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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앙과 심리: 결혼한 아들에 대한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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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4 ㅣ No.283

[신앙과 심리] 결혼한 아들에 대한 집착

 

 

D자매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지역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여 재능 기부도 매우 활발히 한다. 그런데 사소한 일에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그럴 때마다 머리와 손을 떨게 되어 같이 봉사하는 동료들이 그녀의 눈치를 많이 보는듯했다. 작은 키에 약간 마른 체구, 단발보다 조금 긴 길이의 파마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화장을 밝게 한 그녀는 70대 초반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여성스런 고운 색의 원피스를 즐겨 입고 예쁜 액세서리를 착용한 밝은 모습과 달리 어두운 표정과 긴장 시 나타나는 입술과 손 떨림이 매우 불안하게 보였다.

 

그녀는 여러 형제 중에 셋째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힘들게 공부했다. 중학교는 생산직, 고등학교는 무역회사 급사를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자립심이 있고 억척스러웠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이웃의 무고한 고발로 형무소 생활을 하며 병을 얻어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무서운 성품으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 사춘기에 예민한 감성으로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24세에 친정어머니가 외가 동네의 남자를 소개해 결혼했다. 맘에 들지 않았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에 어머니의 뜻에 따랐다. 신랑은 술과 구타가 심했다. 시어머니도 무서운 분이었고 소농가의 험한 일을 머슴 부리듯이 시켰다. 남편은 주사 폭력 외에 성적인 집착이 강해서 고통스러웠다. 밤마다 도망가려는 마음을 먹다가도 아침이면 새끼들 눈망울을 보며 주저앉았다. 완전히 무력해지고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이 왔고 30대에는 암자에서 요양하며 스님이 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아이를 앞세우고 남편이 찾아오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만이 그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D자매는 파출부 등 온갖 일을 하며 혼자 아이를 키웠고, 근검절약하여 저축하였다. 부동산에 눈을 돌려 재산도 모았다. 여유가 생겨도 일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새로 구입하는 아파트도 아들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다. 고된 날들이지만 행복한 시간이 흘러갔다.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데리고 왔을 때 그리 탐탁지 않았으나 결혼을 허락하였고 셋이서 함께 살았다. 손녀가 태어나고 며느리는 더 공부하고 싶다하여 대학진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키워주며 살림을 도왔다. 며느리가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불편하지 않게 하려 마음을 썼다.

 

그러나 점차 고부 갈등이 생기고 며느리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한다는 말을 듣고 혼자 나와 살게 되었다. 이웃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며 신앙심으로 상실감을 달랬다. 이따금 며느리로 인해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려웠으나 그럴수록 몸을 사리지 않고 봉사에 매달렸다.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느낀 주변에서 상담을 권유하였다.

 

그녀는 화가 나거나 좌절감에 빠질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살았기에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자녀를 혼자 키울 때나 며느리와 살며 살림을 도울 때나 열심히 일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감정 해소방법이었다.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며느리는 살림을 도맡아 해주는 시어머니가 고맙기보다 가정에서 ‘자기의 자리가 없다’라는 생각에 힘들어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라는 생각이 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상담 도중 지난 세월을 말하며 머리와 손을 떨 때마다 화나는 감정과 강도를 느끼도록 하였고 자신의 신체반응을 알아차리도록 도왔다. 화난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독이기도 했다.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반드시 분노를 표출해야 되고, 그것이 유용하다는 프로이드의 견해는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저명한 분노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케럴 태브리스는 분노를 쉽게 표출하면 오히려 더 격해진다고 보았다. 그는 분노 감정과 분노 사고에 반응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에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전에 자신의 행동 변화를 시도할 것을 권한다. 분노의 감정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이므로 모든 반응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보았다.

 

D자매는 자신의 전부였고 모든 것을 바친 아들의 곁에 며느리가 있게 되고, 혼자 집을 나왔을 때 자기는 피해자이고 며느리가 가해자라는 피해의식으로 미움과 분노가 마음에 가득 차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었다. 그러면서 인생 말년에 의지할 주님을 만난 것을 감사하였다. 그녀는 편안하게 그러나 조금은 슬픈 어조로 말했다. “아들은 나에게 첫사랑이고, 전부였어요. 이제 첫사랑이 떠나가네요.”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외침, 2015년 1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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