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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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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73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사목

 

 

1. 마약과 같은 자살 신드롬

 

자살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자살 신드롬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자살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의 총 자살자 숫자는 13,055명으로 이는 지난 2001년의 12,227명보다 6.3% 증가한 것이고, 외환위기 직후 갑자기 자살자가 급증했던 1998년도의 12,458명보다도 늘어난 숫자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이 자살자보다 7~10배가 많은 점을 고려한다면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이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우리는 방송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카드 빚에 대한 경제적 중압감이나 생활고를 비관해서 자살한다. 이러한 사실은 자살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배경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이유 말고도 지병을 비관한 50대 남자의 자살, 수술 후유증을 앓아온 45세 남자의 자살, 성적을 비관한 두 명의 여고생 동반 투신자살 등 연일 다양한 이유로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이 세상에서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자살 분위기는 '자살 신드롬'이란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도미노 현상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해 200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소속 25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헝가리, 일본, 오스트리아, 핀란드에 이어 5위 안에 든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자살은 사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자살 현황과는 차이가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 유럽의 자살자들은 실존적 문제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 이유는 70% 이상이 생활고(生活苦)와 병고(病苦)에 따른 것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성은 청소년들의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2. 자살의 동기와 원인 

 

우리는 이미 자살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산물인 물질 만능주의가 실제적인 가난보다는 상대적인 가난을 조장해 왔고, 그러한 빈부격차의 스트레스는 '물질`=`행복'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삶의 희망을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삶의 실제적인 가난은 물론 상대적인 빈곤감은 삶의 의미를 빼앗아버리고, 더 큰 정신적 행복의 세계를 체험해 보지도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 외에 사람들은 애정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진로문제, 자존감 상실, 죄책감,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의 적개심과 복수심에 대한 표출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들은 치열한 입시교육 환경에서 성적 저하에 따른 스트레스와 가정의 불화나 이혼에 따른 정서적 불안정, 성교육 부재에 따른 이성문제, 학교나 학원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 등의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자살의 동기와 원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분명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을지 모르나 꼭 자살을 해야만 하는 논리적인 타당성이나 합리적인 이유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현실의 어려운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이웃도 자살한 사람들과 똑같은 사회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살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고 비관하기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조그마한 삶의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에서 만족과 감사를 느낄 줄 안다. 

 

따라서 우리는 자살의 원인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물론 자살을 최후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최후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반드시 삶의 희망은 삶의 이곳저곳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기 마련이다.

 

 

3. 인지치료를 통한 심리상담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담과 심리치료에는 역시 '인지치료'를 적용하는 것이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지난 호까지 우리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자들의 이해와 대처 방안을 인지치료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것은 우울증이 비합리적인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심리치료에서도 인지치료가 효과적인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비합리적인 사고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자살에 대한 비합리적인 사고는 궁극적으로 우울증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인지치료와 같은 방식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1) 

 

1) 자살 위험에 대한 평가와 동기 탐색

 

주지의 사실이지만 사목자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거나 시도했던 내담자와 상담을 할 경우, 먼저 그 내담자의 현재 심리와 감정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목자는 초기 면담에서 내담자의 속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라포르(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따뜻한 공감대 형성은 모든 상담의 가장 기초적인 배경이지만 특히 자살을 고려하는 내담자에게는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목자는 반드시 내담자가 왜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깊이 느끼고 그 내담자의 절망과 분노 등의 감정을 어느 정도 체험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해와 공감은 내담자에게 자신이 이해되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살 동기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미친 생각'이나 '바보 같은' 또는 '패배주의적 생각'으로 비쳐질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목자가 진정으로 내담자의 자살 동기나 의도가 그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이해해 줄 때, 이 내담자는 사목자와 함께 그 다음 단계인 왜곡된 가정이나 논리적 오류 또는 비합리적 신념에 대한 인지작업에 기꺼이 동참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기술적인 문제에서 사목자는 내담자가 자살에 대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살이라는 용어와 주제에 대해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내담자가 자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고 믿지만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상담자는 그 자살하려는 의도와 동기 등을 심각하게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내담자가 자살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모두 다 표현하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초기 면담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자살 소망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자살 시도가 있었다면 어떤 외적 환경과 내적 심리상태가 작용했는지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자살 소망이나 자살 시도는 다음과 같은 범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① 도피성:"나의 삶은 너무 부담스럽다.", "나는 이제 완전히 지쳤다.", "나는 살 가치가 없다.", "나는 이 상황에 맞서서 노력할 만큼 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② 도박성:대인관계의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실연이나 가정불화 등과 같이 정서적으로 중요한 상대에게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도박 삼아 죽음을 선택하는 극단적 처방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결백이나 집단의 이익과 주장을 위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③ 복합성:삶의 도피와 타인에 대한 조정이라는 두 목적이 공존하는 형태이다. 만일 타인에 대한 조정이라는 이유가 삶의 도피라는 이유보다 더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이유라면, 삶의 도피를 일차적 이유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덜 심각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대부분의 자살은 도피성이며 복합성의 경우가 그 다음으로 많고 단순한 도박성의 경우는 아주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목자는 내담자의 자살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절망감과 우울감 수치를 분석해 보는 것도 좋다. 일반적으로 절망감과 우울감 수치가 높을수록 도피성 자살이 많고 반대로 절망감과 우울감이 낮을수록 도박성 자살이 많다.

