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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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정한 시간에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수도승 기도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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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7 ㅣ No.411

정한 시간에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 수도승 기도의 원형




기도의 일반적 정의는 “하느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는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기도는 그 자체가 신앙의 행위이기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 기도하는 인간 사이에 항상 확고한 유대가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믿는 신앙의 표현이다.

그리스도교 기도의 근본 바탕은 다음 두 가지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 하나는 성서에 계시된 바와 같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위격자이면서도 초월자라는 것을 믿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새롭고 친근한 관계를 맺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신앙이다.

부활 신앙으로 우리는 현세와 내세에서 희망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육화신앙으로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보며, 하느님을 찾을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영원히 하느님과 일치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성화의 표준을 정하게 된다. 그 성화의 표준이란 바로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한사람이 되셨기에, 우리도 그분처럼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완덕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완덕은 거룩하게 하는 영의 열매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든가, ‘성령 안에서’라든가의 표현을 써서 소원하는 바를 간구한다.

이상 언급한 바는 그리스도교 기도의 신학적 기본이다. 이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타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도의 전형적 형태인 흠숭, 찬미, 감사, 간청, 죄의 고백 등은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서는 일반종교의 문제인 누구를 흠숭할 것이며, 무엇에 감사할 것인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께 간청할 것인지, 특별히 무엇을 청할 것인가? 죄란 무엇이며, 어떻게 죄의 사함을 얻는가? 등의 물음에 독특한 답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기도에 관한 신학적 기초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이제부터는 이 논단의 제목인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승 기도의 원형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한다. 나는 그 원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수도승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과 초대 교회의 실생활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비성사적 형태의 예배에 관해서만 기술하려고 한다.


1.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과 가르침에 나타난 기도의 실제

초세기 예수님과 그의 처음 제자들은 팔레스티나의 유다인이었다. 그 당시는 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2) 예루살렘에서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에 회당에 모여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에 마음을 합쳐 예배하였고 그 외 낮에도 예배를 드렸다. 안식일에는 주회가 있었고 주년 축일과 대축일에는 공동 축제가 행해졌다. 경건한 유다인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고 식사 때에도 기도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일에 착수하기 전에는 꼭 기도를 드렸고, 필요한 때에는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논고의 목적은 신약성서를 재료로 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다인으로서 충실하게 모여 공동기도를 바치고 개인기도를 드린 것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에 관해서는 다른 저자들이 잘 논증하였기에3) 여기서는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 기도하셨고 그 제자들에게도 그 전통에서 근본적인 변경을 시키지 않으셨다는 것만 제시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예수님은 유다교의 전례행사에 참석하셔서 추종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하시고, 혼자서 기도하기도 하셨다. 예수님은 기도에 관한 올바른 자세와 그릇된 자세를 지적하시며 예컨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기도, 말만 많이 하는 기도는 자녀로서의 신뢰가 결여된 기도라고 가르치시고(마태 6,5-13; 마르 12.38-40), 기도에 항구할 것, 항상 기도할 것, 용기를 잃지 말 것 등을 강조하셨던 것이다(루가 11,5-13; 18,1-8).

그러나 제자들이 가장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예수께서 혼자서 개인으로 하신 기도였다. 루가 복음서만 보더라도 예수께서는 자주 기도하시고 특히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꼭 기도를 드렸으며(루가 3,21; 9,18; 22,32; 22,41-42; 23,34.46),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도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루가 5,16; 6,12).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표양에 감화되었던 것이라고 루가는 말하고 있다(루가 11,1). 이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주님의 기도’로 소중하게 바쳤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예수를 따른 사람들의 기도는 약간의 변화 밖에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표현과 ‘성령 안에서’라는 말로 기도하기 시작하고, 예수께서 당신을 기억하는 뜻으로 행하라고 가르치신 대로 함께 빵을 나눈 것이다. 그 이외에 초기 그리스도교인들도 유다교의 기도를 계속했다. 그들은 자주 성전과 회당에 모여 정한 시간에 기도를 바쳤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에 따라 혼자서도 기도를 드렸고 공동으로도 기도를 바쳤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이상적인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기적과 표징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신명나는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온 백성에게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늘려 주셨다(사도 2,42-47).

그리스도 교회가 설립되고 나서 약 50년 후에는 이 평화로운 모습은 철저하게 영구히 바뀌고 말았다. 그때는 이미 성전이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았고 회당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자로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환경이 그렇게 바뀌었기에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그 나름대로의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교의 근원과 동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예컨대 정한시간에 기도하는 것 등 유다교의 풍습은 상당히 많이 보전되었다. 따라서 정한시간에 기도하는 관습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한 것이며 항상 기도하라는 것 역시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전통 기도의 모습인 것이다.

