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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안티고네 - 비극은 누가 만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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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16 ㅣ No.1289

[영화칼럼] 영화 ‘안티고네’ - 2020년 감독 소피 데라스페


비극은 누가 만듭니까?

 

 

그리스 비극(悲劇)을 인간 세상으로 끌고 내려온 사람은 소포클레스였습니다. 인간을 무대에 세움으로써 이야기에 꺼지지 않는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비극은 인간 세상에 대한 성찰과 교훈으로써 언제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슬러 걷는 자’란 뜻의 『안티고네』도 그렇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여동생인 안티고네의 용기와 선택, 비극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과 법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을 담아냅니다. 안티고네는 ‘반역자의 시신은 새 떼와 개 떼의 밥이 되게 버려두라.’는 외삼촌인 크레온 왕의 포고령을 어기고 큰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릅니다. 그녀에게 오빠의 시신을 거두는 일은 가족을 사랑하는 ‘운명의 선택’이며, ‘신의 변함없는 불문율’입니다. 그녀는 한 인간(크레온)의 의지가 두려워 신에게 벌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반면 크레온 왕은 스스로를 가장 이성적, 이상적 존재라고 믿는 독재자로 ‘애국’을 내세워 누구든 무조건 명령(법)을 따르라고 소리칩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안티고네의 약혼자이기도 한 아들 하이몬과 주변 사람들은 한탄합니다. “판단해야 할 사람이 잘못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가깝고 먼 미래에도, 과거에도 유효하리라, 인간의 성공에는 재앙이 따르게 마련인 법을.”

 

크레온의 비극은 안티고네는 물론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납니다. ‘분별없는 생각의 가혹하고도 치명적인 실수’가 빚은 비참한 파멸로 ‘인간에게는 어리석음이 가장 큰 재앙임을,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임을 2,500년 동안 사람들에게 각인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앙은 모습만 다를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영화 <안티고네(Antigone)>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할머니와 두 오빠, 여동생과 함께 알제리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열일곱 살의 소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 분)입니다. 마약에 연루된 큰오빠가 경찰의 총에 죽고, 작은오빠까지 체포되어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작은오빠를 감옥에서 탈출시키고 대신 갇힙니다.

 

그녀는 “심장이 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안티고네가 그랬듯이 인간의 법이 아닌 마음의 법(신의 법)을 따름으로써 ‘산 채로 무덤에 갇히는’ 운명을 맞은 것이지요. 안티고네에게 진실은 가족입니다. 인간의 법은 영혼이나 감정이 없기에 안티고네의 심장이 시킨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인간이 만든 편견과 독선, 차별과 오만의 법은 신(하느님)의 법을 따르려는 그녀에게 역시 비극적 결말을 강요합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단)처럼 영화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SNS로 그녀를 응원하고, 거리에서 그림과 치장으로 시위를 하고, 법정에서 판사를 조롱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안티고네는 할머니, 다시 체포된 작은오빠와 함께 또 다른 ‘무덤(알제리)’으로 쫓겨납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혼자, 특히 사회적 약자의 힘으로는 마음과 인간의 법 사이의 싸움은 풀 수가 없고, 안티고네의 비극은 반복될 것입니다.

 

[2022년 5월 15일 부활 제5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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