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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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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8 ㅣ No.687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상)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 후 1954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열린 첫 서원식 모습.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제공.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 위해 생겼으니, 우리 본(本)은 사랑이요, 목적도 사명도 사랑일세.”

 

그 어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시대에 태어난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는 1930년 10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뮈텔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하느님 사랑에 더 다가가기 위해 수도자가 되길 원했으나, 당시 한국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수도회밖에 없었다. 이에 방유룡 신부는 한국인 심성과 정서에 맞는 수도회, 즉 이 땅에서 하느님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한국인 설립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방유룡 신부는 해방 후 첫 주님 부활 대축일이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46년 4월 21일 개성본당에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최초의 한국인 설립 수도회를 창설했다. 공동창설자인 윤병현(안드레아) 수녀와 홍은순(라우렌시오) 수녀는 수도복으로 가장 가난한 차림인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수도회의 역사를 함께 시작했다.

 

한국 수도생활의 맥은 신앙 선조인 한국 순교자의 얼을 이어가는 것이라 하여 수도회의 이름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로 명명했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교정신과 형제애로 복음선포’를 수도회의 목적으로 삼으며 한국 순교자들을 수도회의 주보(主保)로 삼았다.

 

수도회 창설 후 얼마 되지 않아 공산정권으로 인한 정치 상황이 심각해져 개성본당과 첫 수도공동체를 이뤘던 보금자리를 떠나 1950년 3월에 서울 청파동으로 본원을 이전했다. 곧이어 6·25 전쟁이 발발했고, 수도회 뿌리를 내리는 초창기에 닥친 전쟁과 피난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수녀들은 흩어지지 않고 수도생활을 이어갔다. 전쟁 때의 폭격으로 무너진 청파동 본원을 수리하며 수도회 재건에 전념을 다했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 시절에 수녀들도 재정 자립을 위해 인형과 조화를 제작해 팔기도 했지만, 1954년에는 첫서원을 한 홍은순 수녀를 제2대 수련장으로 하여 자체 양성 기반을 마련할 정도로 수도회가 튼튼해졌다.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자, 공의회 정신에 따라 살기 위해 수도복장을 간소화했으며 2007년에는 회원 수가 많아진 공동체 내의 소통과 친교를 증진시키고자 대전관구와 수원관구를, 2009년에는 미주지부(미주준관구 전신)를 설립했다.

 

또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수도회로 시작했지만 수도회의 카리스마가 보편교회에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21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는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 ‘성좌 설립 수도회’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4월 17일, 박지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중)


‘한국 순교자’ 주보로 모시고 생활

 

 

-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자 방유룡 신부가 서울 성북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대월’ 기도를 바치는 모습.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제공.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은 매일 아침 “완덕(完德)을 위하여 점성, 침묵, 대월로 면형무아를 약속합니다”라는 수도 근본정신을 서약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이 수도 근본정신에는 창설자 고(故)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 영성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방 신부가 수도생활의 최종목표로 삼았던 ‘면형무아’(麵形無我)란 ‘성체’를 뜻하는 말이었던 ‘면형’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 사욕을 없애고 자신을 온전히 비운 상태를 의미하는 ‘무아’가 연결된 말이다. 이는 마치 누룩 없는 빵이 성체가 되듯, 우리도 자신의 사욕을 없애고 비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면 ‘면형무아’가 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 되는 것이다.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점’의 성질을 일컫는 ‘점성’과 ‘정신’을 합쳐 만든 방 신부의 고유한 영성 용어다.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면서도 모든 도형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이 가진 특성 안에서 방 신부는 겸손의 극치를 발견하고, 이 ‘점’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성체면형’이 되신 그리스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처럼 작은 자가 돼, 일상 안의 작고 미소한 일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점성정신’이며, 이것이 수도생활의 기초이며 뿌리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성체면형’이 되신 주님께로 가는 출발점이요 길이다.

 

‘점성정신’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시작한 영혼은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느님 아닌 일체의 것을 버리고 비우며 정화하는 ‘침묵’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극복하는 길, 자기 비움(케노시스)을 뜻한다. 방 신부는 이 ‘침묵’을 ‘육신 내적 침묵’(분심 잡념과 사욕의 침묵), ‘육신 외적 침묵’(이목구비, 수족, 동작의 침묵), ‘영혼의 침묵’(이성과 의지의 침묵)으로 구분해 완덕(完德)을 위한 방법으로 수행하게 한다.

 

‘침묵’으로 정화된 영혼이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맺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을 ‘대월’(對越)이라 한다. 대월은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잡념과 분심을 뛰어넘고, 사욕을 억제해 빛이신 하느님과 대면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며 대월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점성’, ‘침묵’, ‘대월’을 넘어간 영혼은 ‘면형무아’라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또한 순교자들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앙과 사랑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한국 순교자들을 주보로 모시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순교정신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4월 24일, 박지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하)


한국 넘어 11개국서 선교 활동

 

 

- 2019년 5월 천안 복자여중고 성모의 밤 행사 모습.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제공.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체성사의 신비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을 살고 전하는 것이 우리 사도적 생활의 핵심이다.”(한국순교복자수녀회 회헌 56)

 

올해로 창설 76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창설의 현장이었던 서울대교구 개성본당에서 사도직을 시작했다.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지만, 반면 한국교회 교세는 오히려 급격한 성장을 보여 전국 각 교구의 본당에서 수녀들을 청해 왔다. 이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51년에 마산교구 통영본당(현 태평동본당)을 시작으로 현재 15개 교구 72개 본당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전교 수녀회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수도회의 정신과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유아교육도 시작했다. 1955년 문을 연 서울 후암동본당 부설유치원이 그 시초였다. 현재는 본당 부설유치원 14곳과 자치 유치원 3곳에서 사도직을 수행 중이다.

 

2003년에는 유아교육뿐 아니라 유아교육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전한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자질,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 양성을 목적으로 복자몬테소리교사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교육사도직에도 투신하고 있다. 1961년과 1963년에는 천안에 복자여자중학교와 복자여자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했다. 이 학교들은 교육 평준화가 된 현재에도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다.

 

수도회는 다양한 계층의 약자들에게도 눈을 돌려 사회사도직도 실천하고 있다. 1963년부터 2005년까지는 부평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을 직접 운영하다 인천교구에 헌정한 후 교구 운영에 협조하고 있다. 1985년에는 성모자애보육원, 1999년에는 성모자애복지관 등을 운영하면서 아동,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사도직도 계속하고 있다.

 

그 외에도 1967년에는 일본 오사카에 진출해 교포사목을 시작했고,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인 1984년을 맞아 외방선교에 투신하라는 교회의 권고로 1987년부터 멕시코에 회원을 파견해 현지인 사목을 돕고 있다. 오늘날에는 5개 대륙, 11개국에서 해외 선교를 담당한다.

 

한편 한국순교자들의 얼을 이어받고자 했던 창설 취지와 뜻을 살려 창설 당시부터 한국교회에서 추진하는 순교자현양사업에도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협조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유품 수집과 보존, 순교성지 개발·관리는 물론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순교자영성센터를 중심으로 한 순교영성 교육과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2021년 9월 20일 성좌 설립 수도회로 승인되면서 한국인에 의해 창설된 수도회의 은사가 지역교회를 넘어 보편교회의 선물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1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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