영된다고 했다. 영혼 안에는 욕구와 격정, 이성이라는 속성(attribute)이 들어 있는데, 그는 이성이 격정과 욕구를 다스리기 어려움을 우려했다. 진실은 감각에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사유를 통해서만 이데아(본질)를 만날 수 있다고 봤다. 인간은 본래 이데아에서 왔으므로 본성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게 플라톤의 강변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을 선한 이데아에 비유한 포인트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봤을 때,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지식을 갈망한다. 그는 ‘추론적 사고능력과 지성’이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본성이라고 설파했다. 과연 학문을 닦아 지성을 키우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본성에 관한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관점은 예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았다.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인간의 원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문에 빠지면서, 신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죄가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아야만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代贖)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켜 준 역사적 사실이고, 부활과 승천은 ‘신의 본성’을 드러낸 섭리의 실현이다.

 

로마제국 몰락 시기인 5~6세기에는 플라톤을 계승한 그리스계 철학자들이 신앙을 이성과 동등한 수준에서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보고 신플라톤학파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는 지식인이 늘어났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시대에서 신앙은 이성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는 속성으로서 앞서 갔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차용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마침내 “만물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신의 속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신으로서의 예수,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담론은 이 연장선에 있다.

 

중세를 마감할 때쯤 교회보다 국가의 권력이 강화되자 본성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이성이 신앙을 누르고 부각됐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16세기 ‘본유관념(idea innate)’을 들고 나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넣어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러한 직관은 과학혁명과 인지혁명 시대를 거쳐 21세기까지도 진리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이 정신을 잇는 촘스키는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통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무엇’이 있음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만들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모두 신에게서 왔다. 아이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언어를 깨우치고 무한하게 문장을 생성할 줄 아는 것은 신의 본성을 이루는 한 속성이 부여된 덕분일 수 있다.

 

커피의 본성은 무엇일까? 망치의 본성이 못을 박는 데 있는 것처럼 커피도 쓰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커피는 우리를 사유로 이끌면서 묵상을 선물한다. 어쩌면 커피는 본디 인류를 절대자에게 안내하기 위해 내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4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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