 

2) 치료의 초점 결정하기

 

내담자의 자살 동기가 자살을 통한 삶의 종식과 현실에 대한 도피로 파악된다면 내담자의 절망감과 희망의 부재가 치료의 초점이 될 것이다. 반면 내담자의 자살 이유가 사랑과 애정을 얻거나 또는 복수와 적대심을 표출하기 위해서라면(타인이나 환경의 조정) 사목자는 내담자의 부적응적이고 결함이 있는 의사소통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치료를 해야 한다. 이때 절망감 척도(Hopelessness Scale)를 이용하면 내담자의 현재 자살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빠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① 도피성 자살 동기

 

도피성 자살 동기를 가진 사람은 앞서 언급한 대로 절망과 우울지수가 높은 사람, 곧 우울증 환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우울증 치료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의 우울증 치료가 일반 우울증 환자의 치료와 다르게 접근되어야 하는 것은, 우울증의 다른 내부 원인들(곧 세라토닌의 비정상 분비나 비합리적 신념 등)에 대한 치료와 더불어 자살 동기를 직접 유발한 외부환경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내담자의 절망감을 유발한 외부 자극인 극단적인 가난이나 질병 또는 사회나 가정에서의 소외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도박성 자살 동기

 

타인과 환경에 대한 영향력 행사나 조정을 목적으로 한 자살 의도가 포착되면 사목자는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방식으로 상담을 이끌어갈 수 있다. 

 

이 경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절망감과 우울감 수치가 도피성 자살 내담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 부분에서 다룬 합리적 인지요법을 통해 내담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 신념을 극복해 내도록 유도할 수 있다. 

 

③ 복합성 자살 동기 

 

이 경우에는 도피성과 도박성 가운데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 자살 이유가 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일차적 자살 이유에 대한 치료를 중심으로 치료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간다.

 

3) 상담 사례2)

 

사목자 : 당신은 왜 죽으려고 합니까?

내담자 : 7년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삶의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 사람 없이 저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혼인까지 약속한 사람인데`……. 

 

해설:"저는 삶을 견딜 수 없어요.", "이 삶에서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요. 세상에 저처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요?", "나는 가족들에게 짐 같은 존재에요. 내가 없어져야 가족이 더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내담자가 위와 같이 푸념 섞인 말을 한다면 대부분 치명적인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자살은 유일한 해결책이며, 더 이상의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움은 자살보다는 덜 극단적이고 덜 절망적인 해결책이 반드시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때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 직시하고 그것이 정말 그러한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고정된 신념과 모순된 논리에 대해 사목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정해 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살 시도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추호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목자 : 그 남자친구가 당신의 삶의 의미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내담자 : 예. 저의 전부를 바쳐 사랑했어요. 그 사람 없이는 이제 도무지 살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사목자 : 당신의 헌신적이고 깊은 사랑이 당신 삶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든지 삶의 본질적 부분이 왜 꼭 사랑에 의해서만 달성된다고 보십니까? 