다음 항에서 보면 신약성서 후의 저자들이 기도를 주제로 논술할 경우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언제 기도할 것인가,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라는 전통적인 두 질문에 답을 하려고 노력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2. 교회의 초기 교부들이 한 기도4)

기도에 관한 논고는 2세기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4세기경에는 기도의 신학이 기본적으로 정립되어 있었다. 이 기록들은 모두 성서에 깊은 근거를 두었고, 성서를 자료로 하여 그리스도교적 기도 방법이 합리적이며 이치에 맞게 체계화된 것이다.

떼르뚤리아노(대략 160~225)는 전적으로 기도를 주제로 한 단행본을 저술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다. 그 책은 ‘주의 기도’에 관한 최초의 해설이기도 하다.5) 비슷한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대략 150~215)는 그의 저서 ‘스트로마떼이스’(Stromateis)에서 한 항을 기도에 관한 내용으로 충당했다.6) 오리게네스(대략 185~254)는 기도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에 관하여 장문의 글을 썼으며7), 치쁘리아노(258사망)는 기도에 관한 또 다른 논술을 했다.8) 이런 식으로 명단을 더 나열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위의 네 분 교부들이 기도에 관해서 저술한 것만 살펴보기로 한다. 이 저서들의 문학유형은 전형적이며 모두 수도승생활이 나타나기 이전의 작품인 것이다.

떼르뚤리아노와 치쁘리아노는 북아프리카 사람이었고 글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이집트 출신이었다. 그리고 떼르뚤리아노와 글레멘스는 평신도였고, 오리게네스는 기도에 관한 글을 쓸 때 사제였으며, 치쁘리아노는 주교였다. 떼르뚤리아노와 치쁘리아노는 주의 기도를 전해 받을 단계에 이를만큼 세례를 준비한 예비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해설을 썼고, 글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성숙한 그리스도교인들의 필요와 관심사에 역점을 두고 기도에 대한 글을 썼던 것이다. 떼르뚤리아노와 오리게네스와 치쁘리아노의 글에는 기도의 보편적이며 기본이 되는 ‘주의 기도’에 관한 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떼르뚤리아노는 그것을 복음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9)

이들 교부들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요약하면, 기도에서는 찬미가 첫째가는 의무이고, 그 다음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며, 그리고는 죄의 용서를 빌고, 끝으로 소원하는 바를 간청하는 순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원의 대상은 ‘주의 기도’의 청원과 같이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먼저 영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도록 하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뜻과 영적의미, 두 가지 모두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일용할 양식’의 영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생명의 빵’을 두고 한 말이라고 했다. 이 간청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죄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갈라지지 않도록 간구하는 것이라 했다. 문자 그대로의 ‘일용할 양식’은 물론 우리 몸에 필요한 음식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부들은 ‘일용할 양식’을 물질적인 의미로 간구할 때에는 꼭 필요한 것만 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부들은 기도에 대해 신학 차원의 해설을 붙이면서, 동시에 장소, 시간, 태도, 복장 등 기도와 관련된 실제적인 문제도 다루었다. 그러나 이 논고에서는 기도시간에 관한 것만 다루기로 한다.

교부들은 하나같이 항상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의무라고 했다. 그들은 데살로니카 전서 5장 17절의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오리게네스는 바울로가 그런 명을 한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권유를 따른 것 이라고 했다.10) 오리게네스와 글레멘스는 특히 어떻게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떼르뚤리아노와 치쁘리아노는 세례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인지, 기도의 이상과 고정시간 기도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우선 항상 기도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먼저 기도 시간에 대해서 고찰해 보기로 한다.

첫 부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유다인들은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기도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디다케(대략 70-100)에는 ‘주의 기도’를 하루에 세 번 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 하라는 지시는 없다.11) 떼르뚤리아노와 치쁘리아노와 오리게네스는 모두 그리스도교인들은 적어도 하루에 세 번 기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구약성서에서 다니엘이 관습대로 기도했던 것을 인용했는데, 실제로 다니엘 6장 11절을 보면 하루에 세 번 기도는 했지만 어느 시간에 했는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오리게네스는 기도 시간을 아침, 점심, 한밤중으로 잡았다.12) 그러나 떼르뚤리아노13)와 치쁘리아노14)와 글레멘스15)는 제3시, 제6시, 제9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했다. 이분들이 가르친 이 내용은 일반적인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떼르뚤리아노는 제3시, 제6시, 제9시는 속세의 일을 잠시 중단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도록 알맞게 안배가 잘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16) 더욱이 성서를 보면 특별히 이 시간들이 기도에 알맞은 시간이라는 것이다.17) 즉 제3시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처음 내린 시간이었고(사도 2,15), 제6시는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중에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의 선교 사명을 현시로 본 시간이었으며(사도 10,9), 제9시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시간이었기(사도 3,1-8) 때문이라는 것이다. 떼르뚤리아노 시대부터 신약성서의 그 일화들은 흔히 이 세 기도 시간과 연결된 것으로 여겨왔다. 떼르뚤리아노는 3이라는 숫자가 성삼위와 연결되는 상징적인 숫자임을 마음에 두었다.18)

