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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 가톨릭 건축 미술 발전을 위한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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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12 ㅣ No.93

[경향 돋보기] 한국 가톨릭 건축 · 미술 발전을 위한 간담회

 

 

주교회의 문화위원회에서는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 발간에 즈음한 2009년 12월 9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한국 가톨릭 건축 · 미술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한국 가톨릭 건축과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기헌 주교(문화위원회 위원장), 장익 주교(춘천교구장)를 비롯하여 각 분야 전문가로 김겸순 수녀(노틀담 수녀회, 회화 · 유리화), 김정신 교수(단국대학교 건축대학장), 김형주 화백(회화), 이규단 수사(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목공예), 최종태 교수(조각가)가 참여하였으며, 여진천 신부(문화위원회 총무)가 진행을 맡았다. - 정리 / 편집부

 

 

이기헌 - 교황청에서 각 나라마다 교회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하였고, 그런 과제에 부응하고자 이번에 한국 주교회의 문화위원회에서는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을 발간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모임이 이루어진 데 장익 주교님이 애써주셨습니다. 미술에 각별히 조예가 깊으신 주교님께서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당 건축에 적절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늘 지적해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건축과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셨습니다. 교회 건축과 미술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경험 그리고 전문성을 가진 여러분과 함께 한국교회 건축과 미술 발전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익 - 언제고 한 번 우리 교회에서 요식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건축과 미술에 투신해 오신 분들과 솔직하고 요긴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재고하고, 많은 분이 같은 의식을 공유하고 노력해 나가면 더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오랜 세월 여러 곳에서 실제로 많이 애쓰신 분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한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진천 - 교회 건축과 미술 전문가로서 일해오시면서 겪으신 어려움들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정신 - 네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에 따라 우리 교회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겠고요, 두 번째는 앞으로 지어질 건축물들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고 한국 문화에 토착화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설계가 선정과 설계 과정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소통의 문제가 중요한데, 클라이언트에 해당하는 신부님과 신자와 건축 설계가의 소통 문제가 있고, 설계가와 교회 미술가의 소통 문제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문화유산 관리 지침을 각 본당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거나 전무하며, 이를 실행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내 건축, 건축 유산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문제가 이와 관련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들이 교회 건축 미술 분야에 대한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신학교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이규단 - 저는 수도원에서 미술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어림잡아 일 년이면 50군데 성당을 다니게 되는데, 실제로 계약하고 일하는 건수는 20-30군데 됩니다. 많은 경우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건축주, 설계사, 시공자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설계가 있어도 시공자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 시공은 잘 되도 건축주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신부님들이 성당을 지으시면서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교에서 기초교육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성당 미술품의 경우는 보통 예산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는데, 처음 계획 때부터 포함시켜서 좋은 성물을 두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김형주 - 미술가로서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간헐적으로 도우면서 다녔습니다. 어디서든지 요청하면 순명하는 마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전교구에 한 10년을 함께 작업한 신부님이 계시는데, 그 신부님도 처음에는 미술가들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셨습니다. 그런데 같이 해보시더니 ‘성미술이 이런 거구나!’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성미술 분야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한테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성당을 지으면서 총체적으로 구상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지방은 더 그렇습니다. 그런 곳에서 돌 색깔부터 종탑 위 십자가까지 다 맞추고 나면 인식이 많이 달라집니다. 신자들도 만족하고, 새로 성당을 짓는 곳에서도 구경을 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큰 것 같아요.

 

가끔 두세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예산이나 이런 문제들이 시골 본당은 많이 열악합니다. 미술가들을 초대하려고 해도 작품비가 넉넉하지 않아 좋은 분들을 초대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뛰어다니면서 색상이라도 맞추는 작업을 하는데, 그 중요성이 알려지면 훌륭한 분들을 초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지방을 다녀보면 지방 미술가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방 성당에서도 서울 작가들에게 요청을 하는데, 저는 지방분들과 해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 경험을 통해 느는 것인데, 작은 것을 하더라도 그곳 미술가들을 초대하면, 총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일을 하면서 보니 건축과 미술이 만나기 때문에 미술가들도 건축에 대한 안목을 길러야 하고,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페인트 색 하나라도 미술에서 쓰는 것과 건축과는 다르니까요.

