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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모든 이를 위해 활짝 열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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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28 ㅣ No.1214

[경향 돋보기 -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모든 이를 위해 활짝 열린 교회



작년 8월 한국 사회는 환한 웃음으로 한국을 찾은 한 분으로 인해 가슴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다름 아닌 가톨릭의 가장 큰 어른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이었다. 교황님의 한국 방문은 교황청 대변인이 언급하고 한국 주교회의에서 확인한 것처럼 사목방문이었다. 사목방문은 각 지역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지치고 어렵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는 이들을 격려하며,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지 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방문을 의미한다.

실제로 교황님은 방한 첫날 한국 주교님들과의 만남에서 사목의 큰 틀을 권고하셨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교회’였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사도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5년 새해를 맞으며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님의 이러한 사목적 권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고, 한국 천주교회의 상황을 성찰하여 그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4, 잔치는 끝났다?

이야기 하나 : 지난 8월 중순, 교황 방한 중에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기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요즘은 정말 텔레비전 뉴스를 볼 맛이 납니다. 손님은 어떠신지요?”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하였다.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을 켜면 정치인들이 서로 비난하고, 싸우고,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만 비쳤지요. 그런데 며칠 전 교황이라는 분이 한국을 방문하셨다고 하는데, 이분은 한국에서 1급 경호를 받으실 만큼 국빈대우를 받는 높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높은 분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물없이 다가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지도자는 저래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소형차를 타시는 것도 그렇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시는 모습도 그렇고, 장애인들을 거리낌 없이 환하게 웃으며 대하시는 모습도 그렇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으시는 모습도 그렇고…. 마음 좋은 서양 할아버지 모습 같은 교황님을 텔레비전에서 뵈니 제 마음도 따뜻해지고, 뭉클하고, 기분도 좋아지더라고요.”

이야기 둘 : 교황님이 다녀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식탁의 화제는 단연 교황님이었다. 광화문 시복식 미사에 참석했던 교우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부터 시복식 미사 때까지의 일을 무용담 늘어놓듯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심지어는 교황님이 오픈카를 타고 지나가실 때 자기 바로 앞으로 지나가셨기에 핸드폰에 교황님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까지.

꽃동네 행사에 참석했던 교우는 교황님이 장애인들과의 만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에 오픈카가 빨리 지나가서 서운했던 것, 하지만 꽃동네를 떠날 때, 교황님이 거기 모인 신자들을 위해 헬기를 바로 출발시키지 않고 꽃동네 상공을 천천히 순회했으며, 교황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서 눈시울을 적셨다는 말을 했다.

식사시간 내내 시작부터 마침까지 교황님은 그 자리에 계셨고, 그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신자들은 각자 서로에게 목청을 돋우어 교황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 비록 먼발치에서의 만남이었지만 - 자랑스러워했으며, 그들은 그때 행복했었다고 고백하였다.

이야기 셋 : 얼마 전, 레지오 단원 교육을 마치고 몇몇 교우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서 그들은 허전하고 마음이 공허하다고 했다. 아니 허탈하다고 했다.

“지난 여름 교황님을 뵈면서 느꼈던 환희와 기쁨이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진 것 같아요. 마치 꿈만 같았던 5일이었어요.그분이 다녀가신 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세상도, 교회도, 저도…. 여전히 삶은 고단하고 팍팍하고, 불신과 반목, 약자를 무시하고 자기 것만 챙기고. 전혀 변하지 않은 세상과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네요. 교회에서는 후속사업이다 뭐다 해서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피부에 와 닿지 않네요. 이제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쩌면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작년에 큰 잔치를 치렀는지 모른다. 2014년 여름이 지났다. 그럼 이제 잔치는 끝난 것인가?


계속 이어지는 여운과 울림 : 교황님의 말씀

교황님의 방한을 단지 행사로 생각하고 준비했다면 어쩌면 그 행사로서의 잔치는 끝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황님의 방한이 무엇보다도 사목방문이기에, 교황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들려주셨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황님은 시복식 미사 강론을 통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향한 교회의 관심과 배려, 그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복음의 중심”이며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요소”임을 역설하셨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황님은 한국 천주교회 주교님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당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교황님의 권고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이며 이는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교우들은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본당이나 교구에서 그들과 함께하려는 연대에 관한 강론과 교리교육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 진지하고 솔직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유혹 : 동네잔치? 사교모임?

