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안에 나타난 기도와 활동의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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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206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안에 나타난 기도와 활동의 관계성

 

 

머리말

 

많은 이들이 사도직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가끔 그 효과가 없는 경우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면 활동의 원천인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의 깊이 있는 기도생활을 하는 경우라면 자신의 활동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기도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초심자들에게는 활동에 앞서 기도하는 삶이 필수적이다.

 

데레사 성녀(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일은 10월 15일이다.)는, 활동의 원천은 기도이며 기도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이고 영혼은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더욱 효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데레사는 그녀의 자서전에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해주는 기도의 단계를 네 가지의 물로 비유하고, 기도자가 어떻게 물을 긷는지에 따라서 기도의 단계가 구분된다고 한다. 기도자는 마지막 네 번째의 물을 마심으로써 관상의 단계에 도달할 것이고 더욱 효율적인 사도직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본 소고에서는 데레사 성녀의 주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자서전』을 중심으로 하여, 기도에서 어떻게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도의 단계와 활동

 

정원에 물을 주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팔의 힘으로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퍽 힘겨운 일이다. 이는 힘든 묵상에 비교된다. 둘째는, 두레박이 매달린 도르래를 손잡이로 돌리면서 긷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힘이 덜 들고 많은 물을 길을 수 있다. 이는 고요의 신비적인 기도에 비교된다. 셋째로는, 시내나 도랑에서 물을 끄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땅은 관개가 잘되어서 정원사의 일이 훨씬 줄어든다. 이는 일치의 신비적인 기도를 의미한다. 넷째는 다량의 비가 내리는 것인데 이 경우는 우리의 힘든 일은 아예 없고 주님께서 친히 물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황홀경의 일치의 신비적인 기도를 의미한다.1)

 

이렇게 정원에 물을 주는 네 가지 방법은 곧 기도를 하는 네 가지 방법을 의미한다. 정원을 비옥하게 하는 네 가지 관개의 방법은 기도의 네 가지 차원2)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정신적인 기도에 해당되고 두 번째 방법은 고요의 기도이며, 세 번째 방법은 활동의 휴지(休止)이다. 그리고 네 번째 방법은 일치의 기도이다.

 

데레사는 활동의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이 기도를 통해서 충분히 성숙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기 자신에게도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거룩하신 뜻은 이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영혼이 그 양식으로써 넉넉히 보양되어 튼튼하게 될 때까지는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자서전 17,2).

 

실제로 데레사는 수년 동안 그녀의 불완전함 때문에 단지 세 명에게만 영향을 끼쳤음을 고백하고 있다. 반면에 그녀가 영적인 성숙의 단계에 도달할 때쯤에 (이 시기는 개혁의 시초와 일치하는데) 그녀의 영향력은 약 40명의 수도자에게까지 미치게 된다.3) 이제 기도의 성숙한 단계를 표시하는 네 가지 눈물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살펴보자.

 

1) 첫 번째 눈물

 

데레사는 정원에 물을 주는 네 가지 방법을 기도의 네 단계에 비유한다. 주님은 네 가지의 물로 정원에 물을 대며 묵상기도를 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는 것이다.

 

데레사는, 첫 번째 방법인 묵상기도를 시작한 영혼은 주님께서 즐기실 정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초보자는 우선 정원에 난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정원사이신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식물을 가꾸고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동산에 피어나는 덕행의 꽃을 보러 오시고 그 향기에 흐뭇해하실 것이다(자서전 10,6 참조). 데레사는 기도의 초기 단계에서는 인간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차츰 인간의 노력보다 하느님께서 더 많이 관여하신다고 한다.

 

묵상기도의 초기에서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레사는 무엇보다도 겸손의 덕을 강조하였다. 실상 어떤 영혼은 자신에게도 허물이 많은데도 다른 사람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녀의 삶의 명백한 모순이 그녀가 돕기를 원했던 사람들을 위한 유혹과 혼란의 동기가 되었다. 그 갈망은 좋은 것이었으나 덕들은 아직도 충분히 강하지 않았고 그 빛은 대단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초심자에게서 가끔 볼 수 있는 다른 유혹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생활의 단맛과 유익을 맛보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높은 완덕에 있기를 원합니다. 이 원의는 나쁘지 않으나, 그것을 실행에 옮길 때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중히 능숙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이 덕행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유혹 거리가 됩니다(자서전 13,8).