 

최종태 - 50년 전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1959년에 혜화동성당이 지어졌습니다. 장발 선생님이 직접 제의를 하시고, 처음으로 우리 자본, 우리나라 설계가가 지은 첫 성당이지요. 지금이 2009년이니까 꼭 만 50년이 되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 성당 미술을 점검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65년에는 혜화동성당을 지으신 이희태 선생께서 절두산성당을 지으셨습니다. 이후 절두산성당만 한 성당이 지어졌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 당시에는 돈도 없고, 여러 가지 형편이 나빴을 텐데, 그때 지은 성당이 어떻게 지금까지도 좋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9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신자수가 증가하고, 그때부터 성당 건축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들어와서 굉장히 많은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1년에 수십 개가 들어섰습니다. 그때 미술가들에게는 이렇게 많이 지어지는 성당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당면한 문제였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성당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굉장히 긴장을 했습니다. 신부님들과 사목회, 일반신자들이 우리가 만드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다 만들어놓은 작품도 올려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1960-70년대 교회와 미술가들의 관계였습니다.

 

지금은 성당이 생기면, 미술가들이 성모상을 만들고 십자가를 만들고 합니다. 이것이 근년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요즘 성당에서는 과거처럼 성물제작소에서 만든 감실이나 십자가상을 걸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가 1959년부터 성당을 짓기 시작하고 50년이 되는 시기 동안 발전이라면 발전이 아닐까 합니다. 1980년 강남에 성모병원을 개원하면서 각방에 걸 십자가 디자인을 의뢰받았는데,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가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미술가에 의뢰하는 절차와 어떻게 의뢰를 해야 하느냐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습니다. 청부를 맡으려는 사람들이 있고, 미술가들이 나한테 맡겨달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또한 성당 짓는 업자들도 서로 공사를 맡으려고 교회에 파고들고 있는데, 교회 편에서는 이것을 얼마나 단속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신자들의 돈을 쓰는데 사람 쓰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김겸순 - 제가 그동안 성당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 드리면, 먼저첫 단추를 끼우는 일부터 소홀하지 않은가 합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왜 이곳에 성당을 짓고, 어떤 의미, 어떤 필요가 있는지 신자들과 건축주 입장에서 준비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둘째로 적합한 설계가를 선정하고, 그 설계와 조화를 이룰 예술가를 선정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두 가지가 됐으면 셋째는 잘 완성되기 위해 건축주, 설계가, 예술가들이 설계 전에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저 역시 부족해서 애썼던 부분인데, 대부분 미술가들이 설계도면을 볼 줄 모릅니다. 이것은 예술가들이 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건축가들도 예술가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절실합니다. 저는 유리화를 제작하고자 갔는데, 막상 성당에 가보면 마감재, 빛 들어오는 상태, 창문 크기 등 걸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건축가가 아니니 그것부터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건축가, 예술가, 건축주를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끌 사람이 한국 교회 건축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주교회의에서 전체 한국 교회 건축에 지침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지침서라도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익 - 매주 교회 신문에 나는 성전 봉헌식 기사를 보면 1년에 한 50군데 정도의 성당이 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이렇게 성당을 많이 짓는 나라는 드물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 주체들은 평생 처음이자 한 번 짓는 것입니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 성당을 마련합니다. 그러니 발언권도 커야 한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본당 건축위원회를 만드는데, 건축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이것이 우리 본당이니 우리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규단 수사님이 목공소에 계시면서 관여한 본당이 어림잡아 300군데 정도가 될 텐데, 이런 분들은 처음 하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안목과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박해 이후 한국에 성물이 처음 들어온 것이 19세기 이후인데, 당시 유럽은 미술사상 가장 불모지였던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교가 형상화된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 그게 정형화되어 으레 성당과 성물은 그러하겠거니 하고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일제 해방 시기 문화적 대혼란을 거치면서 그리스도 신심을 어떤 형상으로 표출해야 하나 모색하기 어려운 때를 지내온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 자신에게 교회 공간이나 성물들이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 감성에 와닿는 것이 엄청나게 큽니다. 교리시간 몇 십 시간보다 오히려 영향이 더 큽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희박한 편입니다. 서툰 음악을 들으면 귀가 아픈데, 교회 미술에 대해서는 잘된 거다 못 된 거다 하는 감각이 없습니다. 구분할 수 있는 눈이 형성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일반 건축물도 마찬가지고, 조형미술 등 상당히 혼미한 시대입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 대단히 좋은 분들이 많고, 주변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알아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편견이 있습니다. 미술가라고 하면 고집이 세고, 주장이 세고, 까다롭고 비싸다 하는 편견입니다. 이런 편견 때문에 붕어빵같이 똑같이 찍은 것만 잔뜩 갖다놓고 이윤을 얼마나 남기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작품이 어디 있는지, 누구 작품인지 등에 대해 기록이 없습니다. 교회 내 건축, 작품에 대해 기록을 찾아보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외국은 너무 많아서 걱정이고, 우리나라는 반대로 기록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리고 건축가, 미술가, 건축주가 구상 단계에서부터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어떤 공동체인데, 이 지역에 어떤 소요가 있고, 어떤 성격의 공간이 필요한지 등 초안을 만들기 전부터 오랫동안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지어진 춘천교구 스무숲성당이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주임신부님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각 단계마다 신자들과 매주 모여 하나하나 회의를 했습니다.

