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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앙과 심리: 직장만 구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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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08 ㅣ No.279

[신앙과 심리] 직장만 구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노구의 80대 아버지가 50대 아들을 복지관 상담실에 데라고 왔다. 모자를 깊게 쓴 아들은 매우 수척한 몸매로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의자에 앉아 상담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부탁하듯 상담사에게 아들의 상태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는데 무표정한 아들과 대조적이었다. 아들은 40대에 직장생활 도중 망상과 환청이 나타났고 분당 S병원에서 분열성 성격장애로 진단을 받았다. 생계를 위해 며느리가 카페를 시작했으나 사업은 부진하였다. 그러자 며느리는 남편을 시댁으로 보낸 후 법원에 이혼 소송을 했다. 약을 복용하면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아들은 복통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며 심해져 아버지의 걱정이 매우 컸다. 아들은 175cm 정도의 키에 매우 말랐고 한여름인데도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질문에 준비한 답을 하듯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처음에는 야구 모자를 쓰고 오다 나중에 모자를 벗고 왔다. 평소에 잘 씻지 않고 옷도 잘 갈아입지 않는데 상담이 있는 월요일에 유일하게 스스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점심식사 후 복지관 테라스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성안에 갇혀 은둔자의 삶을 사는 듯했다.

 

그는 삼형제의 맏이로 어려서 순진한 성품이었다. 무서운 아버지로 인해 주눅이 들었고 아버지가 강요하는 것들에 맞추기가 버거웠다. 아버지는 원래 다정한 사람인데 첫아들을 안고 예뻐하자 아버지의 부친 즉 할아버지가 나무랐다. 아들은 엄격하게 키워야 하며 자식에 대한 정은 마음에 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그 후 이들 가족에게 가족 간의 정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되었다. 아버지는 완벽한 성품으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개입했다.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의 교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고3에 올라가며 우수반에 들어가 서울대에 합격하기를 바랐으나 우수반에 들어가지 못하자 고2로 유급하게 하였다. 아들은 친구와 같이 3학년 진급을 하지 못하고 유급하여 후배들과 같이 공부하였으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과 힘든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순종했다. 우수반에 편입되지 못하고 지방대에 합격하자 아버지의 실망감이 컸고 이것이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 늘 주눅이 들어있는 아들을 어머니는 뒤에서 감싸 안았다. 어머니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아버지는 무섭고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분열구도가 그 안에 자리 잡았다. 작년 초에 아내와 아들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6개월간 강제 입원시켰으나 입원 기한 만료로 퇴원 후 갈 곳이 없어진 그는 본가 어머니 곁으로 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노모는 힘없고 화를 내고 불평과 간섭이 많아져 이젠 아버지와 한 편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더욱 자신의 세계에 갇혀 말문을 닫았다. 프리다 프롬 리히만은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어머니’라는 유명한 개념을 도입했는데 아동을 지배하려고 하고 공격적이며 거부하는, 불안정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신분열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팔로 알토의 이중구속(double binding)란 개념을 통해 부모가 일치되지 않는 의사소통 문제는 가족 안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관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조현병은 가족이라는 환경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가족 치료자들의 이중 구속을 들여다보면 가해자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 한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가족 전체 혹은 가족 몇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 이 가족에게 있어 할아버지, 아버지 때론 어머니조차 아들을 피해자로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당장 나가! 안 나가면 혼날 줄 알아!”라는 명령과 벌을 받으며 나가지도 어쩌지도 못했던 상황이 아들에게는 얼마나 곤혹스런 시간들이었는지. 우리나라에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모순된 행동을 하더라도 그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하는 유교적인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행동에 대하여 지적하거나 말을 할 때 부모가 벌을 주었다면, 자녀들은 모순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상황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4개월 정도 상담실에서 만나며 그는 시종일관 직장만 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였다. 수입이 있으면 아내가 받아줄 것이며 그러면 본가를 떠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부모는 여생을 정리하며 조용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채 아들에 대한 책임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상황도 답답한 현실이다. 선진국의 경우 가족과 사회의 연대가 잘 되어 이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먼 우리나라 복지의 다양한 혜택이 정신적인 어려움이 많은 가족에게도 하루빨리 제공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버지(어머니)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 3,21).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외침, 2015년 10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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