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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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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02 ㅣ No.1695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에 대하여 (1)

 

 

기도는 노력입니다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도는 대화이며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한편으로, 기도는 자기를 위하여 바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신앙인은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가끔 “기도 안에서 만나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사람들과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기도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대화이며 일치의 도구입니다. 신앙인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진정한 대화는 일치를 가져옵니다.

 

신앙생활의 여정 속에서 기도에 대한 숱한 말과 가르침을 듣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도에 대해 잘 모르고, 기도가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도에 관한 공부와 기도를 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노력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의향과 인내와 결심이 필요한 노력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기도: 새 생명의 숨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1, 16쪽). 기도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기도하는 방식이 복잡하고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기도하려는 마음과 태도를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제 방식대로 기도합니다. 저는 성무일도를 매우 좋아해서 손에서 내려놓지 않습니다. 날마다 드리는 미사, 묵주기도 등. 저는 기도할 때 늘 성경을 펼칩니다. 그러면 평온해집니다. 이게 비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기도’, 15쪽).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도하려는 마음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 노력입니다. 우리의 삶은 노력을 통해 변합니다. 노력하지 않는 삶은 그저 흘러가는 삶일 뿐입니다. 신앙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지 않는 신앙,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삶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기도를 가까이할 때에 삶이 바뀝니다”(‘기도’, 16쪽).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닮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 가르치셨고 당신 자신이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하십니다. 바쁘고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마태 14,23). 예수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주시는 분”(로마 8,34)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1-32).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기도의 응답이 없는 느낌이 들 때, 어떤 힘든 고통과 시련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악마의 가장 교활한 유혹은 바로, 어떤 특별한 시련을 겪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셨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기도’, 19쪽). 하지만 “주님께서도 이러한 유혹을 체험하셨고 이를 이겨 내셨습니다. 처음에는 올리브산에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주님께서도 아버지 손에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기도’, 19쪽).

 

우리가 주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신앙의 빛이 사라져서 어두운 밤 같은, “믿음의 일식(日蝕)”의 순간에도 우리는 깨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그저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참회(회심)만이 우리를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기도’, 20쪽).

 

 

용기 있는 기도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주저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로 기도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기도 합니다. 거룩한 곳에서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저 용기 있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의 바른 기도가 아니라, 꾸준히 싸워나가는 용기 있는 기도가 필요”(‘기도’, 14쪽)하다고 말입니다.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피정 센터에서 기도하는 것도 좋고, 감실 앞에서 침묵하며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경건한 자세와 태도로 기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간구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그저 하느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청하는 자세만 있으면 됩니다. 기도의 내용과 태도를 예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용기 있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는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청하는 일이지만, 단순히 논리적인 요구나 이기적인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간절한 지향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은, 믿음과 은총과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기도’, 24-26쪽). 믿음과 은총과 성령 안에서 우리의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방식으로 또 때로는 저런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히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기도’, 22쪽) 하지만 세속의 원인과 결과의 논리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속적 논리로 하는 요구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요구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야고 4,2-3 참조). [미사에서] 신자들을 기도로 초대할 때, 그 기도 지향은 상투적이거나 근시안적인 내용의 경문에만 의지하지 말고 교회 공동체와 세상의 구체적 필요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기도’, 23쪽) 결국, 기도는 우리의 이기적인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이기적인 필요에 따르는 요청과 간구가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믿음과 은총과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켜서, 모든 것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1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에 대하여 (2)

 

 

예수님은 기도의 모범

 

신앙은 예수님을 닮는 일이라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서 대화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결정적인 때가 되자 당신 제자들을 위하여, 당신과 함께 있어 온 이들을 위하여, 장차 당신에게 올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요한 17,20 참조).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기도: 새 생명의 숨길’, 27쪽).

