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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분노에 대하여: 건강한 좌절감 경험을 통해 내 문제 내가 끌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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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0 ㅣ No.264

[심리 상담] 분노에 대하여


건강한 좌절감 경험을 통해 내 문제 내가 끌어안기

 

 

상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 중 하나는 “분노 조절이 안 되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누구의 어떤 행위가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등이다. 화가 나서 물건을 부수는 사람, 화가 나서 며칠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 화가 나서 술을 마시는 사람, 화가 나서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 붓는 사람 등등. 분노는 자신을 파괴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상처를 주고 관계 및 가족을 해체시키며 극단적으로는 신체적 상해 및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분노는 우리가 가장 많이 느끼는 정서이자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정서임에 분명하다. 

 

어느 때 화가 날까? 가장 많이 경험되는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즉 좌절감을 경험할 때이며 좌절감의 원인을 내 것으로 가져오기 어려워 남 탓을 해 버리는 행위이다. 영아들은 엄마의 젖이 내 뜻대로 나와 주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엄마 때문에 좌절되었다고 생각하고 엄마의 젖꼭지를 깨물어 버리곤 한다. 유아들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얻지 못할 때 장난감을 얻을 때까지 떼굴떼굴 구르거나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성인들도 자녀가 내 뜻대로 자라주지 않거나 배우자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화가 난다. 

 

그렇다면 분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단 좌절감은 내 안에 담아두기 매우 불편하여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고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좌절감 없이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며 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사회에 사는 이상 필연적으로 우리는 좌절감을 경험한다. 최초의 좌절 경험은 배변통제 훈련일 것이다. 

 

내 맘대로 똥 싸고 오줌 싸던 영아기 시절과 이별하고 참고 견뎌내며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똥오줌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좌절의 경험은 사회 적응에 필수적 요소이며 좌절을 더 잘 수용할수록 사회적으로 더 잘 적응하게 되어 사회적 유능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좌절감은 순간적으로 불편한 감정이나 견뎌내고 단련되어야 할 감정이다. 

 

모든 장난감을 사줄 수 없듯이, 몸에 나쁜 음식과 행동을 허용할 수 없듯이 부모는 필연적으로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좌절을 경험시키지 않고 성공 경험만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부모가 뭔가를 못해 주면 자녀가 경험하지 말았어야 하는 상처를 경험했다는 마음에 죄책감까지 갖는다. 이러한 마음은 또한 아이에게로 전달되어 아이는 내가 경험하지 말았어야 할 상처를 부모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며 피해의식을 키워 나가게 된다. 그다음 자녀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하는 것, 직장에서 잘 살아남지 못하는 등의 좌절감의 원인을 부모나 타인에게서 찾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부인해 버린다. 즉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고 그에게 원인을 돌려버림으로써 자신은 책임을 면할 수 있고 홀가분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기가 끌어안지 않을 때 분노는 더 커지고 더 강하게 표현되며 책임지지 않은 채 표류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유아기적 소망에 집착하며 좌절에 대해 저항하기 쉽다. 즉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받으면서 간섭은 안 받고 싶고 명절에 시댁에 안 가면서 죄책감도 안 갖고 싶고, 부인이 내조도 잘하면서 돈도 잘 벌어 왔으면 좋겠고, 남편이 돈도 많이 벌어오고 가정적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모든 것을 충족하고 싶으나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짜증이 나고 심지어 두 가지를 다 취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억울함만을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마트에서 엄마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장난감만 사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다.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한 취업생이 있었다. 학점이 낮고 토익 준비를 안 했기 때문에 에세이를 열심히 써서 입사원서를 제출했는데 회사는 사람을 성적순으로 뽑는다고 분노했으며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암담한 현실과 사회를 비관했고 분노했다. 열심히 공부를 안 했어도 사회는 자신을 뽑아 주기를 바랐던 순수한 소망이 좌절을 경험한 것이다. 이 학생은 심지어 자신의 뜻대로 사회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만 나오면 사회는 나를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성적이 좋지 않아도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라는 이 순수한 열정을 회사는 알아볼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일자리를 100% 보장해 준 적이 없었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일자리는 항상 부족했고, 치열하게 준비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자유로운 경쟁 사회에서 오히려 공평한 시스템인 것을 사회가 나를 위해 항상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하면서 좌절감의 탓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 

 

이러한 인지적 오류를 범하면서까지 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는 보지 않고 외부의 문제만을 언급할까? 좌절감의 원인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불편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로 가져오지 않고 남 탓, 부모 탓, 사회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향해 분노하면 나의 문제를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심리적 가벼움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숙한 아이들의 분노 표현 방식이다. 아이들은 젖을 먹다가 이유식으로 바꿀 때 거친 음식이 싫으면 그대로 뱉어낸다. 환경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나를 고집한다.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그러나 성숙은 입에 쓰지만 몸에 좋으면 삼켜야 하고, 엄마 젖가슴과 이별하고 거친 음식을 내 힘으로 씹어서 내 안에서 소화를 시켜야 하며 사회에서 소속되기 위해 똥오줌을 가려야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하여 식사를 해야 하고, 충동을 참아내고 견뎌내야 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해 분노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엄마의 젖가슴과 이별하면서 장난감을 얻게 되고, 장난감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또래와의 즐거운 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지금 어려운 것을 참으면서 미래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고 절약을 통해 통장에 돈이 쌓여가고, 고통스런 운동을 통해 건강을 얻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나의 욕구를 일정 부분 자제하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사회를 이해해야 입사든 승진이든 할 수 있다. 나아가 타인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충돌 할 때에도 자신의 욕구를 취할 것인가 타인에게 배려하면서 뿌듯함을 취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도 취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도 받을 수는 없다. 나의 욕구를 포기하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타인의 고마움과 사랑과 높은 차원의 자기 만족감으로도 채워 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보다 배려심이 있는 성숙한 인격으로 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좌절감은 분노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하고 싶은 유아기적 소망에서 이탈하여 모든 것을 취할 수는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경험하지 말아야 하는 좌절감을 경험했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남 탓을 하지 않고 좌절의 현실과 원인을 내 안으로 가져와 내 안에서 소화하는 것이야 말로 나의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분노를 참아내고 억압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분노는 나름대로 조절되고 표현되어야 한다. 분노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언어화하여 사회·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훈련되어야 할 부분이다. 

 

미사 중 그저 따라했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가 요즘 새롭게 느껴진다. 분노의 원인을 남에게 쏟아내지 않고 내 안에 담고, 소화시키기 위해 나의 인격을 끊임없이 성숙시켜 나갈 때 진정으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2015년 여름호(VOL.48), 조은영 히야친다(영성심리상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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