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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우울증 환자를 위한 사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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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71

우울증 환자를 위한 사목 (1)

 

 

요즘같이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가정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우울증' 또는 '우울증 환자'란 말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우울증은 다른 사회적 일탈 현상이나 사회 병리학적 사건들의 원인이 되는데, 특히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신드롬'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실제로 오늘날 청소년들의 자살도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충격을 던져준 일가족 자살이라든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점차 빈번해지고 있는 점을 볼 때 우울증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본당 신자들이나 특수 분야의 신자들을 구체적으로 돌보아야 할 우리 사목자들에게 이 우울증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목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우울증으로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생활에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심리적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은 신앙생활 자체를 방해하기도 하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성인보다는 청소년기에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따라서 본당활동의 주역을 담당하는 여성 신자들과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을 영적으로 돌보아야 할 사목자들에게 이 우울증은 아주 특별한 이해와 관심이 요구되는 주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우울증의 치료와 사목적 배려에 앞서 사목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우울증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신자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우울증에 대한 오해

 

일반적으로 우울한 기분은 정상인도 흔히 겪게 되는 감정의 한 측면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든지 비난을 당했다든지 계절이 바뀐다든지 하는 등의 외부자극이나 환경의 변화는 흔히 우울하고 착잡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많은 여성들은 월경, 임신, 그리고 출산 등과 같이 생리적 사건이 찾아올 때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 이런 면에서 우울한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체험하는 감정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사람들이 할 일 없이 고민하는 감정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또한 세상에는 다 힘들고 어두운 면이 있는데 그것을 잘 이겨나가지 못하고 바보같이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보는 패배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하여 우울한 감정은 병이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며 여행을 가거나 푹 쉬면 자연히 좋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가 약해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더욱더 병을 숨기고 치료를 회피하게 된다.

 

그러나 우울증은 인류 최악의 질병 10가지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우울증은 남성의 경우 10명 가운데 1명, 여성은 5명 가운데 1명이 걸릴 수 있는 보편화된 병으로서 정신장애 가운데 가장 발병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이후 인구의 25% 이상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으며 동시에 그 감정으로 파생되는 수많은 부적응적 현상들과 반사회적 행동들을 통제할 수 없기에 반드시 주위의 도움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우울증 환자는 고혈압, 협심증, 당뇨나 관절염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보다 사회적 수행능력이 훨씬 더 떨어지며, 관상동맥 질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로 생을 끝낸다는 사실만 보아도,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인 것이다.

 

 

2. 정상인의 우울함과 우울증 환자의 우울함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 곧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와 우울증의 차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러한 차이를 구별하기는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증상들(예를 들면, 감정 기복의 심각성, 자율신경 이상 증상, 독특한 행동 유형 등)로 본다면 정상인과 우울증 환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차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아직 학자들의 연구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차이점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정상인의 슬픔은 슬픔을 일으키는 사건 직후에 일어나고 몇 주 이상 계속되는 일은 없으며, 회복 과정에서 그 슬픔의 체험이 심리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된다. 또한 정상인의 슬픔이나 비애에는 자기 비난이나 자존감(self-esteem)의 상실이 없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의 슬픔은 사건이 일어난 뒤 약간 늦게 시작되고, 몇 주 또는 몇 해 동안 지속되며 심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체험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의 슬픔 안에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책감이 종종 동반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차이점은 바로 '고통의 심각성'에 있다. 정상인에 비해 우울증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은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며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고통의 체감지수가 실제적으로 객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주관적인 느낌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고통은 정상인이 느끼는 단지 '심하게 우울한 느낌들'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곧 이런 고통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것이다.1)

 

 

3. 우울증의 증상과 종류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정신장애의 대표적 진단 체계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DSM-IV,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년)에서 제시하듯이, 우울증을 다음의 세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① 주요 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우울감, 절망감, 일상 활동의 흥미나 재미가 거의 없음, 현저한 체중 감소나 증가, 불면이나 과다 수면, 초조함과 불안함, 피로감이나 무기력감, 과다한 책임감, 과도한 죄책감, 무가치감, 비정상적인 우유부단함, 사고나 집중력 감소,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의 증상들 가운데 5개 이상이 2주 동안 지속되면 주요 우울장애이다.