 

그러므로 기도의 처음에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돌보기보다는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에 충실하도록 먼저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2) 두 번째 눈물

 

첫째 기도가 팔의 힘으로 물을 긷는 것이라면, 둘째 기도는 정원사가 양수기를 돌려 물을 긷는 것으로서 이때는 피로가 훨씬 덜하다. 또 늘 팔의 힘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쉴 시간도 주어진다. 이 기도를 고요의 기도라고 한다. 이 기도에서 영혼은 마음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제 영혼은 이전의 오성(悟性)으로만 하는 기도에서는 얻을 수 없을 정도의 덕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영혼의 기능이 모아지는데, 의지는 하느님께 포로가 된다. 그러나 다른 두 기능 곧, 오성과 기억은 아직 방황한다.

 

다른 두 가지 능력은 의지를 도와서 이런 큰 보화를 즐길 수 있게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때 의지는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으면서도 이 두 가지 능력 때문에 어색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의지는 그런 것에 상관하지도 말고 자신의 평화와 고요 중에 머물러야 합니다(자서전 14,3).

 

이 두 번째 기도에서는 물의 수면이 전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 영혼은 물을 긷는 데 피곤함을 덜 느낀다. 이 두 번째 단계는 초자연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린다. 기도하는 자의 지성적인 피로함이 감소되고 그 안에서 위로가 시작된다.4) 그리고 주님께서 더욱 자기 가까이 계심을 느끼고 자기의 기도도 예전보다 잘 들어주시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은 주님의 현존과 도움을 한층 더 분명하고 확실히 느끼게 된다.

 

이 고요의 기도에서 이 지존하신 임!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윤허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시고 당신 현존의 효과를 느끼도록 하시려 합니다. 그분은 영혼에게 안팎의 큰 만족을 베푸시면서 특별한 양식으로 영혼 안에서 일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자서전 14,6).

 

이 기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하느님 사랑의 불꽃이다. 이 기도에서 하느님은 사랑의 불꽃을 주시는데, 이 불꽃으로 영혼은 고요와 잠심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 고요의 기도는 주님께서 영혼 안에 불붙이시는 참사랑의 작은 불꽃입니다. 임은 이렇듯이 즐거움에 넘치는 이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영혼에게 조금씩 알아듣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고요, 이 잠심, 진정 이 작은 불꽃은 하느님의 얼의 효과입니다. 이것은 악마나 또는 우리의 노력에서 생기는 맛은 아닙니다(자서전 15,4).

 

데레사는 이 기도가 자기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의 얼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고요의 기도 역시 인간 자신의 노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잘 준비된 영혼에게 이 은총이 주어질 것이며, 하느님께서 이 영혼들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시는 것은 다른 영혼들의 선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고요의 기도를 시작한 영혼은 기도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한다. 고요의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이 다른 이를 위한 기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 기도의 은총이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자비에 대한 응답의 행위가 그러한 봉사활동이기 때문이다.5)

 

또한 이 고요의 기도를 시작한 영혼은 이미 하느님과 벗의 관계를 시작하였기에 벗으로서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봉사를 시작하여야 한다. 곧 그리스도와 우정의 관계를 맺었으므로 이제 그분의 삶에 동참하고 그분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도움으로써 보상을 받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보수 없이 임금님께 시중드는 헌신적인 용감한 기사를 본받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대한 사정입니다(자서전 15,13).

 

이 둘째 단계의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 덕보다도 훨씬 뛰어난 덕을 얻을 수 있다. 곧 자신의 성찰로써 얻을 수 있는 겸손과는 다른, 그보다 더 뛰어난 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예적인 두려움을 거두시고 효성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두려움을 일으키신다.

 

3) 세 번째 눈물

 

세 번째 눈물에서 기도자는 훨씬 쉽게 하늘의 물을 끌어온다. 데레사는 이를 시내 또는 샘에서 끌어오는 것에 비교하는데, 인간의 노력은 아주 조금밖에 들지 않는다.

 

그럼 지금부터 정원의 관개에 쓰이는 세 번째 물에 대해 말해봅시다. 그것은 시내 또는 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입니다. 이 물을 끌어오는 데 약간의 수고는 들지만 관개의 노고는 훨씬 줄어듭니다. 사실 주님은 정원사를 크게 도와주시려 하시니, 말하자면 그를 대신해서 거의 모든 일을 당신께서 하십니다(자서전 16,1).

