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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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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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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174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의 대화" 또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독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대화와 독백의 차이는 분명 상대방이 체험되느냐 안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하느님 현존 체험"이 우선되어야 진실한 기도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느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인어 아가씨"라는 드라마를 보려면 MBC 방송국 채널을 맞추어야 합니다. KBS나 SBS에 맞추어놓고, 아무리 보려고 해도 그 드라마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모여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드라마는 볼 수 없고, 다만 보려고 하는 방송국에 채널을 맞추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려면 "생각에 잠겨있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안되고 "생각을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 있는 잠심 또는 침묵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생각 속에서 아무리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은 마치 MBC가 아닌 다른 방송국 채널을 맞추어놓고 "인어 아가씨"라는 드라마를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잠심 또는 침묵의 상태를 위하여

 

그러면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잠심 또는 침묵의 상태"에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번째는 "여유"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도 현실에서와 같이 무엇인가 빨리빨리 하려고 합니다. "빨리 한다."는 것은 결국 생각을 만들어내고, 생각이 나면 나 중심적으로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이라 거기에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에서는 되도록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인내"입니다. 우리는 자판기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곧 자판기에 돈을 넣고 누르면 마시고 싶은 것이 나오고, 그것이 나오면 그 기계는 고장 나지 않은 것이듯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면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계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자판기에 돈을 넣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고장 났듯이,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느님도 고장이 난 것이고 이때부터 우리는 냉담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엇을 얻는 데 인내하지 않음은 ’역할 혼동’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역할에는 ’하느님의 역할’과 ’나의 역할’이 있는데 하느님의 역할을 우리가 하려고 할 때 역할 혼동에 빠지고,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주사위는 내가, 결정은 야훼께서"라는 잠언 16장 33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주사위를 던지고 하느님께서는 그 숫자를 결정해 주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주사위를 던지고 나서, 내가 원하는 숫자가 꼭 나와야 한다고, 내 청을 꼭 들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역할을 자신이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자기 종처럼 부리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혼란에 빠뜨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든 들어주시지 않든 하느님께 맡기고 인내를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 필요한 것은 "갈망 또는 열망"입니다. 기도할 때 하느님을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기도와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는 간절함이 있는 기도와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해야 하겠다는 열망이 적으면 그만큼 하느님 현존 체험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만나려는 갈망이나 열망이 간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체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 실습"을 해야 합니다. 한두 번 수영했다고 수영 선수가 되지 않듯, 기도도 우리가 한두 번 했다고 기도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를 체득하면 할수록 우리는 잠심 또는 침묵의 상태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잘 체험할 것입니다.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로 바뀌어야

 

그러므로 제대로 기도를 하려면 이 세 가지를 체득시키면서 잠심 상태에 있어야 하고, 그 상태에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도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을 흘러가게 놓아둘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을 흘려보냄"의 중요성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납니다. 누군가 나에게 욕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화가 납니다.

 

이는 우리가 그 사람의 말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내 안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욕을 해도 그것을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흘려보내는 작업이 기도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타나야 하기에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하려면 "생각하는 기도"에서 벗어나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피정에 갔다오면 무엇인가 변화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갑니까?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곧 내 식대로 생각하고 정리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내 식대로 해준다는 것입니다. 내 식대로 해주면서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그 에너지가 소진되면 다시 충전하러 강의를 듣거나 피정을 갑니다.

 

이러한 것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실망에 빠지기 쉬운데, 그것은 우리가 머리 위주의 정리식 기도 곧 "대상으로 나가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슴 중심적 기도인 "대상이 들어오는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대상이 들어오면 측은지심이 생겨 무엇인가 대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평생 갈 수 있는 기도를 하려면 가슴 중심적인 "대상이 들어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사순시기 동안에는 부활을 준비하면서 "생각하는 기도"가 아닌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진정 가슴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향잡지, 2003년 3월호, 정규한 레오나르도(예수회 신부,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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