 

기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십니다. 우리 역시 기도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은총으로 받습니다. 이 성령의 은총은 우리에게 일치와 참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가 되도록 그리고 우리 안에 당신의 기쁨이 머무를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기도’, 29쪽).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루카 11,1-4)은 두 가지 비유로 이어집니다. 이 비유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대하는 벗의 자세와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자세를 본보기로 드십니다(루카 11.5-12 참조). 둘 다 하느님에 대한 충만한 신뢰를 가지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것입니다”(‘기도’, 31쪽). 기도는 우리들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비록 우리가 어리석고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그저 하느님께 담대하게 끊임없이 매달리고 청한다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우리 손에 쥐어진 첫째가는 중요한 연장입니다! 꾸준히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은 하느님을 설득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인내를 더욱 강하게 하는 데에 필요합니다”(‘기도’, 31쪽).

 

 

기도는 주님의 현존 안에서

 

기도는 영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육체를 지닌 인간은 기도할 때에 주변 환경과 장소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감실 앞에서, 거룩한 성전 안에서, 조용한 자기만의 공간 안에서 기도에 더 충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기도는 모든 물적 조건을 뛰어넘습니다.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기도는 기억과 기념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또한 치과에서 기다릴 때나 하루의 어느 때든 속으로 기도합니다. 저에게 기도는 언제나 기억과 추억이 가득한 ‘기억의’ 기도입니다. 제 삶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 교회나 개별 본당에서 하신 일을 기억합니다”(‘기도’, 33쪽). 기억은 때와 시간, 장소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주님을 기억하는 행위로서의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곳에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억 안에서, 우리의 기도 안에서 현존하십니다. 결국, 기도는 주님의 현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미사는 기도입니다

 

미사는 교회 공동체가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별적 기도 안에서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미사입니다. 미사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탁월한 기도입니다. “미사는 최고의 기도이고 최상의 기도인 동시에 가장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실제로 미사는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통하여 하느님과 이루는 사랑의 만남입니다. 미사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기도’, 34쪽). “전례 기도는 전례 주기에 맞는 구조와 운율에 맞는 경문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님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온 교회의 표현입니다”(‘기도’, 39쪽)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이며 만남입니다.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미사 안에서의 만남은 박물관과 행사장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 아닙니다(‘기도’, 37쪽). 미사는 단순히 옛 사건과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는 형식적이고 요란하고 화려한 행사를 기계적으로 거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는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입니다”(‘기도’, 37쪽).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위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먼저, 주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 뵈러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으로 이 만남을 준비하는 것입니다”(‘기도’, 36쪽) 더 나아가 때때로 침묵 그 자체가 기도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대화로서 기도한다는 것은 침묵 안에, 예수님과 함께 침묵 안에 머무를 줄 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화 안에는 침묵의 순간들이 있습니다”(‘기도’, 35쪽).

 

또 한편으로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위해 요청되는 태도는 ‘놀라워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마음을 열어 놀라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기도’, 37쪽). 어린이처럼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위해서는 신앙의 근본적이고 참다운 열망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열망은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픈 바람, 다시 시작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기도’, 38쪽) 하는 열망입니다. 이러한 열망과 갈망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침묵의 준비와 어린이 같은 열린 마음으로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회심과 거듭남에 대한 열망의 자세로 미사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그 미사 안에서 주님과의 일치와 성화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미사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하는 마음과 자세로 참여한다면, 구원의 은총이 주는 경이로움을 더 구체적으로, 더 확연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2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에 대하여 (3)

 

 

기도와 삼위일체

 

기도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일입니다. “아버지께 교회를 맡겨드리고, 사람들을 맡겨드리고, 상황들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기도: 새 생명의 숨결’, 42쪽). 기도는 하느님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하느님 마음은 사랑의 마음”(‘기도’, 42쪽)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사랑의 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최상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기도’, 40쪽).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닮는 일이며, 예수님의 인격에 결합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의지와 우리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성령의 자비로우신 활동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가져가고자 하시는 성령의 자비로우신 활동입니다”(‘기도’, 42쪽). 당연히 기도 안에서 복잡한 내용을 말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 저희를 굽어살펴 주소서”라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는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성부께 맡기시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성령의 인도에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결국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는 일입니다.