 

아마 그 정도로 매주 신자들과 모여 성당을 지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지, 지역 환경에 부합하는지 등 하나하나 고민하고 결정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통일성 있게 모양, 꼴, 뜻, 기능, 아름다움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몇 평이고, 평당 얼마가 들었느냐가 아니라 많은 고민을 본당 공동체가 함께 성실하게 한 것이 돋보입니다. 얼마나 비싼가가 아니라 두고두고 남을 만한 내적으로 갖추어진 성당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이기헌 - 이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목자로서 성당 하나를 지어봤고, 군인성당은 일반성당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성당 건축을 한다는 차원에서 똑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겠고, 그런 차원에서 성당을 짓는 신부님이나 공동체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도 지침, 안내서가 꼭 필요할 것이고요.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셨는데, 논산 연무대성당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이것만큼은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잘 지어야겠다 하고서 성당을 지었습니다. 2,800석으로 좌석 수로는 아마 한국에서 가장 큰 성당이지 싶습니다. 성당을 짓기 전에 훈련병들에게 설문조사도 하였습니다. 훈련 다 받고 편안한 병사들은 현대식을 좋아하고, 훈련병들은 고딕식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예이지만 이런 것들이 첫 단추, 소통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나 합니다.

 

또 모든 교회 문화유산이 기록이 남겨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성당 건축 지침, 안내서가 필요하겠고, 교회 건축물 예술품 기록이 꼭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김정신 - 조금 더 실제적으로 들어가보면, 어느 교구든 형식적이나마 건축 지침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상설계도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현상설계라는 것이 너무나 형식적입니다. 솔직히 역량 있는 건축가들은 성당 현상설계를 기피하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어느 교구 한 성당에서 현상설계가 있었습니다. 현상설계 과정을 굉장히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신자들 여론 수렴도 하고, 절차를 잘 갖추었습니다. 오히려 교회 밖보다 더 꼼꼼히 했습니다. 선정된 업체마다 성당 건축위원회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투시도를 본당 홈페이지에 올려 신자들이 인터넷으로 투표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주일에는 도면을 두고 전 신자가 투표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신자들의 인기투표로 선정을 하느냐 했더니, 의견 수렴의 과정이지 그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주변의 전문 교수들과 따로 점수를 매겨보았는데, 공교롭게도 신자들의 인터넷 투표와는 완전히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본당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런 형식적인 것에 정작 중요한 것이 묻혀버립니다. 제 주변에서도 교회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현상설계에 참여하는데, 한두 번 참여하고 나면 절망해서 심사 과정과 결과에 의구심을 많이 갖습니다.

 

교구의 건축 지침이 있고, 설계가 선정을 객관적으로 하는 데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본 지침 이전에 실천 지침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또 몇몇 교구에는 건설본부 또는 교구 소속의 설계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전문가가 설계 또는 감리를 전담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건축 질이 나아져야 할 텐데, 그만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위에서 알아서 하고, 본당신부님이 지침을 내리면 모두 따라야 하는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이야기해 본들 반영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실천 지침들이 마련되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학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회 건축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면서 초기 성당, 타종파 건축물들을 포함해서 많은 자료와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청강생도 많이 오고 호응이 좋았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무엇이 좋은지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비평의 문제가 있는데, 신자들이 건축과 미술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저널이 있었으면 합니다. 신문에 성당 봉헌식 기사를 보면 얼마의 비용으로 몇 평으로 잘 지었다 하는데, 이런 것보다 문화적 예술적인 관점의 평가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규단 - 여러 군데 일을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수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비참한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성전을 잘 꾸며 신자들에게 유익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고 쓸 데 없는 것을 한다고 하지만, 천정 바닥 타일 색까지 전체적으로 조율하여 완성된 성당을 보면 모두 만족하는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계속 첫 단추 이야기가 나왔는데 미술품에 대해서도 처음 설계부터 계획이 세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들이 힘들게 모금을 한 돈에 대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낭비하면서 미술품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김형주 - 그래도 일하는 사람은 신념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성전을 아름답게 하고자 왔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끝까지 마무리를 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 사목위원들이 와서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내가 아는 사람한테 하면 돈을 안 들이고 봉헌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돈을 들이느냐고도 합니다.

