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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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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9 ㅣ No.1233

[생명 사랑]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 - 주님, 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저희 원을 채워주소서
(조수선, 2006년작 브론즈, 170×300×30,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 한국).

한국 가톨릭교회의 문화유산이며 그리스도교 미술의 진명목인 교회미술작품들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 바로 우리성당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톨릭 미술가들이 만난 하느님과 그분께서 미술가들에 보여주신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성 미술품들은 우리 본당 안 곳곳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그 놀라운 업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당은 그래서 교회미술을 만나는 고유하고 독립적이며 독특한 공간입니다. 우리가 매일 찾아 기도하는 성당 안에서 가톨릭 미술가들, 그들이 만나고 체험한 하느님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젊은 여성조각가 조수선은 우리에게 특별한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두 자녀의 어머니이며 한 남성의 부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고유한 여성으로서 십자가를 대합니다. 그의 십자가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 제대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독특함은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나무를 생략하였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십자나무를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당신이 구원의 십자가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매달리신 손과 발에 못 자국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서 예수님의 등 뒤의 공간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조각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십자가를 제대 벽면에 붙이지 않고 제대 오른편에 ‘세워두었음’ 입니다. 작가는 관객으로서 바라보는 십자가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하고 있음을 말하려 합니다. 곧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내고자 노력하였다.

작가는 또 골고타의 십자가 밑에서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며, 부모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고통이 바로 십자가 밑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부모, 그들은 존재론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을 따르는 어머니 성모님의 삶에 동참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여성조각가 조수선의 이 작품은 더 특별해 보입니다.

작가는 이어 두 팔을 넓게 펼치신 그리스도를 표현함으로서 수난과 죽음을 넘어 부활을 희망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그는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제 원을 채워주소서’(시편 145장) 하고 그가 가진 영원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생명의 기쁜 소식 선포해야할 소명 받아

교회는 ‘모든 인간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의 신비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성적 보호에 맡겨졌습니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을 그 가슴 깊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생명은 실제로 하느님의 백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맡겨진 신성한 실재이며 보호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지닙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강생을 통해 자신을 모든 사람들과 결합시키시고 빠스카의 신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로 우리를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사건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아울러 계시해 줍니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의 극치인 십자가상의 죽음 곧 빠스카의 신비는 비교할 수도 무엇과 대치할 수 없는 인간존재의 가치와 존엄성을 드러내는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저자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시편 8장) 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안에서 이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있는 교회는 늘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인간의 가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기쁜 소식, 구원의 기쁜소식을 선포해야할 소명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살아갑니다. 이 생명의 기쁜소식은 역사상 모든 시대의 무너뜨릴 수 없는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간 -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 - 은 교회가 따라 걸어가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입니다.(생명의 복음 2항)


생명의 원천인 십자가에서 ‘생명의 백성’이 태어나고 성장

교회의 길인 인간생명은 구원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내어주신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절정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지고 걸어가야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은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사이의 생명과 죽음 사이의 극적인 분열 한가운데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세상에서 들어 올려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 가장 큰 무력감을 체험하셨으며 조롱거리가 되고 비웃음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과 혼란의 한 가운데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본 백인대장은 외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내시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상징되는 교회의 성사를 통해 계속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져 새로운 계약의 백성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 생명입니다. 이제 인간이 나누어 받고 있는 생명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십자가에서 ‘생명의 백성’이 태어나고 성장합니다.(생명의 복음 51항)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세워지는 골고타의 언덕에 우리의 구원 곧 생명의 기쁜소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은총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오늘 현대 여성 조각가 조수선의 십자가를 보라보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의 의미와 인간에 대한 하느님 무한하신 사랑을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지영현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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