 

② 기분부전장애(dysthymic disorder) 

 

주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가벼운 우울증상이고 치명적이지 않기에 보통은 성격적 특성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적어도 2년 동안 하루 대부분, 거의 날마다 우울했고, 주요 우울장애 증상 가운데 2가지 이상이 2개월 이상 지속될 때 기분부전장애로 분류한다. 

 

③ 미분류형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 not otherwise specified) 

 

위의 두 장애유형을 제외한 월경 전의 불쾌한 기분장애나 주요 우울장애 요소 가운데 몇 가지가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망상장애,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우울장애 등이 여기 포함되는데, 이는 진단이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우울증상의 특성에 따라 단극성과 양극성, 우울증의 발생요인에 따라 외인성과 내인성, 그리고 우울증의 심각한 정도에 따라 신경증적 우울증과 정신병적 우울증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① 단극성 우울증(unipolar depression)과 양극성 우울증(bipolar depression) 

 

흔히 우울한 기분만이 지속되는 경우를 단극성 우울증이라 하고 우울한 증상이 조증(躁症:mania, 기분이 지나치게 좋은 상태. 이때는 흥미와 의욕이 지나치게 커져 비현실적 목표를 향하여 과도한 활동을 하게 되지만 결국 실패와 좌절로 끝나게 된다.)과 함께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양극성 우울증(흔히 조울증)이라고 한다.

 

② 외인성 우울증(exogenous depression)과 내인성 우울증(endogenous depression) 

 

가족의 불화나 질병, 사별, 실연, 실직, 중요한 시험의 실패와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기면 외인성 우울증으로 본다. 이것을 반응성 우울증(reactive depression)이라고도 한다. 반대로 유전적 요인이나 호르몬 이상 또는 생리적 요인 등으로 우울증이 생길 경우 내인성 우울증으로 본다. 

 

③ 신경증적 우울증(neurotic depression)과 정신병적 우울증(psychotic depression)

 

신경증적 우울증(위의 기분부전장애와 같은 개념)은 우울한 상태에서도 현실 판단 능력이 있고 보통의 상식과 지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반면에 정신병적 우울증은 내인성 우울증 가운데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한 우울증으로, 현실 판단 능력이 소멸되고 자신의 부정적 생각이나 죄의식 등이 거의 망상 수준에까지 이른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우울증 외에도 지체성 우울증(retarded depression), 초조성 우울증(agitated depression), 일차적 또는 이차적 우울증(primary or secondary depression),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 계절성 우울증(seasonal depression),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 등이 있다.2)

 

 

4. 우울증의 발생 원인

 

학문적으로 우울증의 원인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몇 요인으로 우울증의 발병 원인을 요약해 볼 수 있다.

 

① 생물학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에서는 유전적 연관성과 생화학적 가설에 초점을 둔다. 일란성 쌍둥이의 조울증 일치율이 이란성 쌍둥이의 조울증 일치율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 증명되면서 우울증에 대한 유전적 연관성이 밝혀졌다. 한편 생화학적 가설은 우리의 감정이나 의욕 그리고 신경 자율기능에 관한 활동을 담당하는 간뇌(시상하부), 뇌간, 변연계 등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카테콜아민이나 인돌아민 그리고 세라토닌 등이 올바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은 우울증을 치료할 때 항우울제를 투여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② 심리적 요인

 

내성적 성품, 늘 걱정함, 사소한 일에 감동함, 쉽게 집착함, 강한 의무감이나 책임감, 업무에 대한 열성, 철저함, 꼼꼼함, 착실하고 모범적임, 성실함, 타인의 부탁을 거절 못함, 의리 있음, 남을 배려함, 다투지 않음 등과 같은 성격은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이므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③ 사회적 요인

 

도시화, 핵가족화, 개인 중심 사회, 업무나 실적 위주 사회, 경제적인 불황 등은 알게 모르게 우울증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5. 우울증의 발생 경과

