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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절 특강2: 용서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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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30 ㅣ No.119

[명동주교좌본당 사순 특강] (2) 용서하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이렇게 끝없이 화를 내면서 신세타령만을 되풀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처받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는 것인지. 만약 두 번째가 나의 대답이라면 다음의 서술된 구체적 용서의 방법을 용기를 내어 실행해 보자.

 

첫째,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이 약이다'란 말을 종종 듣는다.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상처라도 시간이 가면 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용서는 시간이 흐른다고 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용서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결심을 내리는 그 순간이 바로 용서의 시작이다.

 

결심하는 것은 용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용서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상처받은 인간의 감정만 고려할 때 참으로 힘든 얘기다. 하지만 종교적 행위로는 가능하다.

 

용서는 정의의 이슈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의 이슈다. 정의만으로는 내 안의 상처와 울분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가 파괴적 집착에서 벗어나 용서하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치유 과정은 시작된다.

 

둘째, 용서를 결심한 다음에는 하느님 도움을 청하자.

 

이렇게 종교적 행위로서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한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예수님에게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상처에 대한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응어리진 우리 가슴이 주님 자비로 대치되고, 주님 관대함으로 대치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를 천천히 반복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주님의 기도만큼 간결하면서도 의미 깊게 용서를 가르쳐 주는 기도문은 없다.

 

셋째, 상처 치유의 열쇠는 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중에는 상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같이 자기 상처를 드러내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 관심과 동정을 받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편이 되어 상처 준 사람들을 비난해줄 때 기뻐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자기와 함께 동조해주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을 비난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처에서 낫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가 사라지면 더 이상 그 상처를 준 상대방을 계속해서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 속에 머물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처에서 치유되느냐 안 되느냐의 열쇠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서 찾으려 한다.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이 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만 나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상처가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처와 함께 불행하게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책임과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내 안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나 자신과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느님뿐이시다.

 

넷째,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용서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상처 준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은 순전히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상대가 정말로 나에게 못된 짓을 했으며 그로 인해 내가 상처 받았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그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그가 어떤 성장 배경과 상황에서 나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됐는지를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상대처럼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경향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 자신은 철저히 잘못이 없는 존재, 잘못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 존재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지 모른다.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나 다 용서가 필요한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면, 원수에 대한 우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14일, 송봉모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정리=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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