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제자 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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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5 ㅣ No.889

[레지오 영성] 제자 됨의 길

 

 

마태오 복음 10장 2절 이하를 보면 열두 사도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 명단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먼저 이들이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직업 면에서도 어부였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독립운동을 하던 인물도 있었고, 율법을 공부하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던 세리(마태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먼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양함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있습니다. 다양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이것은 독(毒)입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 사람들과의 갈등의 원인도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행동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색입니다. 모든 색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그 색은 영롱한 검은색으로 새로이 태어나지만 섞이지 않을 때 기괴한 모습의 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들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경건자에 속하는 인물은 기껏해야 바르톨로메오 정도가 전부이고, 세리 마태오처럼 직업적으로 죄인의 집단에 속했던 인물은 물론이고, 항상 로마인들을 죽이기 위해 몸에 칼을 품고 다니던 적개심에 불타는 사람도 있었고, 제베대오의 아들들처럼 천둥의 아들로 불릴 만큼 다혈질이고, 질투심과 권력욕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물론이요, 첫 제자인 베드로도 위험 앞에서는 스승도 배신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약자의 위치에 놓였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갈릴래아 출신인데 갈릴래아는 매우 천대받던 지역을 상징합니다. 성서에 ‘이방인의 갈릴래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릴래아라는 지역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층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직업을 보아도 이들이 사회적 약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해 몇몇이 어부였는데, 이 직업은 ‘땅의 백성’이라 하여 율법을 모르는 이들로, 사회 지도층 인물들로부터 멸시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와 열혈당원도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사회적 지도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인물들이고, 바르톨로메오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구체적인 직업조차 거론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작고 약한 사람들을 선택해 구원의 역사 이뤄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 반드시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협력자들이 인간적인 눈으로는 매우 작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구약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 모세와 신약의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인 구세주의 탄생과정에서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모 어머님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성모님은 잉태 소식을 듣기 전 성경에 나오는 신분은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였습니다.

 

나자렛은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오겠소(요한 1,46)”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대받던 지역이고, 그 당시 여자라는 사실은 인간으로서 취급을 받지 못하던 아주 미소한 인물이었기에 ‘나자렛 처녀’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작은 자, 보잘것없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모세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기 전에는 범법자로 도망 다니던 신세였고 장인의 가축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목자는 세리와 더불어 직업상 죄인에 속하던 사회 약자들의 직업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이러한 작은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당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열두 제자들의 면면은 이러한 모습이 어떤 일회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린이’ ‘철부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대개 ‘제자’들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린이의 특징은 ‘얻어먹는 사람’이요,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열두 제자 단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님께 대한 의존성’과 ‘작은 자’, 이것이 바로 제자 됨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초대교회의 생생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약한 자 안에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능력에 의지하려는 똑똑한 우리들 때문”이라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면서 아마도 이 말씀이 우리 모든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가장 기본적인 레지오 정신이라 생각해 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9월호, 홍금표 알비노 신부(원주교구 의림동성당 주임, 천상은총의 모후 Co.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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