 

우울증의 발생 경과는 앞서 언급한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그리고 사회적이며 환경적인 요인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한다. 심리치료 요법 가운데 우울증 치료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인지요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지적 취약성-스트레스 모형(cognitive vulnerability-stress model)로 설명한다. 이 말의 의미는 객관적인 외부 사건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적 취약성으로 우울증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① 부정적인 생활 사건(negative life events)

 

우울증을 촉발하는 부정적 생활 사건으로는 첫째, 주요 스트레스 유발 사건(major stressor: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이나 질병, 자신의 질병, 가정불화, 실연, 갈등, 실직이나 사업실패, 경제적 파탄, 업무나 학업의 부진 등 상실과 실패에 관련되어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주는 사건), 둘째, 사소한 스트레스 유발 사건(minor stressor:사소한 언쟁, 비난, 불쾌한 사건 등), 그리고 사회적 지지의 부족(lack of social support:가족과 떨어짐, 소속 집단에서 소외당함, 친구나 도와줄 사람이 없음, 경제적 궁핍 등 환경적 물질적 그리고 심리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일상의 부정적 사건은 우울증을 촉발하는 일차적인 요인으로 인식된다.

 

② 인지적 오류

 

이것은 우울증 환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고 유형으로서 사목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부분이다. 앞의 부정적인 생활 사건은 외부에서 오는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인지적 오류는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생활에서 사건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기 다르다. 

 

우울증 환자들은 생활 사건들을 항상 부정적, 극단적, 그리고 자기파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우울증 환자는 약속시간에 친구가 늦게 나오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늦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무시하고 만나기 싫어서 늦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정적 사고 유형은 현실의 모든 생활 사건을 곧바로 우울증으로 인도하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이러한 인지적 오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흑백논리 또는 이분법적 사고(absolutistic/dichotomous thinking):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성취를 성공 아니면 실패로 판정하거나, 인간관계에서도 내 편이냐 상대편이냐 하는 도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우울증 환자는 한두 번의 사건에서 전체적이며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낸다. 예를 들면, 한두 번 청탁을 거절당했을 경우 자신감을 잃고 '나는 항상, 누구에게나, 어떻게 행동하든지, 거절을 당하게 되어있어!'라고 생각한다.

 

과장과 축소(magnification and minimization):어떤 사건의 의미나 중요성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말한다. 우울증 환자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자신의 단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과장하는 반면 긍정적인 사건이나 자신의 장점은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누가 자신의 능력을 칭찬했을 경우 사실과는 달리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가 자기에게 어떤 비판적인 말을 했다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진실한 말을 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ion):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몇몇 일부의 특성만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우울증 환자는 누구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 대화가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것이었는데도 그 안에 몇 마디 부정적인 내용을 근거로 '그는 나를 싫어해, 그는 나를 비난했어!'라고 단정한다. 

 

개인화(personalization):우울증 환자는 자신과 무관한 사건도 자신과 연결된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울증에 걸린 남학생이 길을 가는데 길 옆 벤치에 앉아있던 여학생들이 마구 웃으며 대화를 했다면, 실제로는 그 여학생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데도 이 남학생은 그들이 자기를 비웃고 조롱했다고 여긴다. 

 

③ 역기능적 신념(dysfunctional beliefs)

 

그렇다면 이렇게 인지적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지이론에 따르면, 사람마다 인식의 틀(schema, 인지 도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객관적인 생활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역기능적 신념체계이다. 

 

이러한 신념에는 '~해야 한다(must)', '~이어야만 한다(should be)', '~이어서는 안 된다(should not be)' 등의 당위적 명제가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 없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 '나는 쭛`쭛와 헤어져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사랑을 받아야 한다.', '나는 미움을 받고 살아서는 안 된다.' 등등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념체계는 곧바로 인지적 오류를 발생시킨다.

 

④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

 

앞에서 제시한 인지적 오류가 모든 생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이 될 때, 부정적인 사고 유형은 자동적인 사고로 굳어져버린다. 이것이 우울증 환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자동적인 사고로 말미암아 우울증 환자는 자신과 세상,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해 버린다.