강우일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주교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되던 2012년, 경향잡지(12월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한국교회”)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가 “아직도 그 공의회가 목표하고 시도한 세상과의 새로운 대화와 친교를 제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세상을 향한 울타리를 허물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의 친교, 울타리 안에서의 동네잔치에 만족하고 있다.”고 진단하셨다.

그러하기에 주교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연대의 삶을 살 것을 권고하셨다. “주님께서는 이 은총의 해에 우리가 사로잡혀 얽매여 있던 세속의 가치관에서 해방되고, 주님께 진 빚을 탕감받기 위하여, 주님의 가장 작은 형제들, 세상의 불의에 억눌려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연대와 일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새로 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시지 않을까?”

한국교회에 대한 강 주교님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방한 중 교황님이 한국 주교님들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교회 중 보기 드물게 성장하는 한국 천주교 공동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 나온 염려이며 충고는 이러하였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위험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이 교회에서 할 일은 없어지고 맙니다. … 그리고 교회는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부끄러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또한 정신적 웰빙, 사목적 웰빙에 대한 유혹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또는 잘 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실제로 교회의 외적인 성장이 주춤하고 있는 요즈음, 신자들은 이제 편안한 신앙생활만을 찾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레지오를 비롯한 본당의 각 단체가 그 고유한 부르심과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친목단체로서 모임을 유지하기 일쑤이고, 본당에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려운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이제 사회복지 단체에 떠맡기고, 회비 얼마를 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많은 교우들에게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열린 마음, 함께하려는 마음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많은 사제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대, 사회 구조적 불의에 대한 강론과 교육을 하는데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일부 신자들은 이러한 내용들이 정치적 발언이며, 심지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라고까지 치부하며 듣기 불편해하고 있다. 신자들의 구미에 맞고 듣기 좋은 영성적 내용만을 언급해야 좋은 강론한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소외됨 없는 열린 교회를 지향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연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교황님의 권고는 주님이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예수님의 삶과 사명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는”(루카 4,18) 것이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초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며,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분명히 언급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에 의해서도 강조되었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시작하고 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사목헌장, 1항). 이 땅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그들의 슬픔과 고뇌가 우리들의 슬픔과 고뇌여야 한다고 분명히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2013년에 반포된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출발하는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교회”(46항)라고 말씀하시며, 교회는 특히 “친구와 부유한 이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자주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루카14,14)에게 다가가야 합니다.”(48항)라고 권고하셨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는 마음을 모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고, 교회 안에서도 그들을 위한 더욱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사제들도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해 연대의 삶의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알리고, 이러한 연대와 사랑이 신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스며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매우 쉬운 일인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세속적 가치가 아닌, 복음적 가치로의 회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폐쇄된 사교적 모임에서 열린 복음적 친교의 장으로, 가진 자들의 여유와 넉넉함에서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연대와 나눔으로, 세상과 단절된 울타리 안의 자신들만의 단체에서 울타리를 허물고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에 연대하는 교회로의 변화와 쇄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쇄신의 바탕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자기 구미와 취향에 맞는 신앙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나눔과 희생의 십자가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구원의 길로 연대하여 나아가려는 용기와 사랑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13년 3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선거에 참여한 추기경들과 함께 콘클라베를 마치면서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 첫 공식미사에서 교황님은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며, “세속적 가치를 바탕으로 어떤 일을 이룩하려 한다면 어린이가 쌓은 모래성처럼 모두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소외됨 없는 열린 교회는 각자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연대하려는 십자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배려하는 십자가, 가난한 이들을 한껏 팔 벌려 환하게 맞이하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려는 마음으로 노력할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신앙인에게 이 십자가는 다름 아닌 하늘나라 잔치로의 부르심이며 초대이다.

2015년,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잔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려는 나눔의 잔치, 배려하고 소통하는 열린 잔치는 이제 시작되었다.

* 김대섭 바오로 - 청주교구 신부. 미국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흥덕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월호, 김대섭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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