떼르뚤리아노 시대에는 기도를 제3시, 제6시, 제9시에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떼르뚤리아노는 그 사실을 알았고 그가 언급한 성서의 일화는 기도 시간에 관한 계율이 아니라, 단순히 그 시간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었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그렇지만 떼르뚤리아노는 그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고,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을 의무화하고 싶어 한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떼르뚤리아노는 위의 세 기도 시간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후에, 곁들여서 두 기도 시간을 더 첨부했다. 그는 그 시간을 이미 제도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따로 권하지 않아도 새벽과 저녁 시간에 마땅히 해야 할 기도는 말할 것도 없다”19)고 하니 그리스도교인으로서는 하루에 다섯 번, 즉 아침과 저녁과 제3시, 제6시, 제9시에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20)

떼르뚤리아노가 추천한 1일 5회의 기도 시간이 기준이 되었지만 어떤 저자들은 야간 기도를 더 첨부하기도 했다. 로마의 히뽈리뚜스가 편집한 매우 영향력 있는 교회의 예식서 중의 하나인 『사도전승』(대략 225)에는 위에서 말한 1일 5회의 기도 시간은 물론, 그 외에 밤중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도 의무화했던 것이다.21)

이상 고정 시간에 바친 기도에 관한 초기의 발전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제 지속적인 기도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오리게네스의 기도에 관한 논고에는 지속적인 기도에 관한 말은 몇 마디 밖에 없으므로, 그의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가 이 제목에 관해 좀더 광범위하게 다루었기에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끌레멘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을 종합하여 저술한 최초의 저자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교리신학교를 설립한 판태누스(Pantaenus)의 제자이며 서기 190년 판태누스가 죽은 후에는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끌레멘스는 스토아 사상과 플라톤 사상에 밝았기에, 그의 재직 기간에 학교에서 교과 과정으로 사용했으리라고 보는 세 권의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 제1권은 『이교인을 위한 권유』(Protreptikos)22)를 주제로 한 책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갖고 이끌리도록 심혈을 기울여,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철학에 모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최고의 수준보다도 훨씬 더 높은 우월성을 지님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제2권은 『지도자』(Paidagogos)23)를 제목으로 하여 성격의 양성에 관해서 기술한 책으로, 다루기 힘든 정욕과 욕구를 어떻게 다스리며, 어떻게 악을 물리치고 덕을 쌓을 것인지에 관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제3권은 제2권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하는 평온상태에 다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끌레멘스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만이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끌레멘스의 당초의 계획은 제3권을 『스승』이라 표제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24)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작품을 좀 느슨한 형태로 바꾸어, 책 제목을 『스트로마테이스』(Stromateis)라고 붙였다.25) 영어로는 흔히 ‘miscellanies’ 즉 문집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트로마테이스』는 끌레멘스가 ‘그노스틱’(gnostic, 영적인 지식을 가진 자)이라 불렀던 이상적이며 성숙한 그리스도교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노스틱이란 방해 없이 완전한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관상에 집중하기 위해 항구히 평온 상태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것이 끌레멘스가 기도를 다루는 개념의 체제이다. 끌레멘스는 그노스틱들이 목표로 하는 중단 없는 관상과 항상 기도하는 것은 같은 개념이라고 본 것이다.

끌레멘스는 기도를 넓은 의미로 정의하였다. 기도란 단순히 하느님과 친교(homilia)를 계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도는 말이 필요 없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좀더 대담하게 말한다면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homilia)하는 것이다.26)
기도는 … 말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분심 없이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고, 정신을 하느님께 집중시키는 것이다.27)

끌레멘스는 말하기를, 하느님은 어디에나 항상 계시기 때문에 그노스틱은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느님께 다가가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28)

만일 예컨대, 제3시나, 제6시나, 제9시 등 특정한 시간을 기도 시간으로 정해도, 그노스틱은 하느님과의 우정으로 일생을 기도에 바친다.29)

그래서 그노스틱은 특정한 장소나 지정된 성전이나 특정한 축일이나 약속된 날과는 관계없이 전 생애에 걸쳐 어디서라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림으로써 그것은 인생의 길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30)

끌레멘스가 말하는 기도, 즉 하느님의 현존을 온 마음을 다해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형태의 기도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도를 하면서 매일의 자신의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축제를 지내는 시간에는 물론이지만, 삶의 모든 현장에서 무소부재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믿기에, 밭을 갈면서도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항해 중에도 하느님을 찬송하며, 그 밖의 모든 일에서도 이 규칙에 따라 처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노스틱은 정중하고도 즐겁게 하느님과 연결되어 지낸다. 영혼이 하느님의 신성을 향하고 있기에 정중해지고,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축복을 생각하면 즐거워지는 것이다.31)

