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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독지남: 삶의 원천인 하느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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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6 ㅣ No.315

[聖讀指南] 삶의 원천인 하느님 말씀

 

 

이즈음 며칠 사이에 한 겨울의 추위와 봄날의 따사함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다. 지난주까지 강추위가 전혀 누그러들 것 같지 않더니, 입춘이 되자 봄은 그것을 물리치고 조금씩 그리고 부드럽게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봄이 다가오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들을 녹이고, 부드럽고 따사로움으로 다시 가까이 다가오게 되어 올 한해도 말씀 안에서 기쁜 나날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미 고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 영성의 첫째 원천임을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구원하고 성화하시는 하느님의 뜻과 인격적 관계를 맺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이나 사랑의 완덕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가능하게 됨을 그분은 특별히 강조하셨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교부들, 그리고 수도 전통 안에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성경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특별히 수도 전통 안에서 성경은 언제나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하느님의 말씀은 수도자들의 전 삶을 지배하였으며 그들에게 끊임없는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고대 이집트의 은수자들이나 회수도자들에게 성경이 크나큰 권위를 가졌으며 언제나 수도생활의 중심 위치를 차지했음을 우리는 여러 문헌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수도 전통 안에서는 언제나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 자료로 성경이 강조되었다. 수도자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존재로 읽고 들음으로써 수도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성경은 그들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삶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생활 안에서 차츰 성경 외의 다른 책들도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으로 추천되었다. 유럽의 수호성인인 성 베네딕도(St. Benedictus, 480년경-540년경)는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으로 다양한 책들, 즉 가톨릭 교부들의 가르침들이나 전기 혹은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이나 제도서 혹은 거룩한 사부 “바실리오 규칙서” 등을 제시하고 있다(RB 73).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당시에 수도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고, 또한 수도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한 책들은 결코 그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생활이 지향하는 완덕의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 삶의 가장 올바른 규범”(rectissima norma vitae humanae - RB 73,3)으로 제시하였다. 중세의 마지막 교부라 일컬어지는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St. Bernardus, 1090-1153)도 성경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직접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인은 수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독서와 성경묵상에서 자신들의 풍부한 영적 지혜와 가르침을 얻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세와 현대를 거치면서 베네딕도회 수도생활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점점 덜 영성적인 책들이 읽혀지게 되었다. 사실 중세 수도원들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자료로 성경 자체가 아닌 다양한 작품들인 주석서들이나 심지어 백과사전도 수도자들에게 제시되었다. 성경은 결코 다양한 묵상 자료들 중의 일부분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자체로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렉시오 디비나의 자료로 성경 외에 다른 많은 영성 서적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들에게 있어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인 자료는 언제나 성경 그 자체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현대 수도자들이 초기 수도자들처럼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으로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중요성을 직시하고 그러한 수행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아마도 현대 수도생활은 지금보다도 더 풍성한 열매를 맺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인 자료로 성경의 중요성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이 성경을 단지 다른 영적 독서를 위한 책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게 되었다. 특별히 인쇄술의 발달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주목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영성 서적들과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는 흥미 위주의 간단한 책들이 수없이 출판되고 있다. 또한 현대의 많은 영성가들도 저마다 성경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영성서적들을 더 많이 추천함으로써 불행하게도 우리의 시선은 성경이 아닌 그러한 서적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성경이 아닌 덜 영성적인 서적들을 더 많이 탐독한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성경학자로서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학장과 밀라노 대교구장이었던 마르티니(Carlo Maria Martini) 추기경은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현존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 수 없고 또한 그분을 올바로 따라 나설 수도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결코 우리의 내적인 삶은 힘을 얻을 수 없으며 동시에 우리 교회내의 수많은 봉사나 활동도 참된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다. 더욱이 요즈음 크게 기승을 부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신흥종교들이나 유사 영성 운동들에 쉽게 현혹되어 빗나갈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은 철저히 성경에 깊이 뿌리내려야만 한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릴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고 더욱 그분 안에서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 점에서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는 가장 안전한 수단이 바로 수도 전통 안에서 전해준 단순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히 인간의 지식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단순한 수행으로써 분명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새 봄이 시작하는 이즈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새 생명으로 다가오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분도, 2011년 봄호,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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