 

해설:내담자의 자살 결심은 자의적인 결론에 따른 것이라는 전제 아래, 사목자는 내담자 스스로 그 결론이 합리적인 것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신념에 의문을 품는 일은 거의 없다. 처음에는 사목자가 계속해서 그 자살 결론의 비타당성에 대해 유도적인 질문을 던지더라도 내담자는 자신의 신념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목자는 계속적으로 내담자가 고정된 신념과 관련된 증거를 숙고해 보도록 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신의 신념과 그를 지지하는 증거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을 반복해서 숙고하다 보면, 내담자는 자신의 논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것을 '인지적 부조화 기법'이라 부른다.

 

내담자 :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부이지요.

사목자 : 그래요. 사랑이 인생에 중요한 일부이지만 반드시 그 사랑만으로 인생의 모든 의미나 가치가 결정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담자 : …….

사목자 : 그러면 당신은 왜 헤어진 남자친구가 당신의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담자 : 그 사람만을 사랑했고, 그 사람 없이 제 삶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 사람 없는 삶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 사람이 제 곁에 없다면 전 아무 가치도 없는 인간이에요.

사목자 : 그 남자친구 없이는 당신이 가치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내담자 : 남들이 생각할 때는 틀리다고 하겠죠. 하지만 전 그를 믿었고 제 삶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그가 만일 저를 버린다면 제가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고, 따라서 제가 믿고 따른 사람에게 버려진 내 삶도 역시 헛된 것이지요. 

 

해설:이러한 절망감을 시사하는 내담자는 정말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 있다고 봐야 한다. 당장 사목자는 이 절망감에 대해 개입을 해야 한다. 절망감 지수가 높은 사람이 지금 사목자를 찾아왔다면 분명 오늘 내일 자살을 결심한 상황일 수 있고, 현재의 사목자를 마지막 도움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따라서 사목자와 면담을 한 뒤라도 언제 어느 때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니 심각한 자살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로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친구나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사목자의 계속적인 관심 표명은 자살의 순간에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즉각 중지할 수 있는 상당한 힘을 지닌다. 이런 면에서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들은 자살 순간에 그냥이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라도 한 통 해달라는 당부를 반드시 한다. 이러한 부탁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은 본능을 자극하여 전화를 하게 만들며,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대부분의 경우 자살충동을 억제하는 힘을 발휘한다.

 

사목자 : 그렇다면 그 남자친구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 삶도 역시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삶이었습니까?

내담자 : 그때는 그를 만나기 전이므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겠죠.

사목자 : 그렇다면 당신의 남자친구가 없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당신의 모든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 남자친구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는 뜻인가요?

내담자 :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사목자 : 그렇다면 남자친구를 만나기 이전의 삶을 한번 회상해 보십시오. 당시에도 남자친구 없이는 당신의 삶이 정말 가치 없는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내담자 : 그때는 남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죠.

사목자 : 그때에는 남자친구가 없었는데도 어떤 삶의 즐거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행복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가치 없다고 느끼지도 않았을 거고요.

내담자 : 그랬습니다. 나름대로 삶의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죠. 부모님과 가족들과 즐거운 여행을 했을 때도 있었고, 친구들과 연극을 관람하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 같아요. 

사목자 : 그 말씀은 남자친구를 알기 이전에는 삶이 그렇게 의미 없다든지 아니면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이었다든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았다는 뜻이겠네요. 

내담자 : 그렇죠.

사목자 : 남자친구를 알기 전에도 당신이 뭔가 삶의 기쁨을 느끼고 가치로운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왜 그가 반드시 있어야만 삶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까?

내담자 : 흠……. (잠시 말없이 생각함.)

 

4) 사례 분석과 구체적 치료 모색

 

위의 상담 대화가 있기 이전에 사목자는 일단 자살을 하더라도 본인의 자살 동기가 만일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리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싶지 않느냐고 내담자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사목자와 함께 이러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자살을 연기하도록 동기 부여를 이루어냈다. 이것은 "모든 자살자는 정말 죽고 싶어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살심리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많은 자살 소망자는 정말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지 아닌지를 오랜 기간 동안 혼란스럽게 생각하며 방황한다. 사목자를 찾아왔다는 자체가 바로 이러한 경계선상에 서있는 자살자가, 자신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살펴달라는 절실한 요청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살의 결심은 '내담자의 살고자 하는 소망과 죽고자 하는 소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의 결과'로 인식할 수 있다.