끌레멘스가 지속적인 기도에서 얻을 수 있다고 본 이득은 상당하다. 그 이득중의 하나는 지속적인 기도가 그노스틱들로 하여금 죄를 억제케 해 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노스틱들이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고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2) 그노스틱들은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항상 결백한 상태를 유지하므로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현존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갖도록 노력할 것이다.33) 또 하나의 다른 이득은 지속적인 기도가 그노스틱들의 성격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끌레멘스는 성격이 좀 더 좋거나 좀 못한 사람들이 함께 사귀는 가운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반적인 체험에서 이 점을 지적해냈다. 그노스틱들은 항상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있기 때문에 모든 점에서 좋은 성품이 성장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34)

중단 없는 기도에 관한 글레멘스의 사상을 이상과 같이 종합하는 것으로 이 부분을 마치려 한다. 이 부분에서는 2세기와 3세기의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지속적인 기도와 고정시간의 기도에 관한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음 부분에서는 수도승 운동이 우리가 방금 살펴본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발전시켰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3. 수도승들이 실천한 기도

떼르뚤리아노, 글레멘스, 오리게네스, 치쁘리아노 시대는 수도승이 없던 시대였다. 이들이 기술한 고정시간 기도의 의무화와 항상 기도할 것 등의 당부 등 그리스도교인의 생활방식과 금욕실천에 대한 내용은 그 대상이 평범한 그리스도교인들의 공동체이지, 그들과 분리된 특별한 계층의 생활양식을 갖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아니었다. 물론 이 시대에 동정녀와 과부와 금욕주의자들, 다시 말해서 독신생활과 금욕생활을 한 남녀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공동체와 같이 생활한 사람들이었다.

수도승생활은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안또니오(대략 251~356)를 시조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안또니오가 18세 되던 어느 날, “성당에서 당신이 완전해지려고 하면 가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마태 19,21)라고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복음 말씀을 들었을 때, 꼭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생각으로 벅차올랐다. 안또니오는 소유하고 있던 것을 팔고 난 다음, 처음에는 도시 변두리로 옮겨가서 금욕생활을 하였고, 14년 후에는 사회와 전적으로 동떨어져 사막에서 혼자 살았다. 안또니오는 복음 말씀에 응답하여 세상에서 물러나왔는데, 수년 후에는 그의 목적과는 반대로 세상이 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또니오는 그의 삶의 방식을 따르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외진 곳에서 수덕을 실천한 이 콥트인의 명성은 이미 그의 생존시에 제국 전체에 확산되었던 것이다. 안또니오와 그의 뒤를 이은 위대한 영성 스승들로 인해, 4세기와 5세기의 이집트는 수도승생활의 스승이며 어머니로 인식되었다.

그리스도교 수도승생활이 확산된 현상에 대해 역사가들은 많은 질문을 제기하였다. 어떻게 그 시대에 수천의 남녀가 수도승생활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의 답으로 심리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설명이 몇 가지 나왔지만, 보편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열성이 식어가면서, 좀더 정확히 복음의 수준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지역 교회의 집단에서도 물러나면서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는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수도승생활에 관해 이와 같은 견해를 갖는 사람들 중에서 가시아노(대략 360~435)의 글을 아래에 인용해 보겠다.

초기 신앙의 열성은 본방인들과 이방인들의 수가 증가됨에 따라 식어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뿐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였던 사람들까지 엄격했던 생활을 이완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열성을 아직 보전하고, 옛날의 완덕을 마음 가득 그리워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살던 도시뿐 아니라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디고 해이한 생활을 마구행하는 사람들과도 작별하여 시골과 외진 곳에서 살면서 … 사도들이 교회에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았다. 이와 같이 수도승의 제도는 … 그 시대에 퍼져 있던 악의 세력을 떠난 제자들에 의해 성장되었던 것이다.35)

까시아노와 동시대의 사람인 예로니모는 까시아노가 말한 신앙의 하락은 박해가 끝나고(313), 황제의 교회가 일어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했다. 예로니모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를 믿는 황제의 권하에서 교회는 권력과 부에서는 강해졌지만 덕성에서는 약해졌다는 것이다.36)

좀더 철저하게 그리스도교인으로 살기 위해 사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세 종류의 수도승들이 생겼다. 그들은 규율과 기도의 형태에 있어서 각기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녔다. 세 종류의 수도승이란 독수자, 반독수자, 회수도자를 두고 한 말이다.