 

세 번째 눈물의 기도에서 영혼은 이전보다 훨씬 더 하느님과 일치한다. 그러나 모든 영혼의 기능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혼은 하느님과 거의 일치되어 있으나 그의 능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

 

모든 능력이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해 있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치가 앞서 말한 묵상기도에서보다 더 완전한 것임을 명확하게 인정했습니다(자서전 16,1).

 

세 번째 물에서는 일치의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분처럼 변모하게 되고 선을 수행할 능력을 갖게 된다. 이 단계에서 영혼의 특징은 자기가 받은 은혜에 취하여 이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크나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 역시 하느님의 영광을 기리는 일 이외에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6)

 

이때 영혼은 새로운 열정, 다시 말하면 새롭게 변모된 영혼으로서 활동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영혼은 하느님과 함께 있고 싶은 나머지, 어서 이 세상을 떠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어서 그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충분히 섬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므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에 머물면서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한다.

 

이때의 영혼은 초기 기도단계에서 자기 자신은 덕도 없지만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하려는 지나친 열정과는 다른, 참된 열정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 시작된 사도적인 활동은 더 이상 인간적인 열정이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사도직 활동을 하도록 충동시킨 힘은 저 옛날 사도들을 충동한 사랑의 큰불인 것이다. 영혼은 이 큰불로써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무수히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 이끌어올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데레사의 기도가 결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도직의 열정으로 이끄는 효율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영혼은 더욱 강력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그에게 자라난 덕과 무관하지 않다. 영혼은 덕의 향기를 뿜어내고 이제 그 덕분으로 큰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데레사의 활동이 기도와 얼마나 밀접히 연관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여튼 이 묵상기도에서는 앞서 말한 고요의 기도에서보다 덕이 더 굳건하게 되어 영혼은 그것을 모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온통 딴판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은 못하면서도 꽃이 발산하는 아리따운 향기 덕분으로 위대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자서전 17,3).

 

영혼이 사도직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 때문에 마음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데레사는 기도의 각 단계를 거치면서, 조금씩 자기 영혼의 기능이 집중되고 하느님과 일치됨을 느낀다. 이 3단계에서 영혼의 기능 가운데 오성의 기능까지 하느님께서 점령하고 계신다고 느끼게 된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일치에서 일어나는 일, 그것은 하느님께서 의지를 차지하고 오성마저 점령하시고 계신 것같이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훌륭한 많은 것을 보고 관상에 젖어있어서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자서전 17,5).

 

영혼의 기능 가운데 의지와 오성의 기능을 하느님께서 차지하고 계셔서 영혼은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영혼은 자기의 기능이 하느님께 완전히 일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비탄하기도 한다. 영혼의 기능이 일치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사도직의 결실도 적어지는 것이다. 이제 영혼은 자기의 기능이 온전히 하느님께 봉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데레사는 이렇게 한탄한다. “오 나의 하느님, 도대체 그 언제쯤 내 영혼의 능력은 다 함께 당신의 위대하심을 찬미하는 데 서로 일치하게 되겠습니까?”(자서전 17,5)

 

4) 네 번째 눈물

 

데레사는 마지막 단계의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영혼은 자기가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즐긴다. 그는 선 자체를 알지 못하고 즐기는데, 엄청난 영광과 위로가 따르며 기쁨도 따른다. 이 4단계에서 영혼은 무엇보다도 합일을 경험한다. 데레사는 이 합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혼은 달아서 불꽃과 변화된 거센 불, 그리고 어떤 때는 급격히 커지는 불덩이처럼, 자체에서 튀어나옵니다. 이 불꽃은 매우 높이 치솟아오릅니다(자서전 18,2).

 

이 4단계에서 영혼에게 주어지는 물은 정원사가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 내리며, 영혼은 이전의 단계보다 훨씬 더 많은 선익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에게 맺어진 열매가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의 네 번째 물에서 데레사는 인간 안에서 흘러나오고 인간을 엄습하기까지 하는 하느님의 생명을 상징화한다. 영혼은 신비적 기도의 수동성에서 커다란 활동을 하게 된다.7)

 

그는 벌써 천상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는 표가 나타납니다. 그는 그것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소망에 불타서, 자기만 그렇게 가멸게 하지 말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는 제 자신은 조금도 모르는 가운데, 또한 스스로는 그런 목적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웃에게 영신적 선을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립니다(자서전 19,3).