 

사목자와 상담을 계속하게끔 동기 부여를 한 다음에 이루어진 대화를 통해 내담자는 서서히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3) 사목자는 이런 과정에서 살고 싶은 이유와 죽고 싶은 이유를 차근차근 말해보도록 유도했다. 이때 사목자는 칠판에 두 이유를 모두 적어놓는다. 처음에 내담자는 죽고 싶은 이유에 관해서는 쉽게 말을 했지만,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사목자가 남자친구를 만나기 이전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 긍정적인 면을 회상하도록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를 생각해 내게 되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사목자가 내담자에게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면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들면 내담자는 반감을 느끼게 되며 상담이 초기에 결렬될 수 있다. 사목자는 일단 내담자의 자살 결심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그 결정이 옳다고 확신을 하지만, 내담자의 삶에서 오는 긍정적인 요소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제시성 발언으로 내담자를 이끌어야 한다. 마치 재미를 위한 단순한 놀이를 하듯 내담자가 자신의 긍정적 삶의 부분들과 가치 있는 삶의 경험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는 시간을 부담 없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 후에 사목자는 과거 행복했던 시절에 사는 게 좋았던 이유를 적은 목록을 다시 잘 정리한다. 그리고 과거에 사는 게 좋았던 이유들 중 현재에도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는 앞으로 다시 생겨날 수도 있을 법한 살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또 무엇이 있는지 내담자에게 추려보라고 한다. 이때 사목자는 내담자가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발견한 것,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린 것, 또는 어떤 특정한 살고 싶은 이유를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살펴본다.

 

이제 사목자와 내담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또는 살아야 하는 이유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해본다. 이때 내담자는 우선 삶으로써 생겨나는 이득을 공책 왼쪽 면에 쓰고 죽음으로써 생겨나는 이득에 대해 공책 오른쪽 면에 열거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대부분 비합리적인 논리와 부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내담자는 서서히 자신의 생각에 대해 객관성을 증가시키게 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과거만큼 그리 절실하고 절대적이며 긴급한 이유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내담자에게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작업임을 사목자는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과정 중에서 어떤 자살 이유를 사소하게 생각한다든지 비합리적인 것으로 그냥 치부해 버리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담자는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어왔지만 이제는 또다시 삶을 결심하기까지 또 한 번 인고의 시간을 겪어내야 하는 것임을 사목자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 내담자의 치료의 초점은 다음과 같은 내담자의 신념을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첫째, 그 남자친구가 있어야만 인생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 둘째, 그 남자친구가 떠나는 것은 내가 가치 없는 인간이란 증거이다. 셋째,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깨지는 것은 끔찍한 재난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다. 넷째, 그 남자친구가 없는 미래의 삶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 내담자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집착되어 있던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담자는 몇 회기에 걸친 상담을 통해 이러한 자신의 신념과 오류적 사고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정의 문제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인식은 되었는데 감정이 아물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상태만으로도 인지치료는 성공한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도피성 자살들은 정서적인 아픔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 사고의 이성적인 작용이 반복되면서 단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비합리적인 이성에 제동이 걸리고 나면 치유되지 않은 감정만으로는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할 염려가 줄어들기에, 자살 방지를 위한 인지치료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상처입은 감정에 대한 극복은 전례와 성사를 통한 사목적 배려와 신앙 공동체의 따뜻한 도움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목적 도움과 배려에 대해서는 사목자가 나름대로의 계획과 구상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면 될 것이다. 

 

5) 사례 적용

 

위의 내용은 도피성 자살 동기 내담자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도박성과 복합성 자살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한 자살 동기가 위와 같은 실연의 문제가 아닌 실제적인 돈 문제(예:카드 빚, 파산, 고리대금의 압박, 경제적 후견인의 상실 등)에 있다면 그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석하지 않게 하는 인지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인 지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사목자는 실제적인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신앙 공동체적 지원을 해야 하고, 그러한 지원들이 자살의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들에게 고루 지원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사목적 배려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해 수없이 논의해 왔고 강조해 왔다. 중요한 것은 실천에 있다. 먼저 사목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가정과 개인을 찾아나서야 하고, 그들을 위해 실질적인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지원'에 대한 홍보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적인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작은 일이라도 실천에 옮기려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4. 새로운 N세대들의 자살에 대한 고려

