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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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고딕 대성당의 스스로 빛나는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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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10 ㅣ No.887

[건축칼럼] 고딕 대성당의 스스로 빛나는 벽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는 신전과 그것을 둘러싼 일정한 땅을 모두 거룩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성당이 놓인 땅 전체가 거룩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곳은 성당의 벽 안쪽뿐입니다. 고딕 대성당 안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약간 어둡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조금씩 밝게 보이기 시작하며 내가 신비한 빛으로 감싸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고딕 대성당에서는 벽을 뚫어 넓게 만든 개구부를 스테인드글라스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찬 최고의 초월적인 내부 공간을 완성했습니다.

 

고딕 대성당은 될 수 있으면 벽을 많이 뚫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고딕 대성당의 엄청난 구조는 모두 내부의 신비로운 빛을 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여닫거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엄밀하게 말해서 그 자체가 빛이 삼투해 들어오는 ‘빛나는 벽’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대성당이 투명하고 얇은 막을 벽으로 삼아 에워싸여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두고 미술사가 한스 제들마이어(Hans Sedlmayr)는 “스스로 빛나는 벽”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당 안의 거룩한 장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빛으로 ‘빛나는 벽’, 발광체처럼 ‘스스로 빛나는 벽’으로 격리되었습니다.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도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성 성벽의 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 그리고 도성의 거리는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묵시 21,18-21) 요한묵시록의 이 말씀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의 집을 하늘에 매달려 있는 천상의 도시로, 벽을 금이나 보석이라는 빛나는 물질로 지은 천상의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 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교부들은 보석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투과하여 물질에 감추어져 있던 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보석을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이라고 고백하지요?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고백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퍽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신학적 의미입니다.

 

고딕의 ‘빛나는 벽’. 그 정점은 생트샤펠이라는 경당(1248년)일 것입니다. 이 경당은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그분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의 나무 조각을 받고, 이것들을 모시기 위해 왕궁에 세웠는데, 벽면 전체가 바닥에서 시작해서 천장까지 연속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있습니다. 무수한 입자로 분해된 빛의 벽, 가볍게 스스로 빛나는 막으로 에워싸인 하느님의 집이 하느님을 조용히 찬미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9일(다해) 연중 제28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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