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과 함께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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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5 ㅣ No.890

[레지오 영성] 성모님과 함께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엘리야를 부르시고, 성모님을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황송하게도 나도 불러주십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특히 성모님을 따르도록 성모님과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사의 알림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신 성모님의 관대함과 충성심에 감화되어 성모님과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는 주님의 종이요 성모님의 도구로서 살아가고자 자신을 투신한 사람들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우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옷 입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분께서 수행하신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을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이라는 말에 좀 더 머물러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 각자는 아주 다양하고 또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다양함과 다름이 우리가 함께 일하거나 봉사하는 중에 왕왕 서로 갈등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다양한 모습을 결코 간과할 수 없으며 이를 잘 다루며 포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나로서 부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첫 번째 부르심은 나를 나로서 있게 하신 이 세상으로의 부르심, 즉 나의 탄생입니다. 나의 부모님을 도구 삼아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셨습니다. 즉, 그분께서는 나를 나로서 부르시고 나로서 있게 하십니다. ‘우리’라는 복수가 아니라 고유한 나, 바로 ‘나’입니다. 이 근원적인 부르심 안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다양한 부르심은 이 고유한 원초적인 부르심에서 시작되고 계속되며 펼쳐집니다. 그분께서 불러주시는 나만의 이름, 비교되거나 반복될 수 없는 나의 고유성이 되풀이되고, 펼쳐지고,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고유하고도 소중한 작품인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하며, 나를 불러주시는 그분 안에서 그분이 불러주시는 나 자신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되도록 격려해주고 지지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과 지나치게 견주거나 이러한 비교의식에서 어설프게 다른 사람 흉내까지 내어 자신의 고유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왜곡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공들여 빚어내신 그분의 고유한 작품이요 그분의 혼이 서린 모상이며, 각자의 삶 속에는 그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과 설계가 담겨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시편 139,13-16)

 

 

우리는 모두 고유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부르심 받아

 

예수님께서 마르타의 집에서 하신 말씀도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여기에서 스승님의 발치에 앉아 가르침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은 당시 여인들의 평범한 모습은 결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칭찬해주시고 변호해주시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물론 시중드는 마르타의 몫도 필요하며 마르타의 역할이 있었기에 마리아가 자신의 몫을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르타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였다면 마르타도 예수님의 감사와 칭찬을 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각자의 몫을 서로 존중해주고, 다양한 관계를 통해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결국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을 낳고 키우신 우리의 성모님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고유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똑같은 일을 하여도 하는 방식이나 그 결과도 많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격과 재능과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 다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이기도 합니다. 실로 우리는 어떤 성과주의나 능력주의나 통제하기 쉬운 획일화의 틀 속에서 한 인간을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손길이 담긴 그분의 놀라운 작품으로서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빛을 지녔으며, 온 우주보다도 위대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가족들과 함께 사는 이웃들은 참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성소의 기본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부르심, 즉 나의 개인 성소를 생각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근본적인 성찰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불러주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바로 나를 창조하여 있게 하신 하느님,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존재를 떠받쳐 주시는 하느님, 나를 활동하게 하시고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일하고 싶어 하시는 놀라우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내가 활동할 수 없을 때는 당신 손 안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편히 쉬도록 하시며 끊임없이 그분을 믿고 신뢰하도록 초대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각자에 대한 그분의 부르심은 그분의 생명으로 부르시는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따라서 이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도 사랑이어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성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때론 배신과 모욕과 박해와 역경과 고통과 상처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상처, 미래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특정한 일들이나 우리가 살아내는 어떤 삶의 양식이나 우리가 속해있는 여러 공동체는 사실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의 부르심에는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기도와 활동으로 악과 싸우며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군사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교회의 사명을 위하여 성모님과 함께 이 치열한 영적 투쟁의 선봉에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며 뱀의 머리를 바수시는 그분의 사명에 기꺼이 도구가 되고자 합니다. 한 생을 아들 예수님을 위해 바치신 어머니,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구원 성업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사명에 더욱 깊게 나아갑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과 일치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비결은 바로 성모님입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의 성소의 기본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입니다.

 

“레지오는 성모님의 깊은 겸손과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갖가지 고행과 영웅적인 인내심, 티 없는 순결, 천상적 지혜,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 그 높은 믿음의 덕을 따르고자 갈망한다.”(교본 제3장 레지오의 정신)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9월호, 안정호 이시도르 신부(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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