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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40주년의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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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6 ㅣ No.27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40주년의 한국교회

 

 

I. ‘잘 뜨다가’ 추락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

 

금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공의회는 미증유의 격변이 일고 있는 시대 상황에 직면하여 교회가 시대의 요청에 헌신토록 하기 위해 요한 23세에 의하여 소집되어 1962년부터 1965년까지 3년 동안 개최되었다. 교회는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형성된 교회 유산을 수직하면서도 ‘시대의 징표’에 유의하여 현대 세계 안에 형성된 새 생활 조건들과 양식에 부응하는 내적 쇄신을 도모하고 하느님 나라와 그 의의 실현을 위해 외부 세계와 우호적 자세로 대화와 협력을 도모해 오고 있다.

 

공의회가 끝날 무렵 한국교회는 소위 ‘제3세계’의 가난하고 미약한 전교 지역 교회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7,80년대를 거치는 동안 실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우리 교회는 여전히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이나 대만 등 이웃 지역 교회들과는 대조적으로 신자 수는 10배 가까이 증가한 500여 만에 이르고, 서방 교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야 했던 가난한 처지를 탈피하여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는 교회 관련 시설물들을 무난히 건립하고 운영하는 한편, 북한 동포들과 다른 외국 교회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처지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으며,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상태를 벗어나 견고한 결속력에 정초하여 전개된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적극적 현실참여 활동에 힘입어 사회 안에서 강력한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공의회 이후 역설적으로 노쇠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는 구미 교회나 침체상태를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다른 아시아 지역 교회들로부터 세계 교회 활성화를 위해 보다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 교회로 기대를 모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9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 안에서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한 민간 정부가 수립되는 등 민주화 과정이 진척되는 가운데 국민의 관심사가 정치권으로부터 벗어나 다변화되면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기간 동안 거의 범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받았던 교회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감소되기에 이르렀으며, 줄을 잇다시피 이어지던 젊은 세대와 지성인 계층의 입교 행렬도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이었던 역동적 성장세가 둔화되기에 이르렀다. 새 천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교회는 입교자 감소, 냉담?행방불명자 증가, 청소년 계층의 외면, 수도 성소 감소 등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한 신학자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물이 새 나가는 바가지’로 비유하면서 신자들의 이탈이 지금처럼 계속될 경우에 5년, 잘해야 10년의 기회가 주어져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잘 뜨는 것’ 같았던 우리 교회가 추락 직전의 위기를 맞게 된 까닭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의회 이전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로의 퇴행

 

필자는, 평소에 교회가 천년 이상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서구 사회에서 근세 이래 주변 집단으로 서서히 밀려나게 된 결정적 원인을 당국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간과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아닌 신성 로마 제국교회의 전통 요소들을 고수하는 데 급급한 데에서 보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7,80년대에 이룩한 역동적 성장세를 90년대 이후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 또한 ‘시대의 징표’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지 않고 역행하는 지도자들의 안일한 자세에서 보고 있다. 그곳에서 근세 이래 진행되는 탈-교회 과정이 우리 사회 안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획기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서구 교회보다 미구에 더 참담한 처지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공의회는 교회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 근원을 두고 있는 ‘하느님 백성’이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되는 신비체적 공동체인 ‘성사’로 규정하였다. 교회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신분을 엄격히 분리하는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를 강조하던 전통적 입장과는 구별되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취택된 ‘하느님 백성’ 개념은 교회 모든 구성원들의 존재론적 공동성과 동등성을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보다 상위에 둔다. 여기서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명백히 진술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의 신분상 차별을 원천적으로 지양하는 복음적이고 친교적인 교회관이 개진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는 공의회 이전의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관이 오히려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교구장 주교들은 중세적 제왕처럼 지배권을 행사하고 최근 들어 구성원들의 상하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친교 공동체의 봉사적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고대 신정사회의 절대 통치자처럼 처신하고 있다. 주교들의 극소수 측근에 속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성직자들은 비인격적 관리 대상으로서 거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사목 현장에 배치되어 시한부 직무를 수행하는 소외된 처지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엄연히 참여하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병신도’라고 폄하할 정도로 교계제도 중심의 수직구조 안에서 ‘가장 낮은 민초’의 자리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발발 이래 자유?평등?박애 이념에 기초한 수평적 민주질서가 전근대의 수직적 군주질서를 대치하는 과정이 서구 사회에서 시작되어 20 세기 이래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진척되는 중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 안에서 한국 교회는 ‘시대의 징표’와 동떨어진 퇴행적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지성인과 청소년 계층이 실망한 나머지 대거 등을 돌리는 실로 안타까운 사태가 현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 ‘영성 빈곤’의 외화내빈 교회

 