독수자들은 전적으로 혼자서 다른 수도승들과도 멀리 떨어져 사는 수도승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과거에 받은 수련을 토대로 한 것이거나 혹은 다른 수도승들의 모범을 따른 것이었다. 그들이 때때로 다른 수도승들을 상호 방문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수자들은 장상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의 일과인 기도와 일을 스스로 계획하여 실천할 책임이 있었다. 반독수자들도 역시 혼자서 살지만, 영신적 사부의 수방 둘레에 부락 같은 종류의 집단을 형성하여 수도승들이 약간 가까이 사는 형태를 취한다. 각 부락마다 성당이 있어서 하루 두 번 모여 기도를 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영성체를 했던 것이다. 이 수도승들은 선배들로부터 영성지도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반독수자의 생활은 독수자가 되기 위한 훈련 단계이다. 그러나 반독수자 생활을 시작한자 모두가 독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규칙의 준수와 영신적 사부의 지도로 독수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수도자들은 보다 긴밀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는 수도승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여러 번 모여 기도를 하고 음식을 먹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일을 공동으로 했다. 회수도자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독 수도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회수도자들은 정주하며 공동체에 항구히 머물기 때문에 재산을 갖게 되고 건물을 지어야 했다. 또한 자급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 냈다. 회수도자 공동체는 보통 수도승들이 숙박소, 병원, 고아원 등을 운영할 수 있도록 마을과 도시 부근에 위치했다.

우리는 초기 교회에 발생했던 세 종류의 수도승생활의 형태에 대해 다소 살펴보았기에 이제 이들의 기도에 관해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회수도자로부터 시작해 보자.37)

체사레아의 바실리오(대략 330~379)는 그의 갑바도기아 수도승들에게 기도에 관해서 가르칠 때, 기도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대로, 성서의 이상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었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실리오가 메쌀리안(Messalians)의 오류에 반박하여 강조한 바는 항상 기도하라는 계명이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울로는 한곳에서는 “끊임없이 기도하시오”(1데살 5,17)라고 말했고, 다른 곳에서는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살았습니다”(2데살 3,8)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바울로의 말에 모순이 있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하였다. 사실 기도와 일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바실리오는 말하기를, 우리가 육체노동을 할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일할 자료와 도구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가 하는 일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를 간구하면서 시편을 외우고 기도를 하면, 기도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했다.38)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도승이 형식을 갖춘 기도를 항상 하면서 필요한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기에, 바실리오는 기도하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평형을 유지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의 글을 인용해 본다.

기도는 일생 동안 해야 하지만, 그래도 특정한 간격으로 일을 중단하고 무릎을 꿇어 시편을 노래하며 성인들이 약속했던 기도시간을 지켜야 한다.39)

바실리오가 지시한 공동기도 시간은 대체로는 떼르뚤리아노가 추천한 시간과 같았고 『사도 전승』에 수록된 기도 시간인 아침기도, 저녁기도, 제3시기도, 제6시기도, 제9시기도, 한밤중기도 등의 원형을 따랐다. 그런데 바실리오는 취침 전에 바칠 밤 기도를 첨가했고 “하루 일곱 번 당신을 찬미 했나이다”(시편 119,164)라는 시편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 제6시 기도를 점심식사 전과 후, 2회로 나누었다.40) 바실리오는 모두가 기도 시간을 엄수할 것을 주장했다. 누가 만일 시간기도에 참석하지 못 할 경우에는 일하던 장소에서 공동기도에 마음을 합쳐 정해진 규정대로 기도하도록 했던 것이다.41)

까시아노는 회수도자의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42) 팔레스티나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도승들이 아침과 저녁, 제3시, 제6시, 제9시와 한밤중에 기도를 바쳤다는 것이다. 까시아노는 바실리오가 소개한 밤 기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의 첫째 시간에 기도를 하는 관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이 제1시 기도는 그가 베들레헴에 체류하고 있을 동안 그곳 수도원에서 기원된 것인데 그 이유는 게으른 수도승 몇몇이 아침기도를 마친 다음 수도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제3시까지 잔다는 말을 듣고 원로 수도승들이 그들의 시간 남용을 막기 위해서 제정했다는 것이다. 까시아노의 표현에 의하면 제1시 기도는 이렇게 뒤늦게 덧붙여진 것이지만 이로 인해 “하루 일곱 번 당신을 찬미 했나이다”라고 시편저자가 말한 기도의 회수를 채우게 되었기에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까시아노가 말한 하루 ‘일곱 번’의 기도는 바실리오의 수도승들이 제6시 기도를 2회로 나누어서 하고, 취침 전에 기도를 바침으로써 완성했던 7회의 기도 회수와는 달리, 실제로 한밤중 기도를 포함해서 하루에 7회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고정 시간기도 발달사의 최종 단계는 6세기 베네딕도의 규칙서에서 확정되었다. 베네딕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설정되었던 아침기도, 저녁기도, 제3시기도, 제6시기도, 제9시기도, 한밤중 기도(실제로 규칙서에는 새벽 2시)에다 제1시에 기도하는 관례를 더 붙이고 바실리오의 밤기도를 수정하여 끝기도라 개칭하였다. 이렇게 하여 찬미기도, 제1시기도, 제3시기도, 제6시기도, 제9시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 낮 동안 7회의 기도시간이 확정되고 밤에는 비질(vigil)이라고 하는 야과경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 일곱 번 당신을 찬미 했나이다”라는 시편의 말씀과 “한밤중에 일어나 감사기도 드립니다”(시편 119,62)라는 시편 말씀대로 실천하게 되었던 것이다.43) 베네딕도가 설정한 기도시간의 구조는 동방과 서방의 그리스도교 시간전례 기도의 기본으로 남게 되었다.