 

현대의 사목자는 네트워크(Network) 세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드러나는 자살에 대한 역동성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이렇게 빠른 정보의 확산과 무차별한 정보의 노출 속에서 자살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경우 자살에 대한 예방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위험 인자들에 초점을 맞추거나 확대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인터넷 자체가 유발하는 자살 위험 요인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통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많은 수가 부모의 이혼이나 부재 등과 같이 가정의 지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일차적으로 인터넷 접속을 통해 그 안에서 어떤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특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도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인격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메시지만으로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인터넷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참 인격적 모습 안에서 나오는 일차적 메시지를 은폐하면서, 인터넷의 편리성과 익명성 안에서 오로지 표면에 드러난 이차적 메시지만으로 교류하게 되었다. 이러한 메시지 중심의 온라인 인간관계는 자살 사이트를 찾았던 개인의 목적이 실제로 자살이 아니라 공감대 형성 또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있었다 하더라도 행동은 아주 쉽게 자살로 이어진다. 

 

곧 짧은 시간 안에 서로 빠른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이용자들이 그만큼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어떤 일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심리학적으로 자살의 생각과 같은 극단적이며 충격적인 감정은, 곧바로 더욱 강도 높은 다른 감정으로의 전이를 빠르게 촉진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살 충동과 같은 극단적인 감정을 매개체로 한 온라인 집단은 갑작스럽게 통제되지 않은 공격적 역동성으로 구성원들의 감정을 몰아갈 위험이 아주 높은 것이다. 예를 들면, 자살을 막기 위한 안티 자살 사이트가 오히려 그 의도와는 반대로,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살을 결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렇듯 온라인 커뮤니티는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지지를 얻지 못한 개인이 자신의 특별한 노력 없이 따뜻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이 수용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감정이 개인의 인격이 배제된 상태에서 단순한 메시지 전달의 형태로만 다루어지게 된다면 오히려 극단적이며 부정적인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의 사목자는 새로운 자살에 대한 이러한 패러다임의 역동성을 인지하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내담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인지적 치료와 함께 실제적인 종교적 사회적 지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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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자살자의 80%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자살은 우울증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살자들이 대부분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은 그들 대부분의 뇌 척수액 안에 우울증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세라토닌(감정 조절, 불안, 충동성, 폭력성, 우울증세 등과 연결된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영국 킹스 칼리지의 Terrie E. Moffitt 박사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세라토닌 분비를 조절하는 5-HTT 유전자를 발견하였다고 Science지에 발표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세라토닌 분비를 조절하는 5-HTT 유전자는 짧은 것과 긴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짧은 것 둘을 가지거나 짧은 것과 긴 것, 또는 긴 것 둘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중 짧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긴 것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특히 자살을 생각하거나 기도할 가능성은 짧은 유전자를 하나 이상 가진 경우가 긴 유전자 둘만을 가진 경우보다 3배 이상 높다고 연구팀들은 밝히고 있다. 곧 짧은 5-HTT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하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Avshalom Caspi Karen Sugden Terrie E. Moffitt Alan Taylor lan W. Craig HonaLee Harrington Joseph McClay Jonathan Mill Judy Martin Antony Braithwaite Richie Poulton, "Influence of Life Stress on Depression:Moderation by a Polymorphism in the 5-HTT Gene", Science 301호(2003. 7. 18.), 386-389면.

 

2) 다음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강한 상실감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의 상담 사례이다. 상담의 치료적 기법을 위한 예이니만큼 지면상 내용을 많이 축약했고 말의 표현도 간략하고 사무적인 표현으로 수정했다. 개인의 사적 상담 기록은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반적인 내용 유형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만 발췌했기 때문에 내담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음을 밝힌다.

 

3) 이 내담자가 다시 정상의 상태로 돌아온 뒤 회고에서, "남자친구가 있기 이전에도 삶의 재미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던 삶은 존재했는데, 지금은 왜 꼭 남자친구가 있어야만 삶의 의미와 자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하는가?"라는 사목자의 질문을 접한 뒤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과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사고의 흐름이겠지만 자살자들에게는 스스로 해보기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자살자에게는 반드시 이렇게 논리적으로 자살의 동기와 이유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목, 2003년 11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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