 

이와 같이 데레사는 기도의 4단계를 정원에 물을 대는 네 가지 방법과 비교하였는데 각 단계의 물은 눈물에 비교할 수 있다. 기도가 깊어짐에 따라서 회개의 정도가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눈물이 더욱 순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불결한 경향들의 정화는 근본적으로 기도 안에서 가능하다고 데레사는 말한다. 기도를 할 때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의 살아있는 물을 주시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신다.8) 진정 사람은 자기 혼자서는 깨끗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데레사는 종종 주님께 그녀의 그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청하곤 하였다.9)

 

이제 네 번째 단계에 도달한 영혼은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며 봉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미혹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데레사는 이 마지막 기도의 단계에 도달한 영혼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둠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 특별히 묵상기도 생활에 전심하여 하느님께 자별한 은총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 얼마나 동정심을 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얼마만큼이나 잘못에 젖어있는지 알리고자 그는 목청을 돋우어 부르짖고 싶어집니다”(자서전 20,25). 이 단계에 도달한 영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겸손을 획득하게 되며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을 찾게 된다.

 

영혼이 참 겸손을 지니는 때가 바로 여깁니다. 누가 자기에게 대해 좋게 말을 하든 말든 그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정원의 과일을 나누시는 분은 정원의 주인이시지 그가 아닙니다. 따라서 자기 손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온갖 선을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만일 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자서전 20,29).

 

이 단계에 도달한 영혼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감수한다. 또한 영혼 안에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려는 소망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힘도 주님께 받게 된다. 우리는 데레사의 다음 말로써 진정한 사도직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직은 주님께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행위인 것이다. 주님께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 무엇인가를 내어드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이 4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그는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일하도록 가려주신 강한 영혼이 된다. 그러나 그런 사도직 활동의 원천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하느님의 힘으로 모든 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 영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사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경박하고 악습에 젖어있을지라도 이 영혼은 그 때문에 조금도 뒤숭숭해지지 않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거기서 자극과 큰 선익을 얻는 수단을 얻습니다. 이제야말로 그는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일하도록 가려주신 강한 영혼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힘은 그 영혼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자서전 21,21).

 

우리는 기도의 첫 번째 경험(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는 것)에서 마지막 경험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도 인간 영혼의 활동성에서 수동성으로의 이행의 구조 아래에서 기도의 발전을 보았다. 기도는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건네주게끔 성령의 활동에 더욱 절대적인 순응을 하게 된다.10) 이제 인간 영혼은 더욱 수동적이 되지만 사도직 활동의 결실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성녀의 주요 작품인 자서전 안에서 기도와 활동의 상호 관계성을 살펴보았다.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에서 말하는 요지는 기도의 성장 없이는 덕이 자라나지 않고 따라서 사도적인 활동이 효율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활동가이며, 진정한 활동가는 기도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혼은 기도의 성장으로 더욱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데, 하느님과 일치되면 일치될수록 더욱 활력 있고 덕스러운 사람이 되게 한다. 그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고 싶어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열망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실제로 사도직의 결실을 맺게 한다. 성인(聖人)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참된 활동, 하느님 앞에서 공로가 되는 활동을 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녀는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완덕의 절정을 목표로 하고 과감하게 내걷기 시작한 자는 결코 혼자서 천국에 가는 법이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언제나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자기 뒤를 따르게 합니다(자서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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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ziano G. Pesenti, La vita e le Fondazioni, In Teresa di Ges? Teresianum, 1981년, 148면.

2) Giovanni Tani, Castello Interiore di Santa Teresa d’Avila, Milano, Edizioni paoline, 1991년, 64면.

3) Francois Regis Wilhelem, Dio nell’azione, la mistica apostolica secondo Teresa d’Avila, Citta del Vaticano, 1996년, 56면.

4) Giovanni Tani, Castello Interiore di Santa Teresa d’Avila, Milano, Ed., paoline, 1991년, 69면.

5) 자서전 15,7 참조.

6) Giovanni Tani, 앞의 책, 72면과 자서전 16,3 참조.

7) 위의 책, 75면.

8) 위의 책, 64면.

9) 같은 곳. 타락시키고 죽음으로 이끄는 악의 유혹은 아주 더러운 물처럼 정체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고 데레사는 설명한다. 그것이 진전하고 그것의 연루시키는 힘은 영혼들을 타락하게 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10) 위의 책, 75면.

 

[사목, 2004년 10월호, 김준년(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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