반독수자들의 기도는 회수도자들의 기도보다 단순하면서 요구되는 것은 더 많았다.44) 가시아노에 의하면 이러한 구조는 초기 수도승들이 설정한 것이고 이집트 전역에서 지켰던 것인데, 그들은 저녁에 한 번, 밤중에 한 번 매일 단지 두 번만 모여 공동기도를 바쳤다는 것이다. 공동기도를 바치면 서성거리거나 배회함 없이 곧 바로 수방에 들어가 공동 작업 때문에 호출을 하기 전에는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했고, 밤 기도가 끝난 후에는 자지 않고 저녁까지 기도와 수작업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가시아노는 이들과 회수도자들을 비교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들 (이집트인들)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한 시간에 하느님께 바치는 성무일도를 하루 종일 일을 해 가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바친다. 그것은 그들이 수방에서 끊임없이 수작업을 하기 때문이고 수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시편의 되새김, 성서 구절 등을 결코 빠뜨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순간에 남의 관심사를 기억하며 기도를 드리고, 우리가 정한 시간에만 바치는 성무일도를 하루 종일 계속해서 바치는 것이다.45)

우리는 가시아노의 『제도서』에서 반독수자들의 기도 수칙을 알게 되는데, 여기에는 외적 수도규범과 외적 태도의 훈련에 관한 것이 기술되어 있다. 가시아노는 계속기도에 관한 것을 독수도승의 내면생활을 다루는 『담화집』에 미루었다.46) 이집트의 수도승들은 바울로가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명한 말씀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속적인 기도는 수도승에게 출발점이 아니라 힘든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던 것이다. 이사악 아빠스의 기도에 관한 강론 중에서 몇 구절을 다음에 인용해 본다.

지속적이며 중단 없는 기도는 수도승의 목표이며 마음의 완성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에 마음의 평정과 영원한 순결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지치지 않고 항상 육체적 노력과 정신적 통회를 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47)

완덕의 목표는 전 생애와 마음의 생각 전부가 계속적인 기도가 될 때까지 육체적 욕망에서 깨끗해진 마음을 영적인 것에로 들어올리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48)

반독수생활의 목표가 마음의 순결과 사랑의 완성에 있는 반면, 독수(은수)생활의 목표는 관상과 중단 없는 기도에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마음의 순결은 관상의 선행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수도원의 규율은 수도승으로 하여금 은수자로서의 고독한 삶을 준비시켰지만 거기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은수자로 살기 위해 수도원을 떠난 다음에도 수도승은 그가 얻은 마음의 순결을 잃지 않기 위하여 매일 자신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독수자는 잠재적으로 분심의 여지가 많은 시야와 수도원의 소음에서 외딴 곳으로 옮겨 갔지만 기억 속에 떠오르는 영상으로 인해 그전보다 더욱 기도하기 어려워졌던 것이다.49) 또한 요한 아빠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와 같이 은수자들의 평화는 가끔 방문자들을 대접하는 일로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방문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오리라는 생각과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분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은수자는 단식 중에도 자신과 방문객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50) 이런 유혹과 기타 다른 유혹의 엄습을 당하면서 은수자가 계속 기도에 항구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영적 여정에서 이런 단계의 싸움은 많은 점에서 더욱 어려웠다. 유혹은 더욱 미묘했고 영적 아버지의 지도가 없었기에 자기기만의 가능성은 더욱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수도 교부들은 은수자가 당하게 되는 어려움과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인내심 등을 털어 놓았으나 그들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영적 완성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사악 아빠스의 강론을 읽어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사악 아빠스는 관상이란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관상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마음보다 먼저 입술로 “하느님, 나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시편 70,2)라는 시편 구절을 끊임없이 계속 외우라고 충고한다. 그는 이 짧은 기도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이 기도는 인간 본성에 담겨질 수 있는 감각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어떤 조건을 만나든지 어떤 습격을 당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든 경우에 꼭 들어맞는 기도인 것이다. 그것은 이 짧은 기도가 위험에 대적하여 하느님을 부르는 기도이고, 겸손과 경건을 드러내는 기도이며, 걱정과 계속적인 공포에 신중성을 기하는 기도이고, 자신의 약점을 생각하는 기도, 응답을 신뢰하는 기도, 현재와 영원한 도움에 대해 확신을 지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보호자를 부르는 사람은 그 보호자가 자기 곁에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 짧은 기도는 사랑과 자비로 붉게 타는 기도이며, 적의 음모를 보는 힘을 지니는 기도이고, 밤낮 적으로 둘러싸인 자신이 보호자의 도움 없이 그 공포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도인 것이다 … 여하튼 이 기도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하는 바이다. 그것은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슬프고 곤란한 일에서 뿐 아니라 번영과 행복 속에서도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인간은 그 약점으로 인해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그 모든 경우에서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51)

