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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특강5: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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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3 ㅣ No.167

명동성당 사순특강 (5 · 끝)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

사랑 나누면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


인천 동인천역 근처 골목길에서 조그만 국수집을 운영한다. 음식은 공짜다. 그냥 잘 먹었다고 하면 된다.

2003년 4월 1일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은 세 곳으로 늘었다. 노숙을 하는 VIP 손님을 위한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이 있고, 얼마 전 어르신을 위한 민들레국수집도 문을 열었다.

민들레국수집의 신조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았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굳게 믿었다. 사랑과 형제애로 공동체를 이뤘다.

10년 전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를 지키려고 마음먹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예산 확보를 위한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생색내면서 주는 것은 안 받는다는 것이다. 돈보다 하느님 섭리에 기대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손님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손님이다. '내일은 무슨 반찬을 할까? 무슨 국을 끓일까?' 걱정하다가도 빙긋 웃는다.

하느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가난한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면 하느님이 지금 여기 계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 "손님을 하느님으로 정성껏 받들어 섬겨드리면 하느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어요?"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사랑은 이웃에게 자기를 내어 놓는 것이다. 사랑의 삶이 곧 하느님 나라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다. 보잘것없는 국수 한 그릇을 손님께 드릴 때 한 손으로 주는 것과 두 손으로 받들어 드리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겨우 국수 한 그릇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국수 한 그릇이지만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봉사의 참모습이다.

가난한 손님들은 마음이 참 곱다. 뷔페식이라 마음껏 드셔도 되는데 뒷사람 걱정에 자기 먹을 양 이상은 욕심내지 않는 소박한 분들이다.

나눔과 사랑은 떼어놓을 수 없다. 사랑이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고 관심과 배려이자, 기다려주는 것이고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다.

국수집을 찾는 손님들은 추운 날 노숙을 하면 온몸이 아프다고 한다.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파스를 한 장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음식을 씹을 수가 없으니 치과 진료를 받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틀니를 해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본다. 국수집 근처에 방을 얻어달라고 한다.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고 한다. 결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도 한다. 그저 안타까운 사연을 듣기만 한다. 겨우 초코파이 하나 내민다. 겨우 커피 한 잔을 드린다.

손님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 식사 순서는 무조건 제일 많이 굶어서 가장 배고픈 분이 먼저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세상의 줄에서 가장 끝에 있는 꼴찌다. 줄서기 경쟁에 밀려 뒤로 처진 이들이다. 또다시 줄을 세워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하다.

꼴찌를 배려해 먼저 드시게 하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먼저 식사하는 분이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 빨리 드신다.

우리 손님들은 밥만 먹곤 살 수 없다. 사람은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를 때 인생 고민을 시작한다.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는 다른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는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낮잠을 자고 쉬는 공간도 있다. 컴퓨터도 이용하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장소다. 커피와 녹차도 드린다. 발을 씻으면 새 양말을 드린다. 매일 독서 장려금도 드린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면 3000원을 드린다.

날씨가 사납게 추운 날에는 찜질방 표도 드린다. 스스로 노숙생활을 그만두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노숙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 필요한 도움을 드린다. 사람은 스스로 변하려고 할 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것이다. 감옥에 갇힌 형제들을 찾아보는 일 등 보잘것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누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하느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 일상을 알뜰하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누룩이 빵을 부풀리듯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서영남(베드로 · 민들레국수집 대표), 정리=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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