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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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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7 ㅣ No.98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9)

 

 

4. 꿈 해석의 기본 과정

 

여기서는 분석심리학적 꿈의 해석 과정 가운데 일반적으로 보통 상담자도 쉽게 응용할 수 있는 해티 로젠탈(Hattie Rosenthal) 박사의 꿈 해석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 내담자의 삶의 역사와 성격 유형을 이해한 뒤 꿈속에서 내담자의 행동방식을 본인이 찾아내도록 자유연상을 돕는다. 이미 언급한 바처럼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난 뒤 상담자는 내담자 스스로 자신이 꿈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그 행동방식을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이때 사용되는 기법 가운데 내담자에게 이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삼인칭 기법’이 유용할 수 있다. 곧 꿈의 주인공을 ‘나’가 아닌 ‘그’ 또는 ‘그녀’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꿈을 일단 객관화하여 그 속에서 다시 개인적인 의미를 찾아내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객관화하여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연계하여 그 안에 개인적인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본인은 이 꿈의 내용을 삼인칭을 써서 다시 말해줄 수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은 이 꿈을 어떻게 느낄 것 같아요?” “이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행동방식은 어떠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제삼자의 시점에서 이 꿈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자신과 연계되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감정과 행동 유형 그리고 요구사항과 같은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다시 자신의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두 번째 단계: 전체적인 메시지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낸다. 이에 대해 로젠탈 박사는 꿈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걸맞지 않는 부분, 또는 전혀 말도 안 되는 부분과 같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연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 꿈의 전반적인 모든 상징에 대해 ‘적합한 연상’을 한다(프로이트의 자유연상 개념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의미로 꿈의 상징과 그 대상에 직접적인 연상을 투사하는 것이다.). 곧 내담자는 꿈속의 구체적인 상징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하는 점을 자신의 삶의 역사 안에서 찾아나간다. 내담자는 이러한 적합한 연상을 통해 자신의 실제생활과 그 꿈의 상징을 스스로 연결해 나가면서 꿈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가게 된다. 

 

네 번째 단계: 내담자가 어느 정도 연상의 과정을 마치면, 다시 그 꿈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자기 스스로 그 꿈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도록 한다.

 

다섯 번째 단계: 이러한 꿈의 메시지를 실제생활에 적용한다.

 

 

5. 40대 여인의 꿈 분석

 

앞서 설명한 심리학적 꿈 분석의 전제들(지난 호 참조)을 벌거벗은 남자가 계속해서 자신의 꿈에 나타났다던 40대 초반 여인의 꿈(「사목」 311호〔2004.12.〕, 107-108면 참조)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사실 때문에 단순한 꿈의 내용만으로는 이 꿈을 분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이 꿈의 상징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여인의 삶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 여인의 꿈 이야기는 필자가 직접 만남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이므로 어느 정도 근거 있는 해석적 접근을 시도하기가 어렵다. 

 