 

처음 성전 건축을 하시는 신부님들께 설명을 해드리면 부분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시지만 그것으로 전체가 어떤 그림인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싸워서라도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사실 미술가들과 한 번도 같이 일해본 적이 없으니까 불안한 것은 이해합니다. 처음에 어떤 작품을 할 건지 스케치를 해서 보여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품이라는 것이 계속 구상하고, 묵상하고 하면서 최종 작품이 나오는 것이지, 그것을 중간에 체크하고 그 과정마다 일일이 보고하고 하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디 가서 일을 하든지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참고, 끝까지 가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당 수준이 오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예술가들이 헌신을 해서 결과를 내놓아야 보는 사람들이 선택도 하게 되고, 일할 기회도 넓어지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태 - 잘하려고 하는 욕심은 누구든지 있는데, 어떻게 하면 미술가들하고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체험이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일입니다. 한 번은 14처를 만들면서 예수님의 가시관을 떼고 월계수 가지를 붙였습니다. 돌로 된 그 14처를 마당에 설치해 보고 있었는데, 마침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곳에 와계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나오셔서 머리에 월계수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저는 걱정하며 그렇게 한 것이 잘못된 것인지 조심스레 여쭈었는데, 추기경님께서는 대번에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가 예고된 사형수이기 때문에 미리 붙인다고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추기경님이 안 된다고 하셨으면, 돌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작품활동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희들을 무조건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또 성당에서 의뢰를 받아서 가보면 대개 골조를 만들어놓고, 그때서야 내부를 봐달라고 합니다. 14처를 하라고 하는데, 14처를 걸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성당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성당마다 성모상, 십자가상, 14처를 반드시 두는데, 설계 때부터 놓을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물에만 예산이 있고, 미술품에 대한 예산을 따로 세우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그래서 성당을 지어놓고, 성상, 성물에 대한 예산은 그때그때 충당합니다. 누군가 봉헌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미술품에 대한 예산도 처음부터 계획되어야 하겠습니다.

 

새로 지어지는 성당이 신문에 나는 것만 1년에 50개가 되고, 수녀원, 공소까지 합하면 더 많은 성당이 축성되고 있는데, 이 많은 성당을 누가 다하나 걱정이 됩니다. 성당마다 유리화도 꼭 하려고 하는데, 국내에 유리화를 할 사람이 뻔히 몇 사람밖에 없는데, 어떤 작품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걱정이 됩니다.

 

이탈리아에 가보니 좋은 그림, 조각이 있는 성당들은 1950-60년대 성당들이고, 근래 지어진 성당은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성당 예술에 대가들이 동원되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 교회의 현재 모습과 상관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당도 물론 아름다워야겠지만, 성물 성상들이 아름다운 것이 배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한국 최고의 조각가 미술가를 발굴하고 이들이 작품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 성당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들 현재 신앙의 모습이 성당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봅니다. 후대에 오늘날 성당에서 무엇을 볼까요?

 

김겸순 - 독일에 있으면서 우리도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 교회 측에서 주최하여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갖는 예술가들의 모임입니다. 한 번 모일 때마다 옛 성당, 새로 보수한 성당, 새로 지어진 성당 하나씩을 평가하게 합니다. 미술사가, 음악가, 지도신부님, 전례 관련자들이 모두 모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한번은 수녀님들께 본당 외관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게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제단 앞에 걸리는 포스터, 지나치게 큰 스피커, 조명 등을 꼽았습니다. 심지어 전광판처럼 시선을 모두 빼앗는 요소도 전례공간에 놓여있습니다. 전례공간에 핵심적인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독일에 가서 충격을 받았는데, 새로 지은 성당이 전례공간으로 합당하면서도 시대의 새로운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은데,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하여 시대에 맞고 전례에 맞는 성당을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장익 - 최 선생님이 그 나라 종교미술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뿌리내렸나 잣대가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그 토양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자기 싹을 틔웠나 하는 역사적 문화적 책임이 있습니다.

