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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평신도 영성: 구별 없이 같은 영적 여정을 적극적으로 걸어갔던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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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437

[평신도 영성 : 역사 - 고대] 구별 없이 같은 영적 여정을 적극적으로 걸어갔던 평신도


지난해 여름에 필자는 로마에서 전 세계 신학 교수들과 함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차관 대주교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대주교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중에서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야기가 있다.

대주교님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2010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에 참석하셨는데, 대회 중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모습으로 봉사하는 한국교회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열정에 무척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사람들과 비교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특징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사실 한민족은 진취적인 기상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민족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한국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평신도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고국으로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들어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물론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자신의 신앙 여정의 길을 스스로 잘 찾지 못하고 방황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여정에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필자는 앞으로 몇 번의 지면을 통하여 2,000년 교회 역사의 모습과 함께 오늘날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할 영적 여정의 길을 밝혀보고자 한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평신도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용어가 포괄적으로 ‘평신도’라는 의미를 대신하여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제단에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의 사제가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들과 그들이 뽑아서 세운 교회의 감독과 봉사자가 있었다. 하지만 성경은 좁은 의미에서 특별한 직분을 수행하는 이들과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을 꼭 상반되는 개념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에서 사도들도 구약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느님의 자녀들이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 참조: 2,5)이며,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묵시 1,6; 참조: 5,10)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백성과 하느님의 자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보편 사제직’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초대교회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좁은 의미에서 특수 사제직과 구별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대립되는 개념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특수 사제직을 넘어서는 보편 사제직으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많은 영적 권고들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진복팔단과 그 이외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부자청년에게 하신 요구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해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 실천되었던 공동소유, 공동분배의 공동체에도 더 특별하거나 선별된 사람들이 들어갔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었고, 들어갔었다. 나아가 바오로 사도가 자신이 세운 여러 지역교회 공동체에 편지로 당부하였던 강도 높은 윤리적 권고사항도, 요한 사도가 순교할 각오까지 하면서 신앙을 지키라고 한 묵시록의 당부도 모두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이 일부 특별한 직분에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알아듣고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아울러 성경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별되는 것보다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하느님께 선택됨으로써 악한 세상과 구별되어 교회에 속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수도생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평신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1세기 말경 로마의 클레멘스(「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40,5 참조)를 비롯하여 2-3세기 여러 교부들은 대사제, 사제, 레위라는 유다교 종교제도의 개념을 빌려 그리스도교 안에서 특수 사제직에 대해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 발전단계에서 정착되는 교계제도의 질서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균등하게 언급하는 맥락일 뿐이지 평신도와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요, 교회 내에서 특별한 직분에 직무상의 모든 책임과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4세기 초까지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와 그에 따른 순교의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보존하고 증언하는지가 최대 과제였다.

성직자든 평신도든 간에 배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때로는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질 수 있었던 영적 여정이었다. 곧 성직자라고 더 엄격한 영성생활을 해야 하고, 평신도라고 해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영성생활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순교의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과 합일하는 같은 영성을 실천하며 살아갔다.

한편 3세기 중반부터 교회 안에서는 이집트 사막에서부터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정신의 연장선에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수도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들의 결단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하였다.

이집트 사막 은수자의 아버지라 부르는 안토니오 역시 어느 날 성당에 들렀다가 듣게 된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말씀을 즉시 실행에 옮기면서 은수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에서 피를 흘리는 순교의 상황이 점차 사라지게 되자 많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합일의 여정을 걷고자 하는 열망을 백색의 순교라고도 할 수 있는 은수자로서의 삶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것이 후대에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면서 본격적인 수도생활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모든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수도생활에로 나갈 수도 없었고 하느님과 합일의 영적 여정을 포기할 수도 없어 고민하던 차에, 그들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순교자들이 묻힌 무덤으로 순례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예루살렘 등지와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도 순례하였다. 그들이 걸어간 순례의 길은 나름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었던 어려운 여정이었다. 한편 순례의 길마저 떠나기가 여의치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전례생활을 통해 강론을 들으면서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키워나갔다.

물론 4세기부터 급격히 늘어난 새 영세자들 중에 때로는 충분한 준비나 결단 없이 입교하였던 일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세상과 교회, 이교적인 것과 그리스도교적인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들은 영생을 얻고자 그리스도에게 기도하였지만,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이방신에게도 기도하면서 종교혼합주의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베네딕토 등의 가르침이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적 지도자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평신도 또는 일반인의 신분으로서 삶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다양한 체험을 하였기에, 늦은 나이에 성직자, 수도자가 되어서도 그 경험을 잘 살려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에게 더 적합한 가르침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느님께 속한 고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성직자, 수도자와 한 모습으로 따르면서 영적 발전을 위한 여정을 걸어가고자 주님의 은총 속에서 노력하였다.

* 전영준 바오로 - 서울대교구 신부.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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