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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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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01 ㅣ No.841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발목을 다치고 보니

 

얼마 전 테니스를 치다 발목을 다쳤다. 일년 만에 모처럼 학교 교수신부님들과 테니스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운동 전 몸을 충분히 풀지 않아서인지 오른쪽 발목에 무리가 간 것이다.

 

첫날은 아무런 고통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오전 수업 4시간을 하고나니 발목이 몹시 부어올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까운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발목 주변의 인대가 살짝 늘어나서 발에 염증이 생겼단다. 침을 맞고 돌아왔지만 밤새 욱신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목발을 짚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게 되었다.

 

남들보다 체격이 워낙 좋은 나는 키도 크고 골격도 크기 때문에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사제서품 뒤 지나치게 불어난 체중 때문에 발목에 큰 무리가 가서 남들보다 더 고생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머무는 숙소는 신학원 기숙사 3층에 있다. 3층이라 해도 평상시에 불편을 모르고 살았는데 막상 다리가 아프고 보니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발목의 통증 때문에 거동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더군다나 3층까지 층계를 목발로 오르내릴 때면 온몸이 비 오듯 땀으로 젖었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기도나 미사도 하러 가지 못할뿐더러 식당에도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내 뜻과는 상관없이 주방 자매님들과 수녀님들이 번갈아 내 식사 시중을 드느라 고생하시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으면서 붓기가 빠지지 않는 다리를 보았다. 코끼리 발처럼 부은 내 발을 보면서 평상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했다. 한 사람의 작은 실수로 전체 공동체가 몸살을 앓는 것처럼, 몸의 일부인 발목이 아프니 몸 전체가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엔 잘 몰랐는데 몸이 불편하고 나니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들…. 그리고 나는 처음 신학교에 지원하던 순간을 기억해 내었다.

 

 

다미아노 신부처럼 살겠다고

 

신학교 지원 시절, 떨리는 순간이 있었다. 신학교 입학을 위한 전형을 위해 교리시험을 보고 면접을 했는데, 교수신부님들과의 면접 시간이 바로 그 떨림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떤 분이 계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 가톨릭대학교 학장이셨던 백민관 신부님께서 계셨던 것 같다.

 

다른 질문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유독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자네는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사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했던 나는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에 당황스러웠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함께 놀던 성당 친구들과 나중에 신학교 같이 가서 신부가 되자고 이야기했지만 ‘왜’ 신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냥 신부가 되고 싶었고, 제단에서 미사를 드리는 신부가 멋있게 보였다.

 

그때 갑자기 몰로카이 섬의 다미아노 신부가 떠올랐다. 복사 시절, 본당 수녀님한테 선물 받았던 다미아노 신부님에 대한 자서전을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내 면접관 신부님들에게 “저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다미아노 신부님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신부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슴 속 한편에서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과연 내가 올바른 답변을 한 것일까? 아니면 신학교에 붙으려고, 신부님들 앞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거짓으로 꾸며낸 말은 아니었던가? 내가 정말로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 걸까?’

 

 

장애인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다행히도 나는 신학교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면접 때 내가 했던 대답에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신학생으로 살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학교 동아리 가운데 ‘모퉁이’라는 이름의 ‘특수사목연구회’에 가입하였다. ‘모퉁이’는 장애인을 위한 신학생들의 봉사 동아리다. 정신지체아동들, 맹인들, 농아인들을 위한 봉사 동아리로서 같은 취지를 지니고 있던 신학생들이 함께 모여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도움을 줄지 함께 연구하고 봉사하는 동아리였다.

 

수화를 배우고, 특수아동의 발달과정에 대한 공부도 하였다. 주말에는 맹인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도봉산 등반도 했고, 학교 시간을 쪼개 녹음 봉사도 했다. 이래저래 바쁜 신학교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오후에 외출이 가능했다. 다른 친구들은 수요일 오후가 되면 영화도 보고, 맥주도 한잔하러 외출한다. 하지만 나나 ‘모퉁이’ 동아리 친구들은 조금 달랐다. 사회복지기관을 찾아 봉사를 한 것이다.

 

내가 맡은 사회복지기관은 서울 북가좌동에 있는 ‘바오로교실’이란 정신지체아동 교육시설이었다. 수요일마다 정신지체아동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그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4년 간 서울 혜화동 신학교에서의 추억 가운데 수요일마다 ‘바오로교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 번은 성탄절을 맞아 ‘바오로교실’ 원장 선생님의 초대로 성탄 파티에 참여한 일이 있다. 많은 봉사자들을 모두 초대하여 함께 미사하고 작은 파티를 준비한 것인데 나 역시 그 자리에 초대받았다. 다른 봉사자들과는 별로 접촉이 없었기에 나는 봉사자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신지체아동들과 한자리에 앉아 놀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물으셨다.

 

“아이고, 참 잘도 생겼네, 그래 넌 이름이 뭐니?”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나를 ‘바오로교실’ 원생으로 착각하셨던 것 같다. “제 이름이요? 저는 알베르토 신학생인데요!” 내 답변이 나오자마자 그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난 그저 내 이름을 대답했을 뿐인데, 그 아주머니는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서울 신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으로 대학원을 옮기게 되면서 나의 ‘바오로교실’ 사랑도 끝이 났다. 새로운 신학교에서는 물리적으로 ‘바오로교실’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장애우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식어갔다.

 

 

장애인은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존재일 뿐

 

2010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조사통계팀의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2월 말 현재 한국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모두 242만 9,547명이다. 이는 2000년 12월 말의 95만 8,196명에 비해 약 153.6%가 증가한 것이다. 장애 유형별로 살펴보면 지체장애인이 가장 많은 129만 3,331명에 이르고,  뒤이어 뇌병변장애인 25만 1,818명, 청각장애인 24만 5,801명, 시각장애인 24만 1,237명이다.

 

이러한 장애인 수는 정부가 공식집계한 것이지만 전체 인구 4,977만여 명의 4.9%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수임을 알 수 있다. 장애인들이 속한 가정을 4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전체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사람이 장애인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맺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가톨릭교회에서는 장애인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말하면서 장애인들이 온전한 인간 주체임을 가르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신의 회칙에서 “장애인들 또한 천부적이고 신성하며 침해할 수 없는 권리에 상응하는 온전한 인간 주체이며, 그들의 육체와 능력에 영향을 주는 어떤 제약과 고통에도 그들은 더욱 분명히 인간의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노동하는 인간”, 22항)고 표현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장애인들의 권리를 증진시키려는 정부차원의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한다.

 

만일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노동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면, 그것은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온전히 박탈하는 것이 되며, 그러한 차별은 결국 그 사회를 기능적인 면으로만 평가하는 사회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기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만 공동체 생활을 허락하여 노동을 하게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당하며,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심각한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된다.”(“노동하는 인간”, 22항)고 표현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장애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 조건, 정당한 임금, 승진 가능성, 그리고 각종 장애 철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장애인들의 정서적인 차원과 성적인 차원에서도 신경을 써야 하며,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상관없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도덕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며, 애정과 관심과 친밀함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48항).

 

장애인들은 우리와 차별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세상 안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저 조금 불편함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교회는 그들 역시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사회교리 안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아파보니 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 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5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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