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풍랑 속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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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623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01) 풍랑 속의 영혼들

 

 

Q. 루카복음 8장 22절을 보면 주님께서 풍랑 속에서 주무시면서 마치 제자들을 시험하시려는 듯한 느낌을 주는 행동을 하십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왠지 주님께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일부러 제자들을 조롱하듯 시험하신 것일까’ 하는 불편한 생각 때문에 이 복음을 묵상하기를 일부러 피할 정도입니다. 성당 선배 신자 분들에게 이런 제 생각을 말했더니 “그것은 불경죄에 해당된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자들이 조롱당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문제가 있나요?

 

 

A. 루카복음 해당 구절에는 주님과 제자들의 미묘한 감정이 잘 묘사돼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가서 흔들어 깨우며 ‘선생님,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다 어떻게 되었느냐?’ 하시며 책망하셨다. 그들은 두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데 바람과 물결까지도 그 명령에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렸다”(루카 8,22-25).

 

얼핏 보면 주님께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모른 체하시다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성장심리 관점, 생존심리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선 제자들은 평범한 신앙인들이 역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음에 임박했을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끼자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겸손함을 보입니다. 즉, 자신의 힘과 머리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을 내려놓고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게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려운 일, 앞날이 캄캄할 정도로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는 대부분 기도하지 않고, 불안한 생각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머리로 해결하려고 하다 결국은 좁은 늪과 같은 불안감에 빠져 심리적 질식사를 당하곤 합니다. 평소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에 반해 제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낮은 자의 겸손함을 보입니다. 또 제자들은 주님을 부를 때 혼자 하지 않고 함께 몰려가 도움을 청하는 기도의 자세를 보입니다. 자폐 성향이 있는 사람 혹은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일이 잘 해결이 안 되면 극단적 방법으로 자기 파괴적인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럿이 함께 가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건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회는 여럿이 모여 하는 미사야말로 기도 중의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제자들 모습은 ‘미사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해 시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조용히 깨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화를 내든 말든 소리치면서 주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죽게 됐는데 왜 책임 있게 대응하지 않느냐고 주님을 몰아세우는 듯한 말을 합니다.

 

많은 분이 청원기도를 할 때 ‘내가 죄를 많이 지었는데,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는 의문과 갈등을 품고 기도합니다. 소위 이것을 신경증적 기도, 눈치꾸러기 기도라고 하지요. 이러한 기도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기에 기도 결과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의 불안함을 떨어버리려는 의도와 확실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 주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청합니다. 바로 신앙인들이 본받을 만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했을까요?

 

만약 당신을 흔들어 깨운 사람들이 제자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당신의 대를 이을 사람들,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미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르침을 주었고, 기적을 목격하게 해준 제자들이 위기에 닥치자 어린아이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시고, 공동체 책임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병자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의지처로 내어주시고 치유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 뒤를 이어 수많은 사람의 정신적 지도자가 돼야 할 제자들에게는 엄격한 내적 훈련, 역경 속에서도 잘 버티는 훈련, 즉 특수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님은 주님의 이러한 깊은 뜻을 잘 이해하며 성경을 읽어야 왜곡된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19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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