한국 교회 안에서 지도층에 속하는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적 관료화 경향은 경제 수준의 향상과 함께 세속화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현실 사회 안에서 대조적으로 깊고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구도자들로부터 발해지는 영적 갈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영성의 빈곤을 유발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지난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 인류의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와 도구로서의 성사’로서 ‘결함 없이 거룩하다’고 규정하였다. 모든 교회 구성원들은 성화성소에로 불림 받았기에, 주위를 감화시킬 수 있는 정도의 성덕을 닦을 것을 요청받고 있다. 1980년대 이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강력히 촉구되는 ‘새로운 복음화’ 과업 수행을 위해 신앙인들에게는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한 영성적 성화를 이룩한 기반 위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적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으로 질적으로 변화시켜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 건설에 이바지해야 할 중차대한 과업이 부과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의 노쇠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고 앞으로 세계적 중요성이 한층 더 드높아질 대다수 아시아?태평양 지역 교회들의 침체 내지 위축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 상황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유일한 지역 교회로 지목받고 있다. 아시아 대륙 교회 안에서 외형적 규모와 사회적 위상이나 재정 능력 면에서 우리 교회처럼 세계적 차원의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한 아시아 지역 교회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내적 성숙 내지 역량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복음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진정한 영성의 결여를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사이에는 꽤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우스개 소리가 오간다. “천당에는 한국 성직자들의 입과 수도자들의 귀, 그리고 평신도들의 신발들로 가득하다.” 이 블랙 유머 안에는 한국교회 영성의 현주소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직자들은 입만 열면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소리 높여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영성적 수덕을 연마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보다 교회권력을 더 많이 행사하는 관료로 살아가고 있다. 수도자들은 복음삼덕의 서원을 발하고 영성 강의나 연수, 또는 피정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많은 경우에 거의 준-성직자처럼 일상을 살게 되면서 영성이 깊이 내면화되지 못한 처지에 머물러 있다. 평신도들은 신앙을 고백하고 성사를 수령하며, 제반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신앙생활을 하는데 열심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외된 가운데 타율적 신앙생활을 하는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생겨나는 깊은 영적 갈망을 충족시켜 줄 지도자를 찾지 못하고 불교나 소위 신영성 흐름에 빠져드는 신자들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3.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한국교회의 서구편향성

 

지난 공의회는 다른 그리스도교파와 종교계, 그리고 일반 세속 사회에 대해 근세 이래 지속되었던 교회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며 연대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래서 그리스 정교회를 위시한 다른 그리스도 교파들도 교회적 공동체로 규정될 수 있다는 파격적 입장이 천명되었으며, 비그리스도 교계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함축적으로 긍정되었으며, 공동체는 비그리스도교 세계 안에서 드러나는 진실하고 선하며 고귀한 가치를 긍정하고 수직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공의회는 대외적으로 보여준 개방적 입장과 같은 맥락 안에서 대내적으로 비서구권 지역교회 안에서 전통적 고유 종교 문화 자산을 교회 생활 안으로 수렴하는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를 통하여 교회와 비 그리스도교적 문화가 상호해후를 통해서 각기 풍요하게 될 것이고 교회 생활이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풍토에 적응하게 될 것이며, 개별 민족이나 문화의 전통이 보편적 교회의 일치 안으로 통합되면서도 고유성을 지님으로써 진정한 보편성의 풍요함에 기여하게 되는 까닭에 신앙의 토착화 작업이 장려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로마, 바티칸 교황청은 더 이상 과거의 로마 교황청이 아니다. 수장인 교황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성성 장관이나 평의회 의장을 위시하여 수많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 대륙과 국가 출신으로 구성되어 문화적 다양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가운데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종교, 그리고 현대 사회 각 영역과 개방적 자세로 대화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으며, 인류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연대적 협력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획일적이 아닌 보편적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교회는 로마나 다른 지역 교회들에 비해 공의회 이전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로마-서구적 교회를 수호하는 데 주력하는 나머지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다른 종교들과의 심층 차원에서의 대화와 세계 안에서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심층 차원에서의 체계적 연대활동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으며, 아시아 내지 한국 고유의 종교-문화 자산을 교회 생활 안으로 수렴하는 토착화 작업에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신학 사상, 전례 양식, 신심 운동, 영성 수행, 교리 교육, 건축 양식 등 교회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 교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새 천년기에 즈음하여 교회가 자랑스레 보급하는 소공동체 사목 모델도 사실은 서구인들에 의해 계발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공의회가 강력히 촉구한 토착화 작업은 신앙의 순수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당국자들로부터 경원시되면서 원점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서구 사회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서구형 교회 생활양식이 한국의 젊은 세대들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되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II. 한국교회의 재 비상을 위한 도정 모색

 

한국교회가 추락의 위기를 극복하고 내외로부터 발해지는 기대에 부응하여 다시 활기차게 부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로 한다.