후대의 그리스 구도자들은 ‘예수를 되풀이하는 관습이 생겼는데, 이사악 아빠스는 그보다 수세기 전에 그리스도교적 만트라(mantra, 힌두교의 짧은 기도 반복 외우기)를 최초로 전파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악 아빠스는 수도승들에게 “하느님, 나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라는 시편구절을 일생 동안 끊임없이 외움으로써 자면서도 되풀이 할 정도로 습관화 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 기도를 함으로써 수도승은 악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적 관상에로 인도되며,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렬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이사악 아빠스는 약속했다.52)


맺는 말

초기 수도승들이 바친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면, 은수자들은 중단 없이 기도하라는 명을 가능한 한,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지속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택하여 살았다. 그들은 혼자 살았고, 육신에 필요한 것을 최소화했으며, 사고력, 상상력, 창의력을 구사하지 않아도 되는 반복적인 형태의 일에만 종사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손은 작업으로 인해 바빴지만, 마음은 관상할 수 있도록 자유로웠던 것이다. 회수도자들은 공동체 내에서 살았다.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것이 복합적이어서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노동을 분담했다. 바실리오는 수도공동체를 많은 구성원들로 된 몸에 자주 비교했다. 구성원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의 선익을 위해서 일한다. 그래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주방에서 일했고, 재단사들은 수도복을 만들었으며, 구두제작공들은 신을 만들어 공급했던 것이다. 이렇게 회수도공동체는 구성원의 재능과 노동력으로 자급자족했다. 더욱이 이밖에도 바실리오 공동체 같은 수도단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기관을 설치하여 운영했다. 회수도자들은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기에 은수자들이 향유했던 바와 같은 관상의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회수도자들의 삶은 은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중심은 기도였다. 회수도자들은 정한 시간에 공동기도를 바쳤지만, 그것으로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든 작업과정을 관상적인 차원에서 하도록 시도했던 것이다. 회수도자들은 일하는 도중에 은수자들 못지않게 자신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계속 의식하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정한 시간에 기도를 바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옛날 떼르뚤리아노와 같은 시대의 영성 저자들은53) 인간이 하느님을 잊은 채 일에 몰입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았다. 고정시간기도는 삶의 참다운 방향과 목적을 규칙적으로 상기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정한 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회수도자이든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전혀 기도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기도의 사람인 수도승이 하루 종일 아무 기도도 하지 않고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도원의 입법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가시아노는 기도시간을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설정한 이유는 그런 게으름을 정확히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글을 다음에 인용한다.

우리는 적어도 규정된 시간에 경건한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규칙적으로라도 정하지 않으면, 게으르든지, 잊어버리든지, 일에 몰입되어 버리든지 하여 하루 종일 전혀 기도를 바치지 않고 지낼지도 모른다.54)

가시아노의 솔직한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왜 바실리오와 베네딕도가 소임으로 인해 정당하게 공동기도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에라도 그 자리에서 기도의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베네딕도는 여행 중에도 같은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55)

드보궤(A. de Vogue)는 지속적인 기도와 고정시간 기도와의 관계를 매우 잘 설명했다. 그의 글을 다음에 인용한다.

공동으로 바치는 성무일도는 지속적인 기도와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함으로써만 그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기도를 시간기도에 한정하는 사람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이상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법이 아니라 현명하고 겸손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인간의 약점을 보호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수도승이나 초기 그리스도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유일한 법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었다. 성무일도는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56)

초기 수도승들에게는 고정 시간기도가 항상 기도하라는 의무를 일정에 따라 규칙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정 시간기도는 수도승이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일하거나 사람들에게 봉사할 동안에도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그것은 수도승 자신의 개인기도를 위한 틀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정한 시간의 공동기도는 결코 개인기도를 합계하기 위해 바쳐진 것이 아니었다.

