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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43: 커피에서는 무엇이 부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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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3-23 ㅣ No.648

[사유하는 커피] (43) 커피에서는 무엇이 부활일까


부활, 의심이 아니라 믿음인 이유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활용하다가 영영 본뜻에서 멀어진 단어들이 제법 많다. 남에게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는 ‘마누라’는 조선 시대에는 임금을 이르는 극존칭어였다. 상대보다 낮출 때 쓰던 ‘족하(足下)’는 이젠 형제자매의 자식을 부르는 ‘조카’가 됐다. ‘서방님’도 벼슬하지 못하고 책방에서 공부하는 사람에서 남편을 일컫다가 남편의 동생을 이르는 호칭으로 쓰임이 바뀌었다.

 

말이라는 것이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 의미가 바뀌는 속성이 있다. 그럼에도 언어 구사에 신경을 써서 왜곡되지 않도록 잘 간직해야 하는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 부활(Resurrection of Christ)’이다. 대중 매체와 인터넷 공간에서의 ‘부활’의 오용과 남용은 심각하다. ‘공매도 부활’ ‘비트코인 부활’ ‘트럼프 부활’ 등이 재치 있는 표현인 양 자주 사용되는데, 이때 ‘부활’이라는 표현을 해야 하는지 따지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버젓이 ‘악의 부활’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지경이다.

 

‘부활’은 성경에 적힌 예수 부활에서 그것과는 본질이 다르다. 인터넷 공간에 등장하는 ‘부활(賦活)’은 예수님의 ‘부활(復活)’과 한글 표기와 발음이 같을 뿐 다른 말이다. 많은 사람이 부활이라고 하면 으레 ‘죽은 뒤 다시 살아남’으로 간주한다. 더 큰 문제는 사용하는 측도 그다지 분별 있게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악의 부활’에서, 부활은 영어로는 ‘액티베이션(activation)’, 활력을 준다거나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주체가 ‘악’이기 때문에 부활보다는 ‘함부로 날뛴다’는 뜻으로 ‘악의 발호’라고 적는 게 적절하다. ‘예수 부활’에서 부활은 ‘리서렉션(resurrection)’,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라는 의미이다. 숨죽이고 있다가 다시 활동하는 액티베이션을 예수 부활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일 순 없다. “부활은 묵은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라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직관은 깊은 사유로 이끈다.

 

“과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 “그것이 타당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부활 신비’라는 말로 답할 수 있다. 신비는 한마디로 ‘하느님이 계시한 진리’이다. 신비란 하느님의 표현이기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활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질문은 “예수께서 부활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향해야 한다. 부활은 한 생명체가 일궈낸 개별적인 기적이 아니라 섭리를 생생하게 증명한 사건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부당함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이다. 예수 부활은 “선은 언제나 악을 이긴다”는 이치를 보여줬다. 나아가 부활한 예수는 단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거듭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부활 사상’을 깨우쳐 준다. 부활은 현실 너머 이데아를 바라보도록 안목도 키워줬다. 그것은 곧 인간 정신의 재구성이자 인간의 재탄생이다.

 

고로, 부활의 정신은 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커피에서는 무엇이 부활일까? 밋밋한 커피 생두는 섭씨 20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환경을 거쳐 비로소 향미를 얻는다. 물질적으로는 변형됐을 뿐 똑같지만, 커피는 볶임으로써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 커피 애호가들이 잿더미가 될 것 같은 환경에 과감하게 커피 생두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타지 않고 향기를 얻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 부활은 의심이 아니라는 믿음을 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2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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