 

 

1. ‘사랑의 문화 · 문명’ 건설을 위한 ‘친교적 교회’로의 쇄신 노력

 

최우선적으로, 한국교회는 지난 공의회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 공동체의 구조 개선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공의회 이전의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로부터 ‘친교적 교회’로의 쇄신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복음적 제자공동체 안에서 당시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사회 질서와는 대조적으로 자유?평등?형제애 정신에 입각한 ‘나눔과 섬김의 형제-자매의 친교적 생활양식’이 이미 생활화되고 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적 친교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성화에로 불림을 받고 상호 간에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대표직 수행자를 선임하는 데 있어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도회에서 수도원장 내지 총장들이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여 회원들의 직접 선거나 대의원들을 통한 간접 선거 과정을 거쳐 대표 직무를 수행하고 임기가 끝나면 평회원의 신분으로 돌아가듯이, 교구장들 역시 전 교구 사제들의 의사 수렴을 거친 뒤에 교황청의 임명 절차를 밟아 선임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구장들은 사제인사 발령 시에 서구 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수렴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써 신부들이 주체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사제직을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상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도자들은 서원생활을 통하여 복음적 영성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정수를 드러내는 삶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이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성직자들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을 섬기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겸허하게 섬기는 자로서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복음의 생활화를 통한 자기쇄신을 이룩한 기반 위에서 현실 세계 안에서 만연일로에 있는 ‘지배와 정복을 지향하는 죽음의 문화?문명’을 지양하여 ‘공존과 섬김을 지향하는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을 건설하는 복음화 과업을 신실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막중하고 지난한 과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연대의 세계화’ 내지 ‘소외 없는 세계화’ 노력을 통하여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종교계, 그리고 선의의 개인들과 단체들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진정한 자세로 생활함으로써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실감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2. ‘삶 · 영성 중심의 토착화된 교회’ 지향

 

한국교회는 민족의 복음화를 이룩하고 세계교회의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이론적 교리와 법규정 중심의 경성(硬性)적 제국종교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실천적인  삶과 영성 중심의 연성(軟性)적인 복음?동아시아?한국적 교회의 생활양식’으로 전환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취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3 세기에 걸친 박해시기를 끝내고 공인된 종교로 급부상하는 과정에서 로마제국의 제반 문물제도와 법규정을 그대로 수용하여 교회법에 정초한 제국종교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교회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과 현실적 삶의 심각한 괴리현상이 팽배하게 되면서 교회와 신앙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적 비판이 도처에서 일고 있으며, 지성인과 청년 계층을 중심으로 교회로부터의 대거 이탈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교회 당국은 이러한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교회생활의 틀 전체를 체험적 삶과 영성 중심으로 전환하는 쇄신 작업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본시, 동아시아와 한국 사회 안에서 종교란 법 규정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대두되는 현실 문제가 해결되거나 영적 갈망이 진정되는 초월적 영역으로 자리 잡아 왔으며, 종교 지도자들도 현실적 종교기관의 관리 내지 사법 집행관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초탈한 자세로 영적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일반 대중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내적 갈망의 충족을 체험토록 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간주되어 오고 있다. 여기서 종교지도자의 진정성은 신앙의 정통성 여부를 감독하는 관료적 처신에서가 아니라, 물신 풍조가 만연한 사회 현실 안에서 탈속적인 자세로 추구되는 청정한 수행자적 삶에서 인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구장들은 행정 내지 감독 관련 업무를 총대리를 위시한 대리인들에게 일임하고 자신들은 오로지 영적인 사목 생활에 전념하면서 사제들의 영적 고양을 선도하는 한편, 교구민 전체의 복음적 진정성을 강화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생활하며, 일반 성직자들도 행정 관련 업무를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신자들의 영적 갈증을 진정시켜주는 사목자로서의 삶에 전념하게 되는 구조상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본다. 아울러 평신도들도 일상 속에서 고래의 미풍양속을 존중하면서 복음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앞날은 형식적 제도와 법 중심적인 재래의 생활양식을 탈피하고 영적 삶 중심으로 토착화된 교회풍토의 창출 여부로 성패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 교회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시대적 요청에 상응하여 현실 초월적으로 영성적 생활을 열렬히 추구하는 한편,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소외된 현실을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 으로 변형시키고자 창의적 자세로 적극 투신할 때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 글은 「인천주보」 “빛과 소금”란에 1월 2, 9, 16, 23, 30일과 2월 6일자에 6회에 나누어 발표된 기고문이다.

 

[심상태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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