 

 

기도는 흠숭입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우리의 소망을 청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위해 대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감사와 찬미, 청원과 전구의 내용과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더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기도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도의 궁극적 지향과 핵심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흠숭의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흠숭의 정신은 성경의 첫 계명 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너에게는 다른 신이 없다.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해야 한다. 이는 아무런 청원도 감사도 찬미도 없이 몸을 낮춘 겸손한 마음으로 오로지 흠숭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기도’, 41쪽). 기도의 본질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효율만 추구하는 세계에서 흠숭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오늘의 교회 역시 흠숭의 정신이 부족하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적합니다(‘기도’, 40-41쪽).

 

“흠숭은 유일하신 하느님 앞에서 머무는 것입니다”(‘기도’, 40쪽). 기도는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에 앞서, 청원과 전구에 앞서, 그저 하느님 안에 머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일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기도는 이기적 목적과 지향을 두는 실천과 행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약간의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좋은 실천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에게서 유용한 것을 얻으려는 신심 수단도 아닙니다”(‘기도’, 41쪽). 기도는 그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고 또 체험해야 하는 것을 표현”(‘기도’, 39쪽)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일상의 정직한 체험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우리 삶을 바라보려는 일종의 성찰이기도 합니다. 즉,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는[신앙인은] 임신부터 노년에 이르러 쇠약해질 때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가치를 위하여 싸우고 목소리를 높이고 수호하는 이들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다른 이들과 창조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반영합니다”(‘기도’, 40쪽). 기도는 이기적 욕망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기도는 오직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을 향한, 사랑을 위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사랑이 없는 기도는 거짓 기도입니다.

 

 

기도는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이며, 하느님과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도는 하느님께 청하는 일이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청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일입니다. 삶의 여정과 운명의 곡절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위로와 도움 없이 건너갈 수 있는 생은 없습니다. 아무도 자기 힘만으로 생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은 언제나 도움을 요청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도우심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기도’, 47쪽). 기도는 이 험난한 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도구이자 무기입니다.

 

주님께 청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인가를 청하는 기도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기도’, 44쪽). 청원 기도는 믿음에서 출발해서 믿음으로 청하는 일입니다. 청원 기도는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할 때는 그저 우리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하면 됩니다. 믿음은 주님께 대한 신뢰와 주님께 청할 수 있는 용기를 포함합니다. 청원 기도는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청할 수 있는 용기만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청하는 그 은총에 다다르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기도’, 45쪽). 결국, 청원 기도는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용기입니다.

 

기도는 그저 하느님께 밤낮으로 부르짖는 일입니다(‘기도’, 46쪽). 기도에서 중요한 사항의 하나는 인내와 지속성입니다. 당장 눈앞에서 우리의 청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끊임없이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말로 설득하려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오히려 항구한 기도야말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게 당신과 함께 날마다 매순간마다 싸워나가자고 우리를 부르시는 한 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기도’, 48쪽). 기도는 아름답고 화려한 말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끈기와 인내로 하는 행위입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신앙 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에 대하여 (4)

 

 

기도의 시작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회당의 공적 기도에 참여하셨고, 외딴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말씀도 시편 기도였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기도의 모범이셨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기도 역시 공부와 배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기도: 새 생명의 숨결’, 117쪽).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주님의 기도’에서 그 핵심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 기도의 원형”(‘기도’, 81쪽)입니다.