(코이노니아 제19집 76쪽, Philip Timko, O.S.B1), 김순복 베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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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 Procopius Abbey의 수도승이며 미국 Illinois Benedictine College의 교수이며 종교연구부 의장이다. 이 글은 처음에 Monastic life in the Christian and HinduTradition, A B. Creel과 Vasudha Narayanan 편집(뉴욕: The Edurin Mel1en Press, 1990)에 실렸었는데, 허락 하에 American Benedictione Review 42:4-Dec. 1995(395-413면)에 다시 실렸던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2) 1세기 유다교의 기도 관습에 관해서는 Eric Warner, The Sacred Bridge: Liturgical Parallels in Synagogue and Early Church (1959; New York: Schocken 1970), PP.1-16를 보라.
3) 예컨대 J. Dupont, “Jesus and Liturgical Prayer.” Worship 43 (1069)198-213를 보라.
4) 이 주제에 관한 좋은 글로서 R L Simpson, The Interpretation of Prayer in the Early Church (Philadelphia: Westminster, 1965)을 보라.
5) On Prayer; in Fathers of the Church = FC,,40:157-88.
6) Stomateis,7.7; in Ante Nicene Fathers = ANF,2:532-31.
7) On Prayer; in Ancient Christian Writers = ACW, 19:15-140.
8) On the lord’s Prayer; in FC,36:127-59.
9) On Prayer, 1; in FC, 40:159.
10) On Prayer, 12: in ACW, 19:47.
11) Didache, 8.3;
12) On Prayer, 12: in ACW, 19:47.
13) On Prayer, 25; in FC, 40:183.
14) On the Lord’s Prayer, 34; in FC, 36:157.
15) Stormateis, 7,7; in ANF, 2:534.
16) “하루를 구분하고 일을 구별하고 공공의 귀에 반향하는 … 이 세 시간은 …”(On Fasting, 10; in ANF, 4:108).
17) On Prayer, 25; in FC, 40:183.
18) On Prayer, 25; in FC, 40:184.
19) Ibid
20) 떼르뚤리아노 역시 신체의 필요보다 영신의 필요가 우선한다는 확인으로서 식사 전 기도, 목욕 전 기도를 권장한다. “영신의 원기회복과 양식이 몸의 필요보다 앞서는 것은 천국의 것은 지상의 것보다 앞서겠기 때문이다”(앞의 책).
21) 사도 전승 185-193쪽(분도출판사, 1992).
22) Exhortation to the Heathen: in ANF, 2: 171-206.
23) The Instructor; ibid, 209-96.
24) “효율적인 규율에 맞고 구원에 이르는 단계로써 우리를 완성시키기를 열망하시어 자비로운 말씀께서는 아름다운 순서를 지키셨다. 그분은 처음에는 권고하시고 다음에는 훈련시키시고 마침내 가르치신다”(The Instructor, 1; in ANF, 2:209).
25) Stromateis: ibid, 299-567.
26) Ibid,.7.f; 534
27) Ibid. 535.
28) Ibid. 534.
29) Ibid
30) Ibid., 532-33.
31) Ibid..
32) Ibid.
33) Ibid, 537.
34) Ibid, 533.
35) Conferences, 18.5; in Nicene and Post Nicene Fathers, second series = HPNSss,11:481.
36) Vita Malchi, 1; in Patrologia Latina 23:55.
37) 계속기도와 고정시간기도 사이의 관계를 초기 수도승 스승들이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대하여 여기 소개한 것과 비슷한 해설을 보려면 Adalbert de Vogue, “Prayer in the Rule of Saint Benedict” Monastic Studies 7 (1969), 113-28를 읽으라. 이 글은 그의 최근 저서 The Rule of Saint Benedict A Doctrin and Spiritual Commentary, Cistercian Studies Series 54 (Kalamazoo, Ml: Cistercian Publications 1983), pp.127-39에 들어 있다. pp.149-59에서 de Vogue는 그의 원전 독해에 대한 두 동시대인의 제기에 답한다.
38) The Long Rules, q.37; FC,9:306-11.
39) Ascetical Discourse: ibid., 212.
40) Ibid,. 212-13; The Long Rules, q. 37; 302-11.
41) Ibid, 309.
42) Institutes, 3; NPNSss, 11:212-18.
43) 성 베네딕도 규칙서 제16장.
44) Institutes, 2; NPNSss, 11:205-12.
45) Ibid, 3.2; 213.
46) Ibid., 2.9; 208-09; Conferences, Preface, 293-94.47) Ibid, 9.2; 387.
47) Ibid., 9,2; 387.
48) Ibid, 10.7; 404.
49) Ibid, 9.3: 338.
50) Ibid., 19.6; 491-92.
51) Ibid 10,10; 405-06; 코이노니아 10집 15면.
52) 코이노니아 10집 162면.
53) On Prayer, 25; FC, 40:183-84.
54) Institutes, 3.3; NPNFss, 11:214.
55) The Long Rules, q. 37; FC,9:309;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 제50장.
56) A de Vogue, “Prayer in the Rule of St. Benedict” p. 117.

[출처 : 코이노니아 선집 5 기도와 전례, 2004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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