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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더 파더 -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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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2 ㅣ No.1258

[영화 칼럼] 더 파더 - 2020년 감독 플로리안 젤러


기억하게 하소서!

 

 

“그럼 나는 도대체 누구지?”

 

안소니는 이렇게 말하며 흐느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쓰고 불렀던, 팔십 평생 삶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안소니’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봅니다. “이름 좋네.”

 

치매는 그의 현재와 과거의 시간들을 조금씩 앗아갑니다. 그에 따라 시간 위에 새겨진 기억들도 하나둘 잃어갑니다. 그 느낌을 안소니는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아기 잎사귀 하나만 남아서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보러오면 좋을 텐데, 엄마가 보고 싶어.”

 

기억은 한 인간의 실존이며, 역사입니다. 철학자 존 페리는 기억은 곧 영혼(불멸성)이고, ‘나’를 ‘나’이게 하는 것(동일성)이라고 했습니다. 치매는 그것을 허물어 버립니다.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소중한 관계들을 지워버리고, 쌓아온 시간들을 증발시킵니다. 그 무참함에 저항이라도 하듯 안소니는 유난히 자신의 손목시계에 집착하지만, 그것으로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 ‘영생’이 아니라,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사라져가는 소멸.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외롭고, 힘들고, 혼란스럽고, 슬픈지를 애잔하고, 날카롭고, 가슴 아프게 드러낸 영화 <더 파더>는 결코 별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85세가 넘으면 3명 중 1명, 65세만 넘어도 10명 중 1명은 안소니처럼 살고 있거나, 살아야 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그는 지금의 ‘나’ 또는 ‘나의 아버지’, 멀지 않은 미래의 ‘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가족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과 안타까움을 안겨주는지도.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정작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절망과 불안, 외로움과 슬픔을. 설령 자신이 당사자라고 해도 치매는 그것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해 줄 수 없게 만드니까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사상 최고령(84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배우 안소니 홉킨스는 스스로 그 주인공(치매 환자)이 되어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이상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내 집에 낯선 남자가 주인처럼 행세합니다. 딸 앤(올리비아 콜먼 분)의 행동도 의심스럽습니다. 앤의 여동생 루시의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없어지고, 루시를 닮은 젊은 간병인 대신 다른 여자가 나타납니다. 가구가 자꾸 없어지는가 하면, 집안 모습도 바뀝니다.

 

그도 아주 잠깐씩 기억이 돌아오지만,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착각과 환상에 빠져들고 몇 주 전부터 자신이 요양원에 와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내가 여기 왜 있지?”하고 딸을 찾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고 무서워 스스로 기억을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병원 복도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안소니의 막막한 표정,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텅 빈 눈,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고 나오는 앤의 젖은 눈빛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 모두 살아있는 동안 제가 ‘저’를 기억하게 하소서!

 

[2021년 5월 23일 성령 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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