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옆집의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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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05 ㅣ No.791

[레지오 영성] 옆집의 성인들

 

 

- 순교복자 이순이 루갈다 십자고상과 옥중편지 필사본 / 호남교회사 연구소 소장.

 

 

‘몸 고상’

 

사진에 소개하는 십자가는 동정부부로 살다가 순교하신 복자 이순이 루갈다의 무덤에서 나온 ‘루갈다 몸 고상’입니다. 얼마나 어루만졌는지 닳고 닳은 몸 고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새겨 있습니다. 루갈다 복녀는 이 십자고상을 몸에 지니고 살며 손에 쥐고 늘 바라보면서 신앙의 언약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녀께서 순교 직전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맹세하여 사 년을 친남매 같이 지내는 도중에 구월에서 시월 사이에 십여 차례의 유혹에 빠질 뻔하다가 주님의 성혈공로를 일컬으면서 능히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순교자들도 인간이었기에 스스로 겪어내야 했던 인생의 무게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 감당해내야 할 수많은 유혹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순교자는 주님의 성혈공로를 일컬으면서 능히 유혹을 물리쳤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성혈공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사랑의 희생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은 이 십자고상을 몸에 지니고 살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희생에 대해 늘 묵상하면서 자신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을 때 평생 지녔던 묵주와 십자고상을 넣어드립니다. 순교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십자고상은 하느님을 알고 그분 외에는 다른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주님의 십자가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온 신앙의 삶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축복의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집인 교회

 

바오로 사도는 교회 공동체에 보낸 서간에서 예수님을 알게 됨으로써 진리의 길을 알게 된 이들을 ‘성도(聖徒)’라 부릅니다. 성도라는 호칭은 교회가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을 닮는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뜻입니다.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일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교회 안에서 ‘성도’라는 호칭은 사라지고 ‘신자’나 ‘교우’라 부르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가 거룩해지는 일이야말로 교회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임을 소홀히 한 믿음살이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되어 참 아쉬운 마음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성인을 특별한 고행이나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정상적인 가톨릭 신자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레지오를 ‘성인들의 요람’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레지오는 일상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신자 생활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교본 211쪽 참조)

 

 

옆집의 성인들

 

‘옆집의 성인’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최근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황님은 지극한 희생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열심히 일해 가정을 부양하는 사람들, 투병 중에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는 환우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老) 수도자에게서 “투쟁하는 교회의 성덕을 본다”며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을 ‘옆집의 성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7항)

 

이처럼 성덕을 실천하는 방식은 무슨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 은총의 이끄심에 따라 수많은 작은 몸짓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그 성덕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습니다.”(18항) 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통해 신앙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약한 우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너와 나의 관계 안에서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무게들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연된 이 모든 도전에도 불구하고 일상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마땅한 응답을 하는 것이 신앙인이 거룩한 삶이겠지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시고 가장 충실한 성도의 삶을 보여주신 성모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헤아리는 마음, 그분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셨으며, 모든 일들을 마음에 간직하며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성모님처럼 평범한 일상을 통해 거룩한 삶을 보여주는 옆집의 성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예수님이 되어주듯이 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옆집의 성인이 되는 것이 함께 성인이 되는 성화의 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김영수 헨리코 신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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