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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현황과 교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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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16 ㅣ No.1069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현황과 교회 입장

'안락사' 악용 빌미 제공 가능성에 강한 우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연명의료 결정 권고안'은 대상 환자를 임종기 환자로 국한하고, 환자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가 봉사자들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말기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고도 불리는 연명의료 결정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부착 등 고통만 연장할 뿐인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이 왜 필요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이에 관한 교회 입장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된 사례들이다. 사례 1은 병원 측이 일단 시작한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를 중단하지 못한 경우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살인죄를 적용받기 쉽다. 이는 사례 2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의료진이 연명의료를 중단하지 못한 데는 1997년 당시 보호자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료진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한 이른바 '보라매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 이후 의료계는 많은 논의를 거쳐 연명의료 관련 지침들을 제정하고 공포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이 진료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쉬운 탓이다.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법제화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연명의료 결정 권고안은 현재 마련된 상태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최근 공청회를 거쳐 보완한 권고안을 심의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정부는 이 권고안을 토대로 법제화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공청회 권고안 내용

공청회에서 발표된 권고안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되는 임종기 환자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다. 대상 의료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ㆍ기술ㆍ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치료 등)이며, 통증조절이나 영양ㆍ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다.

권고안은 또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를 존중한다. 환자가 곧 닥칠 상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이성적 판단으로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를 권유하며, 사전의료의향서는 담당 의사가 확인하면 환자 의사로 인정한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계획서와 달리 의사와 상의 없이 혼자 작성하는 것이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는 없지만 예전에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있거나 가족(배우자ㆍ직계비속ㆍ직계존속) 2인 이상이 환자의 의사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할 때는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인정할 수 있다. 대리인이나 가족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 결정 이유

이상과 같은 권고안을 토대로 법제화가 이뤄진 것을 가정한다면 사례 1과 2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사례 1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따라 특수 연명의료를 중단했다면 심씨가 인공호흡 튜브를 뽑는 극단적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구속될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례 2에서도 마찬가지로 의료진과 누나가 고소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된다. 물론 법에서 정한 연명의료 결정의 기준에 부합한 경우에 한해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성질환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다 사망하는 환자는 연간 18만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3만여 명이 임종기에 인공호흡기 또는 심폐소생술과 같은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 허대석(서울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3만여 명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이유는 대부분 환자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가족이 연명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 본인의 의사로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허 교수는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으면서 고통스러운 임종 과정을 겪지 않게 하려면 환자에게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게 해야 한다"며 연명의료계획서 활성화와 연명의료계획서를 기초로 하는 연명의료 결정의 조속한 법제화를 촉구했다.

 
가톨릭교회 입장

교회는 연명의료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0년 '안락사에 관한 선언'을 통해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안락사는 절대 허용할 수 없으나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을 보호해줄 뿐인 치료법을 거부할 수 있는 결정은 양심 안에서 허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할 때다. 교회 전문가들은 이번에 나온 연명의료 결정 권고안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면서도 임상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악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법제화는 의도가 불순한 사람들에게 악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결정이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겨 안락사로 이어지는 것을 강력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들은 현재 이 같은 교회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우(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신부는 "제도화는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오용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면서 "제도화에 앞서 의료진이 생명을 존중하는 가운데 환자에게 과도하고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윤리원칙을 정하고 윤리적 감수성과 소양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16일, 남정률 기자]

 

 

[특별기고] 특별위원회 위원장의 꼼수



지난 5월 29일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 제도화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그 배경과 목적을 보면, 2012년 11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제도화를 추진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2012년 12월 초 의료ㆍ종교ㆍ윤리ㆍ시민단체 등 각계 분야 위원들로 구성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가 보건복지부 내에 설치됐다. 공청회는 특별위원회가 지난 6개월 동안 연명의료 중단의 요건과 적용 범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검토 및 의견수렴을 토대로 마련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국민에게 알리고, 그 자리에서 제시된 의견을 참고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보고할 최종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특별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은 안락사 관련 내용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다행이었으며 전반적으로 특별위원회의 노고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세부적인 면에서 필자가 주목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권고안의 제목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용어가 최종 발표된 권고(안)에서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으로 발표됐다. 전자의 제목이 의료진 중심이라면 후자의 것은 환자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둘째, 대상 환자를 임종기 환자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시기의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악화일로에 있는 환자에게 고통과 부담만 가중시킬 뿐, 질병을 호전시킬 어떠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다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것이 환자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하다.

셋째, 연명의료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통증 조절, 수분ㆍ영양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다고 명시한 것도 환영할 만하다. 공급되는 영양과 수분을 환자 상태에 의거해 적절한 방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특별위원회의 권고라는 것을 확인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넷째,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에 있어서 환자가 현재 또는 곧 닥칠 상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시했고 아울러 담당의사가 확인한 사전의료의향서도 제시됐지만 공청회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주로 설명했으며, 동시에 사전의료의향서가 지닌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는 공청회가 지난 며칠 후,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각 위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접하면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공청회 당일에는 언급조차도 없었던 두 단어 때문이었다. "… 영양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다"는 문장이 "… 원칙적으로 중지할 수 없다"로 바뀌었고, 환자의 명시적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에서 특별위원회가 강조한 연명의료계획서와 동일한 비중으로 '생전유언'(Living Will)이라는 선택항목을 끼워 넣은 것이다. '원칙적으로'라는 말은 그 의미를 법률적으로 확장하면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생전유언은 1975년 미국의 안락사교육위원회가 작성 배포한, 이른바 '안락사 지시서'라고도 불리던 것이다.

특별위원회가 이미 지난 6개월간의 회의를 거쳐 결론을 내렸고 공청회에서 확인했듯이 임종자에 대한 일반 연명의료는 '원칙적으로'가 아닌 '절대로' 중단될 수 없으며, 또한 환자의 의사 확인에서 생전유언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는 것이 특별위원회와 공청회의 최종 결론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공청회 당일 발표된 특별위원회 권고안과 공청회에서 제시된 중의(衆意)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름 하에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하려는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 한마디로 특별위원회 위원장 서신으로 특별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개최됐던 공청회의 의의(意義)가 무색해졌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16일, 이동익 신부(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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