 

“인간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열망인 인간의 기도는 아마도 우주의 가장 짙은 신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기도’, 53쪽). 기도의 신비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지엄한 초월자로 인식하면 어렵고 두려워서 기도의 신비로 잘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그 담대함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기도의 뿌리입니다”(‘기도’, 106쪽).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기만 해도 기도의 신비는 시작됩니다. “‘하늘에’라는 표현은 거리감이 아니라, 사랑의 근본적인 다양함, 사랑의 또 다른 차원을 표현”(‘기도’, 80쪽)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표현은 친밀함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도는 시작된 것입니다. 어쩌면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친밀함으로 이 세상의 삶을 건너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함을 혼자서만 간직하지 않으시고, 바로 아버지와의 이 관계 안으로 우리를 이끄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기도’, 53쪽).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며 정점이고 동시에 종점일 것입니다.

 

 

기도는 울음이며 외침입니다 – 청원기도

 

기도는 신비이지만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배부른 삶에서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자리에서 기도는 시작됩니다. “굶주리고, 눈물 흘리고, 투쟁하고, 고통받고,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서 기도가 자리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첫 번째 기도는 첫 호흡을 할 때 터뜨린 그 울음입니다”(‘기도’, 55-56쪽).

 

복음에 나오는 바르티매오의 맹인(마르 10,46-52)처럼 ‘믿음을 갖는 것은 고함을 지르는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치유된 결정적인 요인이 그의 기도임을, 그를 조용히 시키려는 많은 군중의 ‘상식’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외친 그 기도임을 알려줍니다(‘기도’, 56-57쪽 참조). 이처럼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우리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부르짖고, 외치는 일입니다.

 

가끔 우리는 청원기도를 제 욕심을 차리는 이기적인 기도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수한 기도는 오직 흠숭과 찬양과 찬미와 감사의 기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품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무엇이든 청할 수 있습니다. “청원 기도는 진정하고 자발적인 기도입니다. 청원 기도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신앙 행위입니다. 작고 죄 많고 보잘것없는 내가 품고 있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무엇인가를 청하는 기도는 매우 고귀한 것입니다”(‘기도’, 58쪽).

 

‘주님의 기도’는 모두 일곱 개의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의 세 개는 하느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에 대한 청원입니다. 후반부의 네 개는 우리의 필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유혹에서의 도움’, ‘악에서의 해방’에 대한 청원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신비와 아름다움과 선하심에 대한 관상이며, 우리가 필요한 것들에 대한 진실되고 용기 있는 청원입니다(‘기도’, 81쪽). 결국, 모든 진정한 기도는 언제나 관상이며 동시에 청원입니다.

 

 

기도는 ‘나’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에서 개인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나’가 없습니다. 오직 ‘당신’과 ‘우리(저희)’만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신 ‘당신’과 ‘우리’가 함께 기도합니다”(‘기도’, 75쪽).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한 공동체인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면 기도는 하느님께 올라갈 수 없습니다”(‘기도’, 75쪽).

 

기도는 연대입니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함께 합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우리가 언제나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기도를 하지만, 기도의 순간에 이미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도는 청원 기도이며 동시에 전구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 ‘우리’는 나 자신을 혼자만 평온하게 있지 못하게 하고, 나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기도’, 77쪽).

 

 

기도는 변화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변화를 낳습니다. 기도는 현실의 변화와 우리의 변화를 낳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기도가 갖는 변화를 강조합니다. “기도는 현실을 바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건들이 바뀌거나 우리 마음이 바뀝니다. 언제나 바뀐다는 겁니다”(‘기도’, 67쪽). 물론 때때로 눈앞의 결과가 잘 보이지 않고 변화를 잘 체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다 보면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믿고 맡기는 일입니다. 기도와 기도를 통한 변화는 무엇보다 신뢰와 끈기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끈기 있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는 분명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령입니다(루카 11,13). 기도할 때, “우리가 하느님 자녀라고 인식하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기도’, 121쪽). 기도는 우리를 주님 닮은 신앙인이 되게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위대한 예술가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예수님과 닮은 모습을 되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기도’, 178-179).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주님 닮은 참 신앙인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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