둘째, 꿈을 해석하는 데는 상담자가 아닌 내담자의 연상을 통한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인데 이처럼 단순한 꿈의 내용만으로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꿈의 메시지를 온전히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미루어 이 여인의 삶의 역사를 유추해 보고, 그것을 전제로 했을 때 이 꿈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능한 접근만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 꿈을 꾼 여인은 똑같은 꿈을 2주째 연속해서 꾼다고 하였다. 이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꿈은 자체로 어떤 신적인 존재와 연결 지어 생각하려는 시도를 낳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신적인 연계성을 일단 제외하고 오로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꿈은 어떤 종류의 강박증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자신의 무의식, 또는 융의 표현을 빌린다면 자신의 그림자에서 유래한 상징적 메시지가 계속해서 같은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자체가 이 여인에게 어떤 강박적 사고나 감정 또는 욕구가 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여인과의 면담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만일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이 여인은 어떤 종류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꿈을 꾼 당사자의 자유연상 과정이 아닌 단순한 유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꿈의 내용을 볼 때,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그림자에서 표출되고 있는 반면, 본인은 의식적으로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의식과 충돌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은 이 충돌이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남성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벌거벗은 남자가 이 여인 안에 존재하는 남성 아니무스를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꿈에 여인은 남자의 유혹을 거부했다. 이것은 자신의 아니무스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현으로 현재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남성적 기질에 대한 항거로 인식될 수 있다. 한편, 그 남성이 벌거벗었다는 것은 더더욱 그 남성상이 혐오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거나(보통 이 혐오적 남성관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현재 자신 안의 아니무스는 꾸밈없는 진실한 모습의 남성상으로서 이 여인이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의 일부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여인의 경우 평소에 어떠한 성(性)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남성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좀 더 이 꿈을 아니무스와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아니무스적 해석이 이후 펼쳐지는 기이한 이야기와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어떻게 연관이 되어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지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곧 꿈속의 남자가 신(神)이 아니라 다른 표상(예를 들면 남성적 표상들이나 실제적인 이성관계)일 경우 이것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열쇠는 순전히 이 여인의 연상 안에 존재한다. 여성 안의 남성상인 아니무스는 남성에 대한 시각에서부터 시작하여 냉정, 투철, 잔인, 충동, 파괴, 독선적인 남성의 부정적인 모습을 의미할 뿐 아니라 용기, 절제, 적극, 포용, 진취적인 남성의 긍정적인 모습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남성상의 모습이 이 여인의 현재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려면 이 여인의 현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상담자의 이해가 있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이 여인이 자신의 꿈의 상징을 적합한 방식으로 연상해 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무의식과의 충돌은 무속적 신앙관과 그리스도교적 신앙관과의 대립을 의미할 수도 있고,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 따르느냐 아니면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또는 타인의 기대와 평가 등과 같은 본인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거부할 수 없는 요소들을 따르느냐 하는 문제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갈등 상태가 지속되면 실제로 신체적인 부적응 증상이 유발된다는 측면에서 현실의 신병과 같은 체험을 이해해 볼 수도 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여인의 경우 특히 영적인 감각이 무척 예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신체적 현상을 체험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내담자와의 면담이 배제된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만 분석해 본다면 필자는 이렇게 생각을 종합해 보고 싶다. 이 여인은 벌거벗은 남자를 꿈에서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육체적인 질병은 사라졌지만 신기(神氣)가 발생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주술적으로 강신무(降神巫)가 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간단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여인은 무당이 되고 싶은 마음은 근본적으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 여인의 강박적 사고가 자신의 존재적 정체성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자아내게 한다. 다시 말해 무의식의 그림자는, 절대 무당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꿈을 통해 이야기해 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니면 종교적으로 어떤 배경이 깃들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 여인은 강신(降神)을 통해 무당직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인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신체적인 증상들이 발생하고 강박적인 꿈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얻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심리학적으로는 이 여인이 강신 이후에 신령스러운 말과 행동 그리고 예언의 힘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타고났거나 아니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자신의 이 영험한 능력을 의식적으로 억눌러 왔거나 끊임없이 부정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현실적 자아와 그림자에서 요구하는 자아의 충돌은 강박적으로 자신은 어떠해야만 한다는 의식과 자신은 현재 이럴 수밖에 없다는 의식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갈등 상황은 의식적인 상태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으므로 무의식의 그림자는 이러한 자신의 상황에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문제 해결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메시지를 이 여인의 경우와 같은 강박적 형태로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의 그림자는 결국 자신이 꿈속의 벌거벗은 남자를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받아들이기 싫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여인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인 요구에 자신의 욕구와는 상관없는 야합) 의식적으로 꿈에서 남자를 받아들인다. 이때 의식되는 자신의 모습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순기능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건강의 이상이 사라지고 무당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이 여인의 운명적인 현실 자아 정체성이지만 무의식에서는 거부하는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여인은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곧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하면서 그동안 염려했던 신을 거부하며 얻게 되는 모든 불이익 등을 용감하게 직면하여 이겨나갔던 것이다. 이 결과는 곧 자신이 꿈에 벌거벗은 남자를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접신을 용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진취적이고 용기 있는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투쟁[아니무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꿈속의 벌거벗은 남자는 이 여인에게 신이 아니라 자신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할 아니무스였으며, 그것을 외면하였던 자신의 현실을 박차고 결국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무의식(그림자)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꿈 분석은 사실 상담자와 내담자, 치료자와 환자가 함께 해야만 하는 협동의 작업이다. 곧 정의와 연상을 제공하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내담자이기 때문에 상담자 편에서 그럴 듯한 해석을 찾아내었다 하더라도 내담자가 자신의 삶 안에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며 한낱 지적인 유희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분석이 실제 상담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응용되는 현실이 아니고, 또한 사목 상담자에게 꿈의 이해는 관심의 영역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핵심 영역이 아니기에 이러한 정도로만 이해해도 무난할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의외로 꿈에 예민한 내담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자기를 의식적으로 지나치게 방어하여 상담이 어려운 내담자가 많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인지적인 접근보다 오히려 꿈을 통해 스스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을 더 잘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꿈 분석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이 꿈 분석은 상담자나 치료자 측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내담자에게 인식이 되는 만큼 자존심이 강하거나 상담자와 심리게임을 즐기는 내담자 유형에 응용해 볼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 대략적으로만 기술한 꿈 분석에 대한 내용이 사목 상담자들이 내담자를 이해하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 릴라이(Lillie Weiss), 「꿈 분석(Dream Analysis in Psychotherapy)」, 김종주 옮김, 하나의학사, 2002년 참조.

 

[사목, 2005년 8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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