 

자기 자신을 부정:나는 무가치하고 무능하며 사랑받지 못하는 버려진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살 가치가 없고 세상은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미래를 부정:나는 희망이 없다. 나의 이 상황은 내가 노력해도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내 인생은 실패와 파멸로 끝날 것이다.

 

자기 환경을 부정:내 상황은 살아가기에 너무 열악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무관심하기에 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⑤ 강화(reinforcement) 

 

위와 같은 형식으로 우울증이 심화되면 그 우울증은 또다시 일상의 생활에서 평범한 사건을 부정적인 사건으로 만들어버리고, 역기능적 신념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6. 종합

 

결국 인지적 취약성-스트레스 모형에 따르면 역기능적 신념을 많이 가진 사람이 어떤 생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물론 객관적으로 부정적인 생활 사건은 분명 있지만) 이러한 인지적 오류를 통해 자동적인 사고가 발생하면서 우울증상이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환경적 외부 요인(환경적 스트레스와 사건)'과 '개인적 내부 요인(우울증에 대한 심리적 취약성)'의 상호작용으로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울증에 취약한 심리 상태에 놓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환경적 스트레스와 충격 사건 등을 접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이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환경적으로 부정적인 사건들이 아무리 많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심리적인 상태가 건강하면(곧 역기능적 신념이 없다면) 사건의 인지적 오류를 거치지 않아 우울증을 유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환경적 외부 요인과 개인적 내부 요인이 서로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우울증은 인지적 심리체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생리학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감소에 따른 내분비계의 이상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런데 두 양상은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곧 생리적 원인은 부정적 심리체계 요인을 가속화할 수 있고 반대로 부정적 심리체계 요인은 내분비계의 조절 능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생리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우울증이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병하게 되는 경우에는 위의 두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만 유전되었을 수도 있고 둘 다 유전되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우울증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과 그 발생 과정에 대해서는 대충 파악이 되었지만, 외부환경과 내부-심리상태 그리고 유전적 소인과 같은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현재로서는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목상담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심리적인 건강과 영성적 충만한 삶 사이에서 가교(架橋)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심리적으로 우울증상을 호소하며 신앙생활에서 벗어난 신자들에게 사목자는, 영적으로 충만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줄 가장 일선에 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우울증의 이해를 바탕으로, 사목자들이 우울한 신자들을 상담할 경우 어떤 목표와 기술로 어디까지 그들을 사목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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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인과 우울증 환자의 차이는 아마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직접 우울증을 체험한 윌리엄 스타이런의 책 「보이는 어둠(우울증에 대한 회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은 신비로운 고통을 수반하며, 증상도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고, 기묘하고 포착하기 어려워 이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처절하게 이를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이따금씩 느끼는 일반적 스트레스 가운데 울적함이 있는데, 이것이 파국적인 형태로 심화된 것이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을 일반적인 우울함이 약간 깊어진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는 우울증은 일상생활 속에 흔히 존재하는 친숙한 우울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그 우울의 세계로 나는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2) 우울증은 보통 신경과나 내과(피곤, 조바심, 분노, 두통, 현기증, 저혈압, 불면증, 자율신경 실조증, 과민증, 소화불량, 위장 신경증, 위하수, 만성위염, 위무력증, 과민성 대장증, 당뇨, 과호흡 증후군), 외과(뇌종양이나 덤핑 증후군), 정형외과(근육통, 배부통, 경부 외상 후유증, 요통), 안과(눈동자 피로), 이비인후과(메니에르 증후군, 인후두 신경증), 산부인과(갱년기 장애), 비뇨기과(신경성 방광염, 배뇨통증, 발기불능), 소아과(등교거부, 신경성 구토) 등의 질환 속에 숨어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감각기관의 혼란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을 가면성 우울증이라 한다. 이런 증상의 환자는 자신의 근본적인 우울증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보통 신경정밀검사, 뇌검사, 척추진단 등과 같은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 안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종종 의사들에게 포착되지 않는다.

 

[사목, 2003년 9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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