 

지침서에 교구의 건축위원회가 교구 내에서 설계, 시공을 하는 등 이해득실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도록 명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력이 있더라도 삼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또 주임신부, 교우들이 자꾸 바뀌는데 누가 마음을 쏟아 잘 만들어놓은 것은 10년 동안만이라도 손을 못 보게 해야 합니다.

 

또 하나 걱정은 설계한 분들이 창의성도 좋고 의욕도 좋은데, 나름의 작품성, 조형미를 표출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용하는 사람들, 늘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경우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좋은 작품을 하려면 미리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때그때 하면 조화가 깨져버립니다. 본당에 전파상하는 신자가 있는데, 왜 그 사람을 안 시키느냐 하는 식은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신 -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이 나왔는데, 문화위원회에서 후속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2001년에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되어 자발적으로 등록하면 국가에서 지원도 해주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존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여러 종파에서 등록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신흥종교들은 문화재 등록이 되면, 그 종교가 국가적으로 인정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19세기 말부터 생긴 건물들 200여 개를 조사했는데 성당이 후보로 제일 많았습니다. 아직 지정되지 않은 건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앞으로 등록될 준비를 하고, 잘 보존해서 등록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 지침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익 주교님 말씀, 최종태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사실 건축은 사용자가 주인입니다. 건축가들이 자기 탈렌트, 자기 작품성만 너무 내세워서 관리가 어렵고 생활하기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건축계에서는 막 지어질 당시 상을 주는 것보다 짓고 나서 10년쯤 지나서 상을 줍니다. 사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들이 진정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교회의 문화위원회에서도 가톨릭 미술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이것도 지어지고 10년 뒤쯤 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유네스코 산하 도코모모(DOCOMOMO)라는 기구가 있는데,  여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건축물을 올렸습니다. 절두산성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20세기에는 천주교 건축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합니다. 국가 민족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김형주 - 이왕 해놓은 것은 빨리 손을 안 댔으면 합니다. 본당에 건축한 사람도 있고, 예술가도 있는데 전혀 상관없이 바뀐 신부님이 사목회장과 따로 리모델링 계획을 세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자들의 거센 항의가 일고, 성당 분위기가 완전히 깨지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저는 의뢰를 받아 성당에 가면 먼저 몇 년 됐냐고 묻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부족한 것을 조금 보태는 것은 모를까 새로 고치는 것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또 어느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똑같이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피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디자인한 성당 꼭대기 십자가를 바로 옆 개신교 교회에서 그대로 카피를 해서 달아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합니다. 정식으로 하자면 소송도 내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종태 - 서울대교구에서 근래에 미술작품 등록을 한다고 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미술품이 그 성당의 재산, 자산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술품을 설치하면 이후에 옮길 때 적절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작가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전 여기저기에 작품을 했는데, 그것이 20년, 25년 넘게 되면서 누구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없어졌습니다. 본당사에도 사진은 있는데 누구의 작품인지는 없습니다. 그러면 성당의 역사에서 완전히 빠지게 됩니다. 미술품도 등록이 필요합니다.

 

김겸순 - 외국 성당처럼 각 본당마다 성당 건물과 미술품에 대한 설명을 한 작은 책자를 제작해서 비치하면 어떨까 합니다. 본당마다 엽서 한 장이라도 내부 외부 공간 사진과 언제 세워졌는지 등 간단한 소개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함부로 고치고, 버리고 하지는 않겠지요.

 

장익 - 각 성당마다 아주 간단해도 좋으니 내역, 작품 등에 대한 기록, 안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춘천교구에서는 교구 설립 70주년을 앞두고 성당 기록을 해왔습니다. 이것을 한데 모아 색인을 만들 예정입니다. 또 성전봉헌식에 가보면 성당 지은 건설업자에게 감사패를 주면서, 설계한 사람은 아예 언급도 안합니다. 이것은 책에 저자 이름 없이 인쇄소 이름만 나오는 경우와 같습니다. 감사를 하려면 설계가에게 해야 합니다.

 

이기헌 - 문화위원회로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 건축, 미술에 대한 지침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주교님들도 다 공감하실 걸로 생각합니다. 오늘 나왔던 좋은 말씀을 잘 반영하여 지침